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의 Trave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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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3 [부산등대투어 #2]독이포 문중항 방파제등대[문중등대 ] 1
  2. 2013.01.02 [부산등대투어 # 1 ] 기장 월래등대(월래어항 남방파제등대) 의 아름다운 모습과 주변 이야기 2
  3. 2013.01.01 2013 계사년 풍요와 재물,가복(家福)을 상징하는 뱀해 복 많이 받으세요 ?
  4. 2012.12.13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을 잇는 사장교의 명선교
  5. 2012.12.11 아름답고 화려한 부산크리스마스트리 축제가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2012년 겨울축제.
  6. 2012.11.24 강인주화백의 그림속 가을 1
  7. 2012.11.07 청도반시 ,고택, 청도운문사,유등연지 그리고 와인터널이 있어 좋은 경북 청도여행
  8. 2012.09.03 스릴 넘치는 영화 「 도둑들 」
  9. 2012.06.25 경북내륙 깊숙히 숨어있는 봉화 닭실마을의 아름다운 청암정 3
  10. 2012.06.01 초여름에 걸어보는 낙동강 11경 예천 회룡포와 막걸리 한잔이 좋은 삼강주막의 아름다운 풍경
  11. 2012.05.24 영축산속에서 빙긋이 웃고있는 아름답고 그윽한 암자들이 부처님을 맞이 하네 !!!
  12. 2012.05.14 부산의 몽마르뜨 언덕 유명하다는데 무슨 재미있는 것들이 있나 궁금해 ?
  13. 2012.05.10 제비꽃 야생화가 피어있는 대구 불로동 고분군
  14. 2012.04.09 하늘의 허락을 받아야 만 발을 디딜수 있다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여행 !
  15. 2012.02.27 자갈치시장 새벽일꾼들의 입맛이 보증하는 4,000원 짜리 고등어정식 ! 3
  16. 2012.02.21 부산 6.25흔적 두번째 - 수탈과 애환,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간직한 영도다리 그 흔적이 없어지는 곳! 1
  17. 2012.02.20 6.25 추억 명소 첫번째- 40계단 문화거리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와 아버지의 휴식[부산 여행] 1
  18. 2012.02.18 해안도로 드라이브코스 끝자락 월전포구엔 아나고 굽는 냄새 진동하고....
  19. 2012.01.12 농부의 희망 곶감
  20. 2012.01.01 흑룡의 기운 뜸북 받는 그런 임진년 한해 되길 소망하며 3
  21. 2011.08.03 정이품송 비슷한 천연기념물 295호 청도 매전면 동산리 처진소나무 4
  22. 2011.08.02 야경사진 찍는법 1
  23. 2011.05.31 부산 범일동 친구육교를 건너 장동건 전봇대를 보고 자성대 와 좌천동 골목여행 18
  24. 2011.05.26 500년된 동백나무 85그루가 꽃피우는 서천마량리 동백나무숲 6
  25. 2011.04.22 찾아오는 관광객 없어 외롭게 서있는 국보 장항리사지 5층석탑 10
  26. 2011.04.03 [수원맛집]수원화성 장안문앞 군만두로 유명한 보영만두 ! 4
  27. 2011.03.31 중국 자금성처럼 우진각지붕을 가진 수원 장안문 그 우람한 예술을 본다 1
  28. 2011.03.30 정조대왕과 정약용의 작품 수원화성 그 출발지 화홍문에 매료를 느끼며 4
  29. 2011.03.21 1박2일 엄태웅 곰인형 안고 트래킹 우승한 울릉도 행남등대 ! 8
  30. 2011.03.15 흰두교 신앙의 대상 요니석물과 진신사리가 있는 천태산 부은암 여행! 2


문중포구 는 포구앞 넓다란 공터가 시원하다.  그래서인지 차량과 사람이 많아도 북쩍거리는 느낌이 없다. 포구가 커서인지 드나드는 배들도 조용히 들어 오고 나간다.  문중포구를 옛날 기장 아홉포구에서는 독이포라고 불렀다.

독이포는 현재의 문동리 일원이다. 일광면 문동리일대의 옛마을 이름은 독이방이 었는데 ,독은 나무가 없는 헐벗 산과 같은 민둥이를 뜻으로 이마을 뒷산인 문산을 옛날에는 민둥산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마을이다.  임랑에서 부산쪽으로 칠암 못미쳐이지만 요즘은 해안도로가 나있어 칠암과 붙어 있는 포구가 되었다.

문중포구 앞 등대 뒤쪽에는 노란색의 칠암 가자미등대가 서 있다. 문중항 방파제등대는 하얀색의 등대이다. 방파제까지 걸어나가면 칠암등대군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문동리는 광무8년(1904)에 만든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지에서 중북면의 한마을로서 문사동( 문동,문중,문서,칠암리)에 속하였으며, 1914년 부터 일광면이 되면서 동면에 속했던 동백리와 위 문사동이 합쳐뎌 문오동이 되었다. 문동마을에 옛날에는 해창이 있었으며 이 무렵에 마을이 매우 번창하였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며, 해창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이 마을은 속칭 창마을로 불리었다.  이곳에 망해정을 복원하여 역사의 흔적을 볼수있다. 도이포로 불리었던 문오동의 본동은 문동이고 지금 문동을 문리라 부르고 있다. 문동리 안에 있는 창마을이 문상리였다. 기장 독이방은 문동과 문상이다.


 문중항 방파제등대( 문중등대) 개요

*위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문중리 문중항
* 설치:2002년
* 신평공원을 출발하여 임랑으로 가기전 조그마한 포구에 위치하고 있는 등대로서
        기분전환을 위해 갯내음을 맡으며 한가롭게 방문하기 좋은 등대이다.
복면달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Posted by 혜 천

 

동해바다와 남해바다의 경계가 기장 임랑이나 고리가 아닐까 싶다, 국도31번을 타고 고리까지 갔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고리원자력발전소 근처 화사을포에서 부터 기장 아홉포구 (九浦)중  독이포의 문중방파제에 있는 등대와 임랑해수욕장 끝자락 화사을포와 월래포등대를 보기로 하고 나섰다. 

월래포구 와 문중 독이포 , 그 곳엔 등대가 있다. 꼬불꼬불한 이 바닷길을 따라 가본 사람은 와∼ 하고 탄성을 지를만한 곳이다. 그냥 망망대해에 파도만 보인다면 와- 소리를 지를리 없다.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조그만 포구 양켠에 등대가 있다. 같은 색깔이면 눈에 잘 띄질 않을 것인데 한쪽은 빨간색 등대, 건너편엔 흰등대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기차를 타고 월래역에 내리면 더 정취를 느낄수있는 그런 곳이다. 월래역도 오래된 간이역 처럼 이쁘다. 그 격앞으로 걸어 나오면 큰 고목나무가 있는 당집도 있고, 조선시대 보부상을 했다는 보부상비석도 3기 볼수있다. 시내를 가로 질러 월래포구에 나서면 저 만치 등대가 기다리고 있다. 월래포구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달월(月)를 쓰고 있으니 자연 이야기 꺼리를 내포하고 있는 마을이다.  

 * 월래포의 월래등대 

월래포의 옛이름은 월래(月來)이었고, 1681년 기장현 중북면 월래가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중북면 우래동으로 동명이 처음 공식 인정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정비때 동래군 장안면 월래리가 되었다.  마을 주민 사이에 구전되고 있는 마을의 유래를 보면 " 마을 북동편 월래천 옆에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200평가량의연지가 풀숲에 덮인채 있었다. 

 밤이되어 동천에 뜬 달이 연지에 비치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연지에서 솟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 연지를 소량강 즉, 밝고 맑은 향풀이 가득한 강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달이 큰 연지 안에서 뜨는 마을이라하여 월호라 칭하다가, 고종3년 (1864)에 와서 달이 동리 안에서 뜬다하여 월래라 불렀다고 한다." 

 * 월래포의 월래등대 

차성가에도 " 동산상에 달떴으니 월호에 선유한다." 라고 하여 월호가 나온다, 월내천을 따라 올라가보면 장안사를 만날수 있고, 월래역 인근에 3기의 보부상비가 있다. 

* 월래역

 

* 보부상비

 

* 월래역 앞 당집  

 월래포구 옆이 고리원자력 마을이다. 그마을도 옛날엔 화사을포라고 불렀다.

장안읍에 속하는 고리를 옛날에는 아이포라 하였는데, 기장현 상북면 아이포를 거쳐 화사을포가 되었다. 아이포는 작은 개 또는 작은 포구라는 뜻도 있는데, 옛 사람들은 작다는 말을 아이로 표현했고 한다, 이를 그대로 차음하여 아이로, 그리고 개또는 물가를 차훈하여 포라 하여 아이포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봉화대가 설치되면서부터 화사을포라 불리어졌고, 불을 사르다와 갯가를 합쳐지어진 화사을포가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마을이름을 두글자로 불리어지는 것ㄹ이 통례임에 비추어 화포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통신수단의 발달로 봉화불이 없어지게 되자 화포라는 마을이름이 명분을 잃게 됨에 따라 새로운 고리(古里)로 이름지어졌다.

 

1969년에 한국전력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건설되면서 주민없는 마을이 되어 이름만 남게 되었으며, 이 마을 이름이 화사을포, 화사포,들 불과 관계를 맺어 왔는데, 마침내 제3의불로 불리는 원전이 건설되었으니 , 옛 조상들이 지명에 대한 혜안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하고있다.

  

 

임을랑포일광면에서 나룻배르 타고 장안읍 임량리로 가던 나룻터인 임량진이 있었던 곳이며, 지금은 기장팔경중 하나인 임량해수욕장이 있어 바다의 풍광을 즐기는 곳이다.  장안읍 임랑리 해변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예부터 월내해수욕장과 함께 임을랑포라 하였다.

 

* 임랑해수욕장 

임을랑포라는 지명은 주된 성책이 있는 갯가라는 뜻으로 임책(任柵)의 옛말이다. 차성팔경의 하나이다. 백설 같은 백사장이 1킬로 넘게 넓게 깔려 있고 남쪽에는 임랑천의 맑은 물이 백사장을 가로질러 바닷속에 잠긴다.백사장 주변은 노송이 큰 가지를 펴고 병풍처럼 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근래에 관광객이 제법 붐비고 있지마는 아직은 호젓하고 조용한 곳이다.
 
예전 사람들은 이곳 임랑천의 맑은 물에서 낮에는 천렵을 하고 놀다가 병풍처럼 펼쳐진송림 위에 달이 떠오르면 님과 함께 조각배를 타고 달 구경을 하면서 뱃놀이를 즐겼다.동산에 달이 뜨고, 임랑천에 달이 있고, 천파만파 잔잔한 물결 속에 수천수만의 달이 잠기고,백사장에 달빛이 서리고 님의 얼굴이 달덩이 같고 내 마음이 달과 같다 하였다. 그래서 예부터 이곳의 월출경을 차성팔경의 하나로 손꼽는다.  

  정관 병산에서 발원한 좌광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곳인데, 임진왜란때 기장의 도자기 등을 싣고 갔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제철산업을 중흥시킨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며, 임진왜란때 축성한 임랑포왜성이 있고 물길 건너에는 임랑포 봉수가 있다.  

* 한때 미성을 자랑했던 가수 정훈희가 운영하는 카페 

        * 성철스님, 청담스님,서옹스님등 한국불교계를 이끌었던 유명 스님들이 수행했던 수행처 묘관음사 

 묘관음사는 근대에 들어와 향곡당 혜림스님께서 창건하셨으며. 이곳 묘관음사는 우리나라의 선맥을 이어온 혜월, 운봉, 향곡스님과 해운정사의 진제스님 그리고 성철큰스님께서 수행한 곳이라 더욱 유명해진 사찰입니다. 경내에는 전각, 대웅전,조사전,삼성각,종각이 있으며 당우는 길상선원,심원당,산호당, 법중대,금모대, 행로각과 각종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운봉,향곡,두분선사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다.

성철스님께서 묘관음사에서 수행하실적에 스님의 출가전 따님이 기장 묘관음사에 아버지를 보러왔다. 

