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국내 여행지/국내여행 '에 해당되는 글 61건

  1. 2010.11.29 신어산에 올랐다가 달마야 놀자 영화촬영지 銀河寺 둘러보고
  2. 2010.11.27 무오사화 비극의 주인공 점필제 김종직 생가와 예림서원은 어디에? 1
  3. 2010.11.12 보각국사 일연스님은 왜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썼을까 ? 2
  4. 2010.11.10 한국전쟁때 이승만 대통령이 숙식했던 청도 만화정
  5. 2010.11.09 아름다운 고창읍성 탑성놀이하는 성곽길따라
  6. 2010.11.08 자연이 만든 최고 걸작품 마이산에 인간 최고의 예술품 마이산탑사 3
  7. 2010.11.06 지금쯤 오색단풍이 아름다울 쌍곡구곡 소금강 2
  8. 2010.11.05 밀양 영남루 그리고 아랑의 죽음에서 만들어진 밀양아리랑 1
  9. 2010.11.02 통도사보다 더 아름다운 통도사 암자들을 찾아 떠난 여행 6
  10. 2010.10.30 꽃담으로 이루어진 전주한옥마을 골목길 산책 3
  11. 2010.10.29 고려 삼별초군이 쌓은 제주 항파두성과 유수리마을의 관계
  12. 2010.10.19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조선의 마지막 황손의 집 승광재 1
  13. 2010.10.05 1400년전 대백제 부활하면 부여도 살아나는 세계대백제전 1
  14. 2010.06.19 대가야 왕들의 고장 고령 가야금의 시조 우륵의 고장 고령 .
  15. 2010.06.14 기장죽성 왜성에서 바라본 해송과 드림성당
  16. 2010.06.13 일광해수욕장에서 고산윤선도 시비를 지나면 기장 학리포구
  17. 2010.06.02 고령 대가야에 있는 가야금을 만든 우륵 기념탑과 영정각
  18. 2010.01.19 소설 갯마을의 이을포 와 고산 윤선도가 있는 일광해수욕장 6
  19. 2010.01.19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워진 방파제가 있는 이동포구 10
  20. 2010.01.18 오메가 처럼 오목한 아름다운 동백포구 10
  21. 2010.01.16 바다를 좋아 하는 보통 사람들 2
  22. 2010.01.15 2010 년 다시 가고 싶은 사계절 여행지 6
  23. 2010.01.14 겨울날 진주성 성곽따라 걷는 여행길
  24. 2010.01.12 진주박물관에서 본 거북선 함장 임명장 10
  25. 2010.01.09 임진왜란의 투혼이 깃든 진주촉석루 8
  26. 2010.01.07 논개가 왜장을 끌어 안고 순국한 의암(義岩)바위 6
  27. 2010.01.06 임진왜란사를 특화한 진주박물관 소장 보물들을 보며 4
  28. 2010.01.05 눈속의 세상 담양 1박2일팀 촬영지 따라 10
  29. 2009.12.31 기장 죽성 두호마을의 드림성당 3
  30. 2009.12.05 옛 기억 되살리는 의성 탑리 시장통의 국화빵 과 뻥 ☆ 튀기 2

신어산에 오르며 

 산행코스
인제대학정문앞 →  은하사 → 신어산 동봉  → 신어산 정상
                                                                        ↓
인제대학 ←은하사 ←천진암  ←신어산 서봉    ←   출렁다리 

지난 여름 가까운 김해 신어산 산행을하고 내려오며
은하사를 들렀다.
 
신어산은 산 아래 김해시가 내려다보이고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를 내려다 보고있다.
산세는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고 동서로 길게 뻗쳐있고 중국민항기
추락사고가 났던 돗대산이 
   신어산 바로 남쪽에 있다

은하사와 동림사가 자리잡고있는 해발 250m 중턱까지는
 가파르지 않고 차량으로도 올라갈수
있다. 그러나 은하사와
 동림사 위로 곧추 세운것 산세이며 기암괴석으로 은하사에서
 올려다보면
신어산의 경치가 참으로 좋다  


천진암은
  아주적은 암자로 일주문이 아주 검소하여 호감가는  암자였다 ,
   기암괴석에 둘쌓여  설악산에  온 느낌이다  



동림사는  은하사 입구에서 오른쪽 신어산 자락에 있는 지장보살 도량  동림사.
   가락국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장유화상이서 창건한 사찰이다.
  

부산에서 가깝고 교통이 좋아 이 곳을 찾는 사람이 많으며 하키장과
산악자전거 경기코스가 신어산에 있다 .  별로 힘 안들이고 갔다올수 있다 . 보통 선암다리 쪽에서 오르면 4시간 정도 걸어야 되는 코스 라 한다

은하사를 둘러보며
* 은하사는 고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 왕비의 오빠 장유화상이
세운 절로서 영화 "달마야 놀자 " 영화 찰영지로 이름 나있는 큰 절이다.
연못도 있고 개울물이 뜰   가운데로 흐르며 절  한쪽 선방의 분위기가
스스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

대웅전 천장의   대들보에 쌍 물고기가 있다.  김수로 왕릉의 남문에
그려져 있는 쌍 물고기와 같다.

 초창기 은하사의 이름은 서림사라고 했는데 그후 은하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은하사 옆에 지장보살 도량인 동림사가 있다.

동림사는 가락국의 암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장건 되었다고 한다.


                            기나긴 긴 세월 동안
                            깨어진 마음에 물을 채우려 하였던 공부
                             부처님처럼
                             하느님처럼
                             좋은 마음을 가져야지
                             착한 마음을 가져야지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지

                             그러나 스르르 사라지는 생각들
                             사라짐의 안타가움에 울었던 나날들
                             지쳐서 포기한 나날들
                             그러나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담고 담아 보는 수고의 나날들...

                                                  < 은하사 큰 스님  말씀 >

Posted by 혜 천

점필제 김종직선생은 누구인가?
성리학적 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시조라고
할수있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 있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생가 추원제 와 묘소 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의 예림서원을 둘러보고 영남 유림의 대표
김종직선생의  곧은 성품과 그 학문 의 고향 을 찾아본다.

우리가 김종직 선생을 알게 된것은 역사공부를 하면서
영남을 대표하는 유림인이며,성리학자로  조의제문
으로
인하여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한 역사적인 사건의
 인물로 알고 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 조의제문"을 지어 "무오사화"의 별미를 제공한 사연이 있는 곳이다. 조의제문과 무오사화가 어떤 일인가를 부연하면

 * 조의제문 - 세조가 단종으로 부터 왕위를 빼앗은 것을 비난한 글이 조의제문이며  번역된 글을 아래에 적어본다  

하늘이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四大/물水,바람氣,땅地,불火) 오상(五常/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 을 높일 줄 모르리오. 중화(中華)라서 풍부하고 이적(夷狄)이라서 인색한 바 아니거늘,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을손가. 그러기에 나는 이인(夷人)이요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하노라. 옛날 조룡(祖龍) 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네. 비록 전유(鱣鮪), 추애(鰌鯢)라도 어찌 보전할손가. 그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느니, 당시 육국(六國)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편맹(編氓)가 짝이 되었다오. 항양(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종(將種)으로, 어호(魚狐)를 종달아서 일을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름이여! 끊어졌던 웅역(熊繹) 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건부(乾符) 를 쥐고 남면(南面)을 함이여! 천하엔 진실로 미씨(芈氏) 보다 큰 것이 없도다.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함이여! 또는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겠도다. 양흔 낭탐(羊狠狼貪) 이 관군(冠軍) 을 마음대로 축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 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아아,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에 있어,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네.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 이 됨이여,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려. 빈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을 솟음이야!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흐름이여!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르도다. 천지도 장구(長久)한들 한이 어찌 다하리 넋은 지금도 표탕(瓢蕩)하도다. 내 마음이 금석(金石)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양(紫陽)의 노필(老筆)을 따라가자니, 생각이 진돈(螴蜳) 하여 흠흠(欽欽)하도다.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어!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항하소서.

 * 무오사화 - 조의제문 상소후 수년이 지난뒤 사관에 수록한 조의제문의 내용을 문제삼아
                  부관참시
  당하고 생전에 지은 많은 저술도 불살라 진사건을 무오사화라 한다.

'무오사화(戊午史禍)란

사건은 1498년 무오년,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1498년 실록청이 개설되고 이극돈이 실록 작 업의 당상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김일손이 작성한 사초 점검 과정에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과 이극돈 자신을비판하는 상소문을 발견했다. '조의제문'은 진나라 항우가 초의 의제를 폐한 일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글에서 김종직은 의제를 조의하는 제문 형식을 빌려 의제를 폐위한 항우의 처사를 비판하고 있었다. 이는 곧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빗댄 것으로 은유적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나머지 상소문은 세조비 정희왕후 상 중에 전라감사로 있던 이극돈이 근신하지 않고 장흥의 기생과 어울렸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을 적은 것이었다. 당시 이 상소 사건으로 이극돈은 김종직을 원수 대하듯 했는데, 그것이 사초에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달려간 곳이 유자광의 집이었다. 유자광 역시 함 양관청에 붙어있던 자신의 글을 불태운 일 때문에 김종직과 극한 대립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김종직은 남 이를 무고로 죽인 모리배라고 말하면서 유자광을 멸시하곤 했다. 유자광은 '조의제문'을 읽어보고는 곧 세조의 신임을 받았던 노사신, 윤필상 등의 훈신 세력과 모의한 뒤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내용은 뻔했다. '조의제문'이 세조를 비방한 글이므로 김종직은 대역 부도한 행위를 했으 며 이를 사초에 실은 김일손 역시 마찬가지라는 논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연산군은 사림 세력을 싫어하던 차였다. 그래서 즉시 김일손을 문초하게 하였다. '조의제문'을 사 초에 실은 것이 김종직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의도하던 바 대로 진술을 받아내 자 연산군은 김일손을 위시한 모든 김종직 문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미 죽은 김종직에게는 무덤을 파서 관을 꺼낸 다음 시신을 다시 한 번 죽이는 부관참시형이 가해졌으며,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이목, 허반 등은 간악한 파당을 이루어 세조를 능멸하였다는 이유로 능지처참 등의 형벌을 내렸고, 같은 죄에 걸린 강겸은 곤장 10 0대에 가산을 몰수하고 변경의 관노로 삼았다. 그 밖에 표연말, 홍한, 정여창, 강경서, 이수공, 정희량, 정승조 등은 불고지죄로 곤장 100대에 3천리 밖으로 귀 양보냈으며, 이종준, 최보, 이원, 이주, 김굉필, 박한주, 임희재, 강백진, 이계명, 강혼 등은 모두 김종직의 문도 로서 붕당을 이루어 국정을 비방하고 '조의제문'의 삽입을 방조한 죄목으로 곤장을 때려 귀양을 보내 관청의 봉수대를 짓게 하였다. 한편 어세겸, 이극돈, 유순, 윤효손, 김전 등은 수사관(실록 자료인 사초를 관장하는 관리)으로서 문제의 사초를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되었으며, 홍귀달, 조익정, 허침, 안침 등도 같은 죄로 좌천되었다. 이 사건으로 대부분의 신진 사림이 죽거나 유배당하고 이극돈까지 파면되었지만, 유자광만은 연산군의 신임을 받 아 조정의 대세를 장악했다. 이에 따라 정국은 노사신 등의 훈척 계열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초가 원인이 되어 무오년에 사람들이 대대적인 화를 입은 사건이라 해서 이를 무오사화라고 하는데, 이 사건을 다른 것과 구별하여 굳이 사화(士禍)가 아닌 사화(史禍)라고 쓰는 것은 사초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추원제는 밀양시내에서 무안쪽으로 가는 산 기슭에 있다.
 집앞뜰은 넓은 편이지만 집은 건물이 작고  마당도 넓은 편이 아니다.  집앞에는 선생의 흉상이있고 흉상옆에는 선생의 추모비가 있다.

