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기암괴석 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월출산 ,
            그 월출산 자락에 자라잡은 무위사가 있다.

              조선 시대 초기에 건립된 
            국보 제13호인 극락보전은 무위사 입구에서
            맨처음 대하는 해탈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위치 해있다

              국보 제13호 극락전을 가진  무위사는 다른 사찰
            같이
호화롭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다.   

            사찰에 올라가는 길도 어럽지않고 쉽게
            다가
갈수 있어 누구에게나
편안한 절이다.
 
              사찰은 그래야 많은 사람이 쉽게 부처님을
              만날수 있다고 생각되어 좋다.

             그리고 이곳엔 국보도 있고 ,보물도 있어
              옛 역사 공부하기도 좋은 사찰이라 좋다. 

             무위사 해탈문                                                                             

            무위사는 크고 웅장하게 솟아 있지도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눈을 어지럽히는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도 없는 無爲 그대로 였다.

 

        
              저만치 국보13호 무위사 극락보전이 보인다.    
                                                       
              
한점 군더더기 없이 소박하고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갖춘것이 바로

              맞배지붕  형식의 무위사 극락보전이라고 보면된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하는 낭랑한 불경 외우는소리가 들리는 법당의
 목조 아미타삼존불과 그뒤에 있는
 아미타불삼존도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가운데가 아미타불, 오른쪽 두건을
  쓴분이 지장보살,오른쪽 보관을 쓴분이
관음보살이다. 그래서 세분을  아미타삼존불 상이라고 부른다.

후불벽화(後佛壁畵)로 그려진 아미타삼존도. 흙벽에 채색. 210 × 270 cm. 1476년 작. 후불벽화로 그리기 위하여 따로 세워진 벽면에 그려졌다.

구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앞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뒤쪽으로 6명의 나한(羅漢)을 배치하여 원근감을 표현하였으나 상하로 구분하는 2단구조의 고려 불화나 16세기의 조선 불화와도 다른 것이다.

아미타불의 뒤에 표시된 광배(光背)의 모양은 키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15세기부터 사용되었다. 착의법(着衣法)은 고려 후기의 단아양식(端雅樣式)을 계승한 것이며, 가슴 아래까지 올라온 군의(裙衣)의 상단을 주름잡아 고정시킨 매듭끈을 대좌(臺座) 좌우로 길게 드리운 것은 조선 초기의 특징이다. 내용상에서도 변화가 있다. 곧 고려시대의 삼존형식에 자주 등장하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대신 지장보살이 배치된 것은 고려 후기의 신앙대상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아산현감을 지낸 강노지(姜老至) 등 수십명의 시주로 혜련(海連) 대선사 등이 그렸다 한다. ( 자료 : 무위사 안내서)

 

         백의관음도는 보물 제13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극락전 후불 벽화               

         뒷쪽 벽면에 그려져 있다. 한참을 찾아야 볼수있는 백의관음도 이다.

         많은 사찰에서 관음도 벽화를 봤지만 이렇게 매료 시키는 백의관음은 없었던것
         같았다.     

무위사극락전백의관음도(無爲寺極樂殿白衣觀音圖) - 보물 1314호 

극락보전 후불벽화인 아미타후불벽화(보물 제1313호)의 뒷면 그림으로,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보살이 그려진 벽화이다.

하얀옷을 입고 있는 백의관음보살은 당당한 체구에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린 채 두손을 앞에 모아 서로 교차하여 오른손으로는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정병을 들고 서 있다. 간략화된 옷주름과 더불어 팔찌와 가슴장식 역시 간소화되어 있긴 하나, 힘있고 빠른 필치로 바람에 심하게 흩날리는 듯한 옷자락과 넘실대는 듯한 파도를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관음보살의 뒤쪽으로는 해 모양의 붉은색 원이 그려져 있고, 앞쪽 위에는 먹으로 5언율시가 씌어져 있다. 그리고 앞쪽 아래 구석쪽으로는 둔덕이 마련되어 있고, 관음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벌려 손뼉을 치고 있는 듯한 자세의 비구(比丘)가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구 어깨 위에 머리를 뒤로 돌려 관음보살을 쳐다보고 있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는 것인데, 백의관음보살에 비하여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성종 7년(1476)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앞면의 아미타후불벽화와 더불어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자료 : 무위사 안내서)

 

극락전 내부 서측벽 중앙에 그려진 벽화이다.
극락전의 아미타후불벽화와 같은 시대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고 한다,
그 수법은 비슷하지만 좌상의 설법도와는 다른 입상의 아미타내영도이다.

아미타내영도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스님 등이 등장한 이 그림은 희귀한 조선조 아미타내영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구름을 배경으로 하여 원형두광(圓形圓頭光)을 지니고 측면향을 한 아미타불은 삼산형의 머리 가운데 중앙계주만이 나타나고, 구불구불한 옷 주름선의 법의(法衣)를 입었다. 왼손은 들어 엄지와 장지(長指)를 맞대고 오른손은 내려 마치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취하고 잇는듯하다. 두건을 쓴 지장보살을 포함한 8보살 모두, 그들을 나타내는 특물(特物)을 들거나 보관(寶冠)에 그렸는데,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보살 옷으로 가슴 앞에 묶어 내린 천의(天衣)자락이 보인다. 8비구스님들의 다양한 자세와 얼굴표정은 변화 없는 그림에 활기를 주고 있다.

1476년의 아미타후불벽화와 비교하여 삼산형의 머리 가운데 중앙계주만 표현된 점, 고려 경변상도(經變相圖)의 것과 닮은 활달하고 구불구불한 필선(筆線)을 많이 사용한 점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어쨌든 이 극락전은 벽면에 아미타내영도를 그려 모신 아미타전각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유일한 곳이다.      ( 자료 : 무위사 안내서) 


                                   < 上 연화당초향로도   中 모당모란문도  下 당초문도 > 

      무위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에는 극락보전의 사면에 그려져 있던 벽화 29점이

     전시되어 있다. 극락보전내에 있던 것을 보물제1314호로 일괄지정 했다고 한다

 

         선각대사 부도비                                                           

     태조 왕건과 궁예의 치열한 싸움에서 희생된 선각대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통일신라의
     고승으로 법명은 향미이며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일조한 대사라고 한다.
 

      이번 연말 휴가때 남도여행 계획이 있으시면 월출산도 올라보고 무위사를 둘러보길
      권하고 쉽어 질 만큼 매료된 사찰이었습니다.. 
  
  여행정보  
 1. 위치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1175-1
 2. 전화 : 061-432-4974  
 3. 홈페이지:
http://www.muwisa.com
 4. 주위 볼거리 : 주위에는 대흥사, 도갑사,미황사,백련사등 이름있는 사찰이 많이있다.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