불필스님이 되기전 성철스님의 필요없는 딸 수경과의 첫만남  장소가 기장월래의 묘관음사였습니다.
성철스님은 출가하고 얼마 지나 세속에 떨치고 온 부인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풍문에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따님이 바로 불필(不必) 스님이다. '필요 없는 딸' 이란 법명이다.  불필스님은 1937년 5월 아버지 이영주(성철스님의 속명) 와 어머니 이덕명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가한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수경(壽卿) 이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지만, 당시 고향 묵곡마을은 아름다운 경호강이 끼고 돌아 마치 강물에 둘러싸인 조용한 섬 같았다고 한다. 남의 땅을 밟지 않고 살수 있다고 할 만큼 넉넉한 집안이었기에 일제 식민지하에도 불구하고 수경의 유년시절은 남부럽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처음 뵙기 전까지 수경에게 아버지란 그저 상상 속의 인물이었다. 불필스님은 "아버지가 스님이란 사실은 어려서 누군가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그저 동화 그림 속에서 나오는 사람인가 싶은 정도" 라 기억했다. 문제는 당시 낮았던 스님들의 사회적 위상이었다. 불필스님은 "보지도 못한 아버지인데, 스님이라는 게 싫었다" 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딸" 이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아버지는 세상 등지고 가족도 버리고 산 속에서 무엇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스님이란 사실을 감추고자 했으며, 속으로 감추면 감출수록 아버지와 불교에 대한 궁금증은 새록새록 피어났다. 조숙하고 총명했던 수경은 그렇게 아무도 모를 고민이 많았다.  

수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낸다" 는 옛말을 인용해가며 "서울 유학을 보내달라" 고 졸라 상경, 서울 혜화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집안 살림이 넉넉했던 가문에서는 흔히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이미 삼촌(성철스님의 동생) 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서울 초등학교의 수업은 시골 학교와 놀랄 정도로 차이가 컸다. 어린 나이로 서울 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스님이란 사실은 아무도 몰랐기에 큰 짐을 벗은 것처럼 마음은 홀가분해 날아갈 것 같은 심정" 이었다고 한다.  

처음 아버지를 만나게 해준 사람은 묘엄(妙嚴.현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장) 스님이었다. 묘엄스님은 성철스님과 절친한 청담(淸潭) 스님의 딸이다. 어느날 묘엄스님이 다른 비구니 스님과 함께 수경을 찾아왔다. "큰스님께서 경남 월래 묘관음사에 계시니 한번 가서 뵙도록 하자.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에 얼떨떨해 있는데, 서울에 같이 유학와 있던 삼촌이 "담임선생님께 스님을 찾아간다고 허락을 받고 한번 가보자" 며 나섰다. "평생 불러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아버지가 대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 반(半) , 자식을 팽개친 아버지에 대한 미움 반(半) 에 "얼굴이라도 보자" 며 삼촌을 따라 나섰다.  

삼촌을 따라가면서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미워한 아버지인데, 그래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이것도 천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묘관음사에 도착하니 해질 무렵이었다.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니 누군지 모르는 무섭게 생긴 스님 한 분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님이 바로 성철스님과 절친한 도반(道伴) 인 향곡(香谷) 스님이었다. 향곡스님이 말했다.  

"철수좌(성철스님) 가 오늘 이상한 손님이 온다더라면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수경은 몹시 기분이 나빴다. 친혈육인 자신을 그렇게 내팽개쳐 놓은 아버지, 그래서 원망스러웠던 아버지가 애써 찾아온 딸을 피해 사라지다니. 향곡스님이 뒤늦게 사실을 알고는 성철스님을 찾아 나섰다. 조금 기다리자 향곡스님이 다 떨어진 누더기에 부리부리하게 광채나는 큰 눈만 보이는 스님과 함께 나타났다. "저 분이 내 아버지인가" 하는 순간 눈 큰 스님이 소리를 질렀다.  

"가라,가!"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던 수경은 그 순간 "삼촌 돌아가요" 라며 돌아섰다. 그 때 무서운 얼굴의 향곡스님이 부드러운 미소로 붙잡았다. 자그마한 방으로 데려가선 과자며 과일이며 먹을 것을 내놓았다.  이렇게 성철스님과 딸 수경은 첫만남이 있었다., < 출처 :   ??  >

Posted by 혜 천
 
                     
계사년 뱀해가 떠 오른다 ! 작년은 두번의 선거로 마음이 이쪽저쪽으로 갈려 좋지만은 않은 한해였다. 대통령당선인부터 이런 마음들을 대통합 하겠다고 한다.  뱀의 신비로운 지혜로 모두가 한마음되는 그런 한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징그럽다는 생각이다.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없이 발 밑을 스윽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촉감,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길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돼 버린 뱀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 .




 
뱀은 多産의 상징으로풍요(豊饒)와 재물(財物),가복(家福)을  상징한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재생(再生)→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뱀(巳)은 12지의 여섯 번째로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정사(丁巳), 신사(辛巳) 등 5번 순행한다. 뱀(巳)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4월에 해당한다. 파충류의 동물 실체로 일상생활에서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흉물로 배척당하지만 민속신앙에서는 신적 존재로 위해지면서 일찍부터 다양한 풍속이 전승되고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땅에 가장 많이 몸을 대고 살기에 땅과 밀접하며 냉혈동물이고, 독을 품고 있어 두렵다

그런가 하면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이시미)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체계가 있다. 뱀의 범주에는 이무기, 구렁이, 뱀이 다 포함된다.

뱀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소리없이 발 밑을 스윽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촉감,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길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돼 버린 뱀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다른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재생(再生)→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뱀은 치료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서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킨다는 스태미너의 심벌로 간주돼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뺏지는 십자가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한편 뱀은 민간의료의 약용으로도 쓰인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구렁이, 칠점사, 독사, 독뱀 등이다. 뱀은 정력강장 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하강작용을 하며, 일체의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뱀허물도 중요한 약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에서도 뱀 허물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뱀허물이 정창, 모든 상처에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태(胞衣)가 나오지 않을 때, 경풍(驚風) 등이 쓰인다고 했다.

사악하고 간사한 모습을 보기 보다는 뱀이 지닌 풍요와 지혜의 장점을 볼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불사와 영생,부활을 뜻하는 영적 존재로서,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뱀.  뱀은 이제 두려움과 간교함의 대상이 아니라,세시풍속에 민감했던 우리 조상들의 십이지 동물로서 다시 한번 인식될 만하다. 하나의 사물에서 다각적인 상징을 발견해내던 그들.십이지 동물 뱀에서 우리 조상들의 밝은 시각을 본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Posted by 혜 천

 

진하와 강양을 연결하는 결속의 다리가 명선교이다.
두지역을 이어주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 주는 다리가 명선교다.
이곳을 건너면 진하와 강양이 하나가 되는 가교의 다리가 명선교 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두 마을의 공동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원전특별지원금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장교의 주탑과 케이블은 비상하는 한쌍의 학으로 형상화하여
울주군의 발전과 미래상을 상징 한다고 해요.

 

무엇보다 여름의 진하해수욕장은 오염되지 않고 깨끗해서 좋고

강양포구에는 멸치 잡이 어선들이 할기 넘치는 생동감을 느낄수있어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강양항과 명선교는 일출사진의 명소로 사진기 가진 사람들이면 한번쯤

일출을 담아 보기를 원하는 그런 장소라 한다. 

 

 

명선교는 해송과 일출로 유명한 면적 1만900여㎡, 둘레 500여m의 섬인 명선도에서 이름을 땄으며 주민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이름지어졌다.  바닷길이 열리는 명선도 ! 진하해수욕장과 섬을 열어주는 신비의 바닷길이 명선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랍니다.

명선도 앞 고깃배와 해송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담기 위해 전국의 진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죠. 요즘 멸치잡이 선박들이 물안개와 어우려진 속으로 아침해가 떠오르면 장관이라죠!

 

 진하에서 강양, 강양에서 진하로 갈려면 30분이상 걸려던 소요시간을 단 5분만에 건너 갈수있어
그동안 불편했던 것을 명선교가 해결해주니 주민들에겐 유용한 다리가 되었죠. 
 

 

 

 

비상하는 두마리 학을 연상켜하는 모습이죠!

 

 

 

 

 

Posted by 혜 천

한해의 마지막 동짓달 긴 긴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12월의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전국에 눈이내려도 부산은 늘 빗겨가기 만 한데, 그런 겨울의 부산 광복동에 빛의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광복동거리 전역에서 펼쳐지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 축제는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스토리가 있는 포토존, 37일 내내 펼쳐지는 문화공연,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프로그램 ,소망트리에 꿈을 적고, 비전의날개를 달면 천사가 됩니다.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나눔의 굴뚝과 사람의 프로포즈,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Relay Given Week ... 등  내가 주인이 되는 크리스마스 축제는 따뜻한 사랑과 나눔이 있는 행복한 축제가 될것으로 생각됩니다.
 

개막식은 2012년 12월1일 오후7시 중앙무대에서 점등행사로 시작되었고 성탄절 하이라이트는 역시 12월24,25일 오후7시 의 성탄절전야 축하공연과 성탄 축하공연 크리스마스 메들리 합창이 중앙무대에서 펼쳐진다. 이렇게 37일간 내내 행사가 진행되며 폐막식은 2013년1월6일 오후9시 소등행사로 막을 내린다.

 

 동방박사와 메인 게이트를 지나 별을 따라가는 아이들과 함께 광복로를 찾는 사람들도 아기 예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연출하였으며 천사를 만나다 존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행잉 구조형 조형으로 이미지화하고 이를
 통하여 아기예수를 찾아가는 여정에 천사들이 동행하는 의미를 구현해 놓았다. 

 부산중구는 도심의 공동화현산으로 어러운 경제 상황이다. 그래서 중구 상업지역에서 37일간의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는 빛의 향연으로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로 가득하여, 전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관광객이 찾는 축제로,
 부산 상권으로서의 원도심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축제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 자료출처: 제4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공식website 

 

 

 

 

 

                           * 자료출처: 제4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공식website 

 

 

    눈이 내리는 마을은 부산이라는 지역이 겨울에 눈이 자주 오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문화축제가 열리는

   광복로의 행사기간 동안만이라도 항상 눈의이미지와 감성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존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별이 내리는 길은 눈내리는 마을의구간과 함께 이어져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 하듯이 하늘 가득하게

  별이 쏱아지는 이미지를 연출하여 환상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축제거리 중간에 개리커쳐나 인물화를 그려주는 곳도 있다. 몇분의 화가들이 솜씨좋게 그려내는는 것을 보며

   구미가 당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감상하는 것 보다 더 어러운 것 같다, 야간의소질을 가져야 제대로

   그릴수있으니 ~

 

    용두산 입구의 작은 무대는 다문화적인 성격을 수용하기 위하여 세계각국의 아이들이 각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있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크리스마스 축제가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 인 사랑의 메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필자가 찾은날은  노익장을 과시한 어르신들이 관형악으로 노래를 선사하고 있었다. 

 

       메인트리는 행사의 중심이 되는 장소에 설치 환상적이고 장엄하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 부산 광복로에 12월의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자리매김 한지 4번째다.

     그래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겨울 대표 축제라 할수있다.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아시아태평양 도시관광진흥기구 TPO총회에서 축제분야 우수 축제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우수축제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를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육성해 아시아태평양뿐아니라 미주와 유럽지역에서도 찾아오는 세계축제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4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정보

                         *행사기간 : 2012년12월 1일 ~ 1013년 1월6일 ( 37일간의 성탄여행)

                        * 장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 일원

                        * 축제사무국: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38-2

                        * 사무국 전화 : 051-256-1225

                        *찾아가는 길
                          - ktx : 부산역 하차- 부산역 맞은편 버스승차 - 남포동입구 하차 - 도보로 5~10분 광복동
                          -지하철: 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하차(1번출구) -도보 5-10분 광복동
                         - 시내버스 _ 남포동극장가 하차 , 국제시장 하차 도보로 10분 광복동
                         - 공항버스 또는 공항리무진버스 - 남포동행 승차 남포동 하차

                      * 기타사항 (차량통제 구역)

                        - 평일 ( 로얄호텔 사거리 - 시티스폿) : 오후 5시 - 저녁10시

                        - 주말 ( 광복로 입구 - 시티스폿) 오후3시 - 저녁10시

                       - 12월20일 - 31일 (광복로입구- 시티스폿) 오후5시 - 저녁10시  


 

Posted by 혜 천
초등학교 시절 부터 도화지에 물감으로 그리기 시작했던 미술시간 그 미술시간이 생각납니다.
중학교때도 그렸고. 고교시절도 미술시간은 있었지만 ~
그림보는 눈도 높아지지 않았고
그림그리는 솜씨는 초등하교 시절 그대로 인것은 왜 일까요?

