혜천의 Travelog


겨울날은 추위 때문에 도보 여행은 잘 안한다.
 오후들어 날씨가 조금 풀리는것 같아 진주성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운동하는 할머니들 과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성곽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떤 곳을 가든 한가지만 하면 싫증이 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화재나 유물등만 본다는것도 힘든 일 일것이다. 때론 자연을 구경하며 마음껏 걸어보는것도 좋다.

           서장대쪽으로 걷다보면 서쪽을 지키는 망루 서장대가 나온다.



 영남포정사에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 가라는 하마비가 있다 . 옛날엔 요즈음보다 벼슬에
대한 예우가 대단한 세상이었나 보다하고 생각되어 진다..



                               진주성에서 내려다본 진주남강



               서장대에서 돌아 나오면 북쪽의 망루 북장대가 우뚝 서있다.

                             진주성은 연인들이 호젖히 걷기 좋은 길이다.


                                경절사와 호국사에 이르는 길

진주성 성문을 들어서 촉석루와 남강변의 의암바위를 둘러보고 오른쪽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김시민장군 동상과 영남포정사에 다다른다. 영남포정사옆 비석군들을 둘러보고 북장대,청계서원을 지나면 포루가 나온다, 천자총통등 3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있고 연이어 호국사가 나온다. 서장대에 올라 진주남강을 내려다보고 박물관에 들렀다 나오면 서,너시간 걸린다. 
 
Posted by 혜 천

         날씨가 제법 쌀쌀한 날 진주성을 찾아 한바뀌 도니 4시간이 소요되었다.  
봄,가을이 더 좋지만 노란 잔디밭에 겨울 오후 햇살이 내려 쪼이니 걸을 만한 곳이었다.
촉석루에서 남강변을 내려다보니 수주 변영로시인의 시 논개가 생각난다. "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 붙은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 " 이런 진주를 또 느끼고 왔다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 그래서 진주하면 촉석루가 바로 연상 될 만한 건물이다.
              진주 남강변에 돌이 쫑긋쫑긋 솟아있어 붙여진 이름아라고 한다.

                           고려 고종 28년 진주목사 김지대가 창건 ,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광해군10년 병사 남이홍이 전보다 웅장하게 지어 보존되어 오다가
1948년 국보로 지정 되었다가 1950년  아깝게도 또 불타고 말았다. 지금 건물은 1960년에 중건된 정면5칸 츠견4칸의 팔작지붕 형태의 루각이다.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명승지이다.옛날부터 북쪽엔 평양루 남쪽엔 촉석루라 할만큼 유명한 곳이다. 옛날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글을 짖고, 그림을  그리던곳이다. 그래서 일까? 지금도 촉석루에 많은 글들의 기문과 현판,시판들이 걸려있다.





               진주는 임진왜란때 7만 군관민이 순절한  충절의 고장이다.
  지금은 창원 마산에 밀려 한적한 문화의 도시로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경남의 중심이기도 했던 곳이다.  봄이 되면 남강을 바라보며 진주성을 한바뀌 돌면서 진주의 과거와 임진왜란의 흔적을 찾아 걸어보면 좋은 곳이다.  
Posted by 혜 천
       임진왜란 ,진주대첩, 촉석루, 논개를 빼어 놓고 진주를  이야기를 할수 없을것이다. 
국사나 역사 교과서에 빠질수 없는 항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여행으로 그 현장을 보고 갔을 것이다.  진주논개가 왜장을 안고 순절한 진주 남강 의암바위를 가보고 왔다.    

 

촉석루 아래 남강 의암바위에서 왜장을 끌어 안고 순국하는 장면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고 군관민 7만 여명이 순절한 후 칠석날 왜적들이 촉석루
에서 승전연회를 베풀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기생으로 가장하여 연회석에 참석 ,왜장 게다니무라를 남강 의암바위로 유인하여 순국, 이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들이 시신을 수급 고향 안의에 안장하여 묘역은 그곳에 있다. 

의암바위 , 넓이 3.5m * 3.3m 정대륭 선비가 쓴 義岩 글씨

   의암(義岩)
 선조 26년 논개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인조7년 진주 선비 정대륭은 바위에 義岩이라 새겼다.


촉석루 밑 의암바위 앞에 위치한 의암 사적비와 비각

의암 사적비
경남 문화재 제353호로 의암사적비는 선조 25년 6우러29일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된 후 , 촉석루 연회에서 왜장을 의암바위로 유인하여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 들어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어유야담 ,국립진주박물관소장

 
 어우야담(於于野談)
어우집은 조선시대 문장가인 유몽인의 시문집이다.  어우야담 과 어우집에 실린 글은 예술성을 추구하여 각각의 편마다 새로운 착상으로 풍부한 우화를 곁들여 전개하고 있으며 2차 진주성 전투 직후 논개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책

경남 문화재 제353호 의암 사적비


"어우야담"에 의해 논개의 순국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진주시민들은 정식이 지은  비문으로 
비석을 세웠고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비각을 세워 < 의기논개지문> 이라 현판을 걸었다.

          비문에   " 그 바위 홀로 서있고 그 여인 우뚝 서있네
                              이 바위 아닌들 여인 어찌 죽을곳을 찾았겠으며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 라 쓰여 있다.


의기는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경남 문화재 제7호로 지정

의기 논개의 충절을 기려 1740년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창건,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중건.
정면3칸 측면2칸 맛배 기와지붕의 건물.

논개 표준 영정 가로 110cm * 세로 180 cm


 여러사람들이 잘알고 있을 장소를 다시 소개하는 것은 진주를 여행한 사람이면 알겠지만
촉석루와 논개 의암바위를 보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몇번을 갔던 사람도 그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여 또 가게 된다. 나도 그동안 몇번을 갔었지만 그 사진들이 어딜 갔는지 포스팅을 한번도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올리게 된다.      

여행정보
1.찾아가는 길
  * 전국 어느곳에서나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걸어서 10분 촉석루에 도착하면
     된다.  촉석루 아래 강변에 위치. 
 *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진주역 ) 에서는 도보로 20-30분 소요, 시내버스이용시 남강다리
    건너 하차.
2. 위치: 경남 진주시 본성동 140-1
           진주성 관리사무소 전화 : 055-749-2485 . 055-749-9057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