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국내 여행지'에 해당되는 글 125건

  1. 2019.03.17 하얀목련
  2. 2019.01.17 섣달에 피는 매화 그 이름 납매 당매
  3. 2018.12.22 곶감말리는 풍경
  4. 2018.11.11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 1
  5. 2018.04.06 신어산 낙동강 무궁화호열차 뷰가 좋아 힐링하기 좋은 할리스커피 양산원동점 1
  6. 2018.04.05 신라천년의 흔적인 석탑과 불상의 보고 경주남산 역사기행
  7. 2018.02.18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 고분에 빛으로 그린 소나무사진 한점 2
  8. 2018.01.02 수백년된 적송들과 아름다운 꽃들로 만들어진 태안반도 안면도자연휴양림
  9. 2017.12.29 목포평화광장의 목포춤추는 바다분수 1
  10. 2013.05.20 [군위여행/군위석굴암] 토함산 석굴암보다 100년 먼저 조성된 군위 석굴암과 국보109호 삼존불 2
  11. 2013.05.04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인각사
  12. 2013.03.30 부산벚꽃명소 Best 5 1
  13. 2013.03.11 부산& 부산근교 봄꽃 매화 여행지 7선 7
  14. 2013.03.08 울산 강동 화암주상절리 아름다운 모습 2
  15. 2013.02.25 아버지 문무대왕 그 아들 신문왕이 세운사찰 국보112호 감은사지 3층석탑 1
  16. 2013.02.21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 풍기 백운동 소수서원에서 4
  17. 2013.02.18 춤과 익살스런 대화 그리고 몸짓으로 펼쳐지는 동해안별신굿 대변마을 풍어제 3
  18. 2013.01.05 진시황 불사약 구하러 온 서시유숙지 거제 와현모래숲해변 과 거제8경중 마지막 비경 공곶이 [거제여행] 2
  19. 2012.12.13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을 잇는 사장교의 명선교
  20. 2012.12.11 아름답고 화려한 부산크리스마스트리 축제가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2012년 겨울축제.
  21. 2012.11.07 청도반시 ,고택, 청도운문사,유등연지 그리고 와인터널이 있어 좋은 경북 청도여행
  22. 2012.06.25 경북내륙 깊숙히 숨어있는 봉화 닭실마을의 아름다운 청암정 3
  23. 2012.06.01 초여름에 걸어보는 낙동강 11경 예천 회룡포와 막걸리 한잔이 좋은 삼강주막의 아름다운 풍경
  24. 2012.05.24 영축산속에서 빙긋이 웃고있는 아름답고 그윽한 암자들이 부처님을 맞이 하네 !!!
  25. 2012.05.14 부산의 몽마르뜨 언덕 유명하다는데 무슨 재미있는 것들이 있나 궁금해 ?
  26. 2012.05.10 제비꽃 야생화가 피어있는 대구 불로동 고분군
  27. 2012.04.09 하늘의 허락을 받아야 만 발을 디딜수 있다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여행 !
  28. 2012.02.21 부산 6.25흔적 두번째 - 수탈과 애환,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간직한 영도다리 그 흔적이 없어지는 곳! 1
  29. 2012.02.20 6.25 추억 명소 첫번째- 40계단 문화거리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와 아버지의 휴식[부산 여행] 1
  30. 2012.01.12 농부의 희망 곶감

Posted by 혜 천
오늘이 섣달 열이튼날이다.  섣달이 대체적으로 양력 1월에 든다. 직년 이맘때  닙매를 보러간 기억이 떠올라 갑자기 납매를 보러갔다.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옆 부산광역시수목전시원 한켠에 납매가 한그루 자라고 있는데 .노랗게 꽃을 피운다. 이곳은 당나라때 누군가가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당매라고도 부른다.


눈속에서 피는 설중매보다 빠르고 개나리 처럼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다.  상사화 처럼 꽃이 먼저 피고 잎은 나중에 나온다. 나무는 연한 회갈색을 띠며 껍지눈이 있다. 여러개의 꽃받침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 꽃의 안쪽은 보통 갈색이다. 수술은 5~6개이며 암술은 여러개다 . 매화향이 그렇듯이 꽃에서 매우 좋은 향기가 나며 잎이 피면  잎에서도 향기가 난다.

Posted by 혜 천
상주는 옛부터 곶감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상주 곶감명가에서 감을 깍아 곶감을 만드는 곳에서 곶감말리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봤습니다.

Posted by 혜 천
건천 IC에서 경주~영천 간 4번국도 를 이용 달리다가 아하교차로에서 고경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심곡저수지이다.

심곡저수지 따라 운전하다 보면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이다. 노란인행잎 이 비바람에 조금 빨리 떨어져 조금은 늦게 찾은 것이 후회되었지만 아름다움이란 노란색에서 만 찾으려는 아집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느꼈다.

노란색 아집을 버리니 기다란 큰키은행나무숲이 연출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다.

Posted by 혜 천
양산 원동 매화축제로 유명한 순매원 높은곳. 도로변에 할리스커피 양산원동점 이 있다. 커피점에서 카푸치노 한잔과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놓고 낙동강물길 따라 무궁화열차가  천천히 달리고 저멀리 신어산의 높고 낯은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커피점이다

매화꽂이 필때는  사람이 너무 북쩍북쩍 해서 휴식을 취할수가 없지만 매화축제를 조금 비껴난 시간에는 그 야말로 힐링하기 좋은 카페이다.

Posted by 혜 천
배리삼존불이 계시는 삼불사에서 출발 하여 삼릉을 거쳐 금오산 정상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쓴 용잠골 용장사지터를 거져 4시간 동안 역사기행을 했다.

Posted by 혜 천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나 불국사방향으로 가다보면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이 있고 경주타워가 우뚝서있어 금방 여기구나 하고 알수 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경주타워는 황룡사 9층목탑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높이 82m의 유리타워로 2007년 8월14일 준공되면서 세워진 타워로써
지상17층이 84층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공원은 06 :00 ~22:00 개장되고 전시관은 09:00 ~ 18:00까지 관람할수 있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처음엔 입장료가 있었는데 입장료를 없애고 명품산책길 신라왕경숲까지  무료입니다.

해질무렵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입구  인공으로 만든 고분주변에  소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데 해가 서쪽방향에 왔을때 무덤위에 비친  소나무그림자를 담아 왔습니다.
구도를 몇번 바꿔 찍어보고 노출을 바꿔보면서


소나무 하나가 고분 위에 서 있다.
고분옆에도 잘 생긴 노송한그루가 서있다
고분에 석양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자를 그려놓으니 그 자태가 빼어나다.

고분 하나에
소나무 한그루
고분 하나에
노송그림자 하나
파란하늘 하얀구름
그리고
고분의 아랫도리는 진한잔듸
고분윗쪽은 연하게
그려 놓은 소나무사진 한점 !
Posted by 혜 천

 

     

서해안에 붙어 있는 태안반도에는 갯뻘이 좋은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태안에는 국제꽃 박람회때에 조성한  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이있다.   맑은 산소를 찾아 그곳을 간다.  수백년된 적송들과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희귀 식물들이 잘가꾸어져 있는곳이다.

 

이곳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안면읍 소재지를 지나 방포마을 넓은 벌판을 지나자 소나무 언덕이 나타난다.  다른곳에서 찾아가는 길은  안면대교에서 고남,영목항  방향15km 지역에 있으며, 꽃지삼거리에서 진입해도 된다.

 

 

           

 휴양림 주차장에 내려면  정면으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자연휴양림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원스레 쭉쭉벋은 소나무들에서 솔향기 피톤치드에 정신이 맑아 지는 느낌이다.

 

         

                

소나무 천연림이 집단적으로 울창하게 자라고, 그 소나무 나이가 100살 정도라니 그나이 만큼 아름답다.  고려때부터 궁궐의 목재로 사용되었고,  배를 모우는데 사용하였다니 참 오래된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도벌꾼들이 심해지자 왕실에서 특별 관리 하였으며, 1965년이 되어서야 충남도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다.

 

잠시 휴양림을 둘러보고  반대편에 있는 안면도 수목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수목원은 자연휴양림내에 있다.  너무 넓어 오늘은 수목원만 구경하기로 한것이다.

 

            

  휴양림과 지하통로로 연결된 수목원에 들어서면 나무장승과 소나무들이 맞이한다.  수목원은 솔향기 그윽한 하늘이 내려준 공간에 짜임새 있게 조성되어 그 자체가 자연을 품은 정원이다.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한 각종 테마원도 저마다 멋을 뽐내며 숲속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맛보게 한다.       

       

수목원 입구에도  쭉쭉 뻗은 휴양림의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키 재기 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줄지어선 소나무 사이로

 목재의 생산 과정과 용도, 산림의 효용가치,

 소나무를 이용해 배 만드는 모습 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한 산림전시관이 보인다.


소나무 향기 그윽한 공간에 조성된 수목원 지역은  그 자체가 정원입니다.

 

 안면도자연휴양림 인근에 조성한 이곳은 숲 속의 고요함과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는 하늘이 내려준 공간입니다.

수목원이 넓어 위치도를 읽고 천천히 둘러 봄이 좋습니다.

            

 이렇게 쭉쭉 벋은 적송들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는것은 좋은 행운을 받은 날같았습니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 피톤치드 향기를 받아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총면적 42ha로 이중 12ha를 집중 조성한 수목원에는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해 각종 테마원이 들어서 저마다 멋과 향을 지니고 마치 품위 경쟁을 벌이는 듯합니다.  한국의 전통정원으로 거듭난 아산정원이 그렇고 교육적 활용도가 뛰어난 생태습지원, 지피원, 식용수원 등의

 테마원도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오히려 정겹고 다정하게 다가 갈 수 있습니다. 
 

      

고 정주영회장이 조성하여 기증했다는 아산원 입니다.  정주영 회장의 호를 따서 만들어진 이곳 아산원은, 2002년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에 즈음하여   이 지역에 애착을 갖고  대 간척사업과 문화사업을 추진했던 정 회장의 뜻과 업적을 기리고

 

외국관람객들에게 한국의 전통정원을 소개하기 위하여 현대건설에서 조성 기증한 정원이다. 한국전통 별서정원 양식을 도입한 정원이다.  고산윤선도가 조성한 해남의 보길도의 세연정이나  담양소쇄원 처럼  인공정원으로는 최고에 속하죠. 

 

                            

                                                                       '춘설지'라는 연못입니다.

 

           

화려한 빛깔의 꽃을 피워놓고 봄을 만끽하게 하는 철쭉원, 안면도에서만 자생하는 희귀 및 멸종 식물을 만나는  먹넌출자생지원, 민가에서 약용으로 사용하는 식물들을 한군데에 모아놓은 약용수원, 산과 들에 피고 지는 야생화의 향기에  취하는 야생화원, 제주도 및 남부지역의 양치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양치식물전문온실,  습지식물과 수서곤충에 대해 공부하는 생태습지원, 외국의 다양한 식물들을 수집해 전시한 외국수원, 키 작은 식물들이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워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지피원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모란꽃 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꽃밭에서 한참동안  구경한 곳입니다.

 

 

 

 

                                                     

                                                        수련이 핀 연못에는 여름 내음을 그대로 느낄도 있죠

 

 

 

 

 

 

 

 

         여행정보 

            1> 여행지: 태안 안면도 자연휴양림과 수목원
            2>  주소 :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산32-567 
            3> 전화  :  041-674-5019 
            4> 찾아가는 길

                 ①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 → 갈산교차로(좌회전) → 상촌교차로(좌회전) → 서산A.B지구 방조제 → 원청삼거리(좌회전)

                                                  → 안면읍 소재지 → 안면도자연휴양림

                 ②당진상주고속도로 예산수덕사IC → 홍성읍 → 갈산교차로(좌회전) → 상촌교차로(좌회전) → 서산A.B지구 방조제

                                                    → 원청삼거리(좌회전) → 안면읍 소재지 → 안면도자연휴양림

                  ③대천항, 오천항에서 승선 or 차량선적 → 영목항 → 안면도자연휴양림

 

           5> 참고자료

                   ①이용안내 : 입장료 1000원, 주차료 3000원

                   ②이용시간 : 동절기(11~2월) 09:00~17:00, 하절기(3~10월) 09:00~18:00

                   ③전화 : 041)674-6541, 674-6018

                   ④사이트 : 안면도자연휴양림(http://www.anmyonhuyang.go.kr)-수목원

                   ⑤참고사항 : 안면도자연휴양림에 입장하면 도로 반대편의 수목원까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⑥주변 볼거리 : 꽃지해수욕장, 방포항, 방포해수욕장, 바람아래해수욕장, 삼봉해수욕장, 안면암, 백사장항,  간월암

 

 


Posted by 혜 천
해양의 꿈 미래로,목포의 빛  세계로 라는 슬로건으로 물과 음악 그리고 빛의 예술로 목포춤추는 바다분수는 정말 감탄을 연발케 했습니다.

목포평화광장에서 펼쳐지는 여름밤을 수놓은 바다분수는 수반길이 150m 최대높이 70m로 세계 초대형 바다분수로 유명한 곳이 랍니다.

Posted by 혜 천

 

토함산 석굴암,  제2석굴암 군위삼존석불 , 군위 삼존석불, 모전석탑

경주 토함산  석굴암은 수학 여행으로 인연을 맺어 몇번을 다녀온 일이 있지만  팔공산에 위치한 제3석굴 군위 삼존석불에 대한 여행은 처음이다.  팔공산하면 대구에 있고 그 산의 정상에  부산 사람들이 즐겨 찾는 동화사 갓바위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팔공산은 대구 동구 용수동과 
경북 영천 그리고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세 지역이 경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군위 부계면 남산리 쪽 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쪽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 하였으니 삼존석불이다.

  

군위 석굴암 삼존불

군위 석굴암 삼존불


이 삼존 석불(국보제109호) 은 제2 석굴암이라는 이름 때문에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뒤에 축조된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약 100년정도 먼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거대한 절벽 바위벽 동굴에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 관세음보살 삼존불이 봉안되어있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군위석굴암 조감도

군위삼존불 석굴암 조감도


깍아지른 절벽위에 세워져 수백년동안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고 가려있어 그누구도 몰랐기에 
왜정 36년동안 일본놈들의 문화재 반출에 온전히 본존되어 지금 우리가 볼수있게 된것이라고 한다. 


군위 석굴암 삼존불 #2

군위 석굴암의 삼존불


이 석불은 1550년 전에 아도화상께서 수도전법하시던 곳이며 ,그후 원효대사께서 아미타불을   조성 봉안하시고 해동제일의 석굴사원으로 신라불교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한다

군위석굴암 모전석탑

군위 석굴암 삼존불 아래 모전석탑


삼존석불 모전석탑은 단층 기단위에 단층의 탑신부를 형성한 특이한 형태로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탑신부는 근세에 다시 축조되어 원형에서 변형되었으나 탑신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군위 석굴암 항마지촉 아미타불

군위 석굴암 사찰입구 항마지촉 아니타불


                     항마촉지임을 하고 계시는 아미타불




                      비나불을 모시는 비로전


군위석굴암 양산서원

군위석굴암 뒤편에 위치한 양산서원


양산서원 은
  1786년 정조10년 지방교육기관이며 성현을 존숭하던 서원  부림홍씨 세거지로서 선대 조상들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 홍여하선생이 수찬한 휘찬려사(고려사)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군위 삼존석굴 주변 관광안내도

군위 삼존석불 주변 관광안내도

 

Posted by 혜 천

 

부산에서 군위까지  한번가기가  쉽지 않는 먼길이다.  군위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인각사, 삼존불, 한밭마을등 좋은 곳이 많다, 그중에  군위를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부르니 군위들리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를 꼭 보고 와야 군위구경을 했다고 할수있다네요. 