시골 출신 강인주 화백은 혜천의 동향인으로
전업작가로 그동안 그림에 미쳐 궁핍한 생활도 마다 하지 않고 그림에만 전념하신 분이다.
그분의 그림은 이제 칼끝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칼끝 그림의 대가라고 한다.
가을을 주제로 한작품들을 몇점 올려보지만
유리에 비친 자욱들로 그림을 손상시킨 흔적들이 남아 있느 사진들이지만  ~ 
   

 















Posted by 혜 천

      
       부산에서 적당히 멀리 떨어진 청도여행!
       부산에서 서울산 IC를 거쳐 가지산 고개를 넘어 운문호반
       으로 접어드니 
운문호반에 비친 가을 단풍이 그 야말로
       아름답고 길거리 양쪽에
  빨갛게 주렁주렁 익어가는
       청도 감이 어린애의 마음을 만들며  동곡을 거쳐
       도착한 곳이 청도 금천 신지리  운강 고택이다.    

       청도는 변한 12국중 우유국의 위치가 청도라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청도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으며
       옛이름은 이서, 대성, 도주, 오산이있다고 한다, 
      청도 (淸道)라 함은 산수가 맑고 아름다우며 큰길이
      사방으로 나 편하다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청도의 고택 운강고택에 먼저 도착해 옛청도 선비며 양반들  삶의 흔적을 보았다.

            운강고택은중요민속자료 제106호로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위치하며                           
           소요당 박하담 (1479-1560년)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터에 
           1809년 박정주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하고 1824년  운강 박시묵이 중건한 고택이다. 

 

 이어서 가까이있는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에 위치한경북 유형 문화재 제79호 선암서원  
 으로 향했다.
소요당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를 배향한 서원이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때 
 없어진 것 을 1878년 소요당의 
후손들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는 서원이다.

 

                     청도 석빙고 (보물 323호: 경북청도군 화양읍 동천리)로 간다. 

 

조선 숙종39년 (1713년)에 축조 현재 전국에 6개의 빙장시설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길이 14.75m. 폭 5m의 장방형  구조인데 중앙에 배수국가 있어 경사를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게 되어있다.  경주 석빙고 달음으로 큰 규모의  석빙고이며   주변에 선정비, 화양향교,화양읍성의 볼꺼리가 있다. 

 옛날에는 냉장고도 없었으니 어찌 여름을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곳 석빙고에서 그해답을 찾게 되었다. 우리나라 선조들은 벌써 신라 지증왕 6년에 왕이 유사에게  얼음 창고를 만들라고 했다니  그 기원이 참으로 오래 되었다고 볼수있다

         전국에 6개의 석빙고가 있으며 가장큰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에있는 경주 석빙고이며, 창녕,안동,창영영산 현풍,그리고 가장오래된 청고 석빙고가 있다.   이 청도 석빙고는 신라지증왕6년 진사 박상고가 1713년2월에 착공  5월에 준공한 것인데 당초 북문밖에 있던이 허물어져 이곳에 복원하였단다

  보물 제 323호인 이 석빙고는 조선시대 겨울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여름에 사용하기 위한 얼음 저장고였다. 석빙고의 입구 좌측에는 숙종 39년 (1713)에 세운 비가 있어 축조연대 및 인력과 공정기간등을 알수있다.  빙실 바닥은 길이 14.75 m 폭5m의 장방형 구조인데 내부 계단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경사졌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게 되어 있다. 다듬은 돌로 윗부분을 반원형인 홍예로 틀어 올리고 잡석으로 벽을 쌓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6기의 석빙고가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이것이 가장 오래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트갤러리 청담에서 차한잔 하며 쉬어 가자 ! 

대구 수성 못에서 청도 방향 20분 거리의 청도  유등연지 내에 위치하며
100여평의 대지위에 전시실과 아트샵 쉼터가 있어 진한 커피 한잔 하며 쉬어 갈수있는 운치 있는 좋은 곳이다. 

 2층 커피 숍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늑함을  주는 수준 높은 공간이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31 번지  연락처 054-371-2111 / 016-9772-1123 

 

  

 

경북 청도군 화양읍송금리에 있는 감 와인터널을 구경 않고 지날수는 없는 일 !!!
감 와인 터널은 1896년 착공 1904 완공 길이 1,015m  폭4.5m 높이 5.3m 의 터널이다.l

 

와인 터널은 1905년에 개통된 옛 경부선 열차 터널을 정비하여 2006년 3월에 개장하면서 와인터널로 명명하여 현재 와인 숙성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 터널은 15℃온도와 60-70% 습도가 연중 일정하게 유지되고 다량의 음이온이 어우러진 와인 숙성의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와인터널은 감와인의 숙성고,시음장,전시,판매장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하는 관광지인것 같다.

 이 터널은 높은 산중턱에 건설되었으며,이 고개를 오르기 위해서는 기관차 으로 힘겹게 견인해야 했으며

1937년도에 현재의 남성현 터널이 개통되면서 폐쇄, 이후 6.25때는 각종 군수물자 수송로롤, 1960년대 말까지는 버스등이 통과하는 국도로 사용되던 곳이다. 토널 천정에는 증기기관차가 숨가쁘게 내뿜었던 매연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100년전 시간여행을 가는 아련한 옛추억을 회상 할수있는 곳이기도 하다  

                                    * 감으로 만든 세계최초의 와인 감그린 한잔 

           감그린은 최고의 품질을 인정 받아 2005년 APEC 정상회담 대표단 공식 만찬주로 선정되어 사용되어 졌다고 한다 

 

대적사의 극락전 반야용선 타고 서방정토 가는 거북을 보자 
많은 사찰 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적막하고 고즈녁하게 자리 잡고있는 사찰을 본적이 없다.   대적사 극락전은 소박하고 단출한 절이다. 그 산사 올라가는 길 초입엔 청도를 나타내는 감나무엔 빨간  감이 주렁 주렁 달려 있고 청도 감 와인 터널이 있다 조금더 오르니 단풍잎이 떨어지는 오솔길이 가을 정취 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대적사 극락전은  보물 제 836호 지정되어있으며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번지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대적사는 동학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적적하다 못해 통빈 것 같은 허허롭고 고즈녁한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 2년에 보조선사가 토굴로 창건하였으 며 고려초 보양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때 ㅍ허가 된 사찰을 1635년 초옥3칸 암사를 짖고 대적사라 하였으며  1689년 숙종13년 성혜대사가 중수하여 삼존불을 모시고 다시 사찰의 면모르 갖추었다.

 

경내 건축물중 18세기경 건립된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은 정면3칸 측면2칸으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이며 1984년 보물제836호로 지정되었다. 기단의 조각은 용,거북,게등과 전면기둥의 용머리조각등 연화문과 거북 무늬가 양각되어 있도 H자 형의 선각과 기단측면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장식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특징의 건축의장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글락전,삼성각,산신각,부도 가 있다.   

 반야용선 형상의 극락전 과 기단은 다른사찰에서 볼수 없는 특이한 볼꺼리다.  건물아래 기단 축대석에는 거북,게,물고기등과 연화문이 양각되어 있으며, H자형 선각이 연속되어 있고  H자형은 배의 용골을 의미하기 도 한다.

       

  청도여행에서 빼놓을수 없는 천년고찰 운문사에서  운문사 불교의 모습을  느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문사(雲門寺)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 또는 운문산) 밑에  있는 사찰입니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신승(神僧)이 창건하여 대작갑사(大鵲岬寺)라 하였다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중건하였다. 고려 태조 20년(937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하여 작갑사(鵲岬寺)라고
        하였다.    태조 26년(943년)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여 운문사(雲門寺)라 불리게 되었다. 
        숙종 10년(1105년)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불탔다. 
        조선 숙종 16년(1690년) 설송(雪松)이 중건하였다. 현재는 비구니 전문강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여러차례 중창을 통해 오늘날 모습이라고 한다1950년 비구니사찰이되었고 한다.   

          보물 678호 운문사 삼층석탑! 이 탑은 높이5.4m의 쌍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 의 3층석탑으로 
     운문사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두 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의 탑이다.

     기단에는 8부중상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있는 모습이 좋아서 한참 들여다 보고왔다. 

 

   부산으로 돌아 오는 길 옆에 희귀 천연기념물 청도매전면 처진소나무 유송을 만났습니다. view 발행

    국내에 이곳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보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바람흔적이 살고있는 부산 수영사적공원에도 수령    400년된 해송이있고,

기장군 죽성리도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그래도 그 소나무들은 천연기념물이 아니 노송들 일 뿐이다. 

 이 나무는 나무의 가지가 수양버들 같이 처졌다고 하여  유송(柳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의 형태가 이러한 것은 주변의 나무에

    의해   눌려 처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한다.

   나무가 다른 가지에 눌려 그늘이 심하면 살수 없는 것인데  살아 남을 수 있었으니 귀한 나무라고 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이 되었는지 ? 

옛날 어느 정승이 이 소나무 앞을 지나갈때 갑자기 큰절을 하듯이   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14m 나무둘레 1.96m이며 가지폭은 동서로 10.3m 남북으로 9.1m 정도 파졌고,
    지는 거의 지면까지 쳐져있다.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정도 된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청도 하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Posted by 혜 천

사람이 재물을 모으는 순간부터 그것을 탐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도둑 !!!  어떤 도둑은 돈을 훔치고, 어떤 도둑은 마음을 훔친다. 그리고 특별한 도둑은 세상을 훔진기도 한다.  여러 도둑에 대한이야기중에서,  촤동훈감독은 도둑 10명이 모여 1개의 다이아몬드를 훔지며 , 벌어지는 이야기를 웃으며 스릴넘치고 재미있는 가운데 무언가의 이야기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요즘같이 살기 힘든때는 모든 시름 잊을수있는  스릴넘치고 한끗 웃을 수있는 그런 영화가 좋다. 오랫만에 보는 영화지만 1000만 관객들이 봤다니 ..... 재미있으리라 생각하고 갔다.


영화를 보기전에 잠시 영화 도둑들 지라시를 한장 집어 최동훈 감독이 누구인지 보니 , 250만명이 본 <범죄의 재구성> 전문 도박꾼들의 짜릿한 승부 셰계를 그려 684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타짜>그리고  <전우치> 같은 영화를 만든 유명 감독이라는것 알고  선택을 참잘했구나 싶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전 필수 준비물 ,  팝콘과 코카콜라  ... 중간 중간 입을 즐기기 위한 필수품...
                  

이름부터 시선을 잡아 끄는  전에 없던 매력과 독특한 개성의 캐릭터들!
영화 <도둑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기술을 지닌 10인의 도둑 각자의 캐릭터가 주요한 몫을 차지하며 영화의 가장 큰 관람 포인트가 된다. 전작을 통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전무후무한 개성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 일가견을 보인 최동훈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 낸 10인의 캐릭터는 각자의 매력과 역사를 반영한 이름부터 남다른 독특한 개성으로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쉰다.

과거 마카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88억을 땄다는 전설로 인해 ‘마카오박’이라 불리기 시작한 작전 설계자 마카오박은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모든 계획을 지휘하고 이끌지만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인물로 한 치 앞을 짐작할 수 없는 팽팽한 스토리의 중심을 이끈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홍콩으로 향하는 5인의 한국 도둑들, 손에 걸리는 건 무엇이든 다 딴다는 전설의 금고털이 팹시와 목적을 위해선 누구라도 이용하는 뽀빠이, 범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예~하고 달려가는 줄타기 전문 예니콜, 은퇴 말년의 연기파 도둑 씹던껌, 순정파 신참 도둑 잠파노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재미를 더하는 동시에, 각각 서로 다른 사연으로 얽힌 관계를 바탕으로 극에 예상할 수 없는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여기에 중국팀의 리더 첸을 비롯해 소심한 총잡이 앤드류, 냉정한 금고따기 쥴리, 행동파 총잡이 조니의 중국 도둑 4인 역시 한국 도둑들에 필적할 만한 존재감과 카리스마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태양의 눈물’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모였지만 이를 취하려는 기술이 각자 다른 것처럼 속내도 개성도 다른 10인의 도둑들. 세상에 수많은 군상이 존재하듯 도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는 한방을 꿈꾸고, 누군가는 전설을 꿈꾸고, 누군가는 복수를 꿈꾸는 10인 도둑들의 풍성한 드라마와 다양한 매력은 올 여름 관객들의 마음까지 강렬하게 훔칠 것이다.  

