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이순신장군의 안골포해전 승전지 안골포는 부산 신항공사에 밀려 외로운 어항이 되었다. 그 유명한 안골포굴강도 굴파는 간이 건물들 뿐이고 안골포왜성은 무너지고 풀이 무성한 어느 시골 언덕 처럼 되어 있다.

부산신항이 생기기 전에는 가덕도 앞바다와 안골포는 한적한 어느 시골 어촌의 풍경을  간직한 조용한 포구였는데 신항공사가 시작되면서 안골포 와 가덕도도 공사에 힙싸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부산항신항 안골포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하여 안골포방파제등대를 설치하였다.

경남 진해시 안골포 방파제 끝단에 설치된 등대는 2007년 7월 11일 착공하여 2007년 11월 8일 준공하였으며, 안골포방파제등대는 등고 14m 높이의 붉은색 팔각형 철근콘크리트조로 제작되어 주간은 물론 특히, 야간의 안골포 입출항 선박의 든든한 안전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금번 안골포방파제등대를 설치함으로써 안골포를 기점으로 어로활동을 하는 지역 어민들의 해상안전사고 예방과 주변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항해 지표로써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해상교통안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등대이다.



                          안골포는 진해 용원에서도 갏수있고, 진해 마천공단쪽에서도 진입 할 수 있다,   

                    어느쪽이든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안골포를 만난다. 조선시대 군 조선소인 안골굴강을 만날수있고, 
                    왜군이 쌓은 안골왜성을 볼 수 있다.

                           안골포방파제에 있는 등대.


 

                        안골포 !!!
                  해안도로에선 안골포 굴강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굴강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군선을 고치고
                  군수품을 나르던 곳이다. 
군 전용 조선소라고 할 수 있다. 전국에 5-6개 정도 굴강이 남아 있는데,
                  안골포 굴강은 원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굴강이다. 안골포에선 큰 싸움도 한 차례
                  벌어졌었다. 1592년 7월 한산도 대첩 이후 안골포에 주둔한 일본군
  제2주력함대를 이순신 장군이
                  격파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는 안골포 해전 기록이 이렇게 적혀 있다. '10일에 안골포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 이순신은 추격을 계속하면 우리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 되어 이내 중지를 하고 안골포 근처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인 11일 새벽에 조선 함대는 다시 안골포를 포위하였으나, 왜군들은 이미 도주하여 버린 상태였다. 조선 수군은 12일 오전에 한산도에  도착하였다. 이 때 한산도에는 400여명의 왜군 패잔병이 있었지만 이들의 처리는 경상우수사 원균에게 맡기고 7월13일에 본영 여수로 돌아왔다. 한산도와 안골포 해전이 끝난 후에 보니 아군의 피해는 전사자 19명, 부상자 114명이었다. 이들 전사자와 부상자  중에는 노비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더 들어가면 안골왜성이다. 해안도로 입구에  안골포왜성이라고 조그마하게 붙어 있다.
                          마른 풀이 잔뜩 자라 볼품없이 보이는데다 성벽은 허물어져 있다.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