왜 그러냐 하면 바람흔적이 살고있는  ,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삼국유사 1권이 보관, 전시되고 있어 구경 한적이 있었다. 그때 보며 언젠가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군위 인각사를 가 봐야지 하다가  여행길에 방문했다.  서울 이외 삼국유사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불교사찰인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그 귀한 책을 생각하며 ~  

 삼국유사는 소설의 흐름을 가늠해보는 설화, 고대시가 ,향가, 와 고대민중이 불렀던 민요, 고대신화 . 그리고 일연스님이 쓴 48편의 찬가가 있다. 이로 볼때 일연스님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주옥같은 작품들이기도 하다고들 한다.  

삼국유사의 구성은

상권1, 2권으로 하권이 3,4,5권으로 구성되어 총 5권으로 구성되어있다

 *  왕력 (王曆)제1 - 신라,고구려,백제,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의 역대왕의 출생과 치세에 대해

                            기술하고 고조선부터 삼한  부여,고구려, 통일이전 신라등 여러나라의 흥망성쇠,

                             신화,전설과 함께 기록

*  기이(紀異)  제2 - 문무왕부터 경순왕까지 신라 ,백제,후백제에 관련된 이야기

*  흥법(興法)  제3 - 불교의 전래 과정수용,불교의 융성과 고승들의 행적 기록

*  탑상( 塔像)제4 -  탑과 불상 및 사찰의 유래 이야기

*  의해(義解) 제5  - 원공을 비롯한 신라의 튀어난 학승과율사들의 전기

*  신주(神呪) 제6 - 밀교,신승들의 이적(異蹟)에 관한 이야기

*  감통(感通) 제7 -  신앙의 감흥 과 영험에 관한 이야기

*  피은(避隱) 제8 -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던 승려들의 아름다운자취

*  효선(孝善) 제9 - 불교적인 선행과 효도에 따른 보답이야기      

 

 

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고승 일연이 충렬왕 7년(1281)에 편찬한 역사서로 5권 목판본이다. 1310년대에 그의 제자 무극이 간행하였지만 이것이 처음 간행한 것인지, 그 후 다신 간행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조선 전기 중종조 간행본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석남본과 송은본이 현존한다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것은 송은본으로 3,4,5권만 있는데 이중에서도 권3의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상태이다. 이 책은 권4와 5로 서문과 발문이 없으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완질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추정되며, 규장각 소장본 발문의 기록으로 보아 중종 7년(1512)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며, 한국 고대어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과 유적을 조사, 연구하는데에도 기본적인 자료가 되며,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에도 가장 오래된 중요문헌으로 손꼽힌다. 또한 이 책에 실린 향가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 최대로 꼽히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출판되었다는 점, 전해오는 간행본 중 몇 종 안되는 귀중본이란는 점 등으로 볼 때 서지학적인 중요성뿐만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해제사유: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권4-5> 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해제됨

 

보각국사 일연스님은 왜 삼국유사를 섰는가 ?

삼국유사의 글머리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었다. 글 첫머리에 " 대체로 옛성현들이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풀려하면 괴이,완력,패란,귀신에 데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알때부터 부명(符命)을 받고 도록(圖錄)을 받는것이 반드시 보통사람들과  는 다른점이 있어  천자의 지위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데서 나온것이 어찌 기이하다고 하겠는가?   

당시 지배층이 우리나라의 시작을 기자조선에 두려하는데 반해 일연스님은 삼국유사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기술하여 국가의 위상을 중국과 나란히 두었다.  단군의 치세를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 요임금과 동시로 처리하고 단군을 천제의 아들로 설정하고 있어 우리 역사와 문화가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느 자주적 민족사관을 펼다.  이런점으로 미루어 일연스님은 우리민족이 몽고 침입으로 굴욕당하고 있는 시기에 민족 자주의식을 깨우치고 후대에 민족혼을 심어 주기위해 삼국유사를 편찬한것으로 보면될것이다. 

 일연 스님의 속성은 김, 이름 견명, 처음자는 회연, 일연은 자중의 자, 호 무극.목암, 시호 보각. 경상 북도 경산 출생. 1214년(고종 1) 9세에 해양(전라남도 광주) 무량사에서 도를 닦고, 1219년 14세 때 승려가 되어 전국의 이름날 절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여 20세에 선불장에(승려의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였다. 1237년(고종 94)년 선사, 1259년 대선사가 되었다. 

 한편 몽고의 횡포가 극심하던 당시, 백성들에게 불법을 펴서 민심을 가라앉히기에 힘썼다. 또, 대구 팔공산 부인사의 '대장경'이 불타자, 현종의 명을 받아 새로 발간 하였다. 일생을 통하여 100여 권의 책을 지었는데, 그 중에서도 '삼국유사'가 특히 유명하다.  

일연선사는 1206년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22세인 1227년 승과에 급제한 뒤 비슬산 무주암과 묘문암에서 수도하셨다. 44세인 1249년에는 남해의 정림사와 지리산 길상암에, 1264년에는 영일 오어사에 계시다가 대구 가까운 인흥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학승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72세인 1277년에는 청도 운문사에 주석하시다가 충렬왕에 의해 국존에 추대되었고,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284년에 인각사로 와서 구산문도회를 연 뒤 1289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5년 후 14세 때에 삭발하고 중이 되어 선종에 속하는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수학, 설법하는 동안에 그의 편판은 날로 높아져서 사람들이 조계종의 4선인 가운데 첫째로 추대하였다. 고종 14년 겨울에 승과에 나가서 장원으로 급ㅔ하였는데 이때 나이 22세였다. 이후 그는 여러 절을 두루 거치며 수도 생활을 하였고, 그 깨달음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가다. 그가 주관하는 법회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의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삼중대사, 대선사 등에 올랐으며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충렬왕 15년 6월에 병을 얻어 회복하지 못할 것을 알고 손수 왕에게 올릴글을 쓰고 여러 스님들과 함께 무답으로 날을 보냈는데 이 날 밤에 둘레가 한 자가 넘는 큰 별이 절에 떨어졌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 떠나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몇몇 중과 사 에 대한 문답을 한 후 자는 듯이 돌아가셨다. 이때 오색의 빛이 절 뒤에서 일어나 타오르는 듯 했고 그 뒤에 는 흰구름이 덮여서 하늘을 향하여 가버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 84세의 일이다.  

일연을 사람됨이 과묵하여 허튼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가식없이 진정으로 대했으며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학문하는데 있어서도 특별한 스승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덕을 닦으며 수양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쇼성도 지극하여 항상 곁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론 불교적인 업적과 바앧한 저서이다. 일연이 쓴 책은 모두 100여권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그 정력과 박식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와 관련있는 불교서적은 전하는 것이 없고, '삼국유사'만이 남아서 국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삼국유사는 고루려, 백제 , 신라등 삼국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그가 살던 고여 중엽가지의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도 언급되어있다. 그 중 가장 중시되는 내용은 신라시대의 향가14수이다. 여기에 실린 향가는 그 내용에 있어 제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 향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설화, 신화 등 역사적 야사도 실려 있다.


 

인각사는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 말사로서 신라선덕왕 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입구에 깍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기린이 뿔을 바위에 얹었가도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麟角寺) 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스님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 거처하면서 구산문도회를 두번이나 개최하였고 ,여기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인각사 보각국사 탑 (보물제428호)은 고려 충렬왕 15년 (1289년)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부도탑이다. 일연은 노년에 인각사 에서 부모를 봉양하며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는데 아침에 해가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계례의의 혼을 되살린 천년고찰 인각사의  국사전이 있는 인각사지는 사적제374홀로 지정되어 발굴 ,복원중인 곳이다. 신라선덕여왕 11년(642년)에 의상대사 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보각국사 일연스님이 고려 충렬왕10년 (1284년)부터 임종때까지 5년동안 이곳에서 삼국유사 를 비롯하여 100여권의 불교서적을 집필하였고 총림법회등 대규모 불교행사를 연 곳으로 유명하다.

 

 

군위 인각사 국사전 뒤편 비각 속에 일연스님의 비가 모셔져 있다. 보각국사정조지탑과 함께 보물 제428호로 지정된 유물들을 둘러보는 여행을 했다. 비석의재질은 점암판이며,지금 비록 깨어져 본모습을 짐작키 힘들지만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라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

 

스님이 입적한지 6년 만인 충렬왕 21년에 세워져는데, 당대의 문장가 민지가 글짓고 ,글씨는 일연스님의 제자인 죽허가 칙명을 받고 명필 왕희지의 행서를 모았고, 또 다른 제자 청진이 세웠다고 한다.

 

비의 앞면에는 일연스님의 행적과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편의 음기에는 비를 세운 경위와 다비식 때의 영험담과 더불어 일연스님 문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각사 출토유물 전시회가 열리고있는 곳을 구경하며 일연스님과 인각사에 대해 배울수있는시간이 되었다.

 

 뚜껑이 7층 탑모양으로 장식된탑형 향합으로 청동향합이다, 향합은 병향로와 향합은 본래 한세트로 중국 서진대에 개착된 병녕사 169굴릐 벽화에는 병향로와탑형 합이 같이 출토되었다. 그래서 인각사 출토향합도 병향로와 한세트라 할수있다.  

청동정병으로 1점은 완형이고, 다른 것은 목 부분이 일부 파손됐다.타원형 몸체 어깨 부위에 작은 뚜껑을 여닫을 수있는 주구와 몸체 상단에 가늘고 긴 목인 침대를 달았다. 정변은 주전자의 일종이다. 불상을 목욕 싵키는 욕불과 같은 불교의 중요한 의식에 사용되는 깨끗하고 성스런 물을  따르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정병(淨甁)이라 부른다

 

 

 

 

 

 

청동반자이다. 청동반자란 간단히 말해 북이다.
청동반자는 각종 불교의식에서 사용한다, 앞면에는 세줄 융기 동심원을 둘렸으며 그 중앙인 당좌 에는 연꽃무늬를 돋을 새김했다.

 

 

 청동그릇이다.인각사에서 3점의 청동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이중에서 완형으로 남아 있는 것이 1점이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승용차 : 대구 - 팔공산순환도로  - 한티재휴게소 - 부계남산리 - 신성면 - 갑티재 -고로면화북리 인각사

 * 버스  : 대구(북부주차장) - 군위우보면 - 고로면 - 인각사   (75분소요, 배차 8분간격)

 * 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_ 군위ic - 효령면 -부계면 - 고로면 - 인각사

2> 문의 :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번지  인각사

      전화 : 054- 384  -1161 

Posted by 혜 천

대문을 열고 바깥으로 발을 내 딛디면 화사한 벚꽃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매화향기 스믈스믈 사라진 자리에 벚꽃 향기가 가득하다.예년 같으면 4월초가 지나야 벚꽃철이라고 했는데 약 10여일 먼저 벚꽃이 꽃망울을 떠트리기 시작하더니 곳곳에 활짝 피었다. 

이제 봄나들이 벚꽃 철이다. 4월초부터 완연한 봄 날씨가 이어져 봄꽃 구경하기에 최고로 좋은 시기가 될것이라 한다. 진해벚꽃구경 갈까, 하동십리 벚꽃구경갈까! 2곳 다 주말이면 인파에 시달리고 오고갈때 교통지옥이라 차라리 가까운 벚꽃구경하러 가는 것이 훨~ 편하고 좋을 것 같다. 부산에도 벚꽃명소가 여려곳 있으니~.   

첫번째 벚꽃명소: 강서낙동강하구둑 30리 벚꽃길 

부산의 벚꽃명소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강서낙동강하구둑 30리 벚꽃길이다. 벚나무 수령이 진해나 하동 벚나무같이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  손으로 재어보니 5~6뺌정도로 둥치가 여물어 가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것은 벚나무와 벚나무 사이 차가 다니지 않고 오로지 사람만 다닐수 있으니 벚꽃향기와 어울린 공기가 맑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으로 인하여 짜증나는 일도 없다. 낙동강 강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올때면 봄기운이 완연함을 느낄수있어 좋다. 

부산벚꽃명소 Best 5

부산 강서낙동강하구둑 30리 벚꽃길

 30리 벚꽃길 쉽게 가는 방법은 지하철 3호선 강서구청에서 내려 걸어도 좋고, 김해경전철 등구역에 내리면 벚꽃길이 보인다.강서구청역에서 공항입구까지는 만개되었고, 공항입구에서 명지까지는 주말정도 만개 될것 같다. 벚꽃 중간 중간에 개나리와 잔달래가 한무더기씩 군락을 이루어 벚꽃과 조화를 이루는 곳도 있다.  강서낙동강하구둑길 벚꽃길에는 음료수나 점심을 사 먹을 만한 곳이 없다. 김밥이나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가는 수 밖에 없다.

벚꽃길을 걷다가 맥도자역생태공원에 들려보자,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땅속에서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먼곳까지 가지 않드라도 봄을 느끼고 올수있는 벚꽃길이다. 강서벚꽃길까지 가기가 힘들면 삼락동에서 감전동 하구둑까지 둑길에도 벚꽃이 만개되어 눈길을 끈다. 교통이 좋은 주말 나들이 하기에 아주 좋다.


두번째 벚꽃명소 : 온천천 벚꽃구경 나들이
낙동강벚꽃길까지도 갈 시간이 없으신분은 온천천 벚꽃을 구경하자.
부산시내 걷기 좋은 길 중 한곳이다.  온천천 양켠에 벚꽃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 화사하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아님 연인들끼리 벚꽃길 걸어 보면 나름 흡족할 만한 곳이다. 이곳은 교통이 좋고, 먹거리나 식음료를 사기도 편하고 언제던지 집으로 돌아갈수 있는 장점이있다. 주간에 벚꽃구경이 어려운 사람들은 야간에 벚꽃구경을 해도 좋다. 동래역에서 시작하여 세병교를 지나 원동ic까지 온천천 좌우로 펼쳐져 있으니 마음껏 구경 할수있다.

온천천 벚꽃길 전경

부산벚꽃명소 Best 5

온천천 벚꽃길을 즐기는 시민들

 부산벚꽃명소 Best 5

온천천에 비친 아파트 반영과 어우러진 벚꽃길

  벚꽃이 만개한 온천천시민공원과 배산 일원에서 오는 4월 5일부터 7일까지 ‘함께하는 행복, 꿈의 축제 연제’라는 주제로‘연제한마당축제’가 열린다. 벚꽃과 온천천이 함께 어우러진 축제로 즐길거리가 많을 것 같다.  


세번째 벚꽃명소: 아파트속에서 즐기는 남천삼익아파트 벚꽃구경
남천동 삼익아파트 벚꽃길은 이미 이름이 나있는 유명 벚꽃길이라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인지 다른 곳보다 일찍 만개되었다. 다음주 정도부터 꽃비가 되어 하나둘 떨어 질것 같다. 지금도 빨리 핀 몇그루는 꽃비가 되어 휘날리고 있다. 