한 팀으로 활동 중인 한국의 도둑 뽀빠이와 예니콜, 씹던껌, 잠파노. 미술관을 터는데 멋지게 성공한 이들은 뽀빠이의 과거 파트너였던 마카오박이 제안한 홍콩에서의 새로운 계획을 듣게 된다. 여기에 마카오박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 감옥에서 막 출소한 금고털이 팹시가 합류하고 5명은 각자 인생 최고의 반전을 꿈꾸며 홍콩으로 향한다.

홍콩에서 한국 도둑들을 기다리고 있는 4인조 중국도둑 첸, 앤드류, 쥴리, 조니. 최고의 전문가들이 세팅된 가운데 서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한국과 중국의 도둑들. 팽팽히 흐르는 긴장감 속에 나타난 마카오박은 자신이 계획한 목표물을 밝힌다. 그것은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계획이지만 2천만 달러의 달콤한 제안을 거부할 수 없는 이들은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진짜 의도를 알 수 없는 비밀스런 마카오박과 그런 마카오박의 뒤통수를 노리는 뽀빠이, 마카오박에게 배신당한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팹시와 팀보다 눈 앞의 현찰을 먼저 챙기는 예니콜, 그리고 한국 도둑들을 믿지 않는 첸과 중국 도둑들까지. 훔치기 위해 모였지만 목적은 서로 다른 10인의 도둑들은 서서히 자신만의 플랜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전지현의 줄타기 액션, 김윤석의 고공 와이어 액션, 임달화의 총격씬까지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리얼 액션
한국형 범죄 액션의 절정을 만난다
<도둑들>은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이 고층 빌딩에서 온 몸을 내던지는 화려한 와이어 액션부터 도심 한복판의 총격씬과 마카오박의 하이라이트 액션씬까지 리얼 액션의 정점을 선보인다. 훔치기 위해 건물에 잠입하고, 위험천만한 상황 속 탈출을 시도하는 ‘도둑 액션’만의 개성과 리얼리티를 담아내고자 했던 최동훈 감독은 이전에 없었던 스피디하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액션을 완성해냈다.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마카오 카지노의 30층짜리 빌딩을 올라타는 전지현의 아찔한 액션은 마카오 도심의 화려한 전경과 어우러져 시선을 압도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속 카지노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임달화의 격렬한 총격씬과 자동차 액션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을 전한다. 그리고 쏟아지는 총알 세례 속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와 창문의 차양, 건물을 휘감은 전기줄에 몸을 의지한 채 펼치는 김윤석의 고공 와이어 액션씬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리얼리티로 전율을 선사한다. 김윤석과 전지현은 고난도 액션씬의 대부분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여 단순한 볼거리로서의 액션이 아닌 스토리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조이는 명장면들을 탄생시켰다.

범죄의 향기 물씬 풍기는 이국적 도시 홍콩과 마카오의 화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짜릿한 액션이 더해져 리얼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갖춘 <도둑들>은 범죄 액션 영화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홍콩, 마카오 해외 로케이션
아시아 최대 리조트 ‘City of Dreams’의 전폭 지원
마카오 카지노 실제 촬영
최동훈 감독 작품 최초로 해외 로케이션을 감행하여 제작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도둑들>은 홍콩, 마카오, 서울, 부산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들을 오가는 대규모 로케이션을 통해 화려한 이국의 풍광부터 도심 한복판을 무대로 한 액션까지 풍성한 볼거리를 담아냈다.

오래된 뒷골목과 최첨단의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 홍콩과 낮의 고요함과 밤의 화려함이 대비를 이루는 마카오의 매력에 이끌러 처음 <도둑들>을 구상한 최동훈 감독은 단순한 배경으로서의 공간이 아닌, 그 안의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범죄 무대로서의 홍콩과 마카오를 포착해 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였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도둑들이 자신만의 욕망을 드러내는 공간인 홍콩의 아파트는 10년 간 사용하지 않았던 아파트 건물 내부를 완벽하게 리모델링하여 <도둑들>만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작전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홍콩의 허름한 아파트와 뒷골목을 지나 본격적인 범죄가 이뤄지는 화려한 마카오 카지노의 상반된 이미지는 도둑들의 욕망과 도시가 가진 고유의 매력이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압도한다.

Posted by 혜 천

 경북 봉화 한번 가기 쉽지 않은 곳이라 지나쳐 다녀본 적은 있어도  닭실마을을 찾아 나선 것은 첫번째입니다. 경상도 중에서도 강원도에 가까울 만큼 윗쪽에 붙어 있어 한번 가기가 싶지는 않은곳 입니다. 매스컴에서 보았던  그 닭실마을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안동권씨 집성촌의 마을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이신 총재권벌 선생이 마을에 입향하여 후손들이  지금껏 살고있는 마을입니다. 

여행을 출발하기전에 봉화 닭실마을과 청암정에 대해 검색하여 사전 자료를  익히 알고 갔습니다,그내용인 즉, 닭실마을은  영남의 4대길지 가운데 한곳이라고 하는데, "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 금란포란형( 金鷄抱卵形)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 닭실마을이라 합니다.
 
닭실마을이 금계포란(金鷄抱卵)형국이라는데 그게  뭘꼬 하면 닭실은 동북에 있는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줄기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려온 백설령이 암탉이 알을 품은 듯한 형세로 자리하고 5시방향 즉 간좌곤향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안산으로 있는 옥저봉은 수탉이 활개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즉 닭실의 지세는 수탉과 암탉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는 명당이다. 닭이 알을 품은 형태는 자손들이 많이 번창하며, 동시에 재산도 크게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길지라고 하네요. 


 이곳은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된 ‘내성유곡권충재관계유적’이다.이 마을은 약 500여 년 전,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충재(沖齋) 권벌( 1478~1548)선생께서 마을에 입향하신 이후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지켜오고 있는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나지막한 산과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지형인 이곳은, 나라를 위한 충 사상이 지배하던 곳이다. 평소에는 농사를 근본으로 하여 학문에 힘쓰다가, 나라가 위태해질 때면 목숨을 다해 나라를 지키던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다. 특히, 대한제국말기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주권침탈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힘을 아끼지 않아 ‘충절의 마을’이라는 별칭까지 얻기도 했던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이곳 ‘유곡1리 달실마을’이다. 현재는 마을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농사를 주로 하며 생활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풍수가 이중환은 오래 전에 달실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뽑았다. 유곡일대의 봉화지역은 전란의 피해가없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 달실마을이 닭실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은 산, 강 그리고 바람 등 자연의 기운에 의하여 형성된다. 이곳 달실의 지세를 풍수이론으로 분석하면 역시 명당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숨어있는 길지라도 드라마  한편 방영되면 그곳은 세상에 까발려지고 마는데 이곳도 그렇게 세상에 알려져 < 드라마 - 바람의화원 - 신윤복(문근영) 김홍도(박신양)이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있던 그 돌다리가 청암정다리인가 싶다. 

청암정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하나있다. 청암정이 있는  바위가 거북모양이다. 처음 청암정을 지울 당시 청암정의 안쪽방에 온돌을 만들었는데 지나가던 고승이 거북의 등에 불을 피웠서는 않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온돌을 없앴다고 한다. 그 돌다리를 건너며 그때 그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청암정은 마을의 중앙부위에 위치한 청암정은 500년이라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위에 정자를 건축하고, 바위주변에는 거북이가 좋아하는 물을 담기위해 인공연못을 조성 곳이다. 흔히 아름다운 자연물위에 인공물을 건축할 경우, 불가피하게 자연물의 인공물에 가려져 그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그러나 청암정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정자를 꼽으라고 하면 그 순위권 안에는 청암정이 있다. 이는 바로 거북이 바위위에 지어진 청암정이 기존의 바위와 아주 잘 이룬 조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 청암정은 넓은 마루를 가지고 있어 전통식 교육체험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이곳은 마을의 입향조인 충재선생께서 공부를 하기위한 장소로 건립하였고, 그의 사후에는 후손들이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전통식 교육체험의 경우 과거의 향수를 느껴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을의 종가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앞에는석천계곡이 흐르고 있다. 전설이 담긴 기암괴석과 금강소나무 숲 사이로 내성천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건축된 석천정사(石泉精舍)와 바로 옆의 삼계서원(三溪書院) 또한 그 건축미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가뭄이 해갈되고 장마가 되어 냇물이 많은  여름철이면, 시원한 소나무 숲과 바위계곡에 흐르는 계곡물을 찾아오는 피서객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이곳의 장점은 일찍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훼손되지 않고 이어져 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다. 석천계곡은 일제시대 신작로가 세워지기 전의 닭실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랜 여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이 계곡에서 잠시 쉬며 여독을 풀었다고 한다. 기이한 기암괴석과 울창한 소나무숲에 아기자기한 계곡의 물이 웅장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마을의 종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석천정사가 있는데 1526년 최초로 건립된 이 정사는 닭실마을에서 오솔길을 돌아가면 볼 수 있다. 이 정사는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고아한 분위기를 내며 연중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난간이 있는 넓은 마루는 대략 100여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예전에는 여름철 학문이나 모임에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 청암정과 더불어 주변환경과 조화를 잘 이룬 빼어난 전통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마을의 종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서쪽끝에 위치한 추원재는 선영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던 추원재가 있다. 그 건축미와 기능 및 역사로 인해 문화재로 지정받은 곳 중의 한 곳이다. 2층의 누각이 포함된 口자형태의 추원재는 100명 정도의 인원이 관련 체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이기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건물에 딸린 농지가 많이 있다. 

 

여행정보
여행지 : 봉화 닭실마을
위치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전화 문의/안내: 봉화 닭실마을 054-674-0963 ,봉화군청 054-679-6114

 

Posted by 혜 천

강원도 태백 황지 연못 샘물이  흘러 흘러 낙동강물이 되니 

시작은 미미하나 그 결과는 장대하다는 말같이 낙동강물도 이러한 것 같다.

시작되는 물은 자주 보지 못해도 마지막에 바닷물과 만나는 낙동강하구

물길은 하루 한번씩 보고 있다.  조용히 낙동강 까지 흘러오면서 숫한 지역을

통과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어 주고 낙동강하구에서 생을 마감하는 낙동강 물이

아니던가.

 

이번여행은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방 낙동강 물길을 보고 왔다.

영월 동강 어라연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하고져하는 낙동강의 지류 내성천

이 흐르는 예천 회령포 가 그곳이다.

 

낙동강 물길은 보면볼수록 매력을 많이 가진 물길이다.

예전에 안동 하회마을 과 상주경천대를 보며 물길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모습을 

봤지만 오늘 보는 회령포 물돌이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물길이 뱀처럼 구불구불 하다 못해  350도 회돌아 흘려가고있다.

사람 눈으로 볼수있는 각도가 180가 채되지 않는데 350도로 회돌아 흘러가니

자연 내 자신도 350도로 눈을 돌려야 볼수있는 물길이다.     

 

 

 

                    

회룡이라는 말은 태고에 용이 내성천을 타고 상류를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이 마을에는 ‘이계바위’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은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사시사철 나룻배가 넘나들어 고을관리들과 기생들의 놀이터로 유명한  장소였답니다.  그러나 여름 어느 날 ‘이계’라는 기생이 놀다가 커다란 동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마을 사또는 이 바위를 ‘이계바위’라 칭하고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주었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비가 오는 날이면 동굴 속에서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하고 날씨가  맑고 좋은 날이면 강 상류 30리 밖 개포면 동송마을의 떡방아 찧은 소리, 개 짓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동굴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바위만은 옛 모습을 간지기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회룡포(回龍浦)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龍)이 날아 오르는 것 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에서 내려다 보면 350  되돌아서 흘러 나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맑은 물과 금빛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있고 계단을 올라 회룡대(回龍臺)에 이르면 이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맑은 물과 금빛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있고 계단을 올라 회룡대(回龍臺)에 이르면 이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곳 회룡대에서 회룡포마을을 내려다 보면  물길이 어떻게 회돌아 가는지 잘 볼수있다.

그래서 회령포를 볼려면 먼저 이곳 회룡대에 올라 물길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회룡포로 내려 가야 된다.

