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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4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인각사

 

부산에서 군위까지  한번가기가  쉽지 않는 먼길이다.  군위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인각사, 삼존불, 한밭마을등 좋은 곳이 많다, 그중에  군위를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부르니 군위들리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를 꼭 보고 와야 군위구경을 했다고 할수있다네요. 

왜 그러냐 하면 바람흔적이 살고있는  ,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삼국유사 1권이 보관, 전시되고 있어 구경 한적이 있었다. 그때 보며 언젠가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군위 인각사를 가 봐야지 하다가  여행길에 방문했다.  서울 이외 삼국유사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불교사찰인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그 귀한 책을 생각하며 ~  

 삼국유사는 소설의 흐름을 가늠해보는 설화, 고대시가 ,향가, 와 고대민중이 불렀던 민요, 고대신화 . 그리고 일연스님이 쓴 48편의 찬가가 있다. 이로 볼때 일연스님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주옥같은 작품들이기도 하다고들 한다.  

삼국유사의 구성은

상권1, 2권으로 하권이 3,4,5권으로 구성되어 총 5권으로 구성되어있다

 *  왕력 (王曆)제1 - 신라,고구려,백제,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의 역대왕의 출생과 치세에 대해

                            기술하고 고조선부터 삼한  부여,고구려, 통일이전 신라등 여러나라의 흥망성쇠,

                             신화,전설과 함께 기록

*  기이(紀異)  제2 - 문무왕부터 경순왕까지 신라 ,백제,후백제에 관련된 이야기

*  흥법(興法)  제3 - 불교의 전래 과정수용,불교의 융성과 고승들의 행적 기록

*  탑상( 塔像)제4 -  탑과 불상 및 사찰의 유래 이야기

*  의해(義解) 제5  - 원공을 비롯한 신라의 튀어난 학승과율사들의 전기

*  신주(神呪) 제6 - 밀교,신승들의 이적(異蹟)에 관한 이야기

*  감통(感通) 제7 -  신앙의 감흥 과 영험에 관한 이야기

*  피은(避隱) 제8 -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던 승려들의 아름다운자취

*  효선(孝善) 제9 - 불교적인 선행과 효도에 따른 보답이야기      

 

 

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고승 일연이 충렬왕 7년(1281)에 편찬한 역사서로 5권 목판본이다. 1310년대에 그의 제자 무극이 간행하였지만 이것이 처음 간행한 것인지, 그 후 다신 간행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조선 전기 중종조 간행본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석남본과 송은본이 현존한다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것은 송은본으로 3,4,5권만 있는데 이중에서도 권3의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상태이다. 이 책은 권4와 5로 서문과 발문이 없으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완질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추정되며, 규장각 소장본 발문의 기록으로 보아 중종 7년(1512)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며, 한국 고대어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과 유적을 조사, 연구하는데에도 기본적인 자료가 되며,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에도 가장 오래된 중요문헌으로 손꼽힌다. 또한 이 책에 실린 향가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 최대로 꼽히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출판되었다는 점, 전해오는 간행본 중 몇 종 안되는 귀중본이란는 점 등으로 볼 때 서지학적인 중요성뿐만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해제사유: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권4-5> 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해제됨

 

보각국사 일연스님은 왜 삼국유사를 섰는가 ?

삼국유사의 글머리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었다. 글 첫머리에 " 대체로 옛성현들이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풀려하면 괴이,완력,패란,귀신에 데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알때부터 부명(符命)을 받고 도록(圖錄)을 받는것이 반드시 보통사람들과  는 다른점이 있어  천자의 지위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데서 나온것이 어찌 기이하다고 하겠는가?   

당시 지배층이 우리나라의 시작을 기자조선에 두려하는데 반해 일연스님은 삼국유사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기술하여 국가의 위상을 중국과 나란히 두었다.  단군의 치세를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 요임금과 동시로 처리하고 단군을 천제의 아들로 설정하고 있어 우리 역사와 문화가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느 자주적 민족사관을 펼다.  이런점으로 미루어 일연스님은 우리민족이 몽고 침입으로 굴욕당하고 있는 시기에 민족 자주의식을 깨우치고 후대에 민족혼을 심어 주기위해 삼국유사를 편찬한것으로 보면될것이다. 

 일연 스님의 속성은 김, 이름 견명, 처음자는 회연, 일연은 자중의 자, 호 무극.목암, 시호 보각. 경상 북도 경산 출생. 1214년(고종 1) 9세에 해양(전라남도 광주) 무량사에서 도를 닦고, 1219년 14세 때 승려가 되어 전국의 이름날 절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여 20세에 선불장에(승려의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였다. 1237년(고종 94)년 선사, 1259년 대선사가 되었다. 

 한편 몽고의 횡포가 극심하던 당시, 백성들에게 불법을 펴서 민심을 가라앉히기에 힘썼다. 또, 대구 팔공산 부인사의 '대장경'이 불타자, 현종의 명을 받아 새로 발간 하였다. 일생을 통하여 100여 권의 책을 지었는데, 그 중에서도 '삼국유사'가 특히 유명하다.  