남천삼익아파트 벚꽃전경

부산벚꽃명소 Best 5

남천동 삼익아파트 벚꽃길

부산벚꽃명소 Best 5

광안리해수욕장이 훤히 보이는 남천동 벚꽃길

  네번째명소 : 달맞이언덕 벚꽃길
 해운대 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와우산 자락 달맞이 언덕 벚꽃길은 해운대를 찾아온 관광객이나 시간내어 데이트하는 남여가 많은 곳이다. 벚꽃길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해운대를 내려다보는 멋진 꽃길이다. 이번 주말부터 만개하 다음 주 정도가 좋을 것 같다. 

부산벚꽃명소 Best 5

달맞이언덕 벚꽃길


다섯번째 벚꽃명소 : 황령산벚꽃길
광안리와 해운대가 내려다 보이는 황령산 마루 벚꽃길은 도심속 벚꽃보다 다르게 느껴진다. 청소년수련원까지는 
걸어 오르기가 힘들지만 오르고 나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아주 좋다. 산정상까지 차량이 올라갈수 있어 평일에는 차량을 이용해도 좋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서 인지 벚꽃은 아직 만개되지 않았다. 다음주가 절정을 이룰것같다. 

부산벚꽃명소 Best 5

광안대교가 내려다보이는 황령산 벚꽃길

부산벚꽃명소 Best 5

황령산 벚꽃길

  
부산시내에는 위 벚꽃명소 외에도 해운대 달맞이언덕의 벚꽃길과 황령산 벚꽃길그리고 청학동 벚꽃길등 많은 곳에 벚꽃 구경 나들이를 할수있는 곳이 많다. 3월 마지막 주말부터 4월 첫주말까지가 절정을 이룰것 같으며 그 이후부터 벚꽃이 떨어지며 만드는 꽃비를 즐기면 좋을 것 같다.  

Posted by 혜 천

부산 대연수목원에서 납매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지 두달이 지나면서 추웠다가 풀렸다가 하더니 며칠째 따스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서둘러 봄 인사를 하려는 듯 나뭇가지마다 솜사탕 같은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 속에 파묻혀 한층 우리 곁으로 다가선 봄의 향기에 흠뻑 빠집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을 밀어내고 여기저기서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가 진한 향기를 전하며 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산청 남명매, 선암매, 가까운 통도사 홍매나 김해 건설공고 와룡매  처럼 부산에도 매화가 없까? 부산 매화를 찾아 나서 봅니다.겨울이 끝자락에 서면 봄의 전령사 매화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동짓달에는 피는 매화를 납매라 불르는데 진주 남부수목원에 납매가 피었다고 하여 진주까지 가볼까하다가 우연히 가까운 대연수목원에 납매가 한그루 있다하여 재빨리 달려가 납매를 보고 왔습니다.  그 대연수목원에서 납매를 보고 유실수 단지에서 백매, 청매도 있음을 확인하고 만개할때  다시 와야지하고 인근 유엔기념공원 홍매를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뒤 안락동 충렬사 둥근매를 보고 왔습니다. 

대연수목원 백매

부산 대연동 수목전시장 백매가 봄을 부르고 있습니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만은,
                        춘설이 난 분분 하니 필똥말똥 하여라. 

조선시대 기생 매화가 지은 시(詩)로써  아직도 춥고 눈이 덮인 추운겨울 봄기운이 조금 비칠때 그 추위를 이기고 피는꽃이 매화를 보면 마음속에 따스함이 스며들기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나 봅니다.  위의 시조는 유춘색이라는 사람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매화와 가까이 지냈으나 나중에는  춘설이라는 기생을 가까이 하자 매화가 원망하다며 지었다는 유래가 전해지는 작품으로 매화만 보면 생각나는 詩랍니다.   

 

흰눈이 아직 남아 있을때 피는 매화는 그 모습이 청초하고 순결하여 얼음과 눈에 많이 비유되었고 매화의 꽃잎은 다섯 잎으로 되어 있는 것과 여러개의 꽃잎으로 된 겹꽃이 있으며 색깔의 차이에 따라 백매,홍매로 나뉩니다.

 

대연수목원 백매화

3월에 대연수목원 유실수 단지 백매가 피었습니다.

매화는 줄기와 가지가 겹쳐지는 구성에 아름다움이 있으며 열매를 맺는 나무인 만큼 자란가지, 잔가지, 늙은 줄기 등 다양한 선의 변화와 먹의 농담을 표현할 수 있어 옛적 선비들이 좋아했던 사군자에 이용되었죠 

                        * 대연수목원 동문쪽에 자리하고 있는 납매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  梅 一 生 寒 不 賣 香 ) .라는 고사성어가   매화의 강직함을 잘나타 낸 글귀라고 매화를 볼때마다 생각 나는 글귀라  적어봅니다. 

 

부산 대연수목원 찾아가는 길 

* 위치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713

* 버스 노선 안내

     - 27번-부산역쪽 버스정류장 승차- 부경대(대연캠퍼스)하차 후 - 155번환승 - 대연수목원 하차.

     - 22번 - 수정동쪽 (초량) - 문현 로터리 경유 -부경대(대연캠퍼스)하차 후 - 155번환승 - 대연수목원 하차.

     - 24번 - 서면(구 동보서점앞 승차)- 부경대(대연캠퍼스)하차(상동) : 문현 로터리 경유.

    - 131번-시청 맞은편 연금공단 앞 승차 - 부경대(대연캠퍼스)하차(상동) : 수영 로터리 경유.

    - 20번-부전시장 건너편 승차-  부경대(대연캠퍼스)하차(상동) : 수영R 경유.

    - 39번(기장-송정-해운대역-센텀-수영R)-부경대(대연캠퍼스)하차(상동) : 수영R 경유. 

 * 지하철 노선 안내 

   지하철 노선-2호선 경성대 부경대역 하차 후 상기 버스 아무거나 타시면 됩니다

  -지하철 2호선 부경대 경성대역 하차 - 3출구(면허시험장,부경대, 면허시험장방향)- 파리바게트앞 155전 환승 - 대연수목원 하차. 

승용차 이용시는 네비게이션 활용하시고 주차장은 대연수목원 온실쪽과 UN평화공원 주차장  모두 활용 가능합니다.


 



유엔기념공원 홍매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홍매가 활짝 핀 모습

유엔기념공원 홍매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은 설명할 필요없이 잘 알려진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유일의 성지 이다. 한국전쟁중 참전국 21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땅에서 전사한 4만여명의 전몰장병을 모시고 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옆에 붉은 색을 띤 홍매 2그루가 이곳을 찾는이 들에게 봄의 전령사 역활을 하고 있다. 

겨울내내 추었던 유엔기념공원에도 봄이 찾아 들고 있음을 제일 먼저 알리는 홍매는 유엔공원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을 잡아 놓는다. 

꽃을 보기 위해 심을 때는 매화나무, 열매를 얻기 위해 심을 때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 꽃은 열매를 맺기 마련 , 이른봄에 꽃을 보고 그 열매를 매실이라 하니 꽃으로 인기를 누리고 열매로 술로 태어나  또 한번 우리를 즐겁게 하니 사람들은 그래서 매화를 더 좋아 하나 봅니다. 

유엔기념공원 홍매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있는 두그루 홍매 중 한그루 모습

 

 

유엔기념공원 찾아가는 길

* 위치: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전화 :051-625-0625

*교통 : 버스 68번,134번

* 유엔공원에서 보실곳 : 무명용사의길, 제2기념관, 유엔군 위령탑, 유엔군 전몰장명추모명비,

                                도은트수로, 주묘역,추모관

* 인근에서 보실곳 :* 유엔평화공원 * 부산박물관 * 유엔조각공원 * 오륙도, 이기대해안산책로

 



 

충렬사 백매

호국순절의 표상 충렬사 둥근 홍매

 

 
호국순절의 표상 부산충렬사 - 둥근백매

안락로타리에 위치한 충렬사에 10여그루의 백매가 꽃을 피우고 있다.

1592년 선조 25년 왜적이 부산으로 침략 상륙하였을때 왜적과 맞서 결사항전하다 순절한 우리고장 군관민 93위의 위패를 모시고 수백년 동안 고을 주민들이 제향을 올리는 성스러운 곳이 창렬사 아니겠는가 ! 충렬사 경내는 선현들을 모시는 신성한 곳이라 들어서도 조용하고 경건스러운 마음에 발걸음도 조심스러운 진다. 

충렬사 백매

충렬사 내 10여그루 백매중 한그루

   

 경내 관리 사무소에 2그루의 매화나무 와 충렬사당 입구 좌우측에 10여그루의 매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충렬사 매화는  백매(白梅)로서 수십년된 매화를 둥글게 다듬어 놓아 꽃이 피면 한그루의 나무가 크다란 매화 한송이 처럼 보인다. 이렇게 둥그랗게 피는 백매가 유명 매화 대열에 오르고 있다.

 충렬사 방문했을땐  50%정도 피었고 다음주가 만개되면 한그루의 매화나무가 한송이의 백매로 장식될것 같다. 

 

충렬사 찾아가는 길

* 위치: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7

* 전화 : 051--531-6007

* 교통 : - 지하철4호선 충렬사역 하차 1번출구 

            -  버스 이용시 : 42,99,73,129,129-1,148,189-1,99-1 ( 충렬사,서원시장 정류소 하차 )

                    29,31,43,49,52,57,73,100,129,144,148,,200,210,307,504,506,1002                   
                    (동래 항양아파트 정류소 하차)


 

통도사 홍매
산문을 들어서서 계곡을 따라 겹겹이 우거진 소나무 숲을 지나,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곧이어 ‘영축산통도사’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통도사 경내가 시작된다.

경내에 두그루의 홍매가 예전부터 유명하다 . 그 홍매를 보러 갔을때는 꽃망울만 몽실몽실하여  다시 찾아 간다는것이 아직 다시 가지 못했다. 

양산 통도사 홍매

통도사 홍매가 활짝 핀 모습



                       주소: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양산 통도사)
                       전화 : 055-372-1815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김해 와룡백매는 경남 김해 구산동 김해건설공고에는 아름다운 매화가 많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매화축제가 열리고 탐매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교문을 들어서면 130 미터쯤되는 진입로 양쪽으로 30~100여 년생의 고매들이 줄지어 서있다.  특히 줄기가 구부러지고 휘고해서 용이 꿈틀거리는 것같은 와룡매가 많은데 그중에 백매를 `김해 와룡백매`라 부름니다.




 수령은 110여 년생 가지의 지름이 30~40cm 정도이고 원줄기가 썩은것이 많다. 홑꽃으로 꽃의 지름이 2.7cm이고 화사는 길지않다.꽃받침은 녹갈색이고  새로나온가지는 햇볕에 거의 타지않는 편이다.  나무높이는 4m,  수관폭은 8m  근원경 60~70cm

김해 건설공고 와룡매

100년의 세월동안 피고 지고한 김해 건설공고 와룡매


김해 와룡홍매도 김해건설공고는 원래 1927년 김해농고로 출발 1978년에 현재학교가 들어섰고  개교당시 한 일본인교사가 의욕적으로 매화를심고  가꾼것이 개기가 되어 매화나무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몇해전 그 일본인교사가 90대 노인이 되어 이곳에 찾아와 자신이  심었던 매화를 둘러보고 갔다고 합니다.


김해건설공고 와룡홍매

김해건설공고 수십그루 매화중 와룡홍매가 피어 있는 모습

교문을 들어서면 줄지어 서있는 매화중에 홍매를 김해와룡홍매 라고 부름니다.  와룡백매보다는 직립성이 약간 더있고 키가 조금더크다.      아주 연한 분홍색 홑꽃으로 꽃 지름이 2.9cm로 크다.  화사는 짧고 꽃받침은 갈색이며 새로나온 가지는 햇볕에 잘타서 짙은 갈색이 된다.

         봄꽃 여행을 계획하며 설레는 사람들은 주저없이 남쪽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왔다. 
         뒤틀린 고목 등걸에 보석처럼 매달린 매화든 아니면 산중턱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 매화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 곳’으로 탐매(探梅)의 봄나들이를 떠나보자.

          1> 장소 : 김해건설공고
          2>위치 : 경남김해시 구산동 185번지
          3>전화 : 055- 336- 4081




원동순매원 매화축제

원동매화축제는 3월 마지막주정도에 열린다.  앞서 매화마을 원동엘 다녀왔습니다.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순매원은 이제 겨울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과 봄가뭄으로 움추려있던 매화들이    엇그제 내린 봄비를 맞고 꽃망울이 영글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1022번국도변에 자리한 순매원 !
교통이 편리하고 낙동강 자락에 앉아있어 찾기도 쉬운곳입니다.
낙동강변 기찻길을 따라 화사하게 핀 매화를 배경으로 따뜻한 인심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풍성한 이벤트로 
양산의 대표 특산물인 원동 토종매실 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는 시민 참여 매화축제 !

 

원동 순매원

원동 순매원의 청매가 피기전 지나가는 기차와 잘 어울립니다.


해마다 3월경 원동일대에는 봄의 전령사 매화꽃이 만발하여 많은 관광객들에게 봄인사를 건낸다.  원동 지역은 깨끗한 자연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며, 봄이면 지천에 매화꽃이 만발하여 인근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낙동강변과 매화꽃이 어우러진 절경에서 사진을 찍고자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가족ㆍ연인들과의 드라이브코스로도 즐길만하다.

           

     1> 장소 :원동순매원
     2>위치: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리 102-1
     3> 전화 :  055-383-3644



원동마을 매화축제
삼랑진과 물금쪽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길에서    배내골 방향으로 들어서면 영포,쌍포 매화마을이 나옵니다.   예전 비포장 도로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포장길로 단장되어  배내골, 원동 , 언양으로 넘어가는 드라이브 길로 인기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영포마을 매화축제?   어떤 때는 쌍포매화축제라고 했는데 올해는 무슨 마을 이름으로 매화축제를 할지~.   주차장이 준비되어있어  차를 주차하고 구경을 했습니다. 

원동마을 매화축제

원동 영포마을,쌍포마을의 매화가 활짝 핀 아름다운 모습

                영남알프스 자락의 아름다운 매화밭과  한채의  아담한 주택 !   오랫도록 보고 왔습니다.

원동매화축제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영포마을 일원에서 펼쳐진다. 
원동매화축제 (문의 : 055-382-5506 )
원동 쌍포매화밭 여행정보 ▶
               가. 일 시 : 2012.3.24(토)~25(일) (2일간) 끝났지만 매화는 지금도 풍성하게 볼수있습니다.
               나. 장 소 :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쌍포매실다목적광장
               다. 찾아 가는 길
                  * 자가용이용시 : 남양산IC→물금방향→원동→영포마을 (내비게이션이용시 : 원동면 영포리 537번지)
                  * 기차이용시 : 원동역하차→마을버스 2번 이용하여 영포마을 하차
                  * 지하철이용시 : 양산역하차→138번시내버스이용 원동역하차→마을버스 2번이용하여 영포마을 하차
               라 . 원동 쌍포ㅡ영포  매화구경하고 , 배내골로 넘어가 구경하면 좋습니다.
      

Posted by 혜 천



제주여행에서나 볼수있는 주상절리가 울산 강동 화암에서 볼수있었다.
제주여행에서 빼 놓을수 없는 곳이 대포주상절리 구경이라고 했는데 가까운 울산 강동에서 볼수있다니 ~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인데, 기둥의 단면은 4각~6각형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급격히 냉각되면 큰 부피변화와 함께 수축하게 된다. 이때 용암이 식으면서 최소한의 변의 길이와 최대의 넓이를 가지는 "육각기둥"의 모양으로 굳은것이 신기한 주상절리이다.