 

 

예천 용궁면이라는 이 곳의 지명은 말 그대로 용(龍)의 궁(宮)을 표현하는 곳이다. 즉 왕의 거처라는 뜻. 그래서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견훤과 왕건이 크게 전쟁을 치렀던 곳이며, 삼국유사에 따르면 결국 용궁을 차지한 태조 왕건이 용문사의 두문선사에게  이 곳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자료가 말해주듯이 회령포는 예전의 예전부터 그 중요성이 인정되었던 곳이다.  

 

아주 예전에는 이곳을 ‘의성개(개는 ’강어귀의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뜻)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후  의성포라 부르다가 회룡포로 비꿨다고 한다.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 사뿐히 건너보세요 
물돌이 회룡포를 보시려면 마을로 바로 들어가지 말고 비룡산에 있는 장안사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오세요. 그럼 산책로를 따라 난 팔각정의 전망대에서 한 눈으로 펼쳐 보이는 동화의 마을 회룡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산과 들과 강의 사랑스러운 어울림은 그대로 한 편의 전원교향악이 될것같으며

 마을엔 9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요.그리고  모두 경주 김씨랍니다.

경주 김씨가 풍양면 사막마을에 살다가 피난 와서 자리 잡은 곳이 여기리고 합니다.. 

 

 

지금은 구멍뚫린 철판으로 다리를 놓아 걸어 들어갈수있는 뽕뽕다리가 있으니 주민들이 수월하게 왕래를 할수있지  예전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 되니 섬이 맞긴 맞았나 봅니다.


 

 

 

등산로를 따라 40여분 걷다 보면 삼한시대부터 치열한 격전지였던 원산성(圓山城)이 나타나고

 남쪽으로는 낙동강(洛東江). 내성천(乃城川).금천(錦川)이 하나로 합쳐지는 삼강(三江)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회령포를 둘러 보고 삼강의 풍경을 보러 삼강주막으로 행하여 발길을 옮겨 놓았다.

 

 

2000년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찰영지로 유명하며. 인근에는 용궁향교. 세금내는 나무로 알려진 황목근.

 산택 연꽃공원. 낙동강 700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삼강주막 등이 있고 향석리에는 농촌체험과 숙박이 가능한

 회룡포여울마을(구. 향석초등학교)이 있다

 

 

 

 

 

 

 

여행정보

* 명승지 회룡포

*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950  ( 용궁면 향석길 60) 
* 전화번호 054-650-6789 정보센터 : 054-653-6696

 

회룡포를 둘러보고 뱃사공도 주모도 없는 예천 삼강마을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는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안동댐을 지나온 낙동강,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의 금천 이곳을 “삼강”이라고 합니다.


아주 먼 옛날 
이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삼강나루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낙동강을 거슬러 온 사람들이 안동이나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이었고, 상주나 문경세재로 향하던 갈림길 이기도 했다.

 

나루터 자리를 찾아가도 삼강나루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추진되면서 나루터를 복원하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옛 정취를 느끼며 나룻배를 탈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뱃사공도, 주모도 없는 삼강주막에는 옛날의 모습을 보기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만 모여들고 있었다. 

 

 

 

나루터 자리엔 신식 다리가 놓여 있고, 흔적을 찾는 사람들만 모여 들고 있었다.

 

 

 

 

그때의 삼강나루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낙동강을 거슬러 온 사람들이 안동이나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이었고, 상주나 문경세재로 향하던 갈림길 이기도 했다.  삼강나루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 삼강주막(풍양면 삼강리 166-1)이다.

물류를 운반하던 보부상들과 사공들이며, 경상도에서 서울이나 강원도로 먼 길을 나선 사람들에게도 주막은 꼭 필요한 곳이었다. 삼강주막은 1900년대에 만들어진 후, 2006년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영업을 이어왔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후의 주막이었던 셈이다. 2005년에는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유옥련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치되어 왔던 주막을 예천군에서 2007년에 복원하고, 보부상숙소와 사공숙소 등도 함께 지었다. 복원된 주막의 처마 아래 늙은 주모의 사진도 걸어 두었다. 주막의 부엌에는 외상장부를 대신한 작대기 표시가 남아있다. 긴 작대기는 한 주전자, 짧은 작대기는 한잔 술을 외상한 흔적이다. 주막 밖에는 500년의 세월을 간직한 회화나무가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의연히 서있다.

 

 

느티나무 아래는 장터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쌀과 잡곡이며, 소금 등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나무그늘 아래 놓여진 둥근 들돌도 여행객의 시선을 끈다. 120kg이나 되는 들돌은 어른이 된 것을 증명하는 도구였다. 그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이 정해졌다. 그 무게에 호기심을 느낀 여행객들이 한번씩 들돌을 안고 힘을 써본다. 들돌 옆쪽으로 싸릿대를 이어만든 옛날 화장실도 아이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다.

 

 

 

여행정보

* 여행지 : 삼강주막

*위    치 :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전화번호 : 풍양면사무소 054-653-6301,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391, 6394

 

 

Posted by 혜 천
나의 여행 스토리

 영취산 자락에 깊숙히 숨어 있는 통도사 암자 중에는 꽤나 사람들에게 알려진 암자도 있다.

서운암의들꽃과 된장 그리고 자장암의 금개구리는 통도사를 찾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오늘 이들 암자와 19개 암자들 가운데 반정도라도 걸으며 찾아

 참배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나섰다. 

 

* 걷기코스와 암자 

             통도사 본당 → 보타암 → 취운암 → 사명암 → 백련암 → 옥련암 → 서운암  

                                                                                                            ↓

             통도사 본당  ←   금수암   ←   자장암  ←  서축암  ←  안양함    ←   수도암

* 소요시간 :  5시간

 

 

 № 1 ) 보타암  - 보타암은 통도사암자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암자이며 , 삼성반월교를 건너

                        300m 지점에 있는 마을집 같은 암자이다

 

№ 2 ) 취운암 - 보타암에서 200m 거리에 있다.

                      법당 뒤쫏에 역대 고승들의 사리부도가 즐비하게 서있다

 

 

№ 3 ) 사명암 - 임진왜란 시대의 명장 사명대사께서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암자라고 한다.

  

№ 4 ) 백련암 (백련정사) - 사명암에서 남쪽 숲속으로 500m지점에 있고, 주위에 숲이 울창하고

                                     큰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의 목조불은 은행나무로 조성했다고 한다.

                                      백련사 또는 백련정사라고 한다

 

№ 5 ) 옥련암  - 배견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위 약500 m지점에 있으며

                      " 장군수"의 전설로 유명하다.

 

№ 6 ) 서운암 - 삼천불전 서운암 , 어느해 상서로운 구름이 감돌았는지 이 암자를 서운암이라고

                     했단다 . 서운암 된장이 유명하고, 봄이면 들꽃축제로도 이름있는 암자이다.

 

№ 7 )  수도암 -  통도사 산내에서 제일 작은 암자이다. 법당한채와 요사채 한째로 되어있다.

                        수도암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조용한 개인 수도처로 적합한 암자이다.

 

№ 8 ) 안양암  -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하며 , 대웅전 앞 서남쪽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다. 통도사 본당과 제일 가깝다.

 

№ 9 ) 서축암 -자장암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법당형식의 대웅전이 있고 ,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이 유명하다.

 

№ 10 ) 자장암  -  자장암은 안양동대의 골짜기를 따라 2km정도 가다보면 자장동천이 나타난다.

                         이 암자는 금개구리 (금와)로 유명한 암자이다.

                      * 통도사를 짓기전 자장율사께서 바위벽 아래 움집을 짖고 수도하던 곳이며,

                        높이 약4m 정도 의 마애불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 법당뒤 바위벽에 엄지 손가락이 들어갈 만 한 작은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자장율사가 이 곳에서 수도하고 있을때 두마리의 개구리가 떠나지 않아

                         율사께서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갸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후 한쌍의 금개구리로 , 또는 벌이나 나비로 변현한다고 한다.     

                         좌우간 통도사를 찾는 참배객들은 이 자장암의 금개구리(금와)를 알현하고자

                         자장암에 온다고 한다. 안혈속의 개구리를 보는사람도 있고 , 보지 못하는 사람

                         도 있으니 ,이로써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측량하기도 한다고 한다

                     < 금개구리 사진은 자장암에서 찍어 놓은것을 주지스님의 허락으로 찍어 온것임>

     

      

 

№ 11 ) 금수암 -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의 말사이다

                       범어사의 말사가 왜 이곳에 이쓴지 이해가 않된다.  대광명전과 대웅전.

                       심우당,산신각,요사채등이 있으며 특별한 유물은 없다.

 

*  반야암,극락암,비로암,백운암,취서암,무량암,보문암,관음암 8개 암자는 다음 기회에 한번더

   찾아 나서 보기로 하고 19개 암자 가운데 8개 암자를 가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Posted by 혜 천

 

 

부산 해운대는 부산 사람이 아니드라도, 

한번도 오질 않았드라도 익히 알고있는 이름난 장소이다.

그 해운대 해수욕장 옆 미포선착장 위쪽 산먼당 지역이

대한 팔경중의 하나인 달맞이 고개 이다.

 

 

달맞이 길은 해운대를 지나 와우산을 거쳐 송정까지

해안 절경을 따라 15번이나 굽어지는 고갯길로

일명 15곡도 (曲道)라 하며 이곳에서 보는

보름달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달맞이 길이 시작되는 이곳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려지며

 1983년 달맞이 동산이 조성되었으며 , 1997년 해월정을 건립 일출과월출의 장관을 감상할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달맞이 언덕 주변에는 추리문학관, 동백갤러리등 여러 화랑이 밀집해 있고 그림같은 카페와 이름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몽마르뜨언덕 닮았다고 부산의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하는데 

아쉬운것은 정작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명 없고

그림 구경하는 갤러리가 많다는데 그림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에 갤러리들이 모여있다고 한다.

그만큼 화랑들이 홍보에 소극적이라 어느갤러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수 없으니 갈수 없죠 !  

 

 

 

   이곳 달맞이 언덕에는 많은 숫자의 커피숍과 음식접들이 있다.

   해운대를 찾은 관광객이 아니라도 부산의 젊은이들이 즐겨 차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 정작 많은 볼거리는 없는 곳이 이곳 이기도 하다.   

 

      

 

 부산 해운대 에 들리시면 이곳 달맞이 언덕에서 향이 좋은 커피 를 즐기며 아름다운 바다를 내려다

 보는 재미를 느낄실수 있는 곳이며, 저녁에는 문텐로드에서 달맞이 산책을 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해운대만 보시면 반만 느끼시는 여행이 됩니다.  

 

Posted by 혜 천

 

여름같은 봄날 !

 

경주시내 곳곳에서 볼수있는 고분군들보다 작은 모습의 무덤들이

대구에서도 볼수있다. 경주의 고분들은 왕들의 무덤이 많지만 이곳

대구 불로동고분군들은 이지역에 살았던 지배계층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도심속에 고분들이 있으면 산책을 하거나 도보여행을 하기 좋다.

불로동고분군들이 대구시내에 위치해있어 데구 올레 단산지 가는길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요하고 있다.

 

입구의 잘 정비된 봉분 몇기를 지나 50여m쯤 산책로를 따라

언덕위에 올라서면 웅장하고 위엄서린 경주의 왕릉과는

또다른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대·소고분이 나타난다.

 

탁트인 능성따라 고분군이 산 봉우리로 착각이 들 정도로 볼록볼록 솟아있다.

친근감드는 고분군 사이를 걸어 보며 봄날을 느껴 본다.

 

   

 

이 고분군은 팔공산의 지맥이 길게 뻗어내려와 경부 고속도로에 의해 잘리운 일대의 능선으로

볼로동 및 봉무동, 도동의 구릉에 분포하여 있는 봉토분으로 현재 210의 고분이 밀집되있다.

 

 

 

불로동 고분군(不老洞古墳群)은 삼국시대의 무덤군이라고 한다.

사적 제262호로 지정된곳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형이 명확하지 않은 고분을 제외하고도 그 수가 무려 210기에 이른다. 

 

 

언뜻 봐도 수백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하여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매장 주체부인 수혈식석곽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는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미 상당수의 금은제 유물이 도굴된 뒤였지만, 고대사회의 일면과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978년 한국의 고분군으로서는 최초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


 

 

불로동 고분군 공영주차장에서 고분군을 한바퀴돌면 1.8 km걸린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봉무공원, 단산지를 거쳐 만보산책로 도보여행해봄도 좋은 봄날이다.