 추원재는 사림파 유학자들의 정신적 고향이며 점필제 선생 사후 유림인들이 이곳을 찾아 선생의 학문을   숭상하던 곳이 되었다.  


     선생의 묘소는 집 오른편으로난 오솔길을 걸어 산으로 조금  오르면 나타난다.
     무덤은 호석이 둘러쳐저 있지만 가파른 산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

                               형조판서 증 영의정 점필제 신도비각  

    예림서원은 추원제에서 그리 멀지않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기위해 둘러 볼만한 곳이다.
 
     예림서원은 정면6칸 측면2칸의 목조기와로 지어졌으며  유림후학들을 교육기능과
     공자와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하는곳 이도하다. 

                               독서루는유학생들이 공부하던 문루


       구영당 은 200년이 훨씬 넘은 조선시대후기의 건물  예림서원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데
  숭정후 기유 사액이란 글씨가 있어 1669년 헌종10년에 사액된 현판이라 한다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서 일어난 무오사화로 가족들은 밀양에 거주할수 없어
     은거할수밖에 없게된다.
 점필재 깁종직선생의 5대손이  피신와서 은거하여 살며
      집성촌을 이룬곳이 현재 고령 개실마을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묘소와 생가 그리고 예림서원만 있고  그 후손들은 고령 개실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한다. 
      
Posted by 혜 천

 

삼국유사는 일연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문화유산이며 선물인 것이다.

 2009년9월 16일 삼국유사의 고장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를
 찾아 일연스님의 일생과 삼국유사를
 집필한 장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일연스님을 더
알게 되었다.

 

보각국사 일연스님은 왜 삼국유사를 섰는가 ?
  삼국유사의 글머리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었다.
 글 첫머리에

" 대체로 옛성현들이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풀려하면 괴이,완력,패란,귀신에 데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알때부터 부명(符命)을 받고 도록(圖錄)을 받는것이 반드시 보통사람들과  는 다른점이 있어  천자의 지위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데서 나온것이 어찌 기이하다고 하겠는가?  당시 지배층이 우리나라의 시작을 기자조선에 두려하는데 반해 일연스님은 삼국유사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기술하여 국가의 위상을 중국과 나란히 두었다.  단군의 치세를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 요임금과 동시로 처리하고 단군을 천제의 아들로 설정하고 있어 우리 역사와 문화가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느 자주적 민족사관을 펼다.

 이런점으로 미루어 일연스님은 우리민족이 몽고 침입으로 굴욕당하고 있는 시기에 민족 자주의식을 깨우치고 후대에 민족혼을 심어 주기위해 삼국유사를 편찬한것으로 보면될것이다.


삼국유사를 읽어 본적이 있으나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몇권으로 되어 있는지는 생각해보질
않았다.
 

삼국유사의 구성은

상권1, 2권으로 하권이 3,4,5권으로 구성되어 총 5권으로 구성되어있다
 *  왕력 (王曆)제1 - 신라,고구려,백제,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의 역대왕의 출생과 치세에 대해 
      기술하고 고조선부터 삼한  부여,고구려, 통일이전 신라등 여러나라의 흥망성쇠,  신화,전설과 함께
      기록
*  기이(紀異)  제2 - 문무왕부터 경순왕까지 신라 ,백제,후백제에 관련된 이야기
*  흥법(興法)  제3 - 불교의 전래 과정수용,불교의 융성과 고승들의 행적 기록
*  탑상( 塔像)제4 -  탑과 불상 및 사찰의 유래 이야기
*  의해(義解) 제5  - 원공을 비롯한 신라의 튀어난 학승과율사들의 전기
*  신주(神呪) 제6 - 밀교,신승들의 이적(異蹟)에 관한 이야기
*  감통(感通) 제7 -  신앙의 감흥 과 영험에 관한 이야기
*  피은(避隱) 제8 -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던 승려들의 아름다운자취
*  효선(孝善) 제9 - 불교적인 선행과 효도에 따른 보답이야기      

  계례의의 혼을 되살린 천년고찰 인각사
* 국사전이 있는 인각사지는 사적제374홀로 지정되어 발굴 ,복원중인 곳이다.
 신라선덕여왕 11년(642년)에 의상대사
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보각국사 일연스님이
 고려 충렬왕10년 (1284년)부터 임종때까지 5년동안 이곳에서 삼국유사
를 비롯하여
100여권의 불교서적을 집필하였고 총림법회등 대규모 불교행사를 연 곳으로 유명하다.

 인각사 보각국사 탑 (보물제428호)
고려 충렬왕 15년 (1289년)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부도탑이다. 일연은 노년에 인각사 에서 부모를 봉양하며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는데 아침에 해가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인각사 보각국사비  (보물428    호)
* 이비는 충열왕 21년(1295년)에 일연의 불제자인 법진스님에 의;해 세워졌다.
  비문은 민지가 왕명으로 지은 명문이며, 
  글씨는 왕희지의 유필을 집자하여 만든것이다.
  비의 형태가 많이 훼손되었으며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탁본으로 
  남아 있다 한다   .
 

삼국유사는
소설의 흐름을 가늠해보는 설화, 고대시가 ,향가, 와 고대민중이 불렀던 민요,
고대신화 .
그리고 일연스님이 쓴
 48편의 찬가가 있다.

이로 볼때 일연스님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주옥같은 작품들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와 함께 역사를 공부하느데 있어 없어서는 않될 기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재삼
     느끼며
보각국사 일연스님에 대하여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여행이 되었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승용차 : 대구 - 팔공산순환도로  - 한티재휴게소 - 부계남산리 - 신성면 - 갑티재 -
                      고로면화북리 인각사

      * 버스  : 대구(북부주차장) - 군위우보면 - 고로면 - 인각사   (75분소요, 배차 8분간격)
      * 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_ 군위ic - 효령면 -부계면 - 고로면 - 인각사

    2> 문의 :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번지  인각사 
         전화 : 054- 384  -1161 

Posted by 혜 천

 지난 10월 친구들 일행과 단체로 가을여행을 갔다. 
회장단에서  각자 점심을 준비하여 오라고 엄명이
떨어졌다.

점심을 각자 싸가지고 가서 야외에서 점심을 먹었으니
 소풍이고 여행이 었다. 청도에 제일 먼저 들린 곳이
청도에서 꽤 유명항 고택 이었다.

조선시대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 청도에 은거하여 서당을
 짖고 후학을 양성한 소요당 박유 고택이였다.


고택 진입로에  적당한 크기의 공원이 있고 공원에는
고목들이 울창하여 더위를 식혀줄 안성마춤의 장소라
한 여름에 와도 좋을것 같은 곳이었다. 
 


고택앞 강변에 자리잡은 고목

 만화정앞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어 운치가 있다. 나무들도 오래되어 고목이라 정감이 간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본 만화정


만화(萬和)란 뜻은 본래 운문들판 이름이 만화평(萬花坪)인것과 관련이 있다. 이 집은 만화평을 굽어보는 자리에 위치해있다. 이에 운강은 만화의 花와 소리가 같은 점을 착안하여 花를 和로 바꿔어 만화정(萬和亭)이라 이름 지었다.


문화해설사가 늦게 오는 바람에 대기중에 있는 동기 가족들



만화정 건물과 현판

청강고택 부속건물로 박시문(1814-1875) 선생이 조선철종7년에 지은후 공부하며 강론하던곳. 정자인 만화정과 행랑채,하당,곳간으로 구성되어있다. 

담넘으로 찍은 만화정 행랑채


만화정은 숲이 울창한 낮은 언덕에 서남형으로 배치되어 있는정자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서측에 한칸의 방과 동측에 2칸의 동방을 배치하고 누마루에는 3면에 현함을 돌려 바닥을 확장하였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건물 또한 섬세하고 말큼하게 유지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6.25전쟁때 이승만 대통령이 숙식했던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 있는 코끼리 형상의 나무



 여행정보
* 위치: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182-1
* 전화 :054-372-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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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 천

고창선운사, 고창고인돌,무장읍성을 둘러 보고
고창읍내에 들어섰다.
읍성 입구에 고창 판소리
 박물관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지만  시내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걸어서
고창읍성에 도착했다.

 읍성문이 닫히기전에 둘러 볼 욕심으로  
고창 지방의 판소리역사와
동리 신재효선생의
고택 나오면서 보기로 했으나 너무 늧어
 보질 못하고
다음날 다시 오기로했다. 
 

고창읍성은 그렇게  큰 성곽(약1.7km) 이
아니어서 천천히  둘러보며 고창읍성내에
있는
 각종 건물들의이름과 유래를 알아보고 왔다.
 
이성을 " 모양성"
이라고 하는데 . 백제때 고창지역 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곽이 자그마하지만 짜임새 있고 아름답다. 







   ** 탑성놀이 유래 **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 한바퀴 돌면 - 다리병이 낫고
      ◎ 두바퀴 돌면 - 무병장수하고
      ◎ 세바퀴 돌면 - 극락 승천 한다는  전설이 있어 매년 축제일 재현한다고 함 

 성곽길이 황토흙으로 되어있어 걷기에 아주 좋게 되었있고 이렇게 아름다운 성곽길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좋은길이였다. 

                          ** 향청 - 지방수령 자문보조기관 근무처        

                     ** 풍화루 - 읍성 연못 옆에 세워진 2층누각

                          ** 작청 - 이방과 아전들의 사무실                    

                                            ** 대원군의 쇄국정책 척화비

   **다른 읍성보다 적지만 볼꺼리는 많다. 성곽위 길이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뽑힐 정도로
   아름다운 성곽 길이였다. 고창에 가실분은 시내 중심가에 있어 한번 구경해
      볼것을 권하고 싶다

     여행정보
     1. 위치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9번지
     2. 전화 : 063-560-2313
Posted by 혜 천
 마이산으로 가기위해 부산에서 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전주에 도착하여 전주비빕밥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진안행 직행버스를 타고 출발, 진안에 들어서니 차창으로
 마이산이 보인다.

 
진안 터미널 가기전 첫 정류소에서 하차 해버렸다.
내려서  마이산을 보고 사진을 인증샸을 누르고 
택시를 탈까? 걸어서 갈까?
하다가 걷기로 결정하고
쉬엄쉬엄 걸었는데  금방 입구에 도착되었다.

 
예전에 와 봤던 북부주차장 이다.
도보여행 하기로 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볼것 다 보면서
마이산에도 오를 예정이었다
.
 


                                       *****   전설도 알아두면 그럴뜻하다 ***** 

옛날 옛적에 부부 신선이 자식을 낳고 살아가던중 마침내 하늘나라로 승천할때가 되어  남신이
 말하기를
" 사람들이 승천하는 것을 보면 부정을 타서 않되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말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기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한다" 

그래서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 때마침 물 길러온 동네 아낙이 승천하는 장면을 보고
 " 어머나 , 산이
하늘로
  올라 가네." 하고 소리치자 승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과 두 자식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
  다고 한다. 

그래서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보면 아빠봉은 새끼봉이 둘붙어 있고 서쪽 엄마봉
은  죄스러움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런 감탄을 자아 낸다

                                                         ** 숫 마이봉  (  667 m )      

                                                               ** 암마이봉  ( 673 m ) 

*  진안고원에 있는 2개의 암봉으로,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부터는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렸다 한다. 

 동봉이 숫마이산( 667m)
   서봉이 암마이산(673m )  동봉과 서봉의 간격이 불과 20 m 밖에
  않된다고 한다.

 **   기반암은 수성암, 산 전체가 암석산이지만 정상에는 식물이 자란다.


        **  탑사옆에  남쪽으로 섬진강 발원지가 있고 , 북쪽으로는 금강의 발원지가 있다 
      
  * 화엄굴 - 숫마이봉 중턱에 있는 화엄굴 속의 약수를 마시고 산신에게 빌면 득남한다고  한다
  * 운수사는 숫마이봉 기 슭의 울창한 숲에 둘려쌓여 있으며 조선 태조 가 임실의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다 들린곳이라 한다. 