                     ( 강동해안 자갈밭)
 
경주 읍천의 주상절리는 수평식으로 누워있는 형상의 주상절리라 제주와 또 다른 모습이라 읍천주상절리를 보고 오는길에 울산시 강동 화암의 주상절리를 만났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 (江東花岩柱狀節理)] 주상절리는 단면이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된 긴 기둥 모양의 바위가 겹쳐져 있는 특이 지질의 하나이다.

이 곳 화암마을 해변 일대에 있는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약 2,000만년 전)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Lava)이 냉각하면서 열수축 작용으로 생성된 냉각절리이다. 그 생김새는 수평 또는 수직 방향으로 세워진 다량의 목재더미 모양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7∼수십m에 이르며, 하나의 주상체 횡단면 긴쪽 대각선의 길이는 50㎝정도이다. 주상체 횡단면이 꽃무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인 '화암(花岩)'은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용바위가 있는 해안




이 주상절리는 동해안 주상절리 가운데 용암 주상절리로는 가장 오래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다양한 각도로 형성되어 있어 경관적 가치도 크다. 강동 해안 자갈밭 끝자락 (울산 북구 산하동 952-1)에 위치한 시도기념물 제42호 (북구) 이기도 하다.
 
 위치 :  울산 북구 산하동 952-1 일원
전화 : 052-299-3727 

 
Posted by 혜 천

                           
경주의 동쪽  감포 바닷가에 위치한 통일삼국시대의 사찰터 - 감은사지는 제일 좋아하는 신라탑이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새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틈 만나면  동해로 처들어오는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이다.

문무대왕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즉위  이듬해 682년 완성한 사찰 로 지금은 삼층석탑이 웅장하게 서있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켔다는 생각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의 마음을 잘 읽을수있는 사찰이였을 것이다.  죽은 아비가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며 힘들때 쉴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중 효자 아들이라 새악 되기도 한다.

감은사지 삼층 석탑을 보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아버지께 효도 하는 효자의 마음을 배울수 있어 좋은 곳이라 자주 찾아 가는유적지 이기도 한 곳이다.            

                       감은 사지 넓은 뜰에 나란히 서있는 쌍탑, 국보 112호 감은사지 3층석탑 

감은사의 흔적으로 볼때 바닷물이 금당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서로 같은 크기의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삼국통일 직후 쌍탑으로가는 

                                                     최초의 석탑 배치라고 한다.                            

                  

           2단의 기단 위에 올린 3층 탑신  

                          금당터로 돌 밑으로 바닷물이 들어 왔다. 이는 문무대왕이 용이되어 왜구를 물리치고

                               그리고 사찰 까지 들어 올수 있게 아들 신문왕이  들었다                        

                  서탑과 금당터        

감은사가 있었던 흔적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통돌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수십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어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때 청동제사리 (보물366-1호)와 청동제사각함 (

보물366-2호)이 발견되었으며, 경주 분황사를 제외하고 

 탑의 전체 높이가 13.4m경주에 있는 석탑중 가장 거대한 탑이기도 하다.

 

여행정보

* 위치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 전화 : 054-779-6369        

Posted by 혜 천

학교시절 역사 시간에 개괄적으로 배우면서 무조건 외워야되는 서원이름들 ,   안동의  도산서원 풍기의 백운동서원, 소수서원 이렇게 줄줄 외워야 시험에 점수를 잘 딸수있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후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풍기 소수서원은 이번이 처음이니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늦게나마 찾아왔으니 꼼꼼시리 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본다.

소수서원으로 들어서자 절의 위치를 알리는 당간지주가 나타난다. 당간지주는 절에 불교의식이나 행사가 있을때 당이라는 깃발을 높이 다는 것인데 이상하다 생각되었다.그런데 이곳이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숙수사라는 절이있던 곳으로 숙수사 당간지주(보물제59호) 로 세조3년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이곳 순흥지방이 큰피해를 입었는데 그영향으로 폐사 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취한대

 

세조 3년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금성대군을 위시해서 순흥지방 주민의 처형으로 그 피가 이곳까지  흘러내려와서 그 원혼의 울음소리를 달래려고 주세봉이 부임하여  붉은 글씨로 경자를 쓰고 제사를 지내주자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조용해졌다고 한곳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출토된 유물들

 

 백운동 서원에서 소수서원으로

조선시대 1542년 중종37년 풍기군수 주세봉이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고 1543년 중종38년 유생들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을 세웠다.그호 1549년 명종3년 퇴계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경상감사 심통원에게 계청하자 1550년 왕명으로 대제학 신광한이 서원 이름을 旣廢之學 紹而修之 ( 기폐지학 소이수지 =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한다) 에서 < 紹修 > 라 지었으며 명종 임금이 직접 < 소수서원 紹修書院> 편액을 써서 하사 하였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이다.

                                         국보 111 호 안향 영정                                                                                       

 안향 (1243-1306년) 처음 이름은 유(裕) 이며 호는 회헌,본관은 순흥, 시호는 문성공 , 밀직부사 부(孚)의 아들이며, 순흥의 평리촌학교에는  그의 태실지와 벼루를 씻은 세연지와 우물이 남아 있다.

1260년(원종1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288년 고려 유학제거가 되어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전서와 공자,주자의 화상을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을 연구하었다.

1303년 에는 국하학정 김문정을 중국 강남에 보내어 공자와72 제자의 화상,문묘에 사용할 제기,악기와 육경,제자,사서,주자서등을 구해오게 하는 한편 양현고를 세워 장학사업을 펴고 섬학전을 마련하여 인재양성에 힘쓴 유학자. 그는 주자학을 전래 발전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서 충숙왕때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주세봉은 안향을 동방도학의 시조로 사문에 막대한 공을 남긴 선현이라추앙하였다.

  

     보물  717 호 주세봉 영정

 

주세봉 (1495-1554년)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호는 신재,본관은 상주, 시호는 문민공이다.152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교리,예빈시정을 거쳐 풍기군수로 재임중 1542년 순흥 선호동의 숙수사지에 안향의 사당을 건립하고 이듬해에는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본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당시 산삼공납의 민폐를 덜어주기 위히여 가삼재배의 주산지가 되었다. 즉 풍기인삼이되었다..

  

 

 

                             탁영지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겸암 류운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할때 연못을 파고 대를 쌓았던 곳.

                     소수서원이 안동의 도산서원보다야 크겠는가 한생각이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한 곳이었다. 소수서원 자체만 들러보아도 몇시간이 걸릴것 같으며 사료관, 소수박물관
                 그리고 이곳 선비촌을 둘러볼려면 하루를 잡아야  제대로 볼수있는 역사깊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   

소수서원 
위치: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2-8
    전화 : 054 -639-7691



Posted by 혜 천

동해안 별신굿이 벌어지고 있는 기장대변을 다녀왔다. 기장 연화리 오랑대 일출을 보러가는 날이면 무당을 모시고 굿을 하는 장면을 보곤하여 낯설지 않지만 동해안 별신굿과 같이 행사나 의식형식의 큰 굿판은 보는것은 쉽지 않다.  동해안 별신굿은 대개 포구가 있는 어촌마을에서 주로 하고있는데 남해안에서 하는 굿판은 남해안별신굿 이라하며,  동해안별신굿은 동해안 지역 마을 사람의 안녕과 어민의 풍어를 기원하는 굿으로 한바탕 마을 축제라고 보면 된다.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82-1호)로 지정된 뒤 해마다 송정, 공수, 대변, 죽성, 학리, 이천마을 등 6개의 마을을 돌면서 굿을 펼친다. 지난해는 죽성마을에서 열렸다. 올해도 동해안별신굿 보유자 김영희 회장을 비롯해 20여 명의 회원이 갖가지 제를 올린다.    

 대변마을 별신굿은 6박7일간 펼쳐진다.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 어촌의 무사태평과 풍어를 기원하는 부락민들의 축제 마당인 '대변마을 별신굿'이 열린다. 이번 풍어제는 제28회 동해안별신굿 공개행사를 맞이하여, 문화재청과 기장군청의 후원으로 대변마을에서 6년 만에 열리는 풍어제이다.  

 대변마을 별신굿은 마을공동체를 위한 굿이다.  마을 또는 어촌계에서는 부정이 없는 사람을 가려 제주 또는 제관을 선출한다. 굿을 행하는 시기는 마을마다 차이가 있으나, 동해안 큰무당이 주재하여 수년마다 며칠에 걸쳐 연행한다. 비록 규모,경비,주관 단체 등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신심만은 변함이 없다. 

대변마을 풍어제는 바다와 마을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제의로 가망굿, 세존굿, 성주굿, 천왕굿, 용왕굿, 문굿, 제석굿, 부인굿, 황제굿, 대왕굿, 손님굿, 걸립굿, 대신굿, 선생굿, 군웅굿, 뱃노래, 도둑잡이, 등노래, 대거리, 심청굿 등 무려 50석이나 되는 굿으로 진행되며, 마을의 화합과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별신굿은 대개 ‘제주집굿→당맞이굿→문 굿→(내당)가망굿→세존굿 →제석굿→산신령굿→성주굿 →부인굿 →천왕굿 →손님굿 → 대왕굿 →걸립굿 →황제굿→대신굿→(외당)가망굿→세존굿→도둑잡이→제석굿→장군굿→선생굿→군웅굿→제석굿→부인굿→용왕굿→심청굿→천왕굿→장수굿→걸립굿→월래굿→영산맞이→거리굿’의 순으로 진행되며 외당과 내당으로 나누어 겹굿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동해안 남부지역 별신굿이라도 굿거리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시간의 경과와 굿의 규모, 당주무의 차이, 지역의 정체성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2월14일부터 20일까지 동해안 별신굿 중 기장 대변마을에서 열리는 별신굿 다녀왔습니다. 어제는 셋째날이라 부인굿, 천왕굿, 손님굿, 대왕굿, 걸립굿이 있었는데 저는 천왕굿과 대왕굿만 보고 왔습니다. 동해안 별신굿은 가족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유자인 김석술 씨 (동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사망) 계보는 그 딸과 조카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석술과 변난호 (암으로 사망) 사이에는 딸 넷이 있는데 막내를 제외하고 딸 셋이 굿청에 섭니다. 맏딸 김영희는 별신굿 보유자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둘째 김동연, 셋째 김동언과 함께 김동언의 며느리와 아들이 계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어제 대변마을 별신굿의 당주는 셋째인 김동언으로 그의 남편 김동열과의 로맨스도 참 재미있습니다. 

 굿판의 재미는 무악과 무가(사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설은 매우 즉흥적으로 해당마을이 특성을 구슬꿰듯이 술술 꿰어나갑니다. 사설에 감정을 실어내는 정도에 따라 여기저기서 돈이 나옵니다. .결국 무녀의 입담에 의해울고 웃으며 돈을 내고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무악은 엇박자 즉 못갖춘마디로 이루어져 있어 처음 들으면 소음처럼 들립니다. 시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무악 때문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악은  여러개의 박으로 쪼개져 있어 장고, 징 괭과리 (4) 태평소 등이 제멋대로의 소리를 내는 듯 하나 가만 들어보면 그 속에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듣다보면 소음이 소리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굿판에는 흔히 무당이 주인이라 생각되지만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습니다. 무당의 서설을 되받아주는 바라지의 추임새가 곧 무당의 신명을 살려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라지는 무당과 마주보고 앉아 장구(양북)를 치며 호흡을 맞추어갑니다. 두 사람의 신바람에 의해 구경꾼들도 그들의 신명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대변리 별신굿은 고된 노동과 거친파도에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어촌의 환경이 恨으로 점철되다가 그것이 신명을 받아 마침내 흥으로 승화되는, 말하자면 현실과 초현실을 살아가는 서민이 정서를 읽어내는 듯 했습니다.그 과정에서 무당은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매개자라고 할까요.

 시간이 허락지 않아 대왕굿이 시작되자 일어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광안대교에 걸린 저녁놀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속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 그것이 곧 사람의 무늬, 인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종교와 민속 그 속에 어우러진 사람살이...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동해안 별신굿을  정리하면 

 동해안 별신굿은 마을의 풍요와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을굿으로 부산에서 강원도에 이르는 동해안 지역에서 1년 또는 2∼3년마다 열린다. 풍어제, 풍어굿, 골매기당제라고도 한다. 동해안 별신굿은 어느 특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마을마다 마을 수호신을 모셔 놓은 당이 있어서 여러 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배를 타는 선원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흔히 풍어제라고 부른다. 본래 별신이란 '마마귀신'(손님마마·별상아씨·별상)을 뜻하여 마을단위로 크게 굿판을 벌여 두신(痘神)을 퇴치하는 의미였다. 한편으로는 수년에 한 번씩 크게 난장을 벌이는 '별다르게 행하는 굿'이라는 뜻에서 별신굿으로 부른다. 별신굿은 풍농·풍어제로서 잔영을 남기고 있고, 동해안별신굿은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별신굿이다.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축제적 성격이 강하며 단골패들이 주관한다. 단골들은 지역세습무로서 각기 단골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굿이 나면 규모에 따라 굿패를 조직하여 참여하는데, 뛰어난 기량으로 굿판을 이끌어감으로써 관중들을 사로잡는다. 김석출(金石出)·김유선(金有善) 등이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풍어제)의 가호인 동해안별신굿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굿판은 적어도 2일에서 10여 일 걸리는 큰 굿판이기에 비용이 많이 들고, 참여 단골도 10여 인을 넘는다.

 

 

별신굿력(曆)은 매년·3년·4년·5년·10년 등의 주기로 행하며 3년에 한 번씩 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제비(祭費)는 마을어촌계 공동기금으로 주관한다. 굿청은 바닷가에 차일을 쳐서 만들며 오색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강릉지방을 기준으로 볼 때 무구(巫具)로는 신칼·부채·어포·괫대·손님대·꽃송이·놋동이 등이 등장하며 화려한 지화(紙花)들이 준비된다. 무복(巫服)은 흑쾌자·도포·활옷·고깔·투구 등을 착용하며, 무악기는 장구·꽹과리·징·바라(제파리)가 기본이다. 장단은 청보장단·제마수·드렁갱이·삼공갱이·도장·고삼·자삼·도께기·수부채 등이다. 무무(巫舞)는 어깨춤·좌우치기·돌머리무관·낙엽무관·손신무관·자치무관·도리개무관·비빔무관·치까분무관·뿌림무관·까치걸음·완자거리 등이다. 제차(祭次)에는 탈놀음·원님놀이 등의 연극적 제차가 부수되는 것이 특징이다. 동민들이 굿판에 직접 참여하여 춤추는 놀음굿이 오랫동안 계속되며 인근일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을 축제의 마당이 된다. 경상북도 포항시 노흘동의 경우 굿은 문굿·부정굿·일월맞이·청좌굿·당맞이·화해굿·세존굿·조상청좌굿·성조굿·군웅·산신령굿·토지신굿·심청굿·손님굿·천왕굿·논동우굿·탈놀음·꽃노래·등노래·대거리 등으로 이루어진다


굿을 하는 시기는 마을마다 다르나 대체로 3∼5월, 9∼10월 사이에 주로 거행되며 굿청의 장식이 화려한데 비해 무당들이 입는 의상은 비교적 소박하다. 동해안 별신굿은 굿에서 추는 춤이 다양하고 익살스런 대화와 몸짓 등 오락성이 강하다.