일연선사는 1206년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22세인 1227년 승과에 급제한 뒤 비슬산 무주암과 묘문암에서 수도하셨다. 44세인 1249년에는 남해의 정림사와 지리산 길상암에, 1264년에는 영일 오어사에 계시다가 대구 가까운 인흥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학승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72세인 1277년에는 청도 운문사에 주석하시다가 충렬왕에 의해 국존에 추대되었고,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284년에 인각사로 와서 구산문도회를 연 뒤 1289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5년 후 14세 때에 삭발하고 중이 되어 선종에 속하는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수학, 설법하는 동안에 그의 편판은 날로 높아져서 사람들이 조계종의 4선인 가운데 첫째로 추대하였다. 고종 14년 겨울에 승과에 나가서 장원으로 급ㅔ하였는데 이때 나이 22세였다. 이후 그는 여러 절을 두루 거치며 수도 생활을 하였고, 그 깨달음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가다. 그가 주관하는 법회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의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삼중대사, 대선사 등에 올랐으며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충렬왕 15년 6월에 병을 얻어 회복하지 못할 것을 알고 손수 왕에게 올릴글을 쓰고 여러 스님들과 함께 무답으로 날을 보냈는데 이 날 밤에 둘레가 한 자가 넘는 큰 별이 절에 떨어졌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 떠나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몇몇 중과 사 에 대한 문답을 한 후 자는 듯이 돌아가셨다. 이때 오색의 빛이 절 뒤에서 일어나 타오르는 듯 했고 그 뒤에 는 흰구름이 덮여서 하늘을 향하여 가버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 84세의 일이다.  

일연을 사람됨이 과묵하여 허튼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가식없이 진정으로 대했으며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학문하는데 있어서도 특별한 스승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덕을 닦으며 수양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쇼성도 지극하여 항상 곁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론 불교적인 업적과 바앧한 저서이다. 일연이 쓴 책은 모두 100여권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그 정력과 박식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와 관련있는 불교서적은 전하는 것이 없고, '삼국유사'만이 남아서 국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삼국유사는 고루려, 백제 , 신라등 삼국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그가 살던 고여 중엽가지의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도 언급되어있다. 그 중 가장 중시되는 내용은 신라시대의 향가14수이다. 여기에 실린 향가는 그 내용에 있어 제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 향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설화, 신화 등 역사적 야사도 실려 있다.


 

인각사는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 말사로서 신라선덕왕 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입구에 깍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기린이 뿔을 바위에 얹었가도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麟角寺) 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스님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 거처하면서 구산문도회를 두번이나 개최하였고 ,여기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인각사 보각국사 탑 (보물제428호)은 고려 충렬왕 15년 (1289년)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부도탑이다. 일연은 노년에 인각사 에서 부모를 봉양하며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는데 아침에 해가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계례의의 혼을 되살린 천년고찰 인각사의  국사전이 있는 인각사지는 사적제374홀로 지정되어 발굴 ,복원중인 곳이다. 신라선덕여왕 11년(642년)에 의상대사 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보각국사 일연스님이 고려 충렬왕10년 (1284년)부터 임종때까지 5년동안 이곳에서 삼국유사 를 비롯하여 100여권의 불교서적을 집필하였고 총림법회등 대규모 불교행사를 연 곳으로 유명하다.

 

 

군위 인각사 국사전 뒤편 비각 속에 일연스님의 비가 모셔져 있다. 보각국사정조지탑과 함께 보물 제428호로 지정된 유물들을 둘러보는 여행을 했다. 비석의재질은 점암판이며,지금 비록 깨어져 본모습을 짐작키 힘들지만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라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

 

스님이 입적한지 6년 만인 충렬왕 21년에 세워져는데, 당대의 문장가 민지가 글짓고 ,글씨는 일연스님의 제자인 죽허가 칙명을 받고 명필 왕희지의 행서를 모았고, 또 다른 제자 청진이 세웠다고 한다.

 

비의 앞면에는 일연스님의 행적과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편의 음기에는 비를 세운 경위와 다비식 때의 영험담과 더불어 일연스님 문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각사 출토유물 전시회가 열리고있는 곳을 구경하며 일연스님과 인각사에 대해 배울수있는시간이 되었다.

 

 뚜껑이 7층 탑모양으로 장식된탑형 향합으로 청동향합이다, 향합은 병향로와 향합은 본래 한세트로 중국 서진대에 개착된 병녕사 169굴릐 벽화에는 병향로와탑형 합이 같이 출토되었다. 그래서 인각사 출토향합도 병향로와 한세트라 할수있다.  

청동정병으로 1점은 완형이고, 다른 것은 목 부분이 일부 파손됐다.타원형 몸체 어깨 부위에 작은 뚜껑을 여닫을 수있는 주구와 몸체 상단에 가늘고 긴 목인 침대를 달았다. 정변은 주전자의 일종이다. 불상을 목욕 싵키는 욕불과 같은 불교의 중요한 의식에 사용되는 깨끗하고 성스런 물을  따르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정병(淨甁)이라 부른다

 

 

 

 

 

 

청동반자이다. 청동반자란 간단히 말해 북이다.
청동반자는 각종 불교의식에서 사용한다, 앞면에는 세줄 융기 동심원을 둘렸으며 그 중앙인 당좌 에는 연꽃무늬를 돋을 새김했다.

 

 

 청동그릇이다.인각사에서 3점의 청동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이중에서 완형으로 남아 있는 것이 1점이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승용차 : 대구 - 팔공산순환도로  - 한티재휴게소 - 부계남산리 - 신성면 - 갑티재 -고로면화북리 인각사

 * 버스  : 대구(북부주차장) - 군위우보면 - 고로면 - 인각사   (75분소요, 배차 8분간격)

 * 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_ 군위ic - 효령면 -부계면 - 고로면 - 인각사

2> 문의 :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번지  인각사

      전화 : 054- 384  -1161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