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부산 갈맷길 따라 걷다보면 
지금까지 모르고 지났던 새로운 사실을  한두가지씩
알게되는 소득 있는 여행이라 생각된다.

광안리에서 오륙도까지의 이기대 산책로는 해안길을
따라 걷는 바닷길 여행의 오롯함을 느낄수 있으며
 이 길은 전날 걸어본 길이라
오늘은 오륙도 SK아파트
입구에서 백운포로 해서 용당동 신선대
 동명오거리
까지 약 7.7km 걸었다.
 

신선대부두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컨테이너 박스를 보면
 짐작하리 만큼
어마어마하게 적재된것을 볼수있다.
컨테이너의 야적된 모습도  하나의 작품인것 같다. 

차량으로 가까이 주차하고 오를수도있고 ,
걸어서도 쉽게 오를수있는곳이 신선대 정상입니다.

  



신선대  神仙臺 는 우암반도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장소를 신선대라 부른다.

화강암질로 된 해안이 파도의 침식을 받아 발달된
해식애와 해식동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용당동 해변의 좌안에 위치한
바닷가 절벽과
산 정상을 포함하여 전부를 신선대라고 부른다.

이곳 주변의 산세는 못을 둘러싼 용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용당(龍塘)이라 불렷다고 하며, 신라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유람하였다고 전한다.

그 이름은 산봉우리에 있는 있는 무제등이란 큰바위에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에는 울창한 송림으로 덮여 있으며, 사이사이에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섞여 있다.
아울러 새들이 많이 날아들고 있다.

이곳 주변의 경관이 다소 변하였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오륙도와 조도, 부산신선대부두,
부산내항, 건너편 영도봉래산, 그리고
맑은날 수평선 너머 나타나는 대마도의 전경을 볼수있는
부산의 명승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라 할수있겠다.

 부산사람이나 외지 여행객은 부산내항의 크고작은 배들구경, 부두의 하역장비,컨테아너박스
 의 적재된 모습, 영도봉래산등 부산의 참모습을 볼려면 이곳에서 봐야 될것 같은 곳이다.

  

                   신선대 정상부근- 이곳에서 내려다본 경치가 일품.



-----  정조20년 음력 1797년9월6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1797년9월6일 이 임신일이였다.
경상도 관찰사 이형원이 달려와서 다음과 같이 적어 올렸다.

" 이상한 나라의 배 한척이 표류하여 동래 용당포 앞바다에 닿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코가 높고 눈이 파랬습니다.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여 닿게된 연유를 한나라,청나라,왜국,몽고의 언어로 물어
보았으나 모두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붓을 주어 글을 써보라고 하였더니
글자의 모습이 구름이 핀 먼산과 같았고 그림을 그려도 알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200년전 부산 사람들은 코크고 파란눈을 가진 이상한 사람들을 처음보게 된 모양입니다.
 이상할수 밖에 없었겠지요. 요즘도 깊고 깊은 시골 사람들은 외국인들 본적이 없었을것이니...
그래도 그때 관찰사는 한어(중국어), 청나라말,왜국말, 몽고말을 할줄아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유식한  공무원이 였나 봅니다 . 

                  

2010년 4월20일 영국해군중령 요오크 공작에 의해 개막 되었고 ,저 뒤쪽의 작은나무는 1797년
10월 조선(한국)에 처음 상륙한 영국해군소속 윌리엄 브로우턴 함장이 부산항을 측량했던
관측지점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1년 4월20일 영국 요오크공작이 심었다


브로우턴 함장의 항해일기에 나타난 부산 동래사람들의 모습과 신선대 측량이야기

 이른 아침 낯선 우리를 보기 위해 호기심에 찬 남자,여자,어린이들을 가득실은 작은 배들이
 우리배를 둘러 쌓다.

그들은 누볐거나 이중천으로된 흰 무명천의 헐렁한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크고 헐렁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속바지 위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
남여 모두가 흰 무명 버선과 볏신을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묶어 상투를 틀었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모으고 땋아서 머리위에 올려 놓았다.

우리배에서 가까운 남쪽에 있는 산 (신선대)으로 올라가 방위각을 재기 위하여 뭍으로 나갔다.
 정상에서 우리가 볼수있는 시야는
매우 넓었고 항구의 모든 부분을 명확히 볼수있었다.
 
이 산의 강한 자력으로 인해 나침판의 바늘이 정확한 방향을 가르키지 못하고
항상 북쪽이 아닌 동쪽을 가르키므로 방위각 측정은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가파르며 높고 튀어나온 이산 이 우리
나침판 바늘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이산의 이름을 " 자석의 머리" 라고 표기" 하였다.
 
이렇게 영국해군 브로우턴 함장이 1797년 10월 부산항에서 본 조선사람, 우리의 선조들 모습을
 정확히 기록하였고, 그 시대 최신 장비로 측량을 할수있는 서구문화의 차이를 느껴본다.