* 마이산은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면 탑사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수있다
 
  탑사를 만든 이갑룡처사는 1860년 임실군 둔덕면 둔기리에서 전주이씨 효령대군 16대손으로 출생했던 석정의 본명은 이 경의 호는 이 갑룡이라 한다.

세속과는 완전 등진채 낮에는 돌을 날랐고 밤에는 기도 하다 자시에 돌탑을 하루에 한층씩 30여년동안 인간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108기의 탑을 쌓으면서 108 번뇌를 해탈 하고자 108개의 석탑을 구상 자연석을 탑촌으로 하나둘 올려 놓으면서 쌓은 탑사이다.
 탑사의 탑은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2기로 되어 있고
                                                                    당초120기였으나 현재는 80기가 남아 있다.
  태풍에 흥들리기는 해도 넘어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탑.
                                                                               이 탑은 약간 기울어지게 
쌓여있다  

    타포니 - 풍화작용으로 암석의 표면에 동굴모양의 구멍이 생기는데 이것을 타포니라하며
                현저하게 많타.   

              사람이 오를수 없는 산중턱 타포니에 어떻게 돌탑을 쌓았는지  신비 스럽기만하다.

                                                    비룡대의 가마득한 모습


* 봉대봉 옆에 탑사를 쌓은 효령대군 17대 손 처사 이갑룡 묘지석이 있는 묘소가 있다.   
  그리고 비룡대는 암반위에  세운 정자로 고금당쪽 철제 사다리 절반 정도가 90도로 세워져
   내려 오면서 어찌나
  아찔한지 오줌을  짤금 그릴   정도로 급경사 였다.

  고금당은 말로만 듣든 금칠이된 지붕이 이색적이 었다.   남부주차장에 내려오니  "마이동천 금당성지"라는 비석이 있고  이곳 남부주차장쪽에서 올라가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마이산 입구에서   진안 읍  → 북부주차장  →  천황문  →  운수사  →  탑사 - 봉대봉
                                                                                                         ↓
                           남부주차창  ←  고금당(금당사)  ← 전망대(비룡대)  ← 성황당 


  여행정보 
    1. 위치 :  전북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 마령면 등촌리
    2. 전화 :   063-430-2769   /  마이산탑사  063-433-0012,
    3. 찾아가는길 

                           

Posted by 혜 천

 수정옥의 수정폭포를 보고 아토피체험 마을로 가는길
 517번 국도쪽으로 살짝 옆길로 들어서니 쌍곡구곡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런때가 뻐스보다는 승용차가 좋은
 것같다.

여름에 다녀온것을 지금에 사 포스팅하느냐 하면
여름계곡이 좋긴한데
 쌍곡구곡 전체를  만나보지
못하여 미루고 미루어오다 ,여름도 좋지만 가을
 단풍이 더 좋을 것 같아 늦게 나마 올려 보기로
 했다.

쌍곡구곡은 충북 괴산에서 연풍방향으로 12km 지점의
 칠성면 쌍곡마을로 부터 제수리재에 이르기까지
10.5km의 구간
 에 이른다.

 퇴계이황, 송강 정철등 당시 수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쌍곡의 산수 경치에 매료되어 풍류를 읊었던 곳이다.
 
짙은 계곡물과 기암괴석, 서늘한 그늘을 주는 울창한
숲을 바라보면 어찌 시한수가 나오지 않겠는가 싶다.

어느 계곡인들 절경이 아닐까 만은 역시 첫손을 꼽히는곳은
 제2곡 소강강이다. 한폭의 동양화 같은 충북의 소금강,
 이곳 군자산은 수려한 풍광으로 등산객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제1곡 호롱소부터소금강,병암,문수암,쌍벽, 용소,쌍곡폭포,선녀탕,장암 이렇게 9곡이 있다한다.
구곡중 제일 빼어난 소금강
에 들렀다.
 
소금강은 쌍곡입구에서 2.3km지점에 위치한 쌍곡구곡중 극치를 이루는 경치가 금강산 일부를 옮겨 놓은것
 같았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그 톡특한 절경과 그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이 가히 소금강으로서 손색이 없다. 찻길옆에 있어 바로 주차할수 있어 교통도 참으로 좋은 곳이다.

       사진출처 : 이사진은 여행블로그기자단 유담님의 블로그 가을단풍  입니다.
 

북부지방에는 단풍이 한창이라고 한다.
여름에 다녀온 구곡쌍곡 소금강 지금쯤 아름다운 단풍이 내려 앉으면 그야 말로 별천지가 되어
있을것 같은 곳이다. 11월에 한번 더 다녀올수 있을지 그때 못올린 구곡쌍곡 소금강을 다시
생각해보며.....
  

Posted by 혜 천
 밀양아리랑의 배경을 이루는 전설도 그리고 아랑의
전설도 이곳 영남루에서 비롯된다.

조선 명종때 밀양부사에게 어여쁜 딸 아랑이
있었는데 , 성은 윤씨요, 이름은 동옥(東玉)혹은
 정옥이다.

 한 관노가 그녀를 사모하게 된다.


그시대 상황에서 당치도 않는 일 아닌가. 이 관노는
아랑을 영남루로 불러내어 사랑을 고백한다.

거절 당하자 살해하여 대나무밭에 암매장한다.
그후로 새로 부임해오는 부사에게 밤에 나타나자 하소연
 할려고 하면 그 부사는 혼이 나가 원인모를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러던 차에 새로 부임해온 담이 큰 부사가 귀신으로 나타난
아랑을 만나 자초 지중을 듣고 그 관노를 처벌하고 원혼을 달래주었다는 전설이 이있다 .

                                   밀양영남루 와 대나무숲속에 자리한 아랑각이 있는곳

 

        이 이야기를 들은 밀양의 아낙네들은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위해 "아랑 아랑"하고 부른
       노래가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진 것이 지금의 밀양아리랑이 된것이라고 한다.   
   

                     
                      
밀양아리랑 가사를 보면
                    "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님이 오셨는데 인사도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영남루 아래쪽  대밭사이에 아랑의 넋을 위로하는 사당인 <아랑각>이 마련 되었고 
        매년 음력 4월16일
아량제를 열고 제향을 올린다.아랑각 안에는 육영수여사가 하사한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   육영수여사가 하사한 영정 **
      명종때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는 아랑전설의 주인공 아랑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  아랑각 앞으로 흐르는 밀양강  **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장미꽃보다도 더 검붉은 아랑 낭자의 정열을 연민하며
       영남루 아래 죽림 속에 사당을 세워 혼백을 위로하는 곳이 아랑각입니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밀양시  내일동 40 
      2. 전화 : 055-356-2452 ( 영남루 관리사무소)
      3.  찾아가는길 : ① Ktx 밀양역하차 와 새마을호 밀양역하차
                              ②  시외버스 : 부산-밀양 (직행)1시간,   완행 1시간30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 기본요금 거리임. 
Posted by 혜 천

 

영취산 자락에 깊숙히 숨어 있는 통도사 암자 중에는
꽤나 사람들에게 알려진 암자도 있다.


서운암의 들꽃과 된장 그리고 자장암의 금개구리는
 통도사를 찾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오늘 이들 암자와 19개 암자들 가운데
반정도라도 걸으며 찾아 참배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나섰다.


* 걷기코스와 암자 통도사 본당 → 보타암 → 취운암 →
   사명암 →백련암 →  옥련암 → 서운암 - 수도암 - 안양암-
  서축암- 자장암-  -금수암- 통도사 본사

                           
 * 소요시간 : 5시간



     № 1 ) 보타암 - 보타암은 통도사암자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암자이며 ,
                            삼성반월교를 건너 300m 지점에 있는
마을집 같은 암자이다

       № 2 ) 취운암 - 보타암에서 200m 거리에 있다. 법당 뒤쫏에 역대 고승들의 사리부도가
                           즐비하게 서있다


          № 3 ) 사명암 - 임진왜란 시대의 명장 사명대사께서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암자라고 한다.

 № 4 ) 백련암 (백련정사) - 사명암에서 남쪽 숲속으로 500m지점에 있고,
                                주위에 숲이 울창하고 큰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의 목조불은
                                은행나무로 조성했다고 한다. 백련사 또는 백련정사라고 한다


        № 5 ) 옥련암 - 배견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위 약500 m지점에 있으며
                         " 장군수"의 전설로 유명하다.

 
      № 6 ) 서운암 - 삼천불전 서운암 , 어느해 상서로운 구름이 감돌았는지 이 암자를
                          서운암이라고 했단다 . 

                         서운암 된장이 유명하고, 봄이면 들꽃축제로도 이름있는 암자이다.

  № 7 ) 수도암 - 통도사 산내에서 제일 작은 암자이다. 법당한채와 요사채 한째로 되어있다.
                         수도암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조용한 개인 수도처로 적합한 암자이다.

        № 8 ) 안양암 -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하며 , 대웅전 앞 서남쪽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다.
   통도사 본당과 제일 가깝다.

         № 9 ) 서축암 -자장암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법당형식의 대웅전이 있고 ,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이 유명하다.

     № 10 ) 자장암 - 자장암은 안양동대의 골짜기를 따라 2km정도 가다보면 자장동천이
                        나타난다
이 암자는 금개구리 (금와)로 유명한 암자이다.
                        * 통도사를 짓기전 자장율사께서 바위벽
아래 움집을 짖고 수도하던 곳이며,
                         높이 약4m 정도 의 마애불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 법당뒤 바위벽에 엄지 손가락이 들어갈 만 한 작은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자장율사가
 이 곳에서 수도하고 있을때 두마리의 개구리가
                       떠나지 않아 율사께서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갸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후 한쌍의 금개구리로 , 또는 벌이나 나비로 변현한다고 한다. 좌우간
                       통도사를 찾는
참배객들은 이 자장암의 금개구리(금와)를 알현하고자
                      자장암에 온다고 한다.

 
                      안혈속의 개구리를 보는사람도 있고 , 보지 못하는 사람 도 있으니 ,
                      이로써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측량하기도 한다고 한다 
                    금개구리 사진은 자장암에서 찍어 놓은것을 주지스님의 허락으로 찍어 온것임>

     № 11 ) 금수암 -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의 말사이다 범어사의 말사가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않된다.    대광명전과 대웅전. 심우당,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별한 유물은 없다. 


  * 반야암,극락암,비로암,백운암,취서암,무량암,보문암,관음암 8개 암자는 다음 기회에
     한번더 찾아 나서 보기로
하고 8개 암자를 가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번지
  2. 전화 :055- 382-7182   /  055-384-8380

 
Posted by 혜 천

요즘 걷기가 유행처럼 번지니 좋은 길이 많이 생긴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

700여채로 이루어진 전주한옥마을! 한옥과 한옥 사이에는 골목길이 있고 그 한옥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성을 가진 담을 가지고 있다.

꽃담,돌담, 황토흙담, 나무판자로된 담, 숲으로이루어진, 한옥의 모양이나 특색에따라 담들도 쌓아져있다.
전주한옥체험관에서 출발하여 한옥골목길을 산책하다

                     오목대에서 내려다본 700여채의 한옥들...
 한옥마을에는 한옥생활체험관 후문쪽으로 나서면 지담이 나온다,  소리박물관, 술박물관 골목길을 다라 쭉 걸어 본다.


  전주향교를 둘러 쌓고 있는 돌담
고려시대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향교는 조선선조임금때의 건물이며 전주향교는 구조와 풍경이 아름다워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스캔들 촬영지 이기도 한곳이다.  돌담의 담쟁이 덩굴에도 가을이 내려오고 있어 운치있게 만들고있다  

              던킨선교사가 세운 동락원, 동락원따라 만들어진 돌담길



                           휘어진 곡선의 기와지붕은 한옥의 멋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1936년 한옥10채를 매입해서 새로지은 ㄱ 자형 한옥집(최부자댁)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길
 
토담길의 흙돌담벼락이 황토색 질감으로  마음을 밝게 만든다






꽃담은 탐스러운 포도송이나 꽃무늬,장수를 의미하는 수 (壽)자나, 행복을 기원하는 복 (福)
   등의 글자를 새겨넣은 담이다. 이들 무늬는 자손의 번창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있다. 담위에는 기와를 올려 흙이 빗물에 실려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있다.  