 

 

 

이곳 무덤에는 이름모르는 작은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봄이면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꽃을 피워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덤으로 야생화구경까지 할수있다.

이꽃의 이름이 아마 제비꽃 아니라 생각된다..

 

 

여행지 정보

1> 여행지 : 대구 불로동고분

2> 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 전화 : 053-984-3506.


 

Posted by 혜 천

 

             그냥 하나의 섬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듣고 배워온 우리영토!

             그 독도에 난생 처음발을 딛혀 본것이다.

 

             울릉도엘 세번갔었지만

             독도는  첫 상륙이니 ,

             가고 싶다고 가 지질 않는

             하늘의 하락을 받아야 발을 딛혀 볼수있는

             그런 곳이 독도인가 싶었습니다.  

                

             독도 !!!

             일본은

             이번에도 독도를 교과서에 실어 자기네 영토라고

             우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합니다.

 

             일본놈들이 탐내는 동쪽의 우리땅  

             그 귀한 곳에 발을 딛혀 보니

             과연 아름답구나 !  감개가 무량하기 까지 한 것 이였습니다.

 

             심심하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

             우리도 좀 더 확고한 대책으로 그런 짓을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섬 하나 새들의고향 ....』
             이라는 노래 가사 처럼 
             독도여행을 계획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 실제로 가는 건 더 어려운 것이 독도여행이다.

             울릉도에 도착한 뒤에도 독도가 저 앞인데
             파도가 높아 상륙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그저 섬을 한바뀌 돌다가 돌아온적이 있었다.
 

            육지에서 힘들게 울릉도까지 그리고 독도까지  왔는데 

            독도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온적이 있었는데 많이 아쉽드라구요.

 

           그러나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돌보셨어  독도에 발을 딛혀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럽기 때문에 하늘이 허락한 자 만이 상륙할수있는 여행지라고 하나 봅니다.

           독도에 도착하여 첫발을 디딛니 그 감동 이루 말할수 없드라구요!


           관광선을 타고온 배는
           30분 정도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며 신비의 독도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 이곳입니다.

                 독도는 동도,서도 -2개의 섬과 89개의 부속암초로 이우러져있다.

                 동도는 높이98.6m이다. 동도봉우리를 일출봉이라고 부른다.

                 산봉우리 부분이 비교적 평평하여  독도경비대와 독도등대등 각종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동도 주위에는 독립문바위, 숫돌바위,갈매기바위등의 기암괴석이 있으며
                 유람선이 정박할수있는 접안시설이 설치되어있다.

 

 

           

                동도 접안시설에서 첫발을 딛혔지만

               관광객이 둘러 볼수있는곳는 접안시설 주위뿐이다.

               마음같았으면 독도경비대엔 못들어가도 , 독도등대도 보고 싶었고

               그곳의 희귀동식물들도 봤으면 했는데 그게 뜻대로 않죠.

 

 

 

              

                접안시설 반대편이 서도입니다.

                저곳엔 들어갈수 없죠!

 

                서도에는 어민 관련 시설이 주류를 이룬다.

                즉, 어민 숙소, 해산물 건조장, 전마선 인양기,

               급수조 등 어민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을 갖추고 있다.

                서도는 동도에 비해 면적이 다소 크고 표고가 높으며 서도 진입 계단의 경사도는 매우 가파른 급경사를 이룬다.

                 현재 서도에는 민간인 부부 1가구가 고기잡이와 해산물을 채취하며 어업인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요 볼거리는 탕건봉과 코끼리바위 등이 있다.

 

 

 

 

 

 

 

 

 

 

                < TIP > 울릉도에 대한 기본상식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

               독도의 2개 주요 섬 중의 동쪽 섬으로서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다.

               신라 지증왕 13년(512)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에서 출발하여

               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석도(石島) 등으로  불렀으며,

               1881년 이후 독도로 명명되었다.

               행정 지명으로서 독도(獨島)라는 명칭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Posted by 혜 천

            부산자갈치는 새벽이 더 분주한 곳이다

            남항에 고등어를 싣고 들어온 배들이 불빛을 밝히는

            새벽 3시 정도면 일꾼들이 북쩍인다.

            그러면 경매를 보러 오는 손님들도 모여드는 곳이

            자갈치시장이고   부산공동어시장이다.
             

            지하철 1호선 자갈치시장 역 6번출구에서
            바다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고등어구이집
            4곳이 형제들 처럼 어깨를 나란히하고
            새벽부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정확히 새벽3시부터 문을 열어 저녁9시까지 
            고등어구이 정식으로 영업하는 곳이다. 

            4,000원짜리 고등어구이 정식집이다.
           그래서 인지 메뉴 판도 없고 , 무얼 먹겠는냐 물어 보지도 않는다.
           자리에 앉으면 재빠르게 구등어구이 정식 한상이 나온다.

            물도 쎌프다.     

 

    반찬이라야
    고등어구이 한토막

    된장찌게 한그릇
    시래기국 한그릇
    콩나물무침, 그리고 김치 등등

     밥은 고봉밥으로 한그릇 먹고 나면
     배가 부를 정도
푸짐하다.  

     자갈치시장 상인들이 주로 찾는 집이라      
     테이블도 5개정도 밖에 않되니 한번에 20명 수용된다.


          한건물에 , 한양정식,  진주식당
          오복식당.  고등어구이 할매집 이렇게
          4집이 장사를 하고 있다.
 

         메뉴도 비슷하구,

         장사하는 모양도 비슷하다.

        그러니 가격도 똑 같고.....

 

      

                              옛날에는 2,500원 하던 고등어구이 정식도 
  물가 때문에 4,000원으로 올랐다.                               
                               그리고 예전에는 고등어가 흔 했는데 요즘은
  귀한 고기가 되었다고 한다.  

                      맛집정보                    
                     고등어정식- 할매집 
                     전화 : ☏ 051-245-9397  
                     위  치 :   자갈치지하철역 6번출구, 신한은행 맞은편 농협마트우측골목.
                                  골목안 수협맞은편
                     주차장 :  없음.
                     좌  석 :  테이블 5개

                    영업시간 : 03:00 - 21:00 까지
                    주메뉴 :  고등어정식 4,000 원
                                  비빔밥 4,000 원
 

Posted by 혜 천

 
                    6.25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았던 곳이 부산영도 다리였는데
                    세월의 흔적 속에 그 상흔들이 없어지고 있는 대표적인곳이
                    부산영도 다리입니다.

                    지금 그곳엔 새로운 영도다리가 만들어 지고 있어
                    영도다리와 인근의 흔적들이 없어지고 있거든요 !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아픔을 간직한
                    부산 영도다리.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는 평범한 영도다리 인지도 모르겠어요!  

                    왜정시대 일본은 만주대륙 침략을 위해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실어와
                    비축할 군사기지가 필요했고, 그 리고 영도에 많은 일본인 어부들이
                    있어
 그들의 어항을 쉽게 오갈수 있는 길이 필요 했기 때문에
                    길이 214m의
 영도다리를 놓은 것이다. 

                    이 다리는 왜정시대인 1931년 공사를착공하여 1934년 11월 개토한
                    하녹을 들어 올릴수 있는 일엽식 도개교로 오전과오후 하루 2번씩 들어 올려
                    큰배가 지나 가도록 했다. 


 * 1966년8월까지 다리를 들어 올릴때 큰배가 지나 갔다. 그 땐 영도다리 드는것
                                            보러 전국각지에서 여행을 왔다. 동래에서 전차도 타보고 하면 하루가 지난다.                                        
                                          사진에 배지나가고 다리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구경을 하는모습이 보인다.
                                             

                      이 영도 다리가 유명하게 된 것은 왜정시대 일본놈들에게 수탈 당하고 갖은 고생을 직한 애환이
                     서린 다리이며. 해방후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시 북한군이 밀고 내려 올때 남은 2곳 중 
                     남은 땅 부산.

                     그러다보니
이곳엔 피난민들이 몰려들며  부산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뿔뿌리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오가곤 하던 다리. 전쟁후 삼팔선이 생겨 이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북에서 넘어 오지 못하는 실향민이
생기자. 이들 실향민들은 부모형제등   
                     가족친지를 혹시 만날수 있을까 영도다리 를 찾곤 했던 가슴아픈 사연이
 남아 있는
                     영도다리였기에
   유명해졌다.


                                             
                           영도다리는 일본놈들이 수탈의 목적으로 세워 그 속에 애환이 녹아있고
                           한국전쟁의 아픔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나이드신분들에겐 "영도다리" 라는 단어만으로 도
                           아픈 기억들이 있는 곳이죠?
                                                           

                                                                  **  지금도 약초 판매상들이 즐비하게 있다.

                           영도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한약 전문상가로는 조방앞 약초시장과부전역앞 에 있는
                          인삼상가가 들어 서기전...

                           약 70년전 노점상으로 시작된 옛 시청 옆 영도다리 초재상거리에는 현재도30여곳의 
                           생약 인삼판매점과 노점상이있다. 이곳은 족제비 고슴도치등 온갖 동물성약재를 포함하여
                           1천여종의 약재를 구비해놓아 서울등지에서도전문상인들이 찾아오고 있는곳이란다.
                           박*자씨 등이 이거리를 지금도 지키고있는 분이다.
                           아마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 그때 사라질 운명을 안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 피란민들의 헤어진 가족을 찾기위해 점집을 많이 찾아 호항을 누렸는데 지금도 있다. 

                                   
                          남포동에서 영도다리 오른쪽으로 건너기 직전 계단을 끼고
                          일본식 다다미 집이 부산 앞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부산 앞바다와 붙어 있는 이른바 ‘영도 점바지(점집)’ 골목. 6·25전쟁 피란시절 영도다리 난간에는
                          헤어진 가족을 찾는 전단이 빼곡히 나붙었다.

                          그리움을 견디다 못한 이들은 ‘영도다리 점쟁이’를 찾기도 했다.
                          당시 이 일대에는 50여 개 점집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성업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사를 확인하려는 피란민 발길이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1998년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하고
                          2000년부터 옛 영도다리 복원공사가 추진되면서 점집이 떠나 지금은 사라질 위기다. 

                          현재는 장미화점집(김순덕 씨·77), 소문난 대구 점집(배남실 씨·80), 목화철학관(김남초 씨·76) 등
                          3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30년째 점집을 운영하고 있는 배 씨는 “요즘은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며
                          “이 집들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연륙교이자 들어 올리는 다리로
                          1934년 완공된 영도다리는 보수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2월이면 옛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때 부산 동래에서 대신동과 영도 영선동까지 전차가 있었다.
                                시골에서 영도다리 드는것 보고
  전차타러 여행을 오고했다. 그땐 좋은 여행지 였었다. 

                         그 다리가 내나이 16살때 인 1966년 8월 마지막으로 하루 두번씩 들어 올려 배가
                         지나도록한 
일을 못하게 되었고 노후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리도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옮겨가고 그 곳엔
초고층 건물이 들어게 되면서
                         
영도다리도 없어지게 될 운명에 놓인 것을 시민들의 반대로 가까스로  그 자리에 복원한다고 한다.  

                                                부산시청이 옮겨가고 롯데에서 초고층 백화점을 짖고 있다.

                              영도다리끝부분 영도경촬서 앞 에 
                             애잖은 사연을 담은 영도출신 현인 선생의
 
                            " 굳세어라 금순아 ! 등 노래비가 있어
그곳을 지나면 노래를 듣고 즐길수있다.
 

                                      * 그 땐 요즈음 힛트하는 노래보다 더 인기 좋은 노래였다.
                                        국민 누구나 부를수 있었고 지금까지
  불리고있는 노래다. 

                          부산의 대표적인  6.25 흔적이 남았던 영도다리도
                          새 다리가 생기고 나면 인근이 점집이나 , 약재상들이  정비되고 나면 
                          그 곳엔 옛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새로운것도 좋지만 옛것들이 그대로 함께해야 우리는 역사를 가진 민족이 되는것인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Posted by 혜 천

 
 40계단은 부산 중구 중앙동에 위치한 문화 명소 이다.
 부산엔 한국전쟁(6.25)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들중 한곳을
 소개하며 둘러 본다..

 대구와 부산 2곳 만 가까스로 북괴군의 발길에 짖밟히지 않고
 온전히 남았을때 중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영도다리와 중안동
 40계단에서 헤어진 부모형제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곳였다.

