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부산여행중 다대포가 찾이하는 비중은 부산
서남쪽 여행의 볼거리를 잠재 하여있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낙동강하구와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사진 찰영장소로 각광받고있는곳으로만 알고있지요ㅣ
 
그러나 다대포의 볼거리는 무궁무진하여 하루여행을
 계획해야  다 둘러 볼수있는 곳입니다.

햇살이 좋은 오전10시 부터 저녁노을을 볼수있는
저녁8시까지 다대포 하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산 다대포 어디 붙어있으며 어떻게 찾아가면 좋은가?
* 첫번째길 ; 남해고속도로 → 서부산T/G → 낙동대교 통과
              후 → 회차 → 낙동로(0.2㎞) →강변로 (약1.5㎞))
              → 다대포해수욕장(약20㎞) 
* 두번째 길 : 연안여객부두, 남포동에서 다대포방면 ,
                   버스노선 11번 - 충무동로타리에서
                    다대포방면 : 버스노선 96번 
* 세번째 길 ; 부산역에서 약 17㎞거리  버스노선 2, 11,1000 번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 네번재 길: 지하철 이용은 신평 또는 괴정역에서 하차 버스를 환승하여 다대포에 도착하는
                  방법이 이있습니다. 

이렇게 버스를 이용하는 여행객은 버스를타고  다대포입구 다대초등학교 앞 에서 하차하여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다대포여행 계획에서 무엇을 얼마나 볼것인가 ?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대충 12곳의 중요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1>대포해수욕장 입구 윤공단,  2> 다대포 큰샘 3> 다대항과 어시장  4> 다대포 해수욕장 
5> 몰운대 시비 
 6> 다대포 객사 7>다대8경/몰운대/정운장군 순의비 산책로  8>화손대
 9
> 낙조대산책및 노을사진촬영.   11> 다대포꿈의 낙조분수 12> 아미산전망대

다대포( 多大浦)는 말은 그대로 크고 넓은 포구 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는 부산항보다
 큰 포구였으며 국방상의 요충지
 임진왜란때는 이순신장군이 제4차 출전 부산포해전 중
 다대포해전에서 8척의 왜선을 격침시킨 전투지역이기도 한곳이며 
정운장군이 전사한
 곳이기도 한 곳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첫번째로 봐야할곳은  윤공단입니다.

부산시내쪽에서 다대포롤 들어오는 다대포입구 다대포초등학교에서 하차해야 됩니다.
길건너 윤공단 이정표가 있습니다. 윤공단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 장군의 충절을 기리고자 높이 마련한 단으로, 단 중앙에는 비를 세워 두어 장군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윤흥신은 선조 25년(1592) 부산에 상륙한 왜적이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후,다대진을 공격하자 동생 흥제와 군관민을 이끌고 이들과 대치하다 전사하였다.  

왜란이 끝난 후에도 이 일이 알려지지 않다가, 영조 37년(1761) 경사감사로 있던 조엄(고구마를 전래시킨 인물)이 이 사연에 얽힌 자료를 찾아내어 조정에 올리니, 비로소 그의 충절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후 영조 41년(1765) 당시 다대첨사로 있던 이해문이 단을 쌓고, 음력 4월 14일을 제사일로 정하여 제사를 지내었다. 원래는 윤흥신이 순절한 곳인 다대객관의 동쪽에 있었으나,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동민이 중심이 되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   홍살문과 현재의 윤공단  >

                                    < 1950년경 다대포 아미산과 윤공단모습 >

큰도로 옆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수있습니다.계단으로  5m 정도 오르면 오른편에
비석군이 있습니다.  비석군의 비석들을 찬찬히 읽어 보고 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윤흥신장군의 비가 서 있습니다. 내려오는 중간에 사당이 한채 있으나 외관입구 금줄만 볼수있습니다. 



두번째로 봐야 할곳 윤공단 길 건너편에 조그마한 동산이 하나있고 그 가운데 비석이 하나 외롭게 숨어 있습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 유적입니다. 