 은행나무길 옆에 있는 다로(茶路)에 들러 향이 좋은 차를 한잔하며 잠시 쉬어감다 좋은곳이다.






 한옥마을을 벗어나면 전주객사가 나오고 이곳부터 시내 중심가를 구경할수있는 객사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의 돌담길이 꽤 길다 . 600년 경기전의 은행나무에 노란단풍이 들면 이길 또한 환상적인 산책로라고 할수있을것 같다.
Posted by 혜 천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가 멸망하자 이에 항거하기 위하여 개성에서 진도로, 진도에 서 항거하다가결국 제주도 까지 밀려와서 이곳에서 항몽하게된다. 이때 전쟁을 하기위하여 쌓은 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13세기 토성이다. 이성이 삼벌초군의 마지막 보류였던 향파두성이다.
 
비오는 날 이곳을 찾았다. 보슬비라 할까,물안개라 할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하여 신비롭기 까지 한날이었다 .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듯이 소나무 한그루가 토성을 지키고있는 듯하다.


진도를 근거지로 항전하던 삼벌초군은 원종 12년(1271) 진도가 함락되고 배중손 장군이 전사하자. 김통정 장군이 잔여 부대를 이끌고 제주로 건너왔다. 이 곳에 토성을 구축하고 항전하던 삼벌초군은 원종 14년(1273) 여몽 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아 항파두성이 함락되면서 전멸했다
 

안개속에 이곳이 항파두성( 항파두리성)이라는 표지석만 홀로 서있다
 

향파두성은 제주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토성이며, 언덕과 하천을 따라 주위 15리에 걸쳐 쌓은 것으로 그 규모가 매우 크다. 1978년부터 복원 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원종 14년(1273) 여몽연합군의 총격을 받아 향파두성이 함락되고 삼별초군은 전원 순의하였다. 이로써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에 의해 몽골인들이 완전히 토벌될 때까지 약 100년동안 제주지역은 몽골의 직할지로서 일본과 남송 공략을 위한 전략기지로 이용되면서 제주도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유수리마을은 지금부터 730년전 고려원종 12년 에 항몽삼별초군이 향파두성에 따라온 한 고승이 유수암 절동산 아래 용출하는 맑은 샘을 발견하고 언덕아래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짖고 불사를 시작한것이 이곳에 처음으로 사람이살기 시작한 시초이다. 향파두성 함몰직전 김통정장군의 모친과 일부수하들이 유수암 종신당으로 피신하여 흙집을짖고 이곳에 살기시작한것이 사람이 살기시작한 최초이다
 

이곳은 한라산에서 흘러든다는 용천수이며 유수암천이다. 근년까지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 하며 지금도 사용할수 있다고 한다.
 

향파두성 함몰직전 김통정장군의 모친과 일부수하들이 유수암 종신당으로 피신하여 흙집을짖고 이곳에 살기시작한것이 사람이 살기시작한 최초이다.


태암감당 자리이며 무환자나무만 서있을 따름이다.
 

삼별초군을 평정한 원나라가 상동에 목자촌을 설립 금덕물리라 했으며 , 이조초기 좌수 홍덕수의 설촌으로 정상적인 마을이되었다. 태감당은 후일 중건되어 태산사로되었으나 숙종 대에 와서 훼손되었으며 지금은 칠산동이라는 이름과 빈터만 남았있을뿐 730년의 고생 창년한 팽나무 숲속에 그때 심은 무환자나무만 자라고 있을 뿐이다.
 


유수암리 마을의 보호수로써 수령450년 된 팽나무이다. 높이 16m 나무둘레 510cm 앵월읍 유수암리 2027번지에 있다.
 

여행정보
1. 위치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2. 전화 : 064-799-2209
3. 유수리 마을 찾아가는 길 *제주시 방면(20분 18km) 제공항(공항로)->노형오거리(도령로)->무수천사거리(평화로1135번)->유수암리 * 서귀포시방면 (40분 40km) 서귀포시터미널(일주도로1132번)->중문(일주도로1132번)->상창교차로(평화로1135번) -평화로(1135번)->제주경마공원(1135번)->유수암리
Posted by 혜 천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선친들께서 입향조가 된곳이기에 그래서 전주이씨(全州 李氏)의 관향이기도 한곳이다. 한옥여행을 계획할때 서울 북촌한옥과 쌍벽을 이루는 전주한옥마을을 
 우선순위로 하여 계획을 잡는다. 

오목대에서 내려다보는 700째의
한옥이 팔짝지붕을 하고 아름다움을 과시하는곳이다.
전주여행에서 1박 예정이면 반드시 한옥에서 하루를 보내는것이전주를 세세히 볼수있는 여행이 될거라 믿는다. 한옥생활체험관, 동락원등 많은 숙박또는 체험을 할수있는 한옥이 있지만 특별한곳이 한곳 있다.

그곳이 황실후원회가 운영하는 테마생활관 승광재(承光齋)는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씨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옥생활 체험시설이다. 

이곳에선 전통 궁중 한식과 궁중 다례를 체험할 수 있다. 장작 아궁이 온돌방에서 하룻밤    묵으며 황손에게 직접 듣는 황실이야기를 듣노라면 멀리 있던 역사 속의 이야기들이 손에 
와 닿을 만큼 가까워진다.                   

 

                          

  생활이 편리한 고층아파트에 살면 좋은점도 많지만 고층아파트라 불편하고 위험함을 항상 안고  살아야 됨을 이번 부산 화재 사고를보며 낮은곳이 좋구나하게 되었다. 그후 전주한옥마을을  체험할수있는  기회가 되어 한옥의 아름답고 보고 편리함을  느끼게 되었다.    

                     

   경치가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우뚝 솟은 정자에서 홀로 또는 여럿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했구나 싶다. 요즘은 더운 여름철 낯에는 책을 읽거고 밤에는
 주안상
  차려 놓고 한잔하면 좋은 곳이되겠구나 싶었다.                       

                              

 

   한옥마을은 도심에서 볼수없는 또 하나의 정겨운 돌담,흙담이 있다. 승광재 찾아가는 곳의

  골목길은 왜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을까! 샘이 날 정도로 좋았다.

 

               벽에 붙인 조형물한하나도 예사로히 만든 흙담이 아니어서 더 좋다.

 

                      

   대문 하나에 두집이 들어서 있다.  입구에 대한황실 승광재 라는 왼쪽 밑에 설예원이라는 세로 간판이 하나 붙어 있다. 전주에 뭔 황실이 있는냐?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을 듣고 난  후에도  이해가 된느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선친들의 고향이고 전주이씨의 관향이기 때문에 전주가 황실과  인연이되어 조선 마지막 왕족 이석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예원은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건물이고 승광재는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설예원은 예절을  체험하고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승광재 현판아래  채광과 통풍을 홑창호지를 바른 문짝이 옛 시골집 문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한옥체험을 할수있는 방은

      * 보일러 온돌방 (2인1실) 2개 와 장작 온돌방( 2인1실)1개 총 3개를 운영하고 있다   
        요금은 각50,000원이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입구하여야 결정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건원릉의 사진이 걸려있다  . 인근에 경기전을
    둘러 보면
  이성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있다. 

                    정조대왕 , 영조임금, 세종대왕의 어진이 걸려있다 . 

                            고종황제, 영친왕의 어진이 걸려있다. 

                                황손이자 가수  이석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메아 리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 터에/비둘기처럼 다 정한 사람들이라면/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     황손 이석 노래 ‘비둘기 집이다 

 이 노래는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60년대 후반 애창하던 노래였으니 그 당시 인기가 있었다.    그때 이석이 황손이라는 것을 어슬프게 알았으나 군사정권시절이라 조용히 노래만 불렀던 것이다.                          
궁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지막 황손인 그가 젊은 시절 가수가 된 것은 순전히 생 활고 탓이었다고 한다. 

그는 1941년 종로의 사동궁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2남 의친왕 의 11번째 아들이다
1967년 두 번째 앨범 <비둘기 집> 을 내고 나서도 생활고는 풀리지 안았고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안타까움 뿐이었 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찜질방을 전전하던 그에게 북촌 한옥마을에 생활터전을 마 련해주자는 제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로서는 내심 크게 기대를 걸었지만 정 작 서울시에서 내놓은 방안은 북촌 한옥 민박  방 한 칸을 내주겠다는 것이었 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런 ‘생색내기용’ 대접에 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주로에 내려 오게 되었다고 한다.

 

   설예원과 승광재 사이 보이는 길로 계속 가면 또 다른 남의 집으로 통하게 만들어              전주한옥마을 탐방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둔것이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되었다. 

                          

    설예원은 예절을 배우는 아름다운 공간 설예원 전통생활문화교육관 설예원은 생활예절,

   다도예절 등 우리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한복을 입고 절하는 방법부터 침선공예, 다과 만들기, 다례, 천연염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청소년과 외국인들의 발길이이어지고 있다. 

설예원: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42-5   전화 063-288-4566  

           조선시대 골목으로 통해서 바라본 21세기 고층빌딩이 참 어색해 보입니다.

 

   전주여행에서 빼 놓을수 없는것이 전주한옥마을이다.
   그래서 한옥에서 하루밤을 잘수있는 것이 한옥에 대해 제대로 맛을 보는것이라고 할수있다.
  이왕이면 승광재에 하루 묵으며 황손에게 대한제국의 마지막 역사를 직접 듣을수 있는
곳이다.

        여행 정보          

1. 위치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42-10
2. 전화 :   063-284-2323 (승광재)     문화관광과 관광홍보담당 담당자 : 성은희전화번호 : 063)281-5045
3. 홈페이지 http://www.royalcity.or.kr

          * 골목과 체험이 있는 코스 (반나절코스)
            오목대 → 공예품전시관 → 태조로 → 전동성당 →목판서화체험관 → 경기전 → 교동아트센터 →
             최명희문학관 → 토담길 → 은행로 →  전통한방문화센터→ 태조로 → 민속길 → 전통한지원 →
              승광재 →전통술박물관 → 전주공예명인관 → 공예공방촌지담 →한옥생활체험관

         * 한옥마을 및 주변연계코스 (1일또는 1박2일코스)
             전동성당 → 경기전 → 교동아트센터 → 최명희문학관 →한방문화센터 → 아세헌 → 풍남원 →
              전주최씨종택 →600년 된 은행나무 → 동락원 → 한옥생활체험관 →공예공방촌지담 → 전주공예명인관
              → 술박물관 →온고을소리청 → 전주전통한지원 → 김혜미자 한지공예연구소  →  천양제지 →  물빛 →  
              오목대 → 목우헌 →공예품전시관 → 은행로길 → 미선공예사 → 학인당 →강암서예관 → 
              전주천 둔치 산책길 →   전통문화센터 →한벽루 → 자연생태박물관 → 치명자산성지 

Posted by 혜 천
올해가 충청방문의 해라고 지방마다 준비가 분주하고 볼거리가 다양한곳이 많다. 
신라와 가야 문화권에 살다 보니 자연히 백제문화권에 가볼수있는 기회가 그렇게많지 않았다

경주국립박물관 다음으로 부여국립박물관에 매료 되었던 것은  백제금동대향로                  와 창왕명석조사리감 등 신라 문화예술에서는  볼수 없었던 다양한 백제미가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왕건에서 그 찬란했던 백제문화가 짖밟히는것을 보고 , 멸망한 국가의  역사는
 서서히
지하로 숨어들고 그리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잊혀져가는것은   어쩔수 없는
 이었을까!

  기원전 18세기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찬란했던 문화제국 백제가 아니던가.

