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임진왜란 ,진주대첩, 촉석루, 논개를 빼어 놓고 진주를  이야기를 할수 없을것이다. 
국사나 역사 교과서에 빠질수 없는 항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여행으로 그 현장을 보고 갔을 것이다.  진주논개가 왜장을 안고 순절한 진주 남강 의암바위를 가보고 왔다.    

 

촉석루 아래 남강 의암바위에서 왜장을 끌어 안고 순국하는 장면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고 군관민 7만 여명이 순절한 후 칠석날 왜적들이 촉석루
에서 승전연회를 베풀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기생으로 가장하여 연회석에 참석 ,왜장 게다니무라를 남강 의암바위로 유인하여 순국, 이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들이 시신을 수급 고향 안의에 안장하여 묘역은 그곳에 있다. 

의암바위 , 넓이 3.5m * 3.3m 정대륭 선비가 쓴 義岩 글씨

   의암(義岩)
 선조 26년 논개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인조7년 진주 선비 정대륭은 바위에 義岩이라 새겼다.


촉석루 밑 의암바위 앞에 위치한 의암 사적비와 비각

의암 사적비
경남 문화재 제353호로 의암사적비는 선조 25년 6우러29일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된 후 , 촉석루 연회에서 왜장을 의암바위로 유인하여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 들어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어유야담 ,국립진주박물관소장

 
 어우야담(於于野談)
어우집은 조선시대 문장가인 유몽인의 시문집이다.  어우야담 과 어우집에 실린 글은 예술성을 추구하여 각각의 편마다 새로운 착상으로 풍부한 우화를 곁들여 전개하고 있으며 2차 진주성 전투 직후 논개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책

경남 문화재 제353호 의암 사적비


"어우야담"에 의해 논개의 순국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진주시민들은 정식이 지은  비문으로 
비석을 세웠고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비각을 세워 < 의기논개지문> 이라 현판을 걸었다.

          비문에   " 그 바위 홀로 서있고 그 여인 우뚝 서있네
                              이 바위 아닌들 여인 어찌 죽을곳을 찾았겠으며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 라 쓰여 있다.


의기는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경남 문화재 제7호로 지정

의기 논개의 충절을 기려 1740년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창건,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중건.
정면3칸 측면2칸 맛배 기와지붕의 건물.

논개 표준 영정 가로 110cm * 세로 180 cm


 여러사람들이 잘알고 있을 장소를 다시 소개하는 것은 진주를 여행한 사람이면 알겠지만
촉석루와 논개 의암바위를 보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몇번을 갔던 사람도 그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여 또 가게 된다. 나도 그동안 몇번을 갔었지만 그 사진들이 어딜 갔는지 포스팅을 한번도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올리게 된다.      

여행정보
1.찾아가는 길
  * 전국 어느곳에서나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걸어서 10분 촉석루에 도착하면
     된다.  촉석루 아래 강변에 위치. 
 *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진주역 ) 에서는 도보로 20-30분 소요, 시내버스이용시 남강다리
    건너 하차.
2. 위치: 경남 진주시 본성동 140-1
           진주성 관리사무소 전화 : 055-749-2485 . 055-749-9057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