두번째
볼거리는 절충장군 한광국 구폐불망비
지금도 다대포와 같은 전통있는 바닷가 포구 마을에는, 신년다례를 정월 초하루 아침에 지내지 않고 전날인 섣달 그믐 즉 음력12월 31일에 제사나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어민은 천역에 종사하는 천인이었으므로, 일반상민들과 같이 설날에 다례를 지내지 못하고, 섣달그믐에 고을 원에게 세배를 올려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성을 차별하는 악습을 바로 잡고자 조선조 고종때 한광국은, 한양을 7차례나 왕복하면서 해박한 한문실력으로 임금께 상소를 올려 어민의 처우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어부들의 천민면제를 탄원하여 결국에는 윤허를 득하고 전국 각 포구 어민들이 상민으로 살아갈수 있는 자격을 갖게한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한 다대사람 민권 운동가입니다.  

이후 한광국에게는 진사벼슬이 내려지고 다대포 일원에 하사토가 내려지는등 개인적인 영광을 얻었으나, 이보다도 각 포구의 어민들은 보통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해준 그의 공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자 포구의 일부 어민들이 그의 묘앞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진사 한광국 구폐불망비(폐습을 구제한 것을 잊지못함)를 세웠으나, 다시 전국 각 포구의 어민 전부가 일부 어민의 일이될수 없다는 취지아래 엽전 한닙씩을 갹출하여 다대포입구(현 다대포 현대아파트길건너편)에 비각(지금은 없음)을 짓고 비석을 세웠으니, 비문에는 절충한광국구폐불망비라 했고, 뒷면에는 융희2년 무신4월 각 포민개립이라 되어 있습니다.

         ※ 절충(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장군 벼슬), 융희2년(대한제국 융희2년 1908년)

그러나 묘지(현 해송아파트자리)와 불망비는, 도로확장공사와 아파트공사로 허물어졌고 현재 묘지에 있던 불망비는 둘곳이 없어 방치되었다가 현 윤공단 옆 다대고을 첨사 송덕비옆에 놓여져 있으며, 1908년에 세운 불망 개립비는 비각도 없어 원불교 교당뒷편에 쓸쓸히 놓여 있습니다.

 

절충장군 한광국 구페위령비를 보고 조금 걸어 내려오면 유치원연구원 건물입구에
다대포큰샘이 있습니다.
 

 세번째볼거리 무식한 공무원들이 민방위 비상급수시설로 개조한 다대포큰샘
다대큰샘 옛 첨사영 아래에 있던 다대 큰샘은 오늘날의 다대초등학교 아래 동남쪽에 몇 해 전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최근 간이수도시설로 개조했다. 이 샘은 다대포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한 때부터 주민 전부가 식수로 사용해 왔다. 수량이 무진장이기 때문에 종일 길어내어도 한밤중에는 물이 철철 넘쳐서 물줄기가 끊어진 일이 없었다.

 상수도가 설비되기 이전까지의 다대포 사람은 모두 이 물을 사용했고, 샘에서 넘치는 물을 받아 아래에 10평 남짓한 곳에 공동 세탁장을 만들어 마을 아낙네들이 빨래감을 이고 와 빨래를 했다. 그 아래샘의 샘터는 현재도 남아 있다.

옛 다대포 주민들의 생명수였었는데 지금 사용하지 않아 관리가 힘들다고 콘크리트로 탱탱 막아
민방위비상급수시설로 상용한다니, 자신들의 조상님들이 사용했던 흔적을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되는데 , 일반샘이 아니고 다대주민의 공동 생명수였다는데 , 아쉬움이 남는곳 이였습니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 1234번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문화공보과 051-220-4082 

이제 천천히 다대포항을 돌아보기로 합니다. 다대큰샘으로 보고 아래쪽으로 나오면 바닷가에
이릅니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걸어봐요.다대포의 냄새가 스며나는 곳입니다.
 

네번째 볼거리 다대포항과 어시장

다대포항은 알다시피 이름난 어항이였습니다.수산물을 경매하는 공판장이 있고, 활어를
직접 가려서 맛볼 수 있는 횟집이 즐비한 곳입니다. 옛날에는 다대포진(多大浦鎭)이라 해서 압록강변의 만포진(滿浦鎭)과 함께 국방의 요충지를 이루었던 곳입니다. 다대항에는 많은 횟집들이 있어서 신선하고 맛있는 회를 즐길 수가 있다.
 