  독창성과 다양성, 격조높은 소박함그리고 최고의 예술혼을 담은 백제문화는 동양최대
  규모의 역사테마파크
백제역사단지 오픈과 함께 빛을 보지 못했던 1400년전 대백제의
  부활이 점쳐지고 있다.

  백제역사단지는 역사적 고증과 국내 최고의 장인들의 열정과 예술혼이 100만평 규모의
  동양최대 역사테마파크로 그리고 백제문화의 새로운 메카로 탄생할 것 같다.
    

 



백제역사문화관은 2005년 개관하여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4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으며 제1전시실은 백제의 역사를 한성시대,운진시대,사비시대
,백제부흥운동
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다. 

 백제가 어떻게 나라를 세웠으며 흥하고 망했으며,다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2전시실은 백제인들의 의식주와 생활문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제3전시실은 백제인의
 민간신앙과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한눈에 볼수있게 해두었다. 

 제4전시실은 백제문화가 주변 여러나라에 영향을 끼친점과 여러나라와의 교역,교류등을 비교해 볼수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백제역사문화관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1,200원  어린이 800원이다. 


  백제 역사문화관을 구경하고 나와 휴식겸 조금 걸어 백제문화단지입구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갈때는 완공을 위하여 마무리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2층으로  위엄을 갖춘
정양문(正陽門)을 들어서니
넓직한 잔디 광장처럼 펼쳐지고  사비궁 천정문과 천정전을 잇는 어도는 부여군 규앙면 외리에서 출토된  백제시대문양전 8장중 하나로 임금을 상징하는 용문전을 복원하여 깔아  놓았다.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신라,고구려,백제 ,이 삼국시대에 왕들이 근무하고 살았던 왕궁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 어디 한곳도 왕궁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 삼국중에서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백제의 수도에 사비궁이 들어섰다. 이 사비궁은  궁궐의 중심이  되는 천정전과    동쪽의 문사전, 서쪽의 무사전등이 화랑으로 둘러쌓인 형태로 14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앞쪽은 신하들의 사무실 외조가 들어서있고 , 궁궐의 중심공간은 왕이 정무를 보던 치조(治朝)가 배치되어 있으며  왕과 왕비의 처소인 연조(燕朝)가 배치되는 삼조제도를 기본으로 해서 세워놓았다.    사비궁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높이도 19m , 2층으로 세워져있다.



백제문화단지를 둘러보며 제일 활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곳이 능사였다.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굴된 사찰이라하여 능산리사지에서 따온 말로 "능사"라 부른다.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288호로 이사찰의 건립연대를
  알수있는 "창왕명석조사림감"이 발견되어서 서기 566년 목탑에 사리를 봉안하고 착공하였음을 알수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원래 사찰의 유적은 문화단지에서 논산방향 8km 떨어진 곳에 있는 부여읍 나성 밖의 능산리
   고분군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을 재현한것이라 한다




이 건물은 백제시대 건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천정전에 사용된 기둥중 가장 큰 기둥이며 높이 10m ,지경60cm이며
 원목의 수령은 300년이 된것으로 현재의직경 두배에 가까운 원목을 가공하여 섰다고 하니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되기도  하였다.

  천정전 내부의 문양은 바닥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용문전을 깔았으며, 상부의 천정은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봉황으로  단청하여 사비궁 천정전의 격식과 높은 위계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건축물의 단청샊깔도 다른 왕궁이나 사찰보다는 어두운 색깔로 단청이루어져있으며, 색은 방위를 나타내느 다섯가지 오방색을 기본으로 풍수지리에서 사용하고 있는것과 같이 좌청룡-청색 ,우백호는 흰색 , 남주작은 붉은색 , 북현무는 검은색  4가지색과 중앙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활문화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백제시대의 귀족,군관,중인,서민으로 구분하여 계층별 주거와 생활모습을 볼수있게 해둔곳이다.

  군관주택은 백제의 대표무관 계백장군의 가옥으로 구성하여 군사관련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귀족주택은 저택으로 문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 초기 도읍지 위례성 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안태전, 좌장청,좌평청,망루,고상가옥,움집등 총 30여채의 건물이 모여있다. 건국초기의 왕궁모습을 재현한 안태전에서는  초기의 궁궐 모습과 함께 백제 개국 설화를 볼수있다. 

 좌장청에서는 군사업무를,좌평청에서는 행정업무를 담당하던 모습을 볼수있고, 방어시설로 판축식 토성을 쌓고   입구에 해자를 두어 개국당시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고 한다.



 백제역사문화단지의 개관식과 함께하는 다채로운 개막 축하공연 백제 성왕의 사비천도 선포식 무왕과 선화공주 결혼식 등  다양하게 재현되는 왕궁의 일상과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여 함께 공연하는 사비궁의 하루 

 자연과 첨단 IT 기술로 재현되는 백제의 소리와 이색적인 색과 빛의 체험 미디어아트로 연출되는 나무와 꽃 그리고 연못 등  시간을 거슬러 백제문화를 만나는 소통과 조화의 공간 웅진성의하루 

    대충청 방문의해 10월17일까지 메가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대륙을 호령하던 백제인들의 진취적 기상, 박진감 넘치는 대백제기마군단 행렬   신라군 5만명에 맞서 싸우는 백제 5천결사대의 스펙터클한 대 격전! 지역주민, 연극배우 등 천여명이 참여하는 황산벌전투재현  백제의 위대한 문화와 마주하는 감동의 공간.


   3차원으로 재현되는 백제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영상관   백제금동대향로 속의 5악사가 들려주는 백제의 신비한 소리, 백제 음원연주회, 격동의 시간 속에 피어나는 백제인들의    삶과 사랑! 3D 애니메이션 ‘사비의 꽃’ 백제의 유물을 전시하고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 관람할 수 있는 백제유물특별기획전

  위대한 교류 왕국, 해상왕국 대백제! 중국과 일본, 인도 등 백제 교류국의 사신 행렬을 재현하는  퍼레이드교류왕국대백제!
   모든 관람객이 탈을 쓰고 함께 어울리는 웅진성탈퍼레이드와 국제탈전시회

세계대백제전은 지역축제 추천이아니라  
백제 교류국 등 20개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의 다양한 문화전시와 체험 공간, 
   세계역사도시전시관!  세계 역사학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 백제 교류국들의 우정의 무대가 될 세계예술단 축하    공연과 충남 16개 모든 시군이 함께 하는 대한민국 국보급 민속공연 금강과 백마강에서 펼쳐지는 대백제의 부활! 

   백제의 전설이 깃든 낙화암과 고마나루의 수상무대위에서 해상강국 대백제를 창조적 예술로 승화 시킨 판타지 수상공연!    사비미르 와 사마본기! 한류의 원조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1400년전 대백제의 부활   백제문화단지 개관과 함께 세계대백제전은  대충청방문의해 메가이벤트 라고 할수있다.이는 지역축제를 넘어  세계 여러 도시에서 대한민국을 찾아 그리고 백제를 찾아 올것이라고 생각된다. 

  부소산성, 부여국립박물관,백마강낙화암, 궁남지, 선화공주와 무왕의넋이 서린 미륵사지등과 함께  국내외 여행객들에게  국내여행지로 추천해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볼거리가 많은곳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1400년전의 대백제가 부활을 꿈꾸며 대한민국을 부르고 있다.

         여  행  정  보

      1. 이름 : 백제문화단지 개관과 세계대백제전  

      2. 개관및 축제 : 2010 9.18일 - 10월17일

      3. 위치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575

      4. 전화 :041- 830-3400

      5. 홈페이지 : http://www.2010visit.org ( 대충청방문의 해 )

                         http://www.baekje.org/htm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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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 천

 
요즈음 MBC 특별드라마 <김수로> 에서 천신 이비가와  정견비 사이에서 태어난 이진아시왕이 세운 고령 대가야의 흔적을 찾아 고령여행을 떠났다. 고령 대가야는 신라에 멸망 당 할때까지 고령을 주위로 찬란한 대가야의 문화를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1 )왕들의 무덤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 왕릉이 모여있는 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대가야 역사 전시관과 대가야 왕릉전시관 그리고 우륵 박물관 등 3개의 전시관으로구성되어 있고 주산 등선에 200여기의 왕들의 무덤 왕릉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고령읍 지산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가야 최고의 고분군이다. 고령음을 감싸주는 주산의     남쪽 능선위에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인 지산동44,45호 고분을 포한하여 크고        작은 20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여있다.   고분군 사이로 산책을 하면서 5세기로 돌아가는 마음을 느끼게된다.


2) 왕릉 전시 기념관 고분44호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동44호 고분의 내부를 원래의 모습대로 재현한 전시관이다. 
 

  관람객들이 실물크기로 만든 44호분 내부속에 들어가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껴묻거리의 종류와 성격등을 눈으로 집접볼수있는 곳이다.

  

3) 왕들이 먹었던 왕정(王井)  또는 어정(御井)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145-1번지에 위치한 이 우물은 대가야 시대 왕들이 먹었다고 전해오고 있는 곳으로 어정이라고도 불리운다. 

주산기슭아래인 고령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위치하고 수심50cm 정도지만 가믐에도 마르지 않아 인근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곳 발굴때 목긴항아리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4) 대가야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 대가야 박물관
 대가야 유적을 비롯하여 고령지방 문화를 일괄적으로전시했고, 특히 대가야 역사를 체계적으로 구성해 놓은 박물관이다.  찬란한 대가야 문화를 한눈에 볼수있는 곳이다.
☎ 문의  054 - 950-6071
 
대가야를 비롯한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한 대가야 전문 박물관으로       인근에 대가야 왕릉전시관과 함께 둘러 보면 찬란한 대가야문화를 한눈에 알수있다

 
                                      대기야 시대의 왕과 왕비
 


 5)가야금을 만들어 음악을 보급한 가야금의 시조 악성우륵

우륵 박물관은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한 것으로 전하는 고령읍 쾌빈리의 가야금골이며 지금의 정정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보존,전시하여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 할수 있도록 건립된 박물관이라고 한다. 맑고 깨끗한 가야금의 고장 고령에서 가야금의 시조 악성우륵에 대하여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될것 가다.


                                              우륵 박물관 정경
 
악성우륵의 위업을 기리고 우리국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위해서 우륵박물관을 개관했    다고 한다, 우륵의 생애와 가야금의 기원에 대한 영상, 그래픽과 가야금,아쟁,해금,등 전통   국악 현악기들이 전시되고 있다
 ☎ 문의 054-950-6789 

 


 
6) 우륵기념탑
우륵기념탐이 있는 고령읍 쾌빈리의 금곡(琴谷)은 속칭 정정골 이라불린다. 이는 악성우륵이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한곳으로서 그 소리가 정정하게 들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정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우륵 영정각및 기념탑이세워져 있다
 

  7)고령시내 한복판에 있는 신라시대 당간지주
 
고령읍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통신라시대의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란 절입구에 세워 불교의 깃발을 매다는 것이다. 대가야 도읍지인 이곳에 절을 세워 망국의 한을 안고 살아가던 고령 사람들의 민심을 달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 고령시내 유적지 지도
 

Posted by 혜 천
학리포구에서 산길로 죽성으로 갈려고 했는데 입산금지 기간이라 통제하여 큰길로 돌아가야만 했다. 일광까지 나와서 택시로 3천원으로 죽성초등학교까왔다. 학교 정문에서 왼쪽10m에 넓은 길이 나 있어 곧장 올라가니 죽성리 왜성과 해송가는 이정표가 있었다

먼저 죽성에 올라가는 길이 테크로 만들어져 있어 흙을 밟는 맛이 없었지만 10분정도 걸려 성곽까지 갔다.  죽성리 왜성은 기장군 죽성리 산52-1번지에 있는 임진왜란시 왜장 구로다가 기존에 있던 두모포영성을 둘레 960m  높이 4m, 3단으로 축조한 왜성이다.   성곽이 일본왜성 그대로다 피라미트식으로 쌓올라간모양이 우리성곽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성정상에서 죽성리 해안을 내려다 보니 포구가 한폭의 그림처럼 오목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려 오는데 한쌍의 여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테크를 이용하지않고 비탈길을 걸어 오고 있다. 왜 그길로 올라 오느냐고 물으니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테크가 싫단다. 