 

 

 동해안 별신굿 무가는 신을 청하는 청배무가와 신을 축원하는 축원무가 그리고 거리마다 잡신을 위한 수부무가가  주를 이룬다. 동해안 무당은 세습무당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굿판을 다니면서 수많은 무가를 듣고 배운다.
동해안 무가는 구성방식이나 내용에 일정한 틀이 있는 것으로 굿거리마다 기본적인 구성방법에 약간 살을 붙여 노래하는 것이다.

동해안 무가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서사무가이다. 서사무가는 장편의 서사적 이야기를 노래 하는것인데 ,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된 무녀가 아니면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해안 굿판에서는 무녀의기량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서사무가의 구연등력을 들고 있다. 

무가로는
부정굿 - 앉은부정, 동해안 별신굿의 부정굿에서 부르는 부정무가
골매기굿 - 청보무가, 동해안별신굿의 골매기굿에서 부르는 청보무가.
골매기굿 - 수부무가, 동해안별신굿의 골매기굿에서 부르는 수부무가.
세존굿 - 제석본풀이
심청굿 - 제마수무가,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에서 부르는 심청굿무가.
심청굿-  심청굿무가,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에서 부르는 심청굿무가.
당금애기- 동해안별신굿의 세존굿에서 부르는 당금애기 무가.
제면풀이 - 동해안별신굿의 제면굿에서 부르는 제면풀이 무가.

 

 
무가의 반주 악기로는 주로 장고,꽹과리,지으바라등이 사용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반주악기는 장고이다.
다른악기를 맡은 잽이들은 굿의 중간에 잠깐씩 자리를 비울수 있으나., 장고를 맡은 사람만은 자리를 비울수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는 장고반주는 지금 굿을 진행하는 무녀의 남편인 잽이가 맡는 것이 관례라 한다.
장고가 그만큼 중요한  악기라는 증거이다.

동해안 무가와 무악은 다른지역에 비해 무악(巫樂)과무악(巫歌)의 수준이 높고 무가가 세련되고 내용이 풍부하며
다양한 춤과 익살스러운 재담이 많아 놀이적 특성이 강하다.   < 소도에술단 카페 참고> 

동해안별신굿은 무악과 무가가 세련되고, 다양한 춤과 익살스러운 재담이 많아 다른 지역 굿보다 놀이적 성격이 강하다. 굿당에는 탑등,허개등,용선,지화 등 장식이 화려하고, 주로 무녀는 쾌자를 입고 연행한다. 반주에 사용하는 악기는 장구,징,꽹과리 등의 타악기이다.  동해안별신굿은 지역민의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동해안 사람들은 굿을 통해 신앙적,종교적 욕구를 충족하는 한편 예술적놀이적 욕구를 희구하고 있다. 현재에도 동해안별신굿은 지역사람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다. 동해안별신굿에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굿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동해안별신굿보존회/ Tel. 010-3721-2556

Posted by 혜 천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해금강- 기암괴석의 거제신선대 - 바람의 언덕을 거쳐  학동 흔진주 몽돌해수변에 들러보고 지세포로 간다. 지세포에서 공곶이를 거려면 와현모래숲해변을 거쳐야 된다. 불사약을 구하러 온 서불의 흔적이 거제해금강에 있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와현해수욕장이 그 옛날 서시(서불)의 유숙지였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이번 여행에서 와형해수욕장의 표석때문에 알게되었다.

와현해수욕장은 거제해금강 가기전에 있는 풍광좋은 해변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밤 묵어갔나 생각되기도 했다.  서시유숙지 글씨밑에 이야기 글씨를 읽고 해변을 거늘어 본다. 겨울바다인데 썰물따라서 모래사장이드러나 있어 만조시 보다는 못한것 같다.  
     


기원전 219년에 진시황의 진하인 서시徐市(일명 徐福)이 불사약을 구하러 동남동녀 3,000명을 거느리고 南海 금산(錦山)을 거쳐, 거제 海金剛 에 이르렀다. 이때 유숙한 곳이 "누우래"마을이다. "누우래"란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구전되어 왔다.

徐市에 관하여는 司馬遷의史記에도 기록되어있고 ,그는 이곳에서 제주도 서귀포를 거쳐 일본 福岡縣八女市內로 건너갔다. 지금도 八女市엔 徐市의 후손이 살고 있고 八女市內町會등이 활동하고 있다.라 적어 놓고있다. .

 와현해수욕장 모래숲해변 -매미공원에는 조각작품들이 들어 서 있다. 여름 피서철 가족단위로 들러 매미공원의
조각작품들을 감상하며 놀수있어 좋을것같다

  거제 와현해수욕장은 겨울 처럼 쓸쓸한 느낌입니다.
 여름을 즐기기 위해 가족들이 떠들썩했던 흔적은 모래알 속에 묻혀 있고, 쌀쌀한 겨울 바다의 느낌입니다. 


와현모래숲해변은 일운면 지세포리를 지나 학동쪽으로 조금 지니다 보면 구조라 해수욕장을 조금 못미쳐 와현마을과 해수욕장이 왼쪽으로 펼쳐진다, 와현 모래숲 해변은 길이가 510여m로 그렇게 크진 않지만, 모래가 곱고 물이 맑고 경사가 완만하고 물살이 안으로 들어와 안전한 해수욕장으로 여름철이면 전국에서 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다.

수평선 가까이로 멀리 해금강이 보이고 보트놀이로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아늑한 곳이며, 주위는 와현마을이 있어 민박을 이용하여, 탈의장 및 샤워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이곳은 주위 경치가 아름답고 해수욕장을 조금 지나가면 공곶이마을이 있으며 주변에는 낚시할 곳이 많이 있다.
 

거제시 일운면 와현마을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가면 '예구마을'이 나오며 공곶이는 이곳 '예구마을'에서 걸어서 작은 산 능선을 넘어가야 갈 수 있다. 예구마을 길 끝자락에 공곶이 안내판이 있으니 소풍가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면 된다.  공곶이는 예구까지의 거리만큼 더 들어가야 온다.



봄꽃 필적에 가면 참 좋은 여행지- 공곶이 !
거제8경중 마지막 비경이 공곶이 다 !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산능선 까지 10분 이내의 거리이며 능선에는 천주교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부터는 내리막 길이며 정면으로 푸른바다와 내도(안섬) 풍경을 보며 직선 계단길을 따라 만들어진 나무농장의 풍경도 확인할 수 있다.

공곶이는 한 노부부가 수십년 땀 흘려 일구어 놓은 나무농원으로 찾는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곳이다
 동백나무, 종려나무, 설유화,군자란,수선화, 조팝나무, 팔손이 등 나무와 꽃만 해도 50여종. 4만평이 넘는 농원 곳곳에 노부부의 손길 안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공곶이는 생명의 숲 그 자체다.

                               <  공곶이 수선화사진출처 : 여행불로거기자단 : 유담님의 공곶이 수선화>
 

매년 3월 20일 쯤 부터 4월 초순 까지는 공곶이의 큰 매력인 노랗게 꽃을 피운 수선화 밭을 만날 수 있다. 또한, 3월 말에서 4월 초 쯤이면 하얀 눈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설유화의 자태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겨울에도 푸른잎을 간직한 종려나무는 수천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2005년에는 유상욱감독에 의해 '종려나무 숲' 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 '종려나무 숲' 에도 공곶이의 노란 수선화 꽃이 푸른 바다와 함께 아름다운 영상을 제공하며 종려나무 숲도 어떤 의미를 간직한채 그 자리에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때로는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으니...
공곶이를 다녀오면 그 느낌을 그대로 확인 할 수 있다.
산능선을 가운데에 두고 걸어서 가고 오고 하여야 하니 올라갈 때의 힘듬은 내려올 때의 편함이 되고, 내리막 길의 편함은 다시 올라올 때의 힘듬이 되니...

아름다운 섬 거제도, 거제도 안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공곶이!
거제도 여행길에 짬이 나시는 분들에게는 한번쯤 공곶이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또한, 몽돌해안의 파도와 새들의 노래 소리는 찾는이로 하여금 온갖 시름을 달래고 어루만져 준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봄이야 말로 정말 환상 그 자체가 아닐런지...




와현모래숲해변(와현해수욕장)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334-1번지
전화번호055-632-0101
공곶이
경남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예구
전화번호:

자가용
① 거제대교-사등(삼거리)-고현(신현)-옥포(대우조선)-두모로터리-지세포-와현 모래숲 해변
② 거가대교-장승포/남부방면으로 좌측방향(우측은 옥포/시청 방면)-두모로터리에서 남부/지세포방면으로 우측방향- 계속 직진 후 좌회전-도착
③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두모로터리-옥림-지세포-와현 모래숲 해변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통영IC - 14번 국도 - 거제대교 - 와현 
 * 남해고속도로 서마산IC(14번 국도) - 고성 - 통영 - 거제대교 - 와현
 * 남해고속도로 사천IC(3번 국도) - 사천읍(33번 국도) - 고성(14번 국도) - 통영 - 거제대교
Posted by 혜 천

 

진하와 강양을 연결하는 결속의 다리가 명선교이다.
두지역을 이어주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 주는 다리가 명선교다.
이곳을 건너면 진하와 강양이 하나가 되는 가교의 다리가 명선교 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두 마을의 공동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원전특별지원금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장교의 주탑과 케이블은 비상하는 한쌍의 학으로 형상화하여
울주군의 발전과 미래상을 상징 한다고 해요.

 

무엇보다 여름의 진하해수욕장은 오염되지 않고 깨끗해서 좋고

강양포구에는 멸치 잡이 어선들이 할기 넘치는 생동감을 느낄수있어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강양항과 명선교는 일출사진의 명소로 사진기 가진 사람들이면 한번쯤

일출을 담아 보기를 원하는 그런 장소라 한다. 

 

 

명선교는 해송과 일출로 유명한 면적 1만900여㎡, 둘레 500여m의 섬인 명선도에서 이름을 땄으며 주민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이름지어졌다.  바닷길이 열리는 명선도 ! 진하해수욕장과 섬을 열어주는 신비의 바닷길이 명선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랍니다.

명선도 앞 고깃배와 해송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담기 위해 전국의 진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죠. 요즘 멸치잡이 선박들이 물안개와 어우려진 속으로 아침해가 떠오르면 장관이라죠!

 

 진하에서 강양, 강양에서 진하로 갈려면 30분이상 걸려던 소요시간을 단 5분만에 건너 갈수있어
그동안 불편했던 것을 명선교가 해결해주니 주민들에겐 유용한 다리가 되었죠. 
 

 

 

 

비상하는 두마리 학을 연상켜하는 모습이죠!

 

 

 

 

 

Posted by 혜 천

한해의 마지막 동짓달 긴 긴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12월의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전국에 눈이내려도 부산은 늘 빗겨가기 만 한데, 그런 겨울의 부산 광복동에 빛의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광복동거리 전역에서 펼쳐지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 축제는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스토리가 있는 포토존, 37일 내내 펼쳐지는 문화공연,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프로그램 ,소망트리에 꿈을 적고, 비전의날개를 달면 천사가 됩니다.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나눔의 굴뚝과 사람의 프로포즈,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Relay Given Week ... 등  내가 주인이 되는 크리스마스 축제는 따뜻한 사랑과 나눔이 있는 행복한 축제가 될것으로 생각됩니다.
 

개막식은 2012년 12월1일 오후7시 중앙무대에서 점등행사로 시작되었고 성탄절 하이라이트는 역시 12월24,25일 오후7시 의 성탄절전야 축하공연과 성탄 축하공연 크리스마스 메들리 합창이 중앙무대에서 펼쳐진다. 이렇게 37일간 내내 행사가 진행되며 폐막식은 2013년1월6일 오후9시 소등행사로 막을 내린다.

 

 동방박사와 메인 게이트를 지나 별을 따라가는 아이들과 함께 광복로를 찾는 사람들도 아기 예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연출하였으며 천사를 만나다 존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행잉 구조형 조형으로 이미지화하고 이를
 통하여 아기예수를 찾아가는 여정에 천사들이 동행하는 의미를 구현해 놓았다. 

 부산중구는 도심의 공동화현산으로 어러운 경제 상황이다. 그래서 중구 상업지역에서 37일간의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는 빛의 향연으로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로 가득하여, 전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관광객이 찾는 축제로,
 부산 상권으로서의 원도심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축제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 자료출처: 제4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공식website 

 

 

 

 

 

                           * 자료출처: 제4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공식website 

 

 

    눈이 내리는 마을은 부산이라는 지역이 겨울에 눈이 자주 오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문화축제가 열리는

   광복로의 행사기간 동안만이라도 항상 눈의이미지와 감성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존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별이 내리는 길은 눈내리는 마을의구간과 함께 이어져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 하듯이 하늘 가득하게

  별이 쏱아지는 이미지를 연출하여 환상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축제거리 중간에 개리커쳐나 인물화를 그려주는 곳도 있다. 몇분의 화가들이 솜씨좋게 그려내는는 것을 보며

   구미가 당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감상하는 것 보다 더 어러운 것 같다, 야간의소질을 가져야 제대로

   그릴수있으니 ~

 

    용두산 입구의 작은 무대는 다문화적인 성격을 수용하기 위하여 세계각국의 아이들이 각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있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크리스마스 축제가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 인 사랑의 메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필자가 찾은날은  노익장을 과시한 어르신들이 관형악으로 노래를 선사하고 있었다. 

 

       메인트리는 행사의 중심이 되는 장소에 설치 환상적이고 장엄하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 부산 광복로에 12월의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자리매김 한지 4번째다.

     그래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겨울 대표 축제라 할수있다.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아시아태평양 도시관광진흥기구 TPO총회에서 축제분야 우수 축제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우수축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를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육성해 아시아태평양뿐아니라 미주와 유럽지역에서도 찾아오는 세계축제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4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정보

                         *행사기간 : 2012년12월 1일 ~ 1013년 1월6일 ( 37일간의 성탄여행)

                        * 장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 일원

                        * 축제사무국: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38-2

                        * 사무국 전화 : 051-256-1225

                        *찾아가는 길
                          - ktx : 부산역 하차- 부산역 맞은편 버스승차 - 남포동입구 하차 - 도보로 5~10분 광복동
                          -지하철: 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하차(1번출구) -도보 5-10분 광복동
                         - 시내버스 _ 남포동극장가 하차 , 국제시장 하차 도보로 10분 광복동
                         - 공항버스 또는 공항리무진버스 - 남포동행 승차 남포동 하차

                      * 기타사항 (차량통제 구역)

                        - 평일 ( 로얄호텔 사거리 - 시티스폿) : 오후 5시 - 저녁10시

                        - 주말 ( 광복로 입구 - 시티스폿) 오후3시 - 저녁10시

                       - 12월20일 - 31일 (광복로입구- 시티스폿) 오후5시 - 저녁10시  


 

Posted by 혜 천

      
       부산에서 적당히 멀리 떨어진 청도여행!
       부산에서 서울산 IC를 거쳐 가지산 고개를 넘어 운문호반
       으로 접어드니 
운문호반에 비친 가을 단풍이 그 야말로
       아름답고 길거리 양쪽에
  빨갛게 주렁주렁 익어가는
       청도 감이 어린애의 마음을 만들며  동곡을 거쳐
       도착한 곳이 청도 금천 신지리  운강 고택이다.    

       청도는 변한 12국중 우유국의 위치가 청도라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청도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으며
       옛이름은 이서, 대성, 도주, 오산이있다고 한다, 
      청도 (淸道)라 함은 산수가 맑고 아름다우며 큰길이
      사방으로 나 편하다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청도의 고택 운강고택에 먼저 도착해 옛청도 선비며 양반들  삶의 흔적을 보았다.