 나무다리가 이쁘다, 천천히 좁은 나무다리를 걸어보자. 갯벌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판자를 깔아 사람 한사람 지날수있게  꽤 긴 바다위 나무다리가 있다 . 끝에서 배를 탈수있다. 간조때 물길이 나가고나면 뻘밭이다. 그래서 조그만 어선도 뭍에 올라올수 없으니 나무다리를 놓아서 배까지갈수있는 통로이기도 한곳이다.
 

 

다대포는 1990년부터 최근까지 목재부두 개발, 원목·수산가공단지 조성 등 각종 매립계획이 추진되다가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백지화된 바 있다"면서 "열악한 주거환경과 공단시설 민원으로 주민들이 떠나고 있는 사하구는 친환경·복지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바닷길를 걸어 다대포 어시장에 가보자. 다른 어시장과 다른 면이 있는지 시장구경도 재미있다.   



 시장 주위에서 점심을 먹어도 좋다, 그렇지 않으면 다대포해수욕장, 올운대 입구까지 더 걸어 내려와서 식사할곳을 찾아도 된다.  몰운대 입구 바다가 할매집도 좋다,  간단하게 사시미 한점시켜서 좋고 막걸리 한사발하고 칼국수를 시키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다대포 해수욕장위 대우프르지오 입구 덕이네 손칼국수집도 좋다  

 점심을 먹자 ! 저는 덕이네 손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 4,500원 해물수제비는 국물이  담백하고
   시원하였으며, 얼큰수제비는 말그대로
   맛이 얼큰하고 시원한 집입니다.

 * 다대동 1552-18번지 (덕이네 손수제비)
 * 전화 : 051-262-4953  / 010-3570-1138
* 버스노선: 일반 11, 2, 338,96번
            급행 : 1000(심야) 대우아파트앞





여섯번째로 봐야할곳
:
연인의 손잡고 다대포 해수욕장을 걸어보자.
다대포해수욕장은 꼭 두발로 천천히 걸어봐야 제맛을 느낌니다.  다른 해수욕장과 다른점이
있는 해수욕장입니다.
백사장의 모래가 딱딱하여 걷기가 참좋습니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갈
염려도 없습니다.
 
다대포 해수욕장은 길이 900m, 너비 100m이다. 폭이 대단히 넓은 백사장을 가지고 있는
해수욕장이며,
평균 수온은 21.6℃, 수심 1.5m로 부산시내에서 서남쪽으로 8km 떨어진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낙동강 상류에서 실려온 양질의 모래밭과 완만한 경사, 얕은 수심과 따뜻한 수온으로 널리
알려진 여름철 피서지이며, 
백사장이 단단하여 텐트를 치고 하루를 즐길기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수심이 완만하여 어린이들이 뛰어 놀기 좋습니다.  대규모야영장과 주차장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여름철 가족 단위 알뜰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8월이면 이곳에서는 여름바다축제가 열린다. 

 

일곱번째 볼거리 다대포를 대표하는곳 몰운대 

몰운대의 총면적은 506천㎡로 1972년 6월 26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부산의 3대(臺)라 하면 태종대,해운대,몰운대이다. 이 3대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가운데「海天萬里」의 바다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승경의 곳이지요. 
 

한때 몰운대가「沒雲島」란 섬이었다고 말하면 지금은 육지와 이어져 있으니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으로 다대포 서남쪽 해발 78m의 몰운대는 아주 오래 전에는 몰운도란 섬이었다.


그것은 1763년 일본통신사 조엄(趙樟)이 해사일기(海擄日記)에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한뒤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1544년 2월의 中宗實錄에서도「몰운대」에 왜선의 후망처(지금의 감시소)로 봉수대를 설치할 것을 의논하고 있다. 그래서 西區誌는 중종실록의「몰운도」(지금의 몰운대)란 기록은 예부터 불러오던 지명이기 때문에 그리 쓴것이지 중종때는 이미 육지와 이어져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부산시가 편찬한「부산의 문화재」에서는 몰운대를 16세기까지는 섬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중종실록을 따른 것 같다. 신라 이전과 16세기 이전은 적게 잡아도 6백년의 거리가 있다. 한데 신라 이전을 말한 조엄의 해사일기도 함부로 그리 말했다고 보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조엄이 1757년 동래부사이다가 1758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1763년에는 통신사로 일본으로 갔다가 대마도에 들러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싹튀워 줄기를 뻗쳐서는 그 줄기를 심어 가꾸는 고구마 재배법과 저장법을 소상히 알아 가지고 귀국할 때 씨고구마를 가져와서 그의 연고지인 동래와 제주도에 그 재배법과 저장법을 퍼뜨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때(1764)의 동래부사는 姜必履였는데 자기보다 7년전의 부사 조엄에게서 고구마 재배법을 익힌 姜必履는 甘藷譜란 책까지 내어 고구마재배를 지방민에게 지도 장려했다. 그러니 동래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의 고구마재배지가 된다. 그러한 연고를 가진 조엄이 쓴「해사일기」고 보면 몰운대는 중조이전까지 섬이었을지도 모른다. 
 