5 분거리에있 해송 한그루가 저만치 보였다, 그나무가 해송인것 같아 일단은 가까웠어 좋구니하며 금방 도착했다.할머니 한분과 아주머니 그리고 초등학생 한명

세명이 해송 가까이 있었다. 조금 떨어 진곳에서 보니 할머니가 소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가까이 가니 소나무가 한그루가 아닌고 5 그루가 있고 그 중간에 조그마한 당집이 지어져있었다. 국수당을 찾아 갈려고 했는데 그 당집이 국수당이었다.  그 당집 국수당에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에 한번 본적이있는 SBS 드라마 찰영지 였던 드림성당엘 다시가니 여전히 아름다웠다


드림성당에서 두모포 방향으로 조금 나오니 가건물로된 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있다. 조금더 가면 두모포다. 오후에는 두모포와 월전포구으로 가기로 하고 조금 쉬기로 했다.

Posted by 혜 천
고산윤선도 선생의 시 두편을 읽고 학리 포구로 발길을 옮겼다. 학리 포구에서 바라보는 일광해수욕장의 경치는
가까에에서 보는 맛과 또 틀린다., 일광해수욕장, 이천포구,이동포구등이 한눈에 들어 온다.



학리포구에 들어서자 입구에 정자가 하나 서있다. 나그네들 쉬어 가라고 만들어 둔것 같다. 이곳에 앉아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일광해수욕장의 백사장이 보이고 맞은편엔 이천포구의 붉은 등대가 보인다.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이동포구의 벽화방파제가 아련히 보인다.
 
쉬는것을 접고 학리포구로 들어 서니 곳곳에서 출어준비에 바쁘다. 동네 아낙들은 장어 주낚을 준비하고 있다. 붕장어낚시 준비용 채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온동네가 부업으로 집집마다 낚시에 미낄르 끼우는 작업을 한다 . 골목마다 미끼를 끼워둔 주낚들이 몇통씩 수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량을 준비해서 바다로 나가야 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준비하여 바다에 던져두고 밤에 고기들이 미끼를 좋아 하다가 낚시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걸려드는 놈들을 익일 새벽 어부들이 건져 올려 잡아오는 것이다.
 

잡아온 장어들은 주로 칠암등 횟집으로가고 전국판로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죽성으로 넘어 가야 되는데 산불 예방기간이라 톨로를 막아두어 큰길로 나서 죽성리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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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은 대가야의 도읍지였다. 우륵은 대가야 가실왕과 신라 진흥왕 당시 악사로 활약한 가야금의 명인이자 시조이다. 고령 성일현에 살다가 가실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악사가 되고 가야의 음악과 춤,노래 등을 통합발전 시켰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명주실로 12개의 줄을 만든다. 그 형태가 윗판이 둥글고 아랫판을 평평한데 이는 둥근하늘과 평평한 땅을 본딴 것이며 그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은 하늘과땅 사이 빈공간을 의미한다. 줄이 12개인것은 일년12달을 나타낸것이라고 한다.
 
                                              악성 우륵선생의 영정을 모신곳
 
                                                          우륵 기념탐옆 우륵 영정각
 
 
가야금 속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우주관과 시간관이 담겨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는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이루는 조하와 균형이 가야금의 선율이 되는것이다.

Posted by 혜 천
31번국도 따라 걷는 도보여행코스 제 7  편  이을포와 일광해수욕장

 칠암포구 →동백포구 → 이동포구 →이을포와 일광해수욕장 → 학리포구

바다와 일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면 기장 아홉포구중 하나인 이을포(伊乙浦)가 나온다.
이 이을포를 요즈음에는 이천포구라고 한다. 이천은 이동서, 이동, 이천동 세개의 마을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행정단위 마을이 이천리이며 그 마을 앞 바닷가가 이천포구이다.


일광 찐빵으로 유명한 찐빵 거리에서 바닷쪽으로 내러오면 소나무가 많이 있는곳이 강송정이며 옆으로 일광천이 흘려내려 오고있다. 일광천을 기준으로 왼쪽이 이천리, 오른쪽이 삼성리 일광해수욕장이며 일광천의 끝자락 이을포이다.

이을포의 옛이름은 얼개라한다. 이을포를 얼개로, 이을개를 줄여서 얼개라 하며 이을개는
 "잇은개(連結浦)라는 말로 漁梁이다. 어량이라는 말의 속어가 얼개라 한다. 경상도 시골이나 갯가에서 많이쓰는 단어 였다.
 
대나무나 가는나무들로 엮어 만든 고기잡는 장치로 바다물이나 강물이 한군데를 막아 놓고 그곳에 얼개로 둘러치고 끝부분에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장치이다.



일광천 하류에 간조와 만조의 차를 이용해서 얼개를 놓아 고기를 잡곤 헸던 이곳 이을포가
 소설가 오영수의 갯마을 소설 실제 무대 였다.

그래서 이곳에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서있다. 그리고 이을포구 시장 뒤편 느티나무, 느릅나무와 당집이 있는곳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길옆에 또 하나의 문학비가
서있다
.



오영수는 언양에서 태어나 1943년부터 해방 될때까지 일광에서 살았다. 일광에 손위 누님이 일광초등학교 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때 일광면 사무소에서 임시직 근무를 하며 김동리선생과도 교분을 쌓기도 한다.


기장 팔경중 3경에 해당할 만큼 아름다운 일광해수욕장
일광면 삼성리에 위치한 일광해수욕장은 1953년 문예지에 발표된 오영수선생의 소설 갯마을의 실제무대 이고 1965년 김수용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자 갯마을의 도시로 소개되었다.그리고 2004년 신하균 원빈주연의 영화 우리형 촬영지이기도 한곳이다.  




고산윤선도 선생이 귀양와서 동생과 이별하며 시 두편을 지은 곳이 일광해수욕장에있는 삼성대이다. 이을포 강송정 끝자락에서 학리포구 1.8 km를 은빛 모래사장을 일광해수욕장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은빛을 내는 백사장이다. 여름이면 가족단위나 젊은이들의 나들이 장소로 유명하다.



고려말 정몽주, 이색,이숭인등 문인들이 반했다는 백사장 중간에 삼성대가 우뚝 서있다. 이곳에 고산 윤선도 선생의 애환이 서려있는곳이기도 하다.

조선 광해군때 광해군의 잘못 대해 상소를 올렸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 갔다가 다시
이곳 기장으로 유배온 곳이다. 유배된 고산을 만나러 온 동생 과 헤어지며 그 심정을 읊은
 시  2편이 시비로 되어 있는 곳이다. ( 贈別少第 2首 )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부산직활시 기장군 일광면 삼정리
   * 전화 기장군 문화관광과 : 051-709-4081
             일광면 사무소 :051-709-5214
 2. 교통편
     버스 39번,181번
Posted by 혜 천

 

31번 국도따라 걷는 도보여행 코스
        칠암 포구 →동백포구 →이동포구 → 이천포구 → 일광해수욕장


        이동포구의 옛 이름은 기포( 碁浦)이다. 기포는 다른말로 바돌개라고도 한다.
바닷가에 검은 돌이 많이 깔려 있고 돌들이 바둑돌 처럼 반질반질하다뜻에서 기포라고 한다.
 
방파제 담벼락에 그림이 멋있게 그려져 있고 보면 볼수록 잘 그린 그림이다.  대변 방파제,
 학리 포구와 함께 아름다운 방파제 100선에 들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포구다.

       방파제 벽화와 연꽃받침형 빨간 등대가 어울려 찾는사람이 많은 곳이다.
               해녀들의 물질하는 그림도 그려 바다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은 어찌 벽에 그린 그림이라고 할수있겠는가?

          이천포구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민등록상으로는 이천리로 되어 있다고 했다. 3개의 마을이 합쳐져 이천리로 되었다고 했다.
                       동네앞을 많이 매립하여 주차하기 쉽도록 넓찍하다. 
              이곳은 말 그대로 다시마 전국 집산지이다...그런데 집산지를 못가고 왔다. 
      그리고 2002년 2월 개봉한 코미디 영화 차태현 주연의 " 복면달호 "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동포구의 배들은 아주 적은 어선들이다. 이 적은 배들로 멀리 조업을 나갈수 없고 근해에서 고기를 잡을수 밖에 없을것 같다. 그래서일까? 포구의 작은배들이 포구에 가득하니 방파제의 아름다운 벽화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같은 포구가 되었다. 이런 작은 배들은 낚시용으로 많이 쓰이고 미역 다시마 작업용배로 쓰일것 같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위치 : 기장군 일광읍 이천리 이동마을
 전화: 기장군 문화관광과 051-709-4081
 교통 : 해운대 ↔ 좌천 180번 이동하차 ( 배차 1시강 간격)
          반송 ↔ 좌천 188번  이동하차 ( 배차 30분 간격)
          마을버스 3번,10번  이동하차


 2. 먹거리
     * 주소: 기장군일광읍 이천리 
     * 황금새우집 051- 724-4747
      * 이동횟집 051-721-2821
      *해송짚불곰장어 051-721-7079    
색깔이 빨간 꽃새우는 여자들이 좋아
 하는  데 부드럽고 단맛이 난다.
모양이 닭벼슬 닮았다고 하여 닭새우,
졸깃하고 담백해서 남자들이 좋아 한다.
황금새우(도화새우)는 귀해서 없을때가 많단다.

Posted by 혜 천



31번 국도따라 걷는 도보여행 코스 
                     칠암포구 → 동백포구 → 이동포구 →이천포구 →일광해수욕장
                                            ↓↓     
동백포구  → 동백갤러리 → 당집(사당)  → 자연발생유원지 → 온정방파제 →석황사


동백 포구
31번 국도 버스 정류소에서 하차하여
20 m 거리에 있는 동백포구는 동백교가 있다. 다리가 아니고 동백천을 복개한것인데 여기서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동백리를 가로 질러 동쪽 바다로 흐르고 있는 동백천은 좌천 달음산에서  봐서 내가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東流川 이다.
조그마한 포구의 등대가 이쁘며 오메가처럼생긴 포구이다.

                                                                                                                                             
      
동백 갤러리
버스정류소 옆 2층 짜리 붉은 건물이 있는데 아래층은 가계이고 2층은 동백갤러리다.원래 해운대에 있었는데 옮겨 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품전시 공간이 아니고 주로 골동품,고미술품을 취미로 하고 있는 곳이다. 거의 문이 닫혀 있는 날이 많다.


 당집 과 근고
동백 갤러리 뒷편에 이상한 건물이 하나있다. 문에 볏짚이 걸려있다. 벽사의 기능을 상징하는 볏짚, 당집이다. 마당에 당집이 있고 한쪽에 큰 밥솥이 있다.

뒷편에 팽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그옆에 검은  대리석으로 ,거기에 "근고"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금고라는 글은 봐도 "근고"라는 글은 처음이다. 사연인즉 이자리에 수령400년된 팽나무가한그루 있었는데 2002년 6월 천수를 다해 죽었다고 한다. 이 팽나무와 비슷한 나무를 2008년3.14일 다시 심었다는 내용을 적은 대리석이 근고이다.



자연발생 유원지
해동성취사 앞 해안가에 자연 발생 유원지가있다. 말그대로 바닷가의 경치를 볼수있는 곳인데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기장군에서 관리비명목으로 징수하여
쓰레기나 오물을 수거하여 관리하는 비용이라고 한다. 화장실이 설치되어있고 수도시설이 되어 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물은 나오지 않았다.

길 바로 아래 해변가라 주차장이 별도 없다. 도로가에 주차를 하던데 해동성취사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될것 같다.