 
   정상에서 볼수있는 곳
 * 태종대유원지 , * 해양대학이 있는 조도 * 영도 중리산,* 영도봉래산,* 천마산 * 영도대교
 * 부산중앙공원 * 승학산 * 감만부두 * 구덕산, * 엄광산,*  신선대부두 등





 여행정보
 1> 위치 :  부산시 남구 용호동 산 1850번지 (신선대: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29호)
 2> 문의 : 부산 남구청 : 051-637-7373   남구청 문화공보과 051-607-4062
 3> 찾아가는길
    * 20번 , 24번 버스 또는 2-2 마을버스 이용 성모병원 앞 또는 백운포 정류장,  sk 아파트에서 
        하차 오른쪽 포장도로를  따라 1km 정도 도보거리. 
 4> 인근 볼거리
        * 오륙도 * 해군함대 * 이기대 * 유엔기념공원 * 부산박물관 * 우암동 산동네
 5> 먹거리 
        *80년전통의 내호냉면(
남구 우암 2동 작은 시장통의 좁은 골목  051)646-6195 )
        * 진주냉면 (부경대 앞)
        * 용호동 및 백운포 횟집

 

Posted by 혜 천


부산의 명물 중 하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다. 산비탈이나 산허리를 지나는 도로란 뜻인데, 국어사전엔 없는 말이다. 평지가 좁고 산이 많은 부산의 지형이 만들어낸 길이다. 그래서 산복도로는 부산에선 보통명사로 쓰인다. 일제강점기 부산항에서 일하던 노역자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산중턱과 꼭대기로 몰리면서 형성됐다. 개항 이후 부산의 원형을 간직한 산복도로는 장소성과 역사성을 압축해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번달 12일 ‘초량 산복도로’ 공공미술 작업 현장을 갔다. 초량 주민센터 부근 프로젝트팀의 작업 공간인 ‘산복창고’로부터 10여분 거리인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오르막 길에 작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금수산길’에서 초량6동 주민센터로 내려가는 삼거리 벽면에는 산복도로 주민의 일상 이야기를 담은 대형 벽화 보인다. 멀찌감치 보면 오르막길과 이어지는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동구 초량동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는 ‘산복도로’를 주제로 내세우고 진행 중인 공공미술 작업이다. 미술 작업을 통해 낙후 지역을 재생할 수 있을지 행정가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부산시가 이 프로젝트에 2억원을 지원한 이유일 터다.


조그만 2층 가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방범초소 자리를 개조해 만든 작은 미술관. 2층에는 전면 유리의 컨테이너가 올려져 있다. 프로젝트팀의 서상호 예술감독은 “1층 초소에는 동구와 산복도로의 역사와 마을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2층의 윈도갤러리는 부산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바로 옆 개방된 옥상의 파란색 대형 물통에는 노란 국화가 피어났다. “꽃을 그려달라”는 집 주인 할머니의 ‘주문 작품’이다.


프로젝트 중 눈길을 확 끈 것은  부산컴퓨터과학고 옥상 2곳 벽면에 맨몸으로 도시 건물·벽을 오르거나 뛰어넘는  청년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았다. 부산항에서 수정산으로 뛰어오르는 듯한 기세. 항구와 산악 지형, 층층 건물과 계단이라는 공간성과 지역성을 한껏 살렸다. 주민과의 교감이나 주변 공간과의 친숙함을 중시하는 공공미술이 전위나 튀는 작품을 피하는 걸 감안하면 실험적인 시도이다.


도로변 공중전화 부스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작가 정만영이 부산항의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1번지의 소리들’이란 작품이다. 홍순연 작가는 금수산길 정점에 전망대를 만들었고, 허수빈 작가는 태양열과 LED를 활용한 라이팅 아트를 선보였다. 밤에는 푸른 빛을 내는 가로등 형태인데, 초량동 하늘이 보이는 창문을 형상화했다.
 


부산을 공공미술의 메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산복도로’ 덕분일 것이다. 지난해 성공적인 공공미술로 평가받는 감천2동과 안창마을도 산복도로와 접한 산동네다.  미술은 주민들의 팍팍한 삶과 생존 여건을 과연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설치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산복도로와 골목길에 관한 이야기, 역사를 계속 찾아낼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부산과 산복도로에 미술과 문화가 스며드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에겐 미술을 통해 이곳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위안을 주는 게 첫걸음인 듯했다.


오랫동안 “도시 미관을 저해하는” 장소로 여겨졌지만, 미술가들은 삶의 애환을 응축한 듯한 거친 굴곡의 산복도로에서 미적 가치를 재발견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 산허리를 굽이치는 산복도로 마을의 정취는 부산이 소중하게 다뤄야 할 가까운 과거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밤이면 산복도로를 비춰주는 부산항의 불빛, 수백척의 선박에서 밝히는 영롱한 불빛이 산복도로 사람들에겐 또하나의 볼거리다 .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부산항의 환상적인  야경을 
놓칠수야 없지요.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