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누군가 가  산은 절이 있어 온전한 산이되고  ,
            절은 산이 있어 온전한 절이된다고 했다. 

           가야산에는 예전엔 사찰이 많았다고 한다.

           그 흔적이 100 여곳이 넘는다고 하니 가야산이
           명산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명산 엔 명당자리가
          있는모양,

         그래서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도
         이곳으로 이사온 모양이다.

   
          남연군은 전주이씨요,이름은 구 (球)이며 인평대군 7대손이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이기도 하다.

         인평대군 이후 왕권을 잡은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으니 불안한 왕족 이었다.

          남연군의 묘는 처음 경기도 연천에 있던것을 흥선대원군이 왕권회복을 위한
          풍수지리설을 믿고  명당자리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기로 마음 먹는다.

          예산군 덕산 가야산 밑 명당자리에 이장하면 2대에 걸쳐 왕이 배출된다는
          지관(정만인)의 말을 듣고 가야산 명당자리에 사전 답사를  왔으나 ,
          이미 그곳엔 가야사 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다.

          암암리에 가야사를 불태워 폐사 시키고 남연군의 묘를 이장 시키니
         
현위치 예산군 덕산 이다.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고 18년후 대원군으로 정권을 잡고, 그후 고종황제 와 순종이 
        
등극하니 명당설이 맞아 들어간 셈이다. 

         이 때는 외국 열강들이 통상 개방을 요구하던 시절. 조선은 서양 오랑캐와는 통상할수
         없다는 쇄국정책을 밀고 나가든시절.
이 명당설 때문에 " 남연군의 묘 도굴사건"이
         일어나는 단초가 되기도 하며, 우리나라 근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도 하다.
 
        이 도굴사건은 1868년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프랑스 선교사와 조선인 천주교도들과
        함께 남연군의 유골을 확보하여 통상개방 협상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굴하다 실패한
        사건이였다.

        이사건으로 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며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 박해를 강화하고

         천주교 신자를 학살한 계기가 되었다.,이렇게 남연군의 묘 이장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서양 열강들이 너도 나도 밀려 들어와 나라의 장래가 어둡게 된다.
 

 

         요즈음도 명당설이 잠재해 있으니 대원군같은  조상들의 피를 물려 받아서일까? 
        얼마전에도 대통령이 되기위해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그래서 대톨영이 되기도 하고 

        또 대통령이 되기위해 이장을  해놓은 사람도 있고
선거철만 되면 명당자리 풍수설이
        기세를 떨치는 것이 달나라에 가는 요즘 시대도 옛날과 다를 것이 없는것 같다

        명당자리 풍수설이 맞는 것일까?  말그대로 風수설 일까?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