온정, 온정방파제는 차를타고 가면서 저곳은 어떤 곳일까 하던곳을 가게되었다.  예전에는 포구였다는데 지금은 포구가 아니다. 방파제가 있어 낚시하는사람도 있고 주말 외식을 하러 나온차량들이 많다. 주차장이 넓고 경치도 좋은 곳이다. 주위에 석황사(vipssana)  사찰이 특이 하다는데 들리지를 못했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경남 기장군 일광면 동백리
     송정  ↔ 칠암 31번 국도따라 가다 동백선착장 하차
             ( 버스편, 180,181,188 ,마을버스 3,8-1,10번 )
 * 문의 : 기장군 문화관광과 : 055-709-4081

2. 먹거리
 
동백횟집                  
위치 : 기장군 동백리 28
전화 : 055-727-0391

* 보승횟집
  동백리 5번지 ( 055-727-3600
* 샤모니레스토랑
  동백리 318 (055-727-0730 )

3. 잠자리
   숙박은 일광이나 송정쪽으로 이용하는것이 좋은것 같은곳이다.
Posted by 혜 천

어제까지 영하 십몇도까지 내려 가는 강추위로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게 하든 날씨였다.
오늘 기온이 조금 높아져 바깥 활동을 하는데 조금 나은것 같은 날씨라,기장 동백포구에서
 이동포구까지 겨울 산책 투어에 나섰다. 

 바닷길을 걸으며 바람이 세차 파도가 일어나는 장면을 사진기에 담기도 하고 먼 바다를 보며 걷고 또 걸었다.    파도가 밀려 오는 얕은 바닷가에 세 사람이 무언가 하고 있었다. 

첫번째 만난 사람은 이곳에서 가까운 동백마을에 사시는 할머니셨다.

할머니 이렇게 추운데 뭐하세요? 하며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무엇인가 잡는데 열중하여 말이 없었으셨다.

재차,삼차 뭇게 되니 허리를 펴며 하시는 말씀 " 보면 모르겠냐? 하신다.
고동 잡으세요? 뭐하세요? 물으니 돗을 캔다고 하셨다.

오늘같이 추운데 날씨 더따뜻해지면 하시지 않고 손발 시러워 어쩌세요.?
하니 " 추워도 해야지.방에 있으면 뭤혀." 하신다.

할머니 언제 부터 하셨어요? 많이 따셨으니 오늘 그만하시죠. 날씨가 추워요.
하니 , 한 바케스 다되어 가는데 조금만 더 따면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더 이야기 하며
시간을 끌수 없을것 같아 수고 하시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할머님을 보며 " 누구나 꼭 해야 할일이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서 한다."는
아름다운 말이 떠올랐다. 100m정도 떨어진곳에 남자 한분이 바다 가운데서 무언가 잡고
있어 다가가 봤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저씨 이동네 사세요?  아니란다. 부산 대연동에서 오셨단다. 
부산 사신 다면서 어찌 장화신발을 가져오셨어요?하고 물으니 이곳에 몇번 왔다고 하셨다.

뭘 하시냐 니까? 고동 잡는다고 하신다. 혼자 오셨냐 니까 차 안에 마나님은 계신다고 한다.
말투가 퉁명스러워 , 많이 잡으세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낚시하는 사람에게 가보았다.  


강태공 한분이 계셨는데 복장을 단단히 한것으로 보아 낚시를 많이 다니시는 분 같았다.

고기좀 낚았습니까? 하고 옆으로 가보았다. 
바람이 세어서 별로 못 잡았단다. 노래미 몇마리 망상어 두마리 밖에 못 잡았다고 하신다.
어디서 오셨어요? 하니 , 양산에서 오셨다고 하신다.
 
멀리는 울산 앞바다,  더 멀리는 거제 앞바다 까지 원정 낚시도 가신단다.
 오늘 왜 많이 못잡았느냐고 물으니  물이 너무 차가워서 낚시가  않된다고 했다.

물속에 사는 고기도 사람처럼 날씨가 추우면 깊은 곳으로 들어 가는지 ?
그렇다면 물고기도 참 영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 있었어는 않될것 같아 낚시 많이 하세요 하고 자리를 떳다.  



          겨울 바다 파도를 보니 육당 최남선 선생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생각난다.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떄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뫼 집채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힘 아느냐,모르느냐,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Posted by 혜 천
작년 한해동안 좋아 하는 여행을 많이도 다녔다. 아마 150여곳 이상을 찾아 다니며 우리 문화 역사를 익히게 되었다. 그중 대부분이 사찰 ,고궁등의 유적지이고 자연과 함께 한것이 적었는데 일년간 여행을 결산해보니 의외로 다시가고 싶은 곳은 자연과 함께한 여행지가 다시가 보고 싶은 여행지로 나온다. 아마 인간 본성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 하게 되어 있는것 같다.   

 봄의 향기가 좋은 청산도 ( 봄 여행지)
완도항에서 뱃길로 40여분 걸리는 청산도,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하기 좋은 곳 , 슬로시티 청산도. 봄에는 청산도가 화려하다. 유채꽃이 피고 청보리밭 사잇길로 걸어보는 재미가 솔솔한 곳이라 여행객으로 넘쳐 나기도 한다. 서편제,봄의 왈츠를 촬영할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상서마을 의 돌담길은 문화재로 등록 될만큼 운치있는 길이기도 하다.
청산도는 차타지 말고 느릿느릿 걸어야 제 맛이 나는 곳이다.


     볼수록 눈이 즐거운 관매 8경( 여름 여행지)
진도 패옥항에서 섬과섬 사이를 누비며 푸른 물결따라 포말을 그리며 파도와 싸우는 바위섬들을 보고 즐거워하다 보면 관매항에 도착한다.  매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관매도라한다.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이 포근한 관매 팔경중의 제1경 관매해수욕장이다.

그리고 옛날에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제2경 방아섬, 제3경은 돌묘와꽁돌,제4경은 할미중 드랭이굴 , 섬과 섬 사이가 3m 정도 틈을 두고 있는 제5경하늘다리 가 있다. 방아섬에서 방아찧던 선녀들이 이곳에서 목욕했다는 제6경 서들바글폭포 그리고 다리여,하늘담 이렇게 8경을 낚시배를 타고 둘러보면 선계에 있던 것들이 이곳 관매도로 내려 온 것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롤 아름다운 섬이다.


금강산 맑은 물이 만들어낸 두타연( 가을 여행지 )
강원도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다. 두타연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관광지다 .60년동안 두러움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곳이 문을 열었다. 금강산 내금강에서 12km정도 떨어져 있는데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 출입금지 된곳으로 오몀되지 않은 계곡의 맑은 물과 붉게 물든 단풍이 
가을을 설명한다.

두타(頭陀)란 의식주와 권력에 대한 탐욕과 세상의 번뇌를 떨구어 버리고수행한다는 의미로 약 1천년전에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출입이 복잡하지만 사전에 양구군청에 신청하면된다. ( ☎ 033-480-2251)  


눈오는 날의 은빛 셰계 속에서 둘만의 낭만을! (겨울여행지)
날씨가 차가워도 눈오는 날이 좋다. 눈오는 날의 은빛 세계속에서 둘만의 낭만을 만들수있기 때문에 눈오는 날이 좋다. 담야! 메타세쿼이어  길은 유명할대로 유명해져 있는 길이다.

봄에 가도 좋고, 녹음 짙은 여름에도 좋다. 그러나 붉은 단풍과 눈덮인 겨울의 절경이 최고다.둘만의 낭만을 이루기엔 겨울이 최고 좋은 철인것 같다. 메타세쿼이어 길이 끝날지음 조금도 걷고 싶다면 수백년된 관방제림 나무가 늘어선 방둗을 걸어가다 징검다리에서 사랑을 수놓아 보는것도 좋은 추억이 될것 같다.  



  
Posted by 혜 천

겨울날은 추위 때문에 도보 여행은 잘 안한다.
 오후들어 날씨가 조금 풀리는것 같아 진주성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운동하는 할머니들 과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성곽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떤 곳을 가든 한가지만 하면 싫증이 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화재나 유물등만 본다는것도 힘든 일 일것이다. 때론 자연을 구경하며 마음껏 걸어보는것도 좋다.

           서장대쪽으로 걷다보면 서쪽을 지키는 망루 서장대가 나온다.



 영남포정사에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 가라는 하마비가 있다 . 옛날엔 요즈음보다 벼슬에
대한 예우가 대단한 세상이었나 보다하고 생각되어 진다..



                               진주성에서 내려다본 진주남강



               서장대에서 돌아 나오면 북쪽의 망루 북장대가 우뚝 서있다.

                             진주성은 연인들이 호젖히 걷기 좋은 길이다.


                                경절사와 호국사에 이르는 길

진주성 성문을 들어서 촉석루와 남강변의 의암바위를 둘러보고 오른쪽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김시민장군 동상과 영남포정사에 다다른다. 영남포정사옆 비석군들을 둘러보고 북장대,청계서원을 지나면 포루가 나온다, 천자총통등 3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있고 연이어 호국사가 나온다. 서장대에 올라 진주남강을 내려다보고 박물관에 들렀다 나오면 서,너시간 걸린다. 
 
Posted by 혜 천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중 임진왜란 직전에 건조되어 사천해전에서 첫 출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와 그리고 사천은 진주와 인접한 곳이며 그래서 사천해전과 진주대첩이 서부경남에서 임진왜란시 거둔 큰 승전지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


                               거북선 함장 임명장
 수군절도사가 임만근(林萬根)을 거북선의 함장으로 임명하는 문서 (복제품, 임기봉소장)



              이순신의병차정첩자( 李舜臣義兵差定帖子)
1597년 정유재란때 홍양(고흥)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군안(申君安)이 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부터 의병장 선정의 증서를 받은 것이다. 신군안은 그 뒤로 연해지역 7읍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전과를 올린뒤 1598년 (선조31년) 진중에서 전사, 임진왜란때  수군전력 증강에 많은 영행을 미쳤음을 확인해주는 자료. 


                        임진 첩보서목
1598년 정유재란때 홍양현간인 최희량이 삼도수군통제사와 전라감사에게 올린보고서.
삼도수군통제사영에 무기, 전선,군량등을 보내는 내용으로 이 보고서에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친필로 보고 받았다는 수결이 있는 자료. 



임진록
조선시대 전쟁소설로 임진왜란중 여러곳에서 일본군과 싸워서 이기는 우리군사의 충성과 용기, 이순신의 전략, 사면당의 도술등 여러가지 인물들이 일본군을 여지없이 농락하고 굴복시키는 내용


                                                  수군 조련도
수군조련도는 조선 수군의 포진 행렬도이다. 중앙에 주장을 태운 대형 판옥선이 위치하고
    전후좌우로 거북선과 판옥선 그리고 각종 보조선들이 포진하고 전진하는 모습이다.
                 중앙에 대장선 "삼도수군통제사"라 쓰인 깃발이 휘날린다. 

               영남,호남,충청지역의 수군통제사의 배 임을 말하고 있다.
각배마다 그 소속지역을 표시하는 깃발을달고 있다. 삼도수군은 통제사의 지휘 아래 수조라 불리는 연합훈련을 매년봄2월에 실시,그 훈련방식은 수조규칙이라는 규칙에 따라 행했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길
  * 경남 진주시 남성동 169-17번지
  * 전화번호 : 055-742-5951/2
  * http://jinju.museum.go.kr
2.교통편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15분 소요
  * 고속버스터미널 과 진주역에서
     시내버스 17,21,22,25,50,51번으로 10분소요
3. 관람안내 - 관람료 :무료
  * 휴관 1월1일 과 매주 월요일
  * 관람시간
     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9:00
Posted by 혜 천

         날씨가 제법 쌀쌀한 날 진주성을 찾아 한바뀌 도니 4시간이 소요되었다.  
봄,가을이 더 좋지만 노란 잔디밭에 겨울 오후 햇살이 내려 쪼이니 걸을 만한 곳이었다.
촉석루에서 남강변을 내려다보니 수주 변영로시인의 시 논개가 생각난다. "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 붙은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 " 이런 진주를 또 느끼고 왔다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 그래서 진주하면 촉석루가 바로 연상 될 만한 건물이다.
              진주 남강변에 돌이 쫑긋쫑긋 솟아있어 붙여진 이름아라고 한다.

