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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8 아름다운 벽화가 피어있는 초량동 산복도로 산동네


부산의 명물 중 하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다. 산비탈이나 산허리를 지나는 도로란 뜻인데, 국어사전엔 없는 말이다. 평지가 좁고 산이 많은 부산의 지형이 만들어낸 길이다. 그래서 산복도로는 부산에선 보통명사로 쓰인다. 일제강점기 부산항에서 일하던 노역자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산중턱과 꼭대기로 몰리면서 형성됐다. 개항 이후 부산의 원형을 간직한 산복도로는 장소성과 역사성을 압축해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번달 12일 ‘초량 산복도로’ 공공미술 작업 현장을 갔다. 초량 주민센터 부근 프로젝트팀의 작업 공간인 ‘산복창고’로부터 10여분 거리인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오르막 길에 작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금수산길’에서 초량6동 주민센터로 내려가는 삼거리 벽면에는 산복도로 주민의 일상 이야기를 담은 대형 벽화 보인다. 멀찌감치 보면 오르막길과 이어지는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동구 초량동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는 ‘산복도로’를 주제로 내세우고 진행 중인 공공미술 작업이다. 미술 작업을 통해 낙후 지역을 재생할 수 있을지 행정가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부산시가 이 프로젝트에 2억원을 지원한 이유일 터다.


조그만 2층 가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방범초소 자리를 개조해 만든 작은 미술관. 2층에는 전면 유리의 컨테이너가 올려져 있다. 프로젝트팀의 서상호 예술감독은 “1층 초소에는 동구와 산복도로의 역사와 마을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2층의 윈도갤러리는 부산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바로 옆 개방된 옥상의 파란색 대형 물통에는 노란 국화가 피어났다. “꽃을 그려달라”는 집 주인 할머니의 ‘주문 작품’이다.


프로젝트 중 눈길을 확 끈 것은  부산컴퓨터과학고 옥상 2곳 벽면에 맨몸으로 도시 건물·벽을 오르거나 뛰어넘는  청년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았다. 부산항에서 수정산으로 뛰어오르는 듯한 기세. 항구와 산악 지형, 층층 건물과 계단이라는 공간성과 지역성을 한껏 살렸다. 주민과의 교감이나 주변 공간과의 친숙함을 중시하는 공공미술이 전위나 튀는 작품을 피하는 걸 감안하면 실험적인 시도이다.


도로변 공중전화 부스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작가 정만영이 부산항의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1번지의 소리들’이란 작품이다. 홍순연 작가는 금수산길 정점에 전망대를 만들었고, 허수빈 작가는 태양열과 LED를 활용한 라이팅 아트를 선보였다. 밤에는 푸른 빛을 내는 가로등 형태인데, 초량동 하늘이 보이는 창문을 형상화했다.
 


부산을 공공미술의 메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산복도로’ 덕분일 것이다. 지난해 성공적인 공공미술로 평가받는 감천2동과 안창마을도 산복도로와 접한 산동네다.  미술은 주민들의 팍팍한 삶과 생존 여건을 과연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설치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산복도로와 골목길에 관한 이야기, 역사를 계속 찾아낼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부산과 산복도로에 미술과 문화가 스며드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에겐 미술을 통해 이곳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위안을 주는 게 첫걸음인 듯했다.


오랫동안 “도시 미관을 저해하는” 장소로 여겨졌지만, 미술가들은 삶의 애환을 응축한 듯한 거친 굴곡의 산복도로에서 미적 가치를 재발견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 산허리를 굽이치는 산복도로 마을의 정취는 부산이 소중하게 다뤄야 할 가까운 과거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밤이면 산복도로를 비춰주는 부산항의 불빛, 수백척의 선박에서 밝히는 영롱한 불빛이 산복도로 사람들에겐 또하나의 볼거리다 .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부산항의 환상적인  야경을 
놓칠수야 없지요.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