몰운대의 이름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그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섬이 보이지 않는다고 구름속에 빠진 섬이란 시화적(詩畵的)인 이름이 되었다.  


몰운대가 있는 몰운산으로 산책을 하는것도 좋습니다, 몰운산은 높이 78  m로 걸어서 산책하기 좋습니다. 자연경치가 아름다워 볼거리가 많습니다. 조금 걸어오르면 다대포시시비가 나옵니다. 천천히 읽고 가야죠
 
 여덟번째 볼거리 돌아 올라가면 다대포시비(多大浦 詩碑) 

몰운대는 이토록 아름다움의 최고봉이라 할 만큼 알려진 곳이다. 지금까지 다대포가 교통의 불편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오히려 그 덕에 운치있는 곳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몰운대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몰운대 시비가 있습니다 

                           浩蕩風濤千萬里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로 이어졌는데
                           白雲天半沒孤臺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常見仙人賀鶴來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보고 노래한 조선시대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시(詩)다.



낙동강 하구가 바다와 어우러지고 태백산맥의 마지막 끝자리가 되는 이 몰운대는 경관이 아주 뛰어나 시인 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노래한 동래부사 李春元의 시(詩)가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전하는데 이 시를 돌에 음각한 "몰운대 詩碑"를 1999.6.12 사하지역발전협의회에서 건립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몰운대시비(다대포시비)의 시를 읽어보고 곧장 올라가니 객사건물한채가 눈앞에 나타난다. 안내판을 읽어보고 
 다대포객사가 걸어온길을 짐작해본다. 주위에 다른 볼거리가 없어 관리사무실에 들리니  다대포에서 출생하여
 다대포초등학교를 졸업하신 이대호(010-6765-0942) 어르신께서 다대포초등학교 100년사란 책을 내어 놓으시고  다대포객사의 위치와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셔셨어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홉번째 볼거리 한때 다대포초등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던 다대포객사(多大浦 客使)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도 합니다. 전주갓을때 전주객사의 커대함에 놀란적이 있었는데 이곳 객사는 규모가 적었습니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었 답니다. 



다대포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하며.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된 포구였기에 객사도 격이 한층 높았습니다.

다대포 객사는 부산 영남지역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건축물입니다.

정당과 그 좌우에 익실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대포객사는 정당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
답니다.  

 

다대포는 옛부터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 요지로,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7진의 하나가 되었으며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 중요시 되었던 곳이며, 이 건물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수차 중건되다가 순조 25년(1825)에 중수 된 것으로 5량칸의 팔작건물이다. 원래는 다대국민학교 구내 구(舊) 첨사영(僉使營)에 있던 것을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열번째  들어갈수 없는곳가 다가 돌아 나와야되는 정운공 순절비

정운공순의비(鄭運公殉義碑)는 몰운대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1592년 9월 1일)에 우부장(右部將)으로 출전하여 공격의 맨 앞에 서서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의 의로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정운 장군은 적병이 호남에 이르기 전에 먼저 나아가 칠 것을 주장하고, 맨 앞에 서서 공격할 것을 스스로 청하였다. 또한 옥포·사천·한산도 해전에서 공을 세우고, 왜적의 군영이 있던 부산포를 공격할 때에도 다시 맨 앞에서 공격을 하였다. 비문에는 장군이 수군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에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沒雲)의 운(雲)자가 자기 이름자 운(運)과 음이 같다하여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충장공실기(忠壯公實記:‘충장’은 정운 장군의 시호)』와 『충무공전서』에는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정운공 순의비 사진은 문화재청자료입니다.> 