            운강고택은중요민속자료 제106호로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위치하며                           
           소요당 박하담 (1479-1560년)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터에 
           1809년 박정주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하고 1824년  운강 박시묵이 중건한 고택이다. 

 

 이어서 가까이있는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에 위치한경북 유형 문화재 제79호 선암서원  
 으로 향했다.
소요당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를 배향한 서원이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때 
 없어진 것 을 1878년 소요당의 
후손들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는 서원이다.

 

                     청도 석빙고 (보물 323호: 경북청도군 화양읍 동천리)로 간다. 

 

조선 숙종39년 (1713년)에 축조 현재 전국에 6개의 빙장시설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길이 14.75m. 폭 5m의 장방형  구조인데 중앙에 배수국가 있어 경사를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게 되어있다.  경주 석빙고 달음으로 큰 규모의  석빙고이며   주변에 선정비, 화양향교,화양읍성의 볼꺼리가 있다. 

 옛날에는 냉장고도 없었으니 어찌 여름을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곳 석빙고에서 그해답을 찾게 되었다. 우리나라 선조들은 벌써 신라 지증왕 6년에 왕이 유사에게  얼음 창고를 만들라고 했다니  그 기원이 참으로 오래 되었다고 볼수있다

         전국에 6개의 석빙고가 있으며 가장큰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에있는 경주 석빙고이며, 창녕,안동,창영영산 현풍,그리고 가장오래된 청고 석빙고가 있다.   이 청도 석빙고는 신라지증왕6년 진사 박상고가 1713년2월에 착공  5월에 준공한 것인데 당초 북문밖에 있던이 허물어져 이곳에 복원하였단다

  보물 제 323호인 이 석빙고는 조선시대 겨울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여름에 사용하기 위한 얼음 저장고였다. 석빙고의 입구 좌측에는 숙종 39년 (1713)에 세운 비가 있어 축조연대 및 인력과 공정기간등을 알수있다.  빙실 바닥은 길이 14.75 m 폭5m의 장방형 구조인데 내부 계단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경사졌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게 되어 있다. 다듬은 돌로 윗부분을 반원형인 홍예로 틀어 올리고 잡석으로 벽을 쌓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6기의 석빙고가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이것이 가장 오래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트갤러리 청담에서 차한잔 하며 쉬어 가자 ! 

대구 수성 못에서 청도 방향 20분 거리의 청도  유등연지 내에 위치하며
100여평의 대지위에 전시실과 아트샵 쉼터가 있어 진한 커피 한잔 하며 쉬어 갈수있는 운치 있는 좋은 곳이다. 

 2층 커피 숍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늑함을  주는 수준 높은 공간이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31 번지  연락처 054-371-2111 / 016-9772-1123 

 

  

 

경북 청도군 화양읍송금리에 있는 감 와인터널을 구경 않고 지날수는 없는 일 !!!
감 와인 터널은 1896년 착공 1904 완공 길이 1,015m  폭4.5m 높이 5.3m 의 터널이다.l

 

와인 터널은 1905년에 개통된 옛 경부선 열차 터널을 정비하여 2006년 3월에 개장하면서 와인터널로 명명하여 현재 와인 숙성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 터널은 15℃온도와 60-70% 습도가 연중 일정하게 유지되고 다량의 음이온이 어우러진 와인 숙성의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와인터널은 감와인의 숙성고,시음장,전시,판매장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하는 관광지인것 같다.

 이 터널은 높은 산중턱에 건설되었으며,이 고개를 오르기 위해서는 기관차 으로 힘겹게 견인해야 했으며

1937년도에 현재의 남성현 터널이 개통되면서 폐쇄, 이후 6.25때는 각종 군수물자 수송로롤, 1960년대 말까지는 버스등이 통과하는 국도로 사용되던 곳이다. 토널 천정에는 증기기관차가 숨가쁘게 내뿜었던 매연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100년전 시간여행을 가는 아련한 옛추억을 회상 할수있는 곳이기도 하다  

                                    * 감으로 만든 세계최초의 와인 감그린 한잔 

           감그린은 최고의 품질을 인정 받아 2005년 APEC 정상회담 대표단 공식 만찬주로 선정되어 사용되어 졌다고 한다 

 

대적사의 극락전 반야용선 타고 서방정토 가는 거북을 보자 
많은 사찰 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적막하고 고즈녁하게 자리 잡고있는 사찰을 본적이 없다.   대적사 극락전은 소박하고 단출한 절이다. 그 산사 올라가는 길 초입엔 청도를 나타내는 감나무엔 빨간  감이 주렁 주렁 달려 있고 청도 감 와인 터널이 있다 조금더 오르니 단풍잎이 떨어지는 오솔길이 가을 정취 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대적사 극락전은  보물 제 836호 지정되어있으며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번지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대적사는 동학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적적하다 못해 통빈 것 같은 허허롭고 고즈녁한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 2년에 보조선사가 토굴로 창건하였으 며 고려초 보양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때 ㅍ허가 된 사찰을 1635년 초옥3칸 암사를 짖고 대적사라 하였으며  1689년 숙종13년 성혜대사가 중수하여 삼존불을 모시고 다시 사찰의 면모르 갖추었다.

 

경내 건축물중 18세기경 건립된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은 정면3칸 측면2칸으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이며 1984년 보물제836호로 지정되었다. 기단의 조각은 용,거북,게등과 전면기둥의 용머리조각등 연화문과 거북 무늬가 양각되어 있도 H자 형의 선각과 기단측면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장식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특징의 건축의장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글락전,삼성각,산신각,부도 가 있다.   

 반야용선 형상의 극락전 과 기단은 다른사찰에서 볼수 없는 특이한 볼꺼리다.  건물아래 기단 축대석에는 거북,게,물고기등과 연화문이 양각되어 있으며, H자형 선각이 연속되어 있고  H자형은 배의 용골을 의미하기 도 한다.

       

  청도여행에서 빼놓을수 없는 천년고찰 운문사에서  운문사 불교의 모습을  느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문사(雲門寺)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 또는 운문산) 밑에  있는 사찰입니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신승(神僧)이 창건하여 대작갑사(大鵲岬寺)라 하였다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중건하였다. 고려 태조 20년(937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하여 작갑사(鵲岬寺)라고
        하였다.    태조 26년(943년)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여 운문사(雲門寺)라 불리게 되었다. 
        숙종 10년(1105년)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불탔다. 
        조선 숙종 16년(1690년) 설송(雪松)이 중건하였다. 현재는 비구니 전문강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여러차례 중창을 통해 오늘날 모습이라고 한다1950년 비구니사찰이되었고 한다.   

          보물 678호 운문사 삼층석탑! 이 탑은 높이5.4m의 쌍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 의 3층석탑으로 
     운문사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두 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의 탑이다.

     기단에는 8부중상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있는 모습이 좋아서 한참 들여다 보고왔다. 

 

   부산으로 돌아 오는 길 옆에 희귀 천연기념물 청도매전면 처진소나무 유송을 만났습니다. view 발행

    국내에 이곳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보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바람흔적이 살고있는 부산 수영사적공원에도 수령    400년된 해송이있고,

기장군 죽성리도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그래도 그 소나무들은 천연기념물이 아니 노송들 일 뿐이다. 

 이 나무는 나무의 가지가 수양버들 같이 처졌다고 하여  유송(柳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의 형태가 이러한 것은 주변의 나무에

    의해   눌려 처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한다.

   나무가 다른 가지에 눌려 그늘이 심하면 살수 없는 것인데  살아 남을 수 있었으니 귀한 나무라고 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이 되었는지 ? 

옛날 어느 정승이 이 소나무 앞을 지나갈때 갑자기 큰절을 하듯이   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14m 나무둘레 1.96m이며 가지폭은 동서로 10.3m 남북으로 9.1m 정도 파졌고,
    지는 거의 지면까지 쳐져있다.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정도 된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청도 하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Posted by 혜 천

 경북 봉화 한번 가기 쉽지 않은 곳이라 지나쳐 다녀본 적은 있어도  닭실마을을 찾아 나선 것은 첫번째입니다. 경상도 중에서도 강원도에 가까울 만큼 윗쪽에 붙어 있어 한번 가기가 싶지는 않은곳 입니다. 매스컴에서 보았던  그 닭실마을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안동권씨 집성촌의 마을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이신 총재권벌 선생이 마을에 입향하여 후손들이  지금껏 살고있는 마을입니다. 

여행을 출발하기전에 봉화 닭실마을과 청암정에 대해 검색하여 사전 자료를  익히 알고 갔습니다,그내용인 즉, 닭실마을은  영남의 4대길지 가운데 한곳이라고 하는데, "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 금란포란형( 金鷄抱卵形)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 닭실마을이라 합니다.
 
닭실마을이 금계포란(金鷄抱卵)형국이라는데 그게  뭘꼬 하면 닭실은 동북에 있는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줄기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려온 백설령이 암탉이 알을 품은 듯한 형세로 자리하고 5시방향 즉 간좌곤향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안산으로 있는 옥저봉은 수탉이 활개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즉 닭실의 지세는 수탉과 암탉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는 명당이다. 닭이 알을 품은 형태는 자손들이 많이 번창하며, 동시에 재산도 크게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길지라고 하네요. 


 이곳은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된 ‘내성유곡권충재관계유적’이다.이 마을은 약 500여 년 전,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 1478~1548)선생께서 마을에 입향하신 이후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지켜오고 있는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나지막한 산과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지형인 이곳은, 나라를 위한 충 사상이 지배하던 곳이다. 평소에는 농사를 근본으로 하여 학문에 힘쓰다가, 나라가 위태해질 때면 목숨을 다해 나라를 지키던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다. 특히, 대한제국말기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주권침탈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힘을 아끼지 않아 ‘충절의 마을’이라는 별칭까지 얻기도 했던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이곳 ‘유곡1리 달실마을’이다. 현재는 마을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농사를 주로 하며 생활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풍수가 이중환은 오래 전에 달실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뽑았다. 유곡일대의 봉화지역은 전란의 피해가없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 달실마을이 닭실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은 산, 강 그리고 바람 등 자연의 기운에 의하여 형성된다. 이곳 달실의 지세를 풍수이론으로 분석하면 역시 명당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숨어있는 길지라도 드라마  한편 방영되면 그곳은 세상에 까발려지고 마는데 이곳도 그렇게 세상에 알려져 < 드라마 - 바람의화원 - 신윤복(문근영) 김홍도(박신양)이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있던 그 돌다리가 청암정다리인가 싶다. 

청암정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하나있다. 청암정이 있는  바위가 거북모양이다. 처음 청암정을 지울 당시 청암정의 안쪽방에 온돌을 만들었는데 지나가던 고승이 거북의 등에 불을 피웠서는 않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온돌을 없앴다고 한다. 그 돌다리를 건너며 그때 그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청암정은 마을의 중앙부위에 위치한 청암정은 500년이라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위에 정자를 건축하고, 바위주변에는 거북이가 좋아하는 물을 담기위해 인공연못을 조성 곳이다. 흔히 아름다운 자연물위에 인공물을 건축할 경우, 불가피하게 자연물의 인공물에 가려져 그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그러나 청암정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정자를 꼽으라고 하면 그 순위권 안에는 청암정이 있다. 이는 바로 거북이 바위위에 지어진 청암정이 기존의 바위와 아주 잘 이룬 조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 청암정은 넓은 마루를 가지고 있어 전통식 교육체험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이곳은 마을의 입향조인 충재선생께서 공부를 하기위한 장소로 건립하였고, 그의 사후에는 후손들이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전통식 교육체험의 경우 과거의 향수를 느껴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을의 종가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앞에는석천계곡이 흐르고 있다. 전설이 담긴 기암괴석과 금강소나무 숲 사이로 내성천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건축된 석천정사(石泉精舍)와 바로 옆의 삼계서원(三溪書院) 또한 그 건축미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가뭄이 해갈되고 장마가 되어 냇물이 많은  여름철이면, 시원한 소나무 숲과 바위계곡에 흐르는 계곡물을 찾아오는 피서객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이곳의 장점은 일찍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훼손되지 않고 이어져 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다. 석천계곡은 일제시대 신작로가 세워지기 전의 닭실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랜 여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이 계곡에서 잠시 쉬며 여독을 풀었다고 한다. 기이한 기암괴석과 울창한 소나무숲에 아기자기한 계곡의 물이 웅장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마을의 종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석천정사가 있는데 1526년 최초로 건립된 이 정사는 닭실마을에서 오솔길을 돌아가면 볼 수 있다. 이 정사는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고아한 분위기를 내며 연중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난간이 있는 넓은 마루는 대략 100여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예전에는 여름철 학문이나 모임에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 청암정과 더불어 주변환경과 조화를 잘 이룬 빼어난 전통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마을의 종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서쪽끝에 위치한 추원재는 선영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던 추원재가 있다. 그 건축미와 기능 및 역사로 인해 문화재로 지정받은 곳 중의 한 곳이다. 2층의 누각이 포함된 口자형태의 추원재는 100명 정도의 인원이 관련 체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이기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건물에 딸린 농지가 많이 있다. 

 

여행정보
여행지 : 봉화 닭실마을
위치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전화 문의/안내: 봉화 닭실마을 054-674-0963 ,봉화군청 054-679-6114

 

Posted by 혜 천

강원도 태백 황지 연못 샘물이  흘러 흘러 낙동강물이 되니 

시작은 미미하나 그 결과는 장대하다는 말같이 낙동강물도 이러한 것 같다.

시작되는 물은 자주 보지 못해도 마지막에 바닷물과 만나는 낙동강하구

물길은 하루 한번씩 보고 있다.  조용히 낙동강 까지 흘러오면서 숫한 지역을

통과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어 주고 낙동강하구에서 생을 마감하는 낙동강 물이

아니던가.

 

이번여행은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방 낙동강 물길을 보고 왔다.

영월 동강 어라연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하고져하는 낙동강의 지류 내성천

이 흐르는 예천 회령포 가 그곳이다.

 

낙동강 물길은 보면볼수록 매력을 많이 가진 물길이다.

예전에 안동 하회마을 과 상주경천대를 보며 물길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모습을 

봤지만 오늘 보는 회령포 물돌이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물길이 뱀처럼 구불구불 하다 못해  350도 회돌아 흘려가고있다.

사람 눈으로 볼수있는 각도가 180가 채되지 않는데 350도로 회돌아 흘러가니

자연 내 자신도 350도로 눈을 돌려야 볼수있는 물길이다.     

 

 

 

                    

회룡이라는 말은 태고에 용이 내성천을 타고 상류를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이 마을에는 ‘이계바위’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은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사시사철 나룻배가 넘나들어 고을관리들과 기생들의 놀이터로 유명한  장소였답니다.  그러나 여름 어느 날 ‘이계’라는 기생이 놀다가 커다란 동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마을 사또는 이 바위를 ‘이계바위’라 칭하고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주었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비가 오는 날이면 동굴 속에서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하고 날씨가  맑고 좋은 날이면 강 상류 30리 밖 개포면 동송마을의 떡방아 찧은 소리, 개 짓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동굴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바위만은 옛 모습을 간지기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회룡포(回龍浦)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龍)이 날아 오르는 것 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에서 내려다 보면 350  되돌아서 흘러 나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맑은 물과 금빛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있고 계단을 올라 회룡대(回龍臺)에 이르면 이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맑은 물과 금빛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있고 계단을 올라 회룡대(回龍臺)에 이르면 이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곳 회룡대에서 회룡포마을을 내려다 보면  물길이 어떻게 회돌아 가는지 잘 볼수있다.

