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부산 수영동에는 독도 수호의 선구자인 안 용복이 근무했던 
 경상좌수영이 있던 역사의   현장인 수영사적공원이 있다.
 그 사적공원내에 안용복장군의 사당이 있으며 그 인근에
 안 장군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안영복 장군은 조선 숙종때 동래출신(현수영구수영동)
어민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수군인 능로군이었다.
당시 왜인들이 우리의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라 부르면서
 자주 침범하자, 동료와함께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시키고, 일본의 에도막부로
부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 온 사람이다.

 그는 어부였다.  울릉도와 독도 수호에 큰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란
 칭호를 받으신 분이다. 국가에서 장군으로 임명된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안영복의
업적을 높이사 장군으로 부른것이다.
 그러니 참다운 장군이라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후세에 오래 기리고자 수영 사적공원에 사당과 동상을 건립하여 추모하고 있다

 

                  

   안영복 어린시절은 ?                                  

   동래부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엄하게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부산의 왜관(倭館 지금 고관
    옆)을 자주 출입하면서 일본말을 배워 일본인으로 오해받을 만큼의 일본어 실력을 쌓았고 장성
    하여서는  수군에 들어갔었으나 곧 그곳을 나와 어부로써 생활했다는 정도로 매우 소략하다.  

 

   안용복의 어부생활가 애국심은 자발적인 마음에서 발로된 점 ! 
 오늘 이야기하려는 안용복 역시 동래어민 40여명과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고기를
  잡기 위하여 침입한 일본어민을 만나 이를 힐책하다가 그의 오랜 친구였던 박어둔(朴於屯)과
  함께  일본으로 잡혀갔고 .  이때 호키주(百耆州)태수와 에도막부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이  심함을 밝히고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아냈다. 

 그러나 돌아오던 중 대마도주에게 잡혀서 문서를 빼앗기고 구금되었다. 
 대마도주는 울릉도를 차지하기 위해 다케시마(竹島)문서를 위조하여 같은 해 9월 사신을
 동래에 보내어 안용복을 송환하는 동시에 예조에 문서를 보내 조선의 어민이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독도)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지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울릉도 독도 박물관 앞 에서 안용복장군 추모비  

    

   안용복의 두 번째 일본행은 1696년 봄에 10여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가 마침
   출어한 일본어선을 발견하고 송도(松島)까지 추격하여 그들이 우리의 영토에 들어와 고기를 잡는
   것은 침범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 추궁한 때였다. 

  또 추궁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이라는 가짜 관리직으로
 스스로를 밝히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태수에게 남의 영토를 침범한 사실을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낸
 후 귀향하였다. 

 그가 얻어 낸 결과가 훌륭하였고 관리를 사칭한 것도 도리어 애국심의 발현이었다는 사정이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나라의 허락 없이 거짓관리행세를 하여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죄명으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고 이전에 대마도주에게 빼앗겨 증명할 수 없었던 문서의 진위여부까지 의심받게 되었다. 

 그러나 남구만의 간곡한 만류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가 귀양을 간 다음해인 1697년 대마도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확인한다는 막부의 통지를 보냈으나 안용복의
 죄는
  풀리지 않았다.              

  안용복의 용기 있는 기개로 울릉도에 대한 일본과의 마찰은 철종 시대까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한 그의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누구의 말도 아닌 본인의 말을 통해 안용복이란 한 어부가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우리의 땅을
   어찌 생각하였는지 느꼈으면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안중근의사라고 해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애국ㄱ자의 발로라고 봐진다.  

 “저는 본디 동래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에 갔다가 마침 뇌헌스님 등을 만나서 근년에
  울릉도에 왕래한 일을 자세히 말하고, 또 그 섬에 해물이 많다는 것을 말하였더니, 뇌헌 등이
  이롭게 여겼습니다.

  그 시절의 울릉도와  독도현황을 알수있네요!
 드디어 같이 배를 타고 영해 사는 뱃사공 유일부 등과 함께 떠나 그 섬에 이르렀는데, 
 주산(主山)인 삼봉은 삼각산보다 높았고, 남에서 북까지는 이틀길이고 동에서 서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산에는 잡목.매.까마귀.고양이가 많았고, 왜선도 많이 와서 정박하여 있으므로 뱃사람들이
  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都)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하러 나왔다. 

  이제 되돌아갈 것이다.’하므로, ‘송도는 우산도(于山島)로서, 그것도 우리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하였습니다.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
 
니다.  제가 막대기로 쳐서 깨뜨리고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들이 거두어 배에  싣고서 돛을
  올리고 돌아가므로, 제가 곧 배를 타고 뒤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을 만나 표류하여 옥기소(玉岐島)에 이르렀는데, 도주(島主)가 들어온 까닭을
물으므로, 제가 말하기를, ‘근년에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울릉도,우산도 등을 조선의 땅으로 정하고,
 막부의 문서까지 받았는데, 이 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법이 없어서 이제 또 우리 땅을 침범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자, 마땅히 백기주(百耆州)에 연락하겠다고 하였으나,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제가 분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여 배를 타고 곧장 백기주로 가서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
 가칭하고 장차 사람을 시켜 본도에 통고하려 하는데, 그 섬에서 사람과 말을 보내어

 맞이하므로, 저는 푸른 비단옷을 입고 검은 갓을 쓰고 가죽신을 신고 교자를 타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말을 타고서
 그 고을로 갔습니다.

저는 도주와 대청 위에 마주앉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아랫단에 앉았는데, 도주가 묻기를,‘어찌하여  들어왔는가?’하므로, 답하기를‘전일 두 섬의 일로 문서를 받아낸 것이 명백할 뿐만이 아닌데,
대마도주(對馬島主)가 그 문서를 빼앗고는 중간에서 위조하여 두세 번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법을
어겨 함부로 침범하였으니, 내가 장차 관백(關白-옛날 일본의 벼슬이름)에게 상소하여 죄상을 두루
 말하려 한다.’하였더니, 도주가 허락하였습니다. 

드디어 이인성으로 하여금 글을지어 바치게 하자, 도주의 아비가 백기주에 간청하여 오기를,
이 글을 올리면 내 아들이 반드시 중한 죄를 얻어 죽게 될 것이니 바치지 말기 바란다.’하였으므로,
관백에게 바치지는 못하였으나, 얼마 전에 지경을 침범한 왜인 15인을 적발하여 처벌하였습니다. 

 이어서 저에게 말하기를,‘두 섬은 이미 너희 나라에 속하였으니, 뒤에 혹 다시 침범하여 넘어가는
 자가 있거나 도주가 혹 함부로 침범하거든, 모두 국서(國書)를 만들어 역관(譯官)을 정하여 
들여보내면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하고, 이어서 양식을 주고 사신을 정하여 호송하려 하였으나,
 제가 데려가는 것은 폐단이 있다고 사양하였습니다.”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한 그의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것을  국역한
 자료( 출처 :독도본부 소식지 2002년 5월호])  

 

                        

                           

    여행정보 
      1>. 위치 :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229-1 (수영사적공원)
      2> 문의 : 051-752-2947 .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