직사각형의 비는 윗변을 둥글게 다듬은 간략한 형태이다. 정조 22년(1798) 정운 장군의 8대손 정혁이 다대첨사로 왔을 때 세운 것이며, 비문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썼다. 1974년 부산시가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엔 군부대가 주둔하고있는 지역내에 위치하여 볼수가 없다. 군사지역이지만
일년에 몇차례 날짜를 정하여 정운공순의비를 보고 참배할수 있도로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의 역활도 중요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배려도 필요할것 같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 산144 , 부산광역시 사하구 문화공보과 051-220-4082

 

열한번째 볼거리 몰운도의 남쪽끝 바다로 면한 동쪽 끝의 대 화손대 

몰운대는 남쪽끝 바다를 면한 한 가운데의 대를 말하고,
화손대는 몰운산의 남쪽끝 바다로 면한 동쪽 끝의 대를 말한다 
몰운도 즉,몰운산에는 이와같이 몰운대,화손대 2개의 대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대(臺)라는곳은 경치가 아름답워 옛 선조들이 즐겨 찾아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던곳을 말한다.


다대포해수욕장 물운대 입구에서 왼쪽으로1,2km지점이지만  다대포객사를 둘러보고 몰운대를거쳐 화손대로 이르는 갈맷길을 걸어보며 크고작은 섬들을 보는것 좋은 코스이다.

  
 부산에서 섬이 많은 곳도 이 몰운대가 있는 다대포 주위다.  아득한 바다 저멀리로 떨어져 부산의 연안을 지키는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그리고 목도, 금문도, 동섬, 동호섬, 팔봉섬, 솔섬,  오리섬, 쥐섬, 모자섬, 자섬 등 모두 몰운대와 함께 다대동에 지번 지적이 올려져 있는 섬이다.



열두번째 볼거리 낙동강하구둑 모래톱을 내려다볼수 있는 아미산전망대

낙동강하구의 풍광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미산전망대이다. 예전에는 테크로 장소만 있던 공터에 낙동강하구를 조망할수있는 전망대를 설치했다.

                           <  사진출처 : 여행다니는 농부의주말일기  >

이곳에서 1300리 흘러온 낙동강물이 도착곳이다. 태평양의 바닷물과 조우하는곳이다.그래서 삼각주 모래톱이 생기고, 철새들이 모여들어저녁노을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이 곳 낙동강하구에는 매년 생태계모니터링 결과 175종 17만여 마리의 철새가 찾아드는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큰고니의 경우 전국에서 월동하는 개체수의 약 65%인 2000여마리가 찾아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낙동강하구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이 뛰어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열세번째 볼거리  다대포의 낙조, 저녁 노을 사진에 담아 봐요.!
 다대포낙조를 감상하며 하며 찍을수있는낙조대 !
다대포 해수욕장의 특징은 갈대를 함께 촬영할수 있는데 각 계절마다 일몰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른 사진을 만들수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버스 정류소에서 바다 쪽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촬영할수 있습니다.

 어떤사람은 서해에 위치하고 있는 꽃지해수욕장의 할매, 할배 바위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일명 다대포의 꽃지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곳은 다대포 해수욕장의 가장 대표적인 겨울철 촬영포인트라고 할수 있죠. 태양의 각도가 가장 왼쪽으로 치우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물이 들어온 날에 이곳으로 들어가려면 밧줄을 타고 가거나 아니면 들어가지를 못했는데 이제는 산책로를 잘 만들어 두어서 언제든지 편안하게 들어갈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섬안에서 촬영하는것보다 오히려 밖에서 촬영을 하는 것이 오히려 사진을 더욱 이쁘게 만들어 주는것 같았습니다.


 다대포여행 마지막 볼거리 밤에보면 더 좋은곳 다대포 꿈의낙조 분수  

 넓은 백사장과 한여름 젊음의 축제로 유명한 다대포해수욕장에 최대지름 60m, 둘레 180m,
최고 물높이 55m인 세계 최대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다대포 꿈의 낙조분수』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는 규모뿐만 아니라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음악과 조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추는 음악분수로서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싱가포르 센토사 등지에서 볼 수 있었던 환상적인 음악분수공연을 펼칩니다. 또한 평소에는 수조와 노즐이 노출되지 않아 문화행사, 공연, 놀이시설 등 다목적 광장으로 활용이 가능하며 시민들의 여가 및 휴식공간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낙조분수 운영시간 참조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겨울석달 12월 1월 2월은 가동을 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