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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9 고려 삼별초군이 쌓은 제주 항파두성과 유수리마을의 관계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가 멸망하자 이에 항거하기 위하여 개성에서 진도로, 진도에 서 항거하다가결국 제주도 까지 밀려와서 이곳에서 항몽하게된다. 이때 전쟁을 하기위하여 쌓은 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13세기 토성이다. 이성이 삼벌초군의 마지막 보류였던 향파두성이다.
 
비오는 날 이곳을 찾았다. 보슬비라 할까,물안개라 할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하여 신비롭기 까지 한날이었다 .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듯이 소나무 한그루가 토성을 지키고있는 듯하다.


진도를 근거지로 항전하던 삼벌초군은 원종 12년(1271) 진도가 함락되고 배중손 장군이 전사하자. 김통정 장군이 잔여 부대를 이끌고 제주로 건너왔다. 이 곳에 토성을 구축하고 항전하던 삼벌초군은 원종 14년(1273) 여몽 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아 항파두성이 함락되면서 전멸했다
 

안개속에 이곳이 항파두성( 항파두리성)이라는 표지석만 홀로 서있다
 

향파두성은 제주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토성이며, 언덕과 하천을 따라 주위 15리에 걸쳐 쌓은 것으로 그 규모가 매우 크다. 1978년부터 복원 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원종 14년(1273) 여몽연합군의 총격을 받아 향파두성이 함락되고 삼별초군은 전원 순의하였다. 이로써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에 의해 몽골인들이 완전히 토벌될 때까지 약 100년동안 제주지역은 몽골의 직할지로서 일본과 남송 공략을 위한 전략기지로 이용되면서 제주도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유수리마을은 지금부터 730년전 고려원종 12년 에 항몽삼별초군이 향파두성에 따라온 한 고승이 유수암 절동산 아래 용출하는 맑은 샘을 발견하고 언덕아래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짖고 불사를 시작한것이 이곳에 처음으로 사람이살기 시작한 시초이다. 향파두성 함몰직전 김통정장군의 모친과 일부수하들이 유수암 종신당으로 피신하여 흙집을짖고 이곳에 살기시작한것이 사람이 살기시작한 최초이다
 

이곳은 한라산에서 흘러든다는 용천수이며 유수암천이다. 근년까지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 하며 지금도 사용할수 있다고 한다.
 

향파두성 함몰직전 김통정장군의 모친과 일부수하들이 유수암 종신당으로 피신하여 흙집을짖고 이곳에 살기시작한것이 사람이 살기시작한 최초이다.


태암감당 자리이며 무환자나무만 서있을 따름이다.
 

삼별초군을 평정한 원나라가 상동에 목자촌을 설립 금덕물리라 했으며 , 이조초기 좌수 홍덕수의 설촌으로 정상적인 마을이되었다. 태감당은 후일 중건되어 태산사로되었으나 숙종 대에 와서 훼손되었으며 지금은 칠산동이라는 이름과 빈터만 남았있을뿐 730년의 고생 창년한 팽나무 숲속에 그때 심은 무환자나무만 자라고 있을 뿐이다.
 


유수암리 마을의 보호수로써 수령450년 된 팽나무이다. 높이 16m 나무둘레 510cm 앵월읍 유수암리 2027번지에 있다.
 

여행정보
1. 위치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2. 전화 : 064-799-2209
3. 유수리 마을 찾아가는 길 *제주시 방면(20분 18km) 제공항(공항로)->노형오거리(도령로)->무수천사거리(평화로1135번)->유수암리 * 서귀포시방면 (40분 40km) 서귀포시터미널(일주도로1132번)->중문(일주도로1132번)->상창교차로(평화로1135번) -평화로(1135번)->제주경마공원(1135번)->유수암리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