 낮에는 부두에 나가 날품팔이를 하거나, 국제시장 , 자갈치시장에서
 노동을 하며 그날그날 생명을 부지하며 , 가족친지를 기다리던 곳이
 바로 40계단이곳이다. 
     
한국전쟁(6.25)때  이부근에 거주하던 피란민과
부두노동자 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40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젊은이 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깊이 생각 해보지 않고 사니 잘모르겠지만 보리고개 세대들은
6.25를 알고 있으니 그 사정을 이해 할것이다..

영화<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오프싱 신에 나온 곳이기도 하다.

                     40계단의 그때  그모습                                                             * 현재의 40계단모습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으로 1951년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아가씨”라는 곡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등
 당시 영주동 뒷산, 동광동, 보수동 일대에 흩어져 살았던 10만이 넘는 피난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물동으로 물을 길러 날랐던 그곳에
                            근대식 수도시설이 들어 온것도 70년대 후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70년 까지도 이 40계단은 옛모습이였는데
                           계단을 보수하고 , 그시절 아코디언 아저씨 조형물을 만들어 앉히니
                           정취가 살아나는 곳으로 되었다.

                              40계단 기념비                                             *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

                                         이재호작곡 박재홍 노래의
                                       "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세요.
                                   피난살이 처량하게 동정하는 판자집에 ....."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40계단 비 뒤면에 새겨져 있다.


                                           지금은 평지이지만
                                           그땐 고지대 경사진 비탈길이 였습니다.
                                          고지대 판자촌으로 8.15해방과 6.25 사변을 겪으며
                                          수 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을 오르내리며 울고 웃던 생활의 터진이 바로 이곳이였다.


  *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
   40계단 중앙에 위치. 힘든 생활 속에도 낭만을 간직했던 거리의 악사를 표현하였으며 센서와 음향장치를 설치하여
    관광객이 스쳐갈 시 50년대의 경음악이 연주되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죠!
    힘든 생활속에서도 낭만을 간직했던 아코디언 켜는 아저씨가 반가웠겠죠 ? 
 

                        * 어머니의 마음                                                  * 뻥튀기 아저씨

   * 어머니의 마음 조형물은
      피난시절의 힘든 생활속에도 희생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시던 어머니를 표현한다.
   * 뻥튀기 아저씨 조형물은 
      기찻길에 위치하며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펑!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뻥튀기 모습을 표현한다.
      요즘도 시골 5일장을 지날때 뻥튀기 아저씨가 귀 막으세요 하면 자연히 귀를 두손으로 막게 되지요 !
 

                       물동이 진 아이                                               * 아버지의 휴식

       * 물동이 진 아이 
         어려웠던 시절 어린 나이에도 집안일을 도우며 착하게 자라던 어린이를 표현 한 조형물인데
         요즘 학생들 물동이 자체도 모르는 학생들 많겠죠? 시대상이니 어쩌겠어요!
아버지의 휴식
    가족을 위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지쳐,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아버지를 표현 한 조형물을 보면 , 요즘은 세상의 아버지들은 육제적 힘듬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지치게 하는 세상으로 바뀐것이니 매 한가지로 휴식인 필요한것은 같겠다는 생각입니다.  .

                        * 어머니의 마음                                          * 40계단 문학관 과 나선형 계단  

             40계단문학관에 들리면 
             1876년 개항이전부터 개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광복, 6.25등 중구의 형성과정과 역사 이야기
              밥벌이, 물전쟁.. 삶의 애환이 구절구절 묻어나는 그 시절의 추억들
              광복전후 부산의 사회상과 6.25로 인한 피난시절의 부산 모습
            “노천교실에서도 수업 열의는 뜨거웠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배움의 꿈을 키워 왔던 천막교실
              피난시절 애환과 설움을 상징하는 40계단, 대중가요에까지 등장한 40계단이야기
             1950년 전후로 부산중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화예술인 관련 물품들을 구경 할수있습니다.

                              기찻길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 
 
                * 기찻길은 부산역 대화재 전의 옛 부산역(현 중앙동 무역회관자리)을 상징하기 위해
                   기찻길이라는 주제로 40계단 앞쪽으로 40계단광장과 건널목광장을 설치하고 거리를 조성하였으며
                   총길이는 140m입니다.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
                  이 우체통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 보고싶어도 모지 못하는 그리운님에게 보내는 글.
                   가고싶어도 가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 피난시절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옛이야기,
                  모든이의 향수와 애환을 담은 편지를 넣을수 있는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이있습니다.


                * mbc 상징 조형물                                                           * 아직 그대로 있는 판자집
               말 그대로 방송문화가 시작된 곳입니다.

MBC 상징 조형물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방송 전파가 발송되었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부산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정도의 거리이니 ,
        부산여행에서 한번은 가봐야 될 곳입니다.
          40계단을 둘러보고, 동광동인쇄거리를 걸어 백산안희제기념관에 들렀다가
        남포동 ,용두산공원, 국제시장, 보스동책방골목, 깡통시장등으로가시면 좋습니다.

        40계단 문학관 아래 일본인 부부가 한국이 좋아 이곳에서
        눌러 앉아
   일본식카레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맛보고 가도 좋습니다. 

맛집정보

1> 상호 : 겐짱카레
2>위치 : 부산시 중구 중앙동 42-2
         소라계단 바로 밑 우측10M지점

3> 전화: 051-461-0092
              010-7758-1887



4> 참고사항
        * 영업시간 11:30-오후3시30분
                   오후 5:30- 저녁8:00 까지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 주차장 : 없음   


 



                       < 여행정보 관련정보 > 

               1) 교통편 : 부산역에서 걸어서 15분 
                                   지하철 중앙동 역 인근
                                  버스는 중앙동정류장에서 하차
                                   (17, 26, 27, 40, 41, 42, 43, 61, 81, 82, 86, 87, 88, 88-1,
                                      101, 103, 134, 135, 139, 190, 508, 1000, 1003) 

                              기 차 : 부산역에서 하차, 중앙동 방면 지하철 탑승 
                              지하철 : 1호선 중앙동 지하철역에서 하차 13번 출구에서 5분 거리                         
  
                              * 주변 공영 노상주차장 또는 민영주차장 이용(무료주차장 없음)

               2) 인근 볼꺼리 : 용두산 공원 , 부산 여객부두, 민주공원,광복동,남포동, 자갈치시장, PIFF광장
                                       부수동 책방골목, 국제시장, 깔통시장, 부산근대사박물관,

              3) 40계단 문학관 문의:   (051) 600-4041~2, 600-4541~2                            

 

Posted by 혜 천


      부산 해운대에서 월전까지  해안도로가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 나 있다.
      해운대 - 송정- 기장대변- 월전포구까지
      드라이브코스는 동쪽 동해안을 끼고 달리는 코스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기장 대변에서 월전포구까지는 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해안도로라  승용차 드라이브 길이다. 

     월전 포구에는 등대가 있고  자그마한 어선들이 있고 
     누구나 좋아 할만한 포장천막 어시장이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아나고 펄떡거리는 소리에
     아나고가 굽혀지는 냄새가 어울려져 사람사는 시장같은 활기가 솟는 곳이다.

     입구의 높은 2층횟집들은 포장천막어시장으로 가는 손님들의
     호객소리가 여전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만다.

     조그마한 포구에 주말이 찾아들면 부쩍 시끌벅쩍하다.
     오늘은 월전포구에서 죽성까지 걸었다.
     월전리 포구와 죽성포구가 인접해 있으니
     걸어서 10분도 채 안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월전포구 아나고 간단히 맛보고
                     고산 윤선도 7년간 유배생활한 죽성리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볼곳은 황학대 이다.
                     볼품없는 언덕처럼 남아있지만 그곳이 조선시대 유명한 고산윤선도 선생이 유배생활을 한곳이다.               
 

                            


                          月田 은 달월, 밭전 이니 남쪽의 높은 언덕 자락을 개간하여 만든밭,즉 산에 있는밭이라는
                          옛말이 달밭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마다 의 이름유래를 알고 나면 조산들의 지혜로움이 수긍이 가게된다.
                      



                            이곳 월전도 다른 포구와 마찬가지로 마을 입구는 매축하여 넓다란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포구에는 조그만 어선들이 있을 뿐이다. 

                            매축하여 공간이 넓다보니 외지에서 들어온 손님들이 주차하기에는 참 좋게 되었었다.
                            포구입구에서 부터 횟집이 나란히 붙어있고
                            중앙에는 가건물로 지은  월전활어판매장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가건물 회집들과 2층으로 잘지어진 횟집들이 대조를 이루고있다.
                             손님들은 주로 가건물 횟집들에 몰려있고 2층으로된 횟집들에는 장사가 않되는지 주인들이
                             입구에서 자기집에 들어오라고 손짖을 하고있었다.

                             가건물 횟집에는 사시미를 먹는 손님과 아나고를 화덕에 꾸워먹는 집으로 나뉘져있어
                             아나고 굽는 냄새가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혹한다. 
                             아나고를 굽는 냄새, 생선회를 파는 횟집,

                             마른고기르 파는 좌판,
                            팔닥거리는 활어를 파는 활어파내장 그리고 외지에서 몰려온 차량들로
                            이곳에는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삶의 현장이기도하다



            이게 아나고 껍질을 벗게 놓은 모습입니다.
            껒질 벗겨진 아나고에 양념과 채소를 버무려 놓은면 굽기전 아나고 입니다.
               보기에 식감이 좋지 않은듯 하지만 구워 놓은면 그 냄새가 식욕을 자극 하기도 합니다.  





                   기장 해안도로 따라 월전까지 와서 아나고 한점 맛보고
                        이웃의 죽성드림성당, 해송과국수당, 황학대, 죽성왜성등은 구경하고 가야 제대로 된 하루 일정이 소화됩니다. 


                          여행그리고 맛집 정보

                          1. 찾아기는 길
                                   * 부산 직활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월전마을
                                   * 전화 : 기장군 문화관광과 :051-709-4081

                          2. 교통정보

                                  * 월전 ↔대변 간 운행 버스는 없음
                                  * 기장시장 ↔ 월전(죽성) 간은 마을버스 6번이 운행
                                  * 기장 군청에서 월전까지 택시는 기본요금 정도.

Posted by 혜 천


 

곶감의 효능
*첫 번째는비타민A와 비타민C(사과의10배)가 풍부하여 건강보조식품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곶감을 드실때 끝맛이 떫은 이유는 바로 타닌 성분 때문입니다.
   이 타닌 성분은 설사를 멎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곶감의 두 번째 효능입니다.

*곶감의 효능 세 번째는 고혈압예방 효과 입니다.
   곶감의 타닌 성분은 설사 치료및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모세혈관 강화에 의해서 고혈압을 사전에 예방할수 있습니다.

* 곶감의 효능 네 번째는 숙취해소입니다.
   음주 전후에 곶감을 3개를 물에 달여서 1컵씩 하루에 세번 복용하시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 곶감의 효능 다섯번째는 각종 기관지 강화입니다.
    한방에서 곶감 표면에 형성되는 하얀가루를 기침이 심하거나,
   가래가 끓을때, 폐가 답답할때, 만성기관지염등 치료에 쓰입니다.

* 곶감의 효능 여섯 번째는 비위 강화입니다.
    곶감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위와 장을 두텁게 만들어주고
    비위를 강화시켜 목소리를 곱게 해주고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줍니다.

* 곶감의 효능 일곱 번째는 정력강화 및 정액생성 향상 효과입니다.
    곶감 표면에 형성되는 하얀 가루는 시설 이라고 불리는데
    호르몬을 보충해주고 정력제로써 매우 좋습니다.
    곶감을 드실때 하얀가루를 털어내고 먹으면 않됩니다.

* 곶감의 효능 여덟 번째는 각종 질병 및 감기예방 효과입니다.
   곶감을 꾸준히 먹게되면 면역력이 향상되여서 각종 질병 및 감기예방에 효과적입니다
Posted by 혜 천

     흑룡의해 !  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사이로 떠오르는
     2012년 새해를 맞이 했습니다.
 

     작년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우면산 산사태등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은 한해였었죠?
    어럽고 힘든 시간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새해, 흑룡의해 !
     블로그 이웃님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웃음 가득한 
                            즐거운 한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떠오르는 해와 광안대교 그리고 해수욕장으로
     사진의 포인트 ㄹ르 잡고 첫해를 담아 보았습니다.
     떠오르는 새해는
     구름속에서 머물러
     한참 지난 후에야 볼수있었습니다.
 