그래서 회령포를 볼려면 먼저 이곳 회룡대에 올라 물길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회룡포로 내려 가야 된다.

 

 

예천 용궁면이라는 이 곳의 지명은 말 그대로 용(龍)의 궁(宮)을 표현하는 곳이다. 즉 왕의 거처라는 뜻. 그래서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견훤과 왕건이 크게 전쟁을 치렀던 곳이며, 삼국유사에 따르면 결국 용궁을 차지한 태조 왕건이 용문사의 두문선사에게  이 곳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자료가 말해주듯이 회령포는 예전의 예전부터 그 중요성이 인정되었던 곳이다.  

 

아주 예전에는 이곳을 ‘의성개(개는 ’강어귀의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뜻)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후  의성포라 부르다가 회룡포로 비꿨다고 한다.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 사뿐히 건너보세요 
물돌이 회룡포를 보시려면 마을로 바로 들어가지 말고 비룡산에 있는 장안사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오세요. 그럼 산책로를 따라 난 팔각정의 전망대에서 한 눈으로 펼쳐 보이는 동화의 마을 회룡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산과 들과 강의 사랑스러운 어울림은 그대로 한 편의 전원교향악이 될것같으며

 마을엔 9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요.그리고  모두 경주 김씨랍니다.

경주 김씨가 풍양면 사막마을에 살다가 피난 와서 자리 잡은 곳이 여기리고 합니다.. 

 

 

지금은 구멍뚫린 철판으로 다리를 놓아 걸어 들어갈수있는 뽕뽕다리가 있으니 주민들이 수월하게 왕래를 할수있지  예전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 되니 섬이 맞긴 맞았나 봅니다.


 

 

 

등산로를 따라 40여분 걷다 보면 삼한시대부터 치열한 격전지였던 원산성(圓山城)이 나타나고

 남쪽으로는 낙동강(洛東江). 내성천(乃城川).금천(錦川)이 하나로 합쳐지는 삼강(三江)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회령포를 둘러 보고 삼강의 풍경을 보러 삼강주막으로 행하여 발길을 옮겨 놓았다.

 

 

2000년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찰영지로 유명하며. 인근에는 용궁향교. 세금내는 나무로 알려진 황목근.

 산택 연꽃공원. 낙동강 700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삼강주막 등이 있고 향석리에는 농촌체험과 숙박이 가능한

 회룡포여울마을(구. 향석초등학교)이 있다

 

 

 

 

 

 

 

여행정보

* 명승지 회룡포

*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950  ( 용궁면 향석길 60) 
* 전화번호 054-650-6789 정보센터 : 054-653-6696

 

회룡포를 둘러보고 뱃사공도 주모도 없는 예천 삼강마을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는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안동댐을 지나온 낙동강,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의 금천 이곳을 “삼강”이라고 합니다.


아주 먼 옛날 
이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삼강나루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낙동강을 거슬러 온 사람들이 안동이나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이었고, 상주나 문경세재로 향하던 갈림길 이기도 했다.

 

나루터 자리를 찾아가도 삼강나루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추진되면서 나루터를 복원하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옛 정취를 느끼며 나룻배를 탈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뱃사공도, 주모도 없는 삼강주막에는 옛날의 모습을 보기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만 모여들고 있었다. 

 

 

 

나루터 자리엔 신식 다리가 놓여 있고, 흔적을 찾는 사람들만 모여 들고 있었다.

 

 

 

 

그때의 삼강나루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낙동강을 거슬러 온 사람들이 안동이나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이었고, 상주나 문경세재로 향하던 갈림길 이기도 했다.  삼강나루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 삼강주막(풍양면 삼강리 166-1)이다.

물류를 운반하던 보부상들과 사공들이며, 경상도에서 서울이나 강원도로 먼 길을 나선 사람들에게도 주막은 꼭 필요한 곳이었다. 삼강주막은 1900년대에 만들어진 후, 2006년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영업을 이어왔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후의 주막이었던 셈이다. 2005년에는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유옥련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치되어 왔던 주막을 예천군에서 2007년에 복원하고, 보부상숙소와 사공숙소 등도 함께 지었다. 복원된 주막의 처마 아래 늙은 주모의 사진도 걸어 두었다. 주막의 부엌에는 외상장부를 대신한 작대기 표시가 남아있다. 긴 작대기는 한 주전자, 짧은 작대기는 한잔 술을 외상한 흔적이다. 주막 밖에는 500년의 세월을 간직한 회화나무가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의연히 서있다.

 

 

느티나무 아래는 장터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쌀과 잡곡이며, 소금 등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나무그늘 아래 놓여진 둥근 들돌도 여행객의 시선을 끈다. 120kg이나 되는 들돌은 어른이 된 것을 증명하는 도구였다. 그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이 정해졌다. 그 무게에 호기심을 느낀 여행객들이 한번씩 들돌을 안고 힘을 써본다. 들돌 옆쪽으로 싸릿대를 이어만든 옛날 화장실도 아이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다.

 

 

 

여행정보

* 여행지 : 삼강주막

*위    치 :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전화번호 : 풍양면사무소 054-653-6301,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391, 6394

 

 

Posted by 혜 천
나의 여행 스토리

 영취산 자락에 깊숙히 숨어 있는 통도사 암자 중에는 꽤나 사람들에게 알려진 암자도 있다.

서운암의들꽃과 된장 그리고 자장암의 금개구리는 통도사를 찾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오늘 이들 암자와 19개 암자들 가운데 반정도라도 걸으며 찾아

 참배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나섰다. 

 

* 걷기코스와 암자 

             통도사 본당 → 보타암 → 취운암 → 사명암 → 백련암 → 옥련암 → 서운암  

                                                                                                            ↓

             통도사 본당  ←   금수암   ←   자장암  ←  서축암  ←  안양함    ←   수도암

* 소요시간 :  5시간

 

 

 № 1 ) 보타암  - 보타암은 통도사암자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암자이며 , 삼성반월교를 건너

                        300m 지점에 있는 마을집 같은 암자이다

 

№ 2 ) 취운암 - 보타암에서 200m 거리에 있다.

                      법당 뒤쫏에 역대 고승들의 사리부도가 즐비하게 서있다

 

 

№ 3 ) 사명암 - 임진왜란 시대의 명장 사명대사께서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암자라고 한다.

  

№ 4 ) 백련암 (백련정사) - 사명암에서 남쪽 숲속으로 500m지점에 있고, 주위에 숲이 울창하고

                                     큰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의 목조불은 은행나무로 조성했다고 한다.

                                      백련사 또는 백련정사라고 한다

 

№ 5 ) 옥련암  - 배견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위 약500 m지점에 있으며

                      " 장군수"의 전설로 유명하다.

 

№ 6 ) 서운암 - 삼천불전 서운암 , 어느해 상서로운 구름이 감돌았는지 이 암자를 서운암이라고

                     했단다 . 서운암 된장이 유명하고, 봄이면 들꽃축제로도 이름있는 암자이다.

 

№ 7 )  수도암 -  통도사 산내에서 제일 작은 암자이다. 법당한채와 요사채 한째로 되어있다.

                        수도암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조용한 개인 수도처로 적합한 암자이다.

 

№ 8 ) 안양암  -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하며 , 대웅전 앞 서남쪽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다. 통도사 본당과 제일 가깝다.

 

№ 9 ) 서축암 -자장암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법당형식의 대웅전이 있고 ,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이 유명하다.

 

№ 10 ) 자장암  -  자장암은 안양동대의 골짜기를 따라 2km정도 가다보면 자장동천이 나타난다.

                         이 암자는 금개구리 (금와)로 유명한 암자이다.

                      * 통도사를 짓기전 자장율사께서 바위벽 아래 움집을 짖고 수도하던 곳이며,

                        높이 약4m 정도 의 마애불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 법당뒤 바위벽에 엄지 손가락이 들어갈 만 한 작은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자장율사가 이 곳에서 수도하고 있을때 두마리의 개구리가 떠나지 않아

                         율사께서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갸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후 한쌍의 금개구리로 , 또는 벌이나 나비로 변현한다고 한다.     

                         좌우간 통도사를 찾는 참배객들은 이 자장암의 금개구리(금와)를 알현하고자

                         자장암에 온다고 한다. 안혈속의 개구리를 보는사람도 있고 , 보지 못하는 사람

                         도 있으니 ,이로써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측량하기도 한다고 한다

                     < 금개구리 사진은 자장암에서 찍어 놓은것을 주지스님의 허락으로 찍어 온것임>

     

      

 

№ 11 ) 금수암 -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의 말사이다

                       범어사의 말사가 왜 이곳에 이쓴지 이해가 않된다.  대광명전과 대웅전.

                       심우당,산신각,요사채등이 있으며 특별한 유물은 없다.

 

*  반야암,극락암,비로암,백운암,취서암,무량암,보문암,관음암 8개 암자는 다음 기회에 한번더

   찾아 나서 보기로 하고 19개 암자 가운데 8개 암자를 가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Posted by 혜 천

 

 

부산 해운대는 부산 사람이 아니드라도, 

한번도 오질 않았드라도 익히 알고있는 이름난 장소이다.

그 해운대 해수욕장 옆 미포선착장 위쪽 산먼당 지역이

대한 팔경중의 하나인 달맞이 고개 이다.

 

 

달맞이 길은 해운대를 지나 와우산을 거쳐 송정까지

해안 절경을 따라 15번이나 굽어지는 고갯길로

일명 15곡도 (曲道)라 하며 이곳에서 보는

보름달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달맞이 길이 시작되는 이곳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려지며

 1983년 달맞이 동산이 조성되었으며 , 1997년 해월정을 건립 일출과월출의 장관을 감상할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달맞이 언덕 주변에는 추리문학관, 동백갤러리등 여러 화랑이 밀집해 있고 그림같은 카페와 이름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몽마르뜨언덕 닮았다고 부산의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하는데 

아쉬운것은 정작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명 없고

그림 구경하는 갤러리가 많다는데 그림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에 갤러리들이 모여있다고 한다.

그만큼 화랑들이 홍보에 소극적이라 어느갤러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수 없으니 갈수 없죠 !  

 

 

 

   이곳 달맞이 언덕에는 많은 숫자의 커피숍과 음식접들이 있다.

   해운대를 찾은 관광객이 아니라도 부산의 젊은이들이 즐겨 차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 정작 많은 볼거리는 없는 곳이 이곳 이기도 하다.   

 

      

 

 부산 해운대 에 들리시면 이곳 달맞이 언덕에서 향이 좋은 커피 를 즐기며 아름다운 바다를 내려다

 보는 재미를 느낄실수 있는 곳이며, 저녁에는 문텐로드에서 달맞이 산책을 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해운대만 보시면 반만 느끼시는 여행이 됩니다.  

 

Posted by 혜 천

 

여름같은 봄날 !

 

경주시내 곳곳에서 볼수있는 고분군들보다 작은 모습의 무덤들이

대구에서도 볼수있다. 경주의 고분들은 왕들의 무덤이 많지만 이곳

대구 불로동고분군들은 이지역에 살았던 지배계층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도심속에 고분들이 있으면 산책을 하거나 도보여행을 하기 좋다.

불로동고분군들이 대구시내에 위치해있어 데구 올레 단산지 가는길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요하고 있다.

 

입구의 잘 정비된 봉분 몇기를 지나 50여m쯤 산책로를 따라

언덕위에 올라서면 웅장하고 위엄서린 경주의 왕릉과는

또다른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대·소고분이 나타난다.

 

탁트인 능성따라 고분군이 산 봉우리로 착각이 들 정도로 볼록볼록 솟아있다.

친근감드는 고분군 사이를 걸어 보며 봄날을 느껴 본다.

 

   

 

이 고분군은 팔공산의 지맥이 길게 뻗어내려와 경부 고속도로에 의해 잘리운 일대의 능선으로

볼로동 및 봉무동, 도동의 구릉에 분포하여 있는 봉토분으로 현재 210의 고분이 밀집되있다.

 

 

 

불로동 고분군(不老洞古墳群)은 삼국시대의 무덤군이라고 한다.

사적 제262호로 지정된곳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형이 명확하지 않은 고분을 제외하고도 그 수가 무려 210기에 이른다. 

 

 

언뜻 봐도 수백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하여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매장 주체부인 수혈식석곽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는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미 상당수의 금은제 유물이 도굴된 뒤였지만, 고대사회의 일면과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978년 한국의 고분군으로서는 최초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


 

 

불로동 고분군 공영주차장에서 고분군을 한바퀴돌면 1.8 km걸린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봉무공원, 단산지를 거쳐 만보산책로 도보여행해봄도 좋은 봄날이다.

 

 

 

이곳 무덤에는 이름모르는 작은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봄이면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꽃을 피워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덤으로 야생화구경까지 할수있다.

이꽃의 이름이 아마 제비꽃 아니라 생각된다..

 

 

여행지 정보

1> 여행지 : 대구 불로동고분

2> 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 전화 : 053-984-3506.


 

Posted by 혜 천

 

             그냥 하나의 섬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듣고 배워온 우리영토!

             그 독도에 난생 처음발을 딛혀 본것이다.

 

             울릉도엘 세번갔었지만

             독도는  첫 상륙이니 ,

             가고 싶다고 가 지질 않는

             하늘의 하락을 받아야 발을 딛혀 볼수있는

             그런 곳이 독도인가 싶었습니다.  

                

             독도 !!!

             일본은

             이번에도 독도를 교과서에 실어 자기네 영토라고

             우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합니다.

 

             일본놈들이 탐내는 동쪽의 우리땅  

             그 귀한 곳에 발을 딛혀 보니

             과연 아름답구나 !  감개가 무량하기 까지 한 것 이였습니다.

 

             심심하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

             우리도 좀 더 확고한 대책으로 그런 짓을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섬 하나 새들의고향 ....』
             이라는 노래 가사 처럼 
             독도여행을 계획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 실제로 가는 건 더 어려운 것이 독도여행이다.

             울릉도에 도착한 뒤에도 독도가 저 앞인데
             파도가 높아 상륙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그저 섬을 한바뀌 돌다가 돌아온적이 있었다.
 

            육지에서 힘들게 울릉도까지 그리고 독도까지  왔는데 

            독도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온적이 있었는데 많이 아쉽드라구요.

 

           그러나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돌보셨어  독도에 발을 딛혀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럽기 때문에 하늘이 허락한 자 만이 상륙할수있는 여행지라고 하나 봅니다.

           독도에 도착하여 첫발을 디딛니 그 감동 이루 말할수 없드라구요!


           관광선을 타고온 배는
           30분 정도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며 신비의 독도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 이곳입니다.

                 독도는 동도,서도 -2개의 섬과 89개의 부속암초로 이우러져있다.

                 동도는 높이98.6m이다. 동도봉우리를 일출봉이라고 부른다.

                 산봉우리 부분이 비교적 평평하여  독도경비대와 독도등대등 각종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동도 주위에는 독립문바위, 숫돌바위,갈매기바위등의 기암괴석이 있으며
                 유람선이 정박할수있는 접안시설이 설치되어있다.

 

 

           

                동도 접안시설에서 첫발을 딛혔지만

               관광객이 둘러 볼수있는곳는 접안시설 주위뿐이다.

