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설날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밀양엘 다녀왔다. 
부산에서 가까운 밀양은 보고 배울 것이 많은 문화도시다.
관혼상제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 일까?

밀양 영남루 바로 앞에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시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있고 이곳에서 매년 제례를 지낸다니
종교를 떠나 참 좋은 일이라 생각되고 또 영원히 보존할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곳이 천진궁이였다.

천진궁은 1665년 현종6년에 건립되었으며 이 건물은
역대 왕조 시조 위패를 모신 공진관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으나,
1722년 경종2년부터 공진관 대신 위패를 보관하며
객사의 기능을 하던 곳이었다 한다.

일제시대에는 헌병대가 이 건물을 감옥으로 사용했으며 , 이는 일제가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역대 왕들의 위패를 땅에 묻고 감옥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민족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할수 있는 역사 현장이기도 한곳이다
.  


      영남루에서 마당 건너 앞을 보면 만덕문이 보인다.
      만덕문을 들어서면 천군궁 현판을 가진 건물이 바로 역대 왕조의 시조를 모신 천진궁이다.
   

      

     
   1952년 단군 봉안회가 생겨 천진궁의 남쪽을 향해 중앙에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왼쪽 벽면에 부여시조왕, 고구려 시조왕,가야시조왕,과 고려태조의 위패를 모시고
   오른쪽 벽면에 신라시조왕,백제시조왕,그리고 발해고왕 마지막에 조선 태조의 위패
   모셔져 있다. 매년 봄,가을 로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각시조 위패에는 각왕조 시조 王位라고 쓰고 오른쪽에는 歷(기간)  그리고 외쪽에는 
        合 10년 이렇게 위패가 만들어 있다.    예로들면 가락시조왕위 (駕洛始祖王位)
        오른쪽엔 歷491年 오른쪽엔 合10王으로되어있다 가락국은 491년 존속했으며
          10명의 왕이 계셨다는 뜻입니다.
                       
 
 


                                   석상 과 비문 
           * 비문- 삼신제왕 ( 삼신할미) , 칠원성군(북두칠성), 태산노군 ( 노자를 지칭)
           * 석상- 단군왕검이 아닌가 싶다
.
 
      
      이렇게 대한민국의 건국시조 단군으로부터
      부여국,갸야 , 백제, 고구려,신라 발해,고려 그리고 조선 이 8 왕조가 우리의 역사이며
      하나라도 잊어버리고 등한시 하면 우리의 역사는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은 좀더 활성화하여 역사교육 장소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밀양시 내일동 40번지 (밀양영남루)
     2. 전화 : 055-359-5590


Posted by 혜 천
   
  
김해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있는
   가락국 봉황동 유지적지가있다 
    
   김해 가락국 봉황동 유적지 정상에 오르니
   넓다란 공터에 가락국 천제단 (駕洛國 天祭檀) 표석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성스러운 곳이였다. 
  남쪽 중앙에 큰 바위가
우뚝 서있다.

  그 바위가 오늘 주제가 된 황세바위 다.

   
           천제단에서 조금 더 오르니  전설을 간직한 황새바위가 있다.  

         황세는 가락국의 9대 임금 겸지왕(숙왕) 때의 인물로 황정승의 아들이다.

       황정승과 친구 사이인 출정승은 각기 아들을 낳으면 의형제를 , 아들과 딸을  낳으면서로
        결혼 시키기로 약속하였으나, 황정승의 집안이 몰락하자 출정은 딸인 여의를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서로 의형제를 맺은 황세 여의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어느날 황세여의에게 오줌멀리누기 시합을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줄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겼는데 , 이 시합을 한곳이  바로 황세바위이다.

                  황세장군과 여의낭자가 오줌멀리누기 시합을 해던곳  황세바위

   여의낭자가 책을 읽었다는 독서대   

         여의가 자라면서 점점 여인의 모습을 띠게 되자 이르 수상히 여긴 황세가 거북내
          (지금의 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하였는데 여의는 할수없이 자기가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 약속을 하였다.

 
             그후 신라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황세가 왕의 명을 받아 유민공주와 결혼하게되자

              여의낭자는 황세장군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황세 또한 여의낭자를 따라 죽었으며

              ,유민공주는 유민산(지금의 임호산)으로 출가하여(지금의 흥부암) 여승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출정승의 딸 여의낭자를 추모하기 위한 사당 < 여의각>
            

                             출정승의 딸 여의낭자를 추모하는 사당 내에있는 여의낭자 영정
                                                                                         

          출여의 낭자(여의낭자) 정절을 추모하는사당이다.  황세바위 전설에 나오는
          황세장군과 꽃다운 24세의 아릿다운 여의낭자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들은  후세
         사람들인 김해
 회현동 주민들이 1973년 이 여의각을 세워 매년 단오날 추모제를
         올리고 있는 곳이다.

 
                                          정절 출여의 낭자 의령단
 

      

                                        봉황산 정상에있는 봉황대 글씨

          봉황대 정상에는 봉황동 유적이 산재해 있는곳이다. 가락국의 마지막왕 구형왕과 형제인
       유민공주가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죽음으로 이룬 사랑을 빌어주기 위해 임호산
으로
         출가하는 모습에서 신라에 넘어가는 가락국의 망국을 보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김해시 봉황동 253
2. 전화:  김해시 관광과  ☎ 055-330-3254
            사적지관리소 ☎ 055-330-3589
3. 찾아가는길 :  김해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유익하게 읽었으셔면 추천 한번 눌러주세요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