                           고려 고종 28년 진주목사 김지대가 창건 ,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광해군10년 병사 남이홍이 전보다 웅장하게 지어 보존되어 오다가
1948년 국보로 지정 되었다가 1950년  아깝게도 또 불타고 말았다. 지금 건물은 1960년에 중건된 정면5칸 츠견4칸의 팔작지붕 형태의 루각이다.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명승지이다.옛날부터 북쪽엔 평양루 남쪽엔 촉석루라 할만큼 유명한 곳이다. 옛날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글을 짖고, 그림을  그리던곳이다. 그래서 일까? 지금도 촉석루에 많은 글들의 기문과 현판,시판들이 걸려있다.





               진주는 임진왜란때 7만 군관민이 순절한  충절의 고장이다.
  지금은 창원 마산에 밀려 한적한 문화의 도시로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경남의 중심이기도 했던 곳이다.  봄이 되면 남강을 바라보며 진주성을 한바뀌 돌면서 진주의 과거와 임진왜란의 흔적을 찾아 걸어보면 좋은 곳이다.  
Posted by 혜 천
       임진왜란 ,진주대첩, 촉석루, 논개를 빼어 놓고 진주를  이야기를 할수 없을것이다. 
국사나 역사 교과서에 빠질수 없는 항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여행으로 그 현장을 보고 갔을 것이다.  진주논개가 왜장을 안고 순절한 진주 남강 의암바위를 가보고 왔다.    

 

촉석루 아래 남강 의암바위에서 왜장을 끌어 안고 순국하는 장면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고 군관민 7만 여명이 순절한 후 칠석날 왜적들이 촉석루
에서 승전연회를 베풀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기생으로 가장하여 연회석에 참석 ,왜장 게다니무라를 남강 의암바위로 유인하여 순국, 이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들이 시신을 수급 고향 안의에 안장하여 묘역은 그곳에 있다. 

의암바위 , 넓이 3.5m * 3.3m 정대륭 선비가 쓴 義岩 글씨

   의암(義岩)
 선조 26년 논개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인조7년 진주 선비 정대륭은 바위에 義岩이라 새겼다.


촉석루 밑 의암바위 앞에 위치한 의암 사적비와 비각

의암 사적비
경남 문화재 제353호로 의암사적비는 선조 25년 6우러29일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된 후 , 촉석루 연회에서 왜장을 의암바위로 유인하여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 들어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어유야담 ,국립진주박물관소장

 
 어우야담(於于野談)
어우집은 조선시대 문장가인 유몽인의 시문집이다.  어우야담 과 어우집에 실린 글은 예술성을 추구하여 각각의 편마다 새로운 착상으로 풍부한 우화를 곁들여 전개하고 있으며 2차 진주성 전투 직후 논개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책

경남 문화재 제353호 의암 사적비


"어우야담"에 의해 논개의 순국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진주시민들은 정식이 지은  비문으로 
비석을 세웠고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비각을 세워 < 의기논개지문> 이라 현판을 걸었다.

          비문에   " 그 바위 홀로 서있고 그 여인 우뚝 서있네
                              이 바위 아닌들 여인 어찌 죽을곳을 찾았겠으며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 라 쓰여 있다.


의기는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경남 문화재 제7호로 지정

의기 논개의 충절을 기려 1740년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창건,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중건.
정면3칸 측면2칸 맛배 기와지붕의 건물.

논개 표준 영정 가로 110cm * 세로 180 cm


 여러사람들이 잘알고 있을 장소를 다시 소개하는 것은 진주를 여행한 사람이면 알겠지만
촉석루와 논개 의암바위를 보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몇번을 갔던 사람도 그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여 또 가게 된다. 나도 그동안 몇번을 갔었지만 그 사진들이 어딜 갔는지 포스팅을 한번도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올리게 된다.      

여행정보
1.찾아가는 길
  * 전국 어느곳에서나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걸어서 10분 촉석루에 도착하면
     된다.  촉석루 아래 강변에 위치. 
 *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진주역 ) 에서는 도보로 20-30분 소요, 시내버스이용시 남강다리
    건너 하차.
2. 위치: 경남 진주시 본성동 140-1
           진주성 관리사무소 전화 : 055-749-2485 . 055-749-9057   
Posted by 혜 천

                   진주는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한곳, 진주성대첩지 이다.
     사적 제118호로 지정된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 진주성 내에 자리하고있다

 그래서 임진왜란사를 전시주제로하는 역사박물관이다. 이런 자료들은 교과서에서 많이
 보고 들어 알고 있는 자료이지만  보물 실물이 있는 것을 소개하는 즉면이다. 그러나
 블로그나 다른 검색창에서 보이지 않는 임진왜란 관련 보물중 임진왜란 전시실에 있는
 것만을  골라 일차 올려봅니다 


                                임란첩보 서목 (보물 660호)
 1598년 정유재란 때 홍양현감인 최희랑이 삼도수군통제사와 전라감사에게 올린 보고서.
1598년 3월부터 7월 사이에 홍양(지금의 고흥) 관내의 첨산,고도등에 침입한 왜군을 격파한
일과 삼도수군 통제사영에 제조한 전선과 무기,군량등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있다. 또한 이
보고서에 대해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친필로 보고를 받았다는 제김(題音)과 수결이 있다.

                                           쇄미록 (보물 1096호)
                조선중기의 문인 오희문의 피란일기로 모두7권으로 된 필사본.
1591년부터 1601년2월27일까지 만 9년3개월 동안 왜란을 피하여 이리저리 다니면서 지냈던 일을 기록한책. 책이름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 보잘것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는 뜻에서 발췌하여 쇄미록이라고 이름 붙였다는것, 전쟁때의 피난생활과 사회상을 알수있는 자료 .


                                천자총통 (보물 647호)
      조선시대 대형총통 중에서 가장큰 총통으로 천,지,현,황 중 가장큰 대형 대포

                           중완구와 비격진천뢰  (보물 858호)
           
인명살상용 폭탄이 비격진천뢰이며 표면은 둥근 박과 같고
     내부에 화약과 철조각을 넣어  만든 폭탄 그리고 중완구를 이용하여 발사하는 무기  


                          김시민장군 선무공신 교서 (보물 1476호)
    공신교서는 임금이 공적을 세운 공신들에게 준 문서.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이 선무공신
  교서는 선조임금이 진주대첩을 지휘한 선무공신 2등의 진주목사 김시민에게 내린것이다.
이 공신교서는 2006년
정성어린 모금에 의해 일제시대 유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한 보물.


  임진왜란은 부산동래 전투에서 시작하고 이순신장군의 해전을 빼면 이야기를 할수없다.
  진주박물관에서 다른 곳과 특화 한다고 임란에 관련된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부산진성 전투, 그리고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 등의 자료를 둘러보며 이런 자료들을
  온라인 상에 올려 여러사람이 볼수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보고 온것을 적어
  볼려고 한다  
Posted by 혜 천

설국(雪國) , 자고 일어 났더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다. 73년 만에 최대 폭설이 내린 4일 서울 시민들은 거대한 눈밭에서 잠을 깨었다고 한다.  영동과 서해안에도 눈이 많이내려 걱정이 많다.눈은 좋으면서도 겁난다. 극심한 교통혼잡 속에 출근 전쟁을 벌여야 한 새해 첫날부터 지각사태로 난리났다고 한다. 이런 사항인데 눈속의 여행을 포스팅하는것이 꽨찬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작년 년말에 찍으둔 담양 눈사진이 있어 포스팅을 해본다. 부산에 있으니 눈에 대한 무서움을 잘 몰라서 이기도하다 . 눈이 내릴때 눈사진을 쓰지 않으면 후회될것 같아서 이기도다. KBS2  1박2일 팀이 다녀간 담양의 두곳을 그대로 따라가며 대나무숲과 메타세쿼이어길을 따라 여행의 재미를 느껴본것이다.   


                        강호동과 이승기가 걸었던 죽녹원 산책길 따라




               이수근과 MC몽 이 지난곳을 따라 우리 일행이 걸어간다.



             백설이 하얗게 쌓인  1박2일 팀들이 머물렀던 우송당과 연못 


                  이승기가 물에 빠진 영못 , 아예 허당 못이라 부르고 있었다.


        1박2일 팀은 2월이라 눈이 녹고 있었고 ,우리가 갔을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스타나 특별한 사람이 다녀갔다면 별것도 아닌데 가보고 싶은 이유는 왜일까?
마음속에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눈폭탄이 아닌 적당한 설경은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여 혼자만의 시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Posted by 혜 천
         새해 연휴기간에  동해안 기장죽성 두호마을
               해안가드림성당
  나들이 어떠세요!
부산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올라 가다보면 기장 대변항에서 3.5 km 가량의 해안길엔 등대, 방파제, 기암괴석의 해안길이 여행객을 즐겁게 한다.    목적지 기장군 월전리 두호마을 !   드림성당

이곳엔 고산 윤선도가 7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시 6편을 남긴 곳이 두호마을과 가까이 있다.부산 기장군이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한일합작 드라마 "드림" 촬영을 지원하는데 10억을 투자하여 세워진 드림성당이다. 2009년 7월27일부터 첫방영되어 9월29일까지 방영된 드라마 드림에는 손담비,주진모,김범 주연의 드라마, 서년원 출신 격투기선수가 역경을 딛고 성공을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그린 16부작 미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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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드림의 주무대 "드림성당" 모습이 해맑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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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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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지붕의 붉은 색 과 등대가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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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벽  유리창의 예수님 그림도 교회와 잘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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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치 하나가 무수한 사연을 말하기도 하고 이곳에 앉아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둘만의 시간을 디자인 할수있을 것도 같은 장소이다.

 이곳 드라마 셋트장은 동해안 바닷가에 위치하고 차량으로 진입이 쉽고 경치가 아름다워 주위에 위치한 임랑해수욕장, 기장역,대변항,기장시장,기장죽성,왜성들과 연계하여 하루의 여행지로서 참좋은 곳이다
Posted by 혜 천
경북 의성 탑리 시장에 구경을 갔다. 시장 물건들을 쭉 둘러 보고 나가는 마지막에 옛날을
되살리게 하는 국화빵 아지매가 있었고 그 옆에 뻥☆ 아저씨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야 모두 서울등 대도시에 살고있는 사람이 구경을 하고있을 뿐이다. 시골 사람들이야, 그게 뭐 볼꺼리라고 삥 둘러서있담 ,하겠지만 먹을것 없는 세대에 산사람들이야 추억의 대상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원료라야 밀가루와 팥 안코 뿐이지만 아지매의 정성도 들어 있다.
 

뻥이요 ! 뻥튀기아저씨가 하는 작업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되어 귀를 막고 지나가야 하는 재미가 솔솔한 정경이다
옷꼬시가 무얼까? 모르는사람이 많겠지만 애용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과자이지요.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흰공 1되와 검정콩 한되를 가지고 왔다. 우리를 위해서 인것 같은
  고마운 생각이 드었다.  
  릴라님은 뻥★ 터지는 찰라를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일정 시간 일정 압력이 오를때까지 불을 지피고있다. 옛날엔 장작등 나무였는데
   요즈음은 깨스 버너를 이용하고있다. 
                           뻥 터지는 모습 !  
                       뻥 ☆  터진후  그물망에 담겨진 뻥 
                                       꺼집어 내는 뻥
                                      뻥의 결과물 , 밥쌍 또는  튀밥

언제가도 좋은 시장골목 , 그 곳엔 시골 장터문화가 있다. 천원짜리 몇닢으로 배불리 먹을수
있는 정이있는곳이 시골장터  아닐까요? 
Posted by 혜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