               마음같았으면 독도경비대엔 못들어가도 , 독도등대도 보고 싶었고

               그곳의 희귀동식물들도 봤으면 했는데 그게 뜻대로 않죠.

 

 

 

              

                접안시설 반대편이 서도입니다.

                저곳엔 들어갈수 없죠!

 

                서도에는 어민 관련 시설이 주류를 이룬다.

                즉, 어민 숙소, 해산물 건조장, 전마선 인양기,

               급수조 등 어민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을 갖추고 있다.

                서도는 동도에 비해 면적이 다소 크고 표고가 높으며 서도 진입 계단의 경사도는 매우 가파른 급경사를 이룬다.

                 현재 서도에는 민간인 부부 1가구가 고기잡이와 해산물을 채취하며 어업인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요 볼거리는 탕건봉과 코끼리바위 등이 있다.

 

 

 

 

 

 

 

 

 

 

                < TIP > 울릉도에 대한 기본상식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

               독도의 2개 주요 섬 중의 동쪽 섬으로서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다.

               신라 지증왕 13년(512)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에서 출발하여

               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석도(石島) 등으로  불렀으며,

               1881년 이후 독도로 명명되었다.

               행정 지명으로서 독도(獨島)라는 명칭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Posted by 혜 천

 
                    6.25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았던 곳이 부산영도 다리였는데
                    세월의 흔적 속에 그 상흔들이 없어지고 있는 대표적인곳이
                    부산영도 다리입니다.

                    지금 그곳엔 새로운 영도다리가 만들어 지고 있어
                    영도다리와 인근의 흔적들이 없어지고 있거든요 !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간직한
                    부산 영도다리.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는 평범한 영도다리 인지도 모르겠어요!  

                    왜정시대 일본은 만주대륙 침략을 위해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실어와
                    비축할 군사기지가 필요했고, 그 리고 영도에 많은 일본인 어부들이
                    있어
 그들의 어항을 쉽게 오갈수 있는 길이 필요 했기 때문에
                    길이 214m의
 영도다리를 놓은 것이다. 

                    이 다리는 왜정시대인 1931년 공사를착공하여 1934년 11월 개토한
                    하녹을 들어 올릴수 있는 일엽식 도개교로 오전과오후 하루 2번씩 들어 올려
                    큰배가 지나 가도록 했다. 


 * 1966년8월까지 다리를 들어 올릴때 큰배가 지나 갔다. 그 땐 영도다리 드는것
                                            보러 전국각지에서 여행을 왔다. 동래에서 전차도 타보고 하면 하루가 지난다.                                        
                                          사진에 배지나가고 다리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구경을 하는모습이 보인다.
                                             

                      이 영도 다리가 유명하게 된 것은 왜정시대 일본놈들에게 수탈 당하고 갖은 고생을 직한 애환이
                     서린 다리이며. 해방후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시 북한군이 밀고 내려 올때 남은 2곳 중 
                     남은 땅 부산.

                     그러다보니
이곳엔 피난민들이 몰려들며  부산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뿔뿌리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오가곤 하던 다리. 전쟁후 삼팔선이 생겨 이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북에서 넘어 오지 못하는 실향민이
생기자. 이들 실향민들은 부모형제등   
                     가족친지를 혹시 만날수 있을까 영도다리 를 찾곤 했던 가슴아픈 사연이
 남아 있는
                     영도다리였기에
   유명해졌다.


                                             
                           영도다리는 일본놈들이 수탈의 목적으로 세워 그 속에 애환이 녹아있고
                           한국전쟁의 아픔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나이드신분들에겐 "영도다리" 라는 단어만으로 도
                           아픈 기억들이 있는 곳이죠?
                                                           

                                                                  **  지금도 약초 판매상들이 즐비하게 있다.

                           영도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한약 전문상가로는 조방앞 약초시장과부전역앞 에 있는
                          인삼상가가 들어 서기전...

                           약 70년전 노점상으로 시작된 옛 시청 옆 영도다리 초재상거리에는 현재도30여곳의 
                           생약 인삼판매점과 노점상이있다. 이곳은 족제비 고슴도치등 온갖 동물성약재를 포함하여
                           1천여종의 약재를 구비해놓아 서울등지에서도전문상인들이 찾아오고 있는곳이란다.
                           박*자씨 등이 이거리를 지금도 지키고있는 분이다.
                           아마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 그때 사라질 운명을 안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 피란민들의 헤어진 가족을 찾기위해 점집을 많이 찾아 호항을 누렸는데 지금도 있다. 

                                   
                          남포동에서 영도다리 오른쪽으로 건너기 직전 계단을 끼고
                          일본식 다다미 집이 부산 앞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부산 앞바다와 붙어 있는 이른바 ‘영도 점바지(점집)’ 골목. 6·25전쟁 피란시절 영도다리 난간에는
                          헤어진 가족을 찾는 전단이 빼곡히 나붙었다.

                          그리움을 견디다 못한 이들은 ‘영도다리 점쟁이’를 찾기도 했다.
                          당시 이 일대에는 50여 개 점집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성업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사를 확인하려는 피란민 발길이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1998년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하고
                          2000년부터 옛 영도다리 복원공사가 추진되면서 점집이 떠나 지금은 사라질 위기다. 

                          현재는 장미화점집(김순덕 씨·77), 소문난 대구 점집(배남실 씨·80), 목화철학관(김남초 씨·76) 등
                          3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30년째 점집을 운영하고 있는 배 씨는 “요즘은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며
                          “이 집들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연륙교이자 들어 올리는 다리로
                          1934년 완공된 영도다리는 보수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2월이면 옛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때 부산 동래에서 대신동과 영도 영선동까지 전차가 있었다.
                                시골에서 영도다리 드는것 보고
  전차타러 여행을 오고했다. 그땐 좋은 여행지 였었다. 

                         그 다리가 내나이 16살때 인 1966년 8월 마지막으로 하루 두번씩 들어 올려 배가
                         지나도록한 
일을 못하게 되었고 노후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리도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옮겨가고 그 곳엔
초고층 건물이 들어게 되면서
                         
영도다리도 없어지게 될 운명에 놓인 것을 시민들의 반대로 가까스로  그 자리에 복원한다고 한다.  

                                                부산시청이 옮겨가고 롯데에서 초고층 백화점을 짖고 있다.

                              영도다리끝부분 영도경촬서 앞 에 
                             애잖은 사연을 담은 영도출신 현인 선생의
 
                            " 굳세어라 금순아 ! 등 노래비가 있어
그곳을 지나면 노래를 듣고 즐길수있다.
 

                                      * 그 땐 요즈음 힛트하는 노래보다 더 인기 좋은 노래였다.
                                        국민 누구나 부를수 있었고 지금까지
  불리고있는 노래다. 

                          부산의 대표적인  6.25 흔적이 남았던 영도다리도
                          새 다리가 생기고 나면 인근이 점집이나 , 약재상들이  정비되고 나면 
                          그 곳엔 옛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새로운것도 좋지만 옛것들이 그대로 함께해야 우리는 역사를 가진 민족이 되는것인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Posted by 혜 천

 
 40계단은 부산 중구 중앙동에 위치한 문화 명소 이다.
 부산엔 한국전쟁(6.25)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들중 한곳을
 소개하며 둘러 본다..

 대구와 부산 2곳 만 가까스로 북괴군의 발길에 짖밟히지 않고
 온전히 남았을때 중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영도다리와 중안동
 40계단에서 헤어진 부모형제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곳였다.

 낮에는 부두에 나가 날품팔이를 하거나, 국제시장 , 자갈치시장에서
 노동을 하며 그날그날 생명을 부지하며 , 가족친지를 기다리던 곳이
 바로 40계단이곳이다. 
     
한국전쟁(6.25)때  이부근에 거주하던 피란민과
부두노동자 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40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젊은이 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깊이 생각 해보지 않고 사니 잘모르겠지만 보리고개 세대들은
6.25를 알고 있으니 그 사정을 이해 할것이다..

영화<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오프싱 신에 나온 곳이기도 하다.

                     40계단의 그때  그모습                                                             * 현재의 40계단모습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으로 1951년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아가씨”라는 곡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등
 당시 영주동 뒷산, 동광동, 보수동 일대에 흩어져 살았던 10만이 넘는 피난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물동으로 물을 길러 날랐던 그곳에
                            근대식 수도시설이 들어 온것도 70년대 후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70년 까지도 이 40계단은 옛모습이였는데
                           계단을 보수하고 , 그시절 아코디언 아저씨 조형물을 만들어 앉히니
                           정취가 살아나는 곳으로 되었다.

                              40계단 기념비                                             *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

                                         이재호작곡 박재홍 노래의
                                       "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세요.
                                   피난살이 처량하게 동정하는 판자집에 ....."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40계단 비 뒤면에 새겨져 있다.


                                           지금은 평지이지만
                                           그땐 고지대 경사진 비탈길이 였습니다.
                                          고지대 판자촌으로 8.15해방과 6.25 사변을 겪으며
                                          수 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을 오르내리며 울고 웃던 생활의 터진이 바로 이곳이였다.


  *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
   40계단 중앙에 위치. 힘든 생활 속에도 낭만을 간직했던 거리의 악사를 표현하였으며 센서와 음향장치를 설치하여
    관광객이 스쳐갈 시 50년대의 경음악이 연주되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죠!
    힘든 생활속에서도 낭만을 간직했던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가 반가웠겠죠 ? 
 

                        * 어머니의 마음                                                  * 뻥튀기 아저씨

   * 어머니의 마음 조형물은
      피난시절의 힘든 생활속에도 희생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시던 어머니를 표현한다.
   * 뻥튀기 아저씨 조형물은 
      기찻길에 위치하며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펑!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뻥튀기 모습을 표현한다.
      요즘도 시골 5일장을 지날때 뻥튀기 아저씨가 귀 막으세요 하면 자연히 귀를 두손으로 막게 되지요 !
 

                       물동이 진 아이                                               * 아버지의 휴식

       * 물동이 진 아이 
         어려웠던 시절 어린 나이에도 집안일을 도우며 착하게 자라던 어린이를 표현 한 조형물인데
         요즘 학생들 물동이 자체도 모르는 학생들 많겠죠? 시대상이니 어쩌겠어요!
아버지의 휴식
    가족을 위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지쳐,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아버지를 표현 한 조형물을 보면 , 요즘은 세상의 아버지들은 육제적 힘듬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지치게 하는 세상으로 바뀐것이니 매 한가지로 휴식인 필요한것은 같겠다는 생각입니다.  .

                        * 어머니의 마음                                          * 40계단 문학관 과 나선형 계단  

             40계단문학관에 들리면 
             1876년 개항이전부터 개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광복, 6.25등 중구의 형성과정과 역사 이야기
              밥벌이, 물전쟁.. 삶의 애환이 구절구절 묻어나는 그 시절의 추억들
              광복전후 부산의 사회상과 6.25로 인한 피난시절의 부산 모습
            “노천교실에서도 수업 열의는 뜨거웠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배움의 꿈을 키워 왔던 천막교실
              피난시절 애환과 설움을 상징하는 40계단, 대중가요에까지 등장한 40계단이야기
             1950년 전후로 부산중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화예술인 관련 물품들을 구경 할수있습니다.

                              기찻길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 
 
                * 기찻길은 부산역 대화재 전의 옛 부산역(현 중앙동 무역회관자리)을 상징하기 위해
                   기찻길이라는 주제로 40계단 앞쪽으로 40계단광장과 건널목광장을 설치하고 거리를 조성하였으며
                   총길이는 140m입니다.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
                  이 우체통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 보고싶어도 모지 못하는 그리운님에게 보내는 글.
                   가고싶어도 가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 피난시절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옛이야기,
                  모든이의 향수와 애환을 담은 편지를 넣을수 있는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이있습니다.


                * mbc 상징 조형물                                                           * 아직 그대로 있는 판자집
               말 그대로 방송문화가 시작된 곳입니다.

MBC 상징 조형물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방송 전파가 발송되었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부산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정도의 거리이니 ,
        부산여행에서 한번은 가봐야 될 곳입니다.
          40계단을 둘러보고, 동광동인쇄거리를 걸어 백산안희제기념관에 들렀다가
        남포동 ,용두산공원, 국제시장, 보스동책방골목, 깡통시장등으로가시면 좋습니다.

        40계단 문학관 아래 일본인 부부가 한국이 좋아 이곳에서
        눌러 앉아
   일본식카레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맛보고 가도 좋습니다. 

맛집정보

1> 상호 : 겐짱카레
2>위치 : 부산시 중구 중앙동 42-2
         소라계단 바로 밑 우측10M지점

3> 전화: 051-461-0092
              010-7758-1887



4> 참고사항
        * 영업시간 11:30-오후3시30분
                   오후 5:30- 저녁8:00 까지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 주차장 : 없음   


 



                       < 여행정보 관련정보 > 

               1) 교통편 : 부산역에서 걸어서 15분 
                                   지하철 중앙동 역 인근
                                  버스는 중앙동정류장에서 하차
                                   (17, 26, 27, 40, 41, 42, 43, 61, 81, 82, 86, 87, 88, 88-1,
                                      101, 103, 134, 135, 139, 190, 508, 1000, 1003) 

                              기 차 : 부산역에서 하차, 중앙동 방면 지하철 탑승 
                              지하철 : 1호선 중앙동 지하철역에서 하차 13번 출구에서 5분 거리                         
  
                              * 주변 공영 노상주차장 또는 민영주차장 이용(무료주차장 없음)

               2) 인근 볼꺼리 : 용두산 공원 , 부산 여객부두, 민주공원,광복동,남포동, 자갈치시장, PIFF광장
                                       부수동 책방골목, 국제시장, 깔통시장, 부산근대사박물관,

              3) 40계단 문학관 문의:   (051) 600-4041~2, 600-4541~2                            

 

Posted by 혜 천


 

곶감의 효능
*첫 번째는비타민A와 비타민C(사과의10배)가 풍부하여 건강보조식품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곶감을 드실때 끝맛이 떫은 이유는 바로 타닌 성분 때문입니다.
   이 타닌 성분은 설사를 멎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곶감의 두 번째 효능입니다.

*곶감의 효능 세 번째는 고혈압예방 효과 입니다.
   곶감의 타닌 성분은 설사 치료및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모세혈관 강화에 의해서 고혈압을 사전에 예방할수 있습니다.

* 곶감의 효능 네 번째는 숙취해소입니다.
   음주 전후에 곶감을 3개를 물에 달여서 1컵씩 하루에 세번 복용하시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 곶감의 효능 다섯번째는 각종 기관지 강화입니다.
    한방에서 곶감 표면에 형성되는 하얀가루를 기침이 심하거나,
   가래가 끓을때, 폐가 답답할때, 만성기관지염등 치료에 쓰입니다.

* 곶감의 효능 여섯 번째는 비위 강화입니다.
    곶감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위와 장을 두텁게 만들어주고
    비위를 강화시켜 목소리를 곱게 해주고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줍니다.

* 곶감의 효능 일곱 번째는 정력강화 및 정액생성 향상 효과입니다.
    곶감 표면에 형성되는 하얀 가루는 시설 이라고 불리는데
    호르몬을 보충해주고 정력제로써 매우 좋습니다.
    곶감을 드실때 하얀가루를 털어내고 먹으면 않됩니다.

* 곶감의 효능 여덟 번째는 각종 질병 및 감기예방 효과입니다.
   곶감을 꾸준히 먹게되면 면역력이 향상되여서 각종 질병 및 감기예방에 효과적입니다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