     일출사진은 바다와 하늘의 노출차이를 극복해야 된다고 하는데
     아직 잘 않됩니다. 그래서
     올해는 좋은 사진 좀찍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한해 되도록
     해야 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왔습니다. 



         흑룡의 기운을 뚬북 받아 
           즐겁고 행복한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10만 여명이 모인 광안이 해수욕장 일출행사장의
                해맞이 객들 모두의 소망은 같겠죠?
                 건강하고, 무탈하게 한해 되게 기원르디겠죠?





            블친님들도
            흑룡의 기운 뚬북 받아
            한해동안 행복하십시요?

Posted by 혜 천


청도에서 운문가는 도로 옆에 귀한 소나무 한그루가
차를 세우게 한다.  정확한 위치는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이다.

소나무가 천연기념제295호로 지정된것은  보기 힘든것이다.
국내에 이곳 동산리 처진소나무 보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바람흔적이 살고있는 부산 수영사적공원에도 수령
400년된 해송이있고, 기장군 죽성리도 오래도니소나무가 있다.
그래도 그 소나무들은 천연기념물이 아니 노송들 일 뿐이다.

이나무는 나무의 가지가 수양버들 같이 처졌다고 하여
유송(柳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의 형태가 이러한 것은 주변의 나무에 의해 눌려 처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한다.

나무가 다른 가지에 눌려 그늘이 심하면 살수 없는 것인데
살아 남을 수 있었으니 귀한 나무라고 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이 되었는지 ? 확실한 것은 다음에 알아봐야 겠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소나무 앞을 지나갈때 갑자기 큰절을 하듯이
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14m 나무둘레 1.96m이며 가지폭은 동서로 10.3m 남북으로 9.1m 정도 파졌고,
 지는 거의 지면까지 쳐져있다.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정도 된것으로 보고 있다.


속리산의 정이품송 처럼 가지가 처져있다.
어째던 희귀한 소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있으니 이곳을 여행하며 지나는 분들은 한번 보세요?

 
Posted by 혜 천
<



br/>DSLR 카메라로 야경사진 촬영법

* 야경사진 공부하며 배운 동영상입니다.
 야경사진 참 힘들어요 !

* 공부해서 잘찍어보려고요 !



Posted by 혜 천

 70-80년대 향수가 서린 부산 범일동 !

 세월이 흘렀건만 아기 그때 그모습이 남아 있는곳이 많다.
 장동건,유오성,서태화,정운택이 검은 교복을 입고 옆구리에
 가방을 끼고
 신나게 달리던 육교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어
 향수를  자아낸다.
 

 그때는 교통부에서 철길 넘어 지인의 집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 육교가 유용하게 사용되던 길이 였다. 
 영화 친구 덕분에 이 육교가 "친구육교"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것이다. 

 범일동 친구육교는 영화 "친구"를 보지 않으신 분은
그 육교를 봐도 아무른 느낌을 가질수 없는 단순한
 철로 위의 육교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신분은 70-80년대의 생활상을 회상하며
30-4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갈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범일동에는 피란민 수용소가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용소에 들어가지 못한사람들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살았다. 

그 대표적인 곳이벽화로 유명한  안창마을 이다.범일동 친구육교 가까운곳에 안창마을이 있는 것은 그때부터 빈촌으로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판자촌도 거의 사라지고 피란민 수용소도 없지만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육교와 철길이 남아있다.

 옛날 보림극장터에는 누리마트라가 자리잡고있다.

그 시절 보림극장은  범일동의 중심지 였으며 인근 삼화고무  종업원들이  많이 애용하던 극장이였다.  

 범일동 로타리에 가면 엤날의 향수를 느낄수 있는 곳이라 간혹 지나가도 이제 그 향수가 점점줄어들고 있다. 그러돈 중 영화 친구가 방영되어  여행객들이 둘러 보는 곳이 되고 있다.

범일동에는 부산진시장, 평화시장,자유시장,남문시장등 도매시장이 있어 서부 경남이나 동부경남에서

옷가지등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지금껏 붐비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한곳이다.



범일동 여행길은 시내버스 17번,67번,88번,103번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여행을 해야 한다.


 보림극장 앞  →( 건너 보림극장옆 할매국밥) →친구육교→ (범일동 매떡) →장동건 전봇대 →( 시장구경) →자성대공원 → 자성대 →우주석 → 영가대 →최영장군사당  → 미싱골목→ 좌천동골목 으로 코스를 잡으면 3시간정도 소요 될것이다.

만약 할매국밥이나 범일동 매떡집에서 식사를 하고 시장구경을 겸한다면  그시간은 별도로  추가 시간으로 계산해야  할것이다.




범일동 친구육교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육교라고 생각하고 걸어보자.

 영화 친구에서 패싸움을 하고도 퇴학을 면한 동수 (장동건)와 친구들이 기쁜 마음을 억 누를수 없어
 신나게 육교위를 달리는 장면이 이곳이다.


          영화를 개입시키지 않으면 , 사람이 지나디니는 육교일뿐이다.

         아직 엤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철길 가에 있다. 육교위에서 주변 동네를 보며
       시간여행을 가져 보자. 과거로....


        육교를 지나면 현대백화점 옆으로 계속 나오면 백화점 정문에 다다른다.   행여

        원조 범일동 매떡을 맛보고 가실려면 ,  그길에서  도로 건너 서면방향으로 곧장가면 

        황실예식장 건물이 보인다.  예식장 건물 뒤에 유명한 매운떡볶이집이 있습니다.


매워서 얼얼한 기분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서 국제호텔 방향을 찾으세요.
 

한참을 아래로 내려오시면 국제호텔이 나옵니다.초행길에는  찾기가 좀 어러울것 같네요.

지나는 사람에게 뭇는것이 상책이겠죠. 대부분의 부산 사람이면 알것 입니다.

이곳도 영화 <친구>와 관련된 전봇대이니 영화를 기억 못하면 무의미한 장소가 될것 입니다.

무뚝뚝한 모습으로 서있는전봇대 하나가 있습니다.이전봇대가 장동건 전봇대 입니다.
 

영화에서 장동건이 칼에 찔리며 부산 사투리로"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를 말하며 죽은 곳으로 간판은 국제호텔 앞에 위치해있고 , 전봇대는 건너편 만물수퍼 앞 커피자판기 앞에 웃뚝서있는
 전봇대가  장동건 전봇대인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60-70년대 범일도에는 삼화고무 등 방직공장도 많았다.자연적으로 이런공장에서는 미싱이 필요 했을것이다.그땐 우리나라 부라더미싱이 나오기 전이니일제가 판을 치던 시절인가 싶다.
 

일제 싱거미싱 한대 있는 집은 요즘 외제차 한대 있는것만큼 부자이고 구히게 였으며, 이웃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던 시절이있었다.  그 골목이 현대화 되었지 만 미싱기계들이 집합되어는 상점들이 있는 골목이다.
 

사진에 있는 미싱은 100년 된 미싱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진으로 담아왔다.

 

 

 

자성대 공원은 남포동이나 영도 등에서 동래나 해운대를 가다보면 도로변에 위치하여 보고 다니는 곳이다. 지금남아 있는 성지는 임진왜란인 1593년에 일본군ㅇ; 주둔하면서 쌓은 왜성이다. 임진왜란때 일본군 지휘소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왜장 이름을 따서 고니시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성지는 2단이며 성벽의 높이는 1.5 - 10m이다, 왜성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고 조용하여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성 정상에 있는 장대로 진남대라고 한다.

 말그대로 남문이었다는 뜻이다. 팔작지붕에 현판은 남쪽을 향해 달려있다. 건물의 북쩍편에 넓은 공터가 있는데...

사진의 앞에 서있는 비석은 임진왜란때 명나라에서 원병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귀화하여 천씨의 시조가 된  충장공 천만리 장군의 유적비가 서있으니 꼭 봐야죠. 


현재 남아있는 성지는 2단이며 성벽의 높이는 1.5 - 10m이다, 왜성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고 조용하여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부산진 지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돌기둥으로 건물 앞에 세워져있다.
돌기둥에는 < 남요인후 서문쇄약>이라는글귀가 새겨져있다. 뜻인즉,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되는 남쪽 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 같다. 라는 뜻이다. 석축의 좌측은 높이 272m , 폭 46-94cm , 우측은 277m, 폭 62-71cm이다.


영가대는 도로변에 세워져있다.

1617년 오윤겸이 처음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통신사 일행이 출발하여 돌아오던 장소이다.  일본으로 건너가기전 무사 항해를 위해 해신제를 지내기도 했던 장소로 1910년 일본인들이 경부선 철도부설과 항만 매립공사롤 소실 된것을 90년만에 복원하였다.


         최영장군 사당이 이곳에 있다.
         최영장군 하면 떠오르는말이 <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 많으 들었죠?
         왜구섬멸을 위해 이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한다 그래서 사당을 짖고 매년제를
         지내고있다 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느 좌천동골목, 50년전통을 자랑하는 좌천동 가구 거리 뒷편에 50년 고된 세월을 간직한 동네가있다. 지하철 좌천동 역 2번출에서 엤동넬로 들어가는 작은 굴다리가 있다 이꼿으로 들어가면 50년 전  마을과 만날수있다.  

 좌천동 골목을 한바뀌돌고 가구거리로 나와 좌천동역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면 되는 코스이다. 시간이 남는다면   인근 암창마을 벽화를 보시던가 문현동 안동네 벽화를 구경하러 가셔도 좋습니다.


 

Posted by 혜 천

 

         500년동안 갯바람 맞으며 꽃을 피워온

         천년기념물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엔 아직도

         예쁜 두송이 동배꽃을 만나고 왔다.

 

         5월도 한 열흘 정도의 시간만 흐르면
         여름으로 접어 든다. 

         봄비 내리는 서해안 서천마량리 !

         서천에는 자연산 광어도미 축제가 한창이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산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회맛을 보곤 하죠. 여행이란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여행에서는 반드시 그곳의 맛집을 찾아

         미각여행도 어울어져야 제대로된 여행이된다고 밑는다.         

 

         그래서 서천여행은 신성리갈대밭, 한산모시관을 둘러보고 춘장대해수욕장을 거쳐

         마량리 동백나무숲에 올라 오력도를 내려다 보는 멋을 즐기고

         마량항과 홍원항에 들러 자연산 조개류나 자연산 광어,도미를구경하고

         입을 즐겁게 하는 여행지이기도 한 곳이 였습니다.       

      

          마량리 동백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보면 500년의 정취를 느끼게 된다.

          그동백나무에 때늦은 동백 두송이가 오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게 담아와 그 모습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서천 8경 중의 한곳이라고 한다.

           이곳위치가 서천서면 마량리이라 일반적으로 마량리동백나무숲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500년동안 서해바다 갯바람에 시달려 키가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옆으로 누워서 자라

           밑둥이 커다랐다.    

 

             서천 화력발전소가 들어 서기전에는 참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 해수욕장은 없어지고 , 동백나무 숲 동산 앞에는 주차장이 멋있고 크게 만들어져 있다.

             자가용을 타고 가서  주차하기 쉽게 되어 있어 주차 걱정없는 곳이다.

               정상에 동백정(冬栢亭)이라는 현판을 가진 정자가 있다.

          정자에 올라 숲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오력도를 감상하기도 한다.

    

         동백은 12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이곳처럼 5월초순까지 피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이 5월말인데 우리가 올것이라고  이때껏 기다렸는지 동백꽃을 볼수있었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고 있지만, 맑은날 동백정에 올라가면 서해의 푸른바다와 낙조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수있다.

 

 

               500년을 살아온 동백나무 밑둥 입니다.

               세월의 흔적을 볼수있습니다. 갯바람에 얼마나 시달렸기에 저리도 구불구불 하게
               몸서리쳤을까 ?
     그렇게 힘겨웠던 동백나무들을 우리는 즐기고 있다니.... 

   

                   

                    동백나무 고목 밑둥에 두송이 동백꽃이 해맑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고이 담아와서 세상 사람들에게 선을 보입니다.  예쁘죠 .....

 

 

        

           봄이 떠나가니 나, 동백도 가야하나 봅니다.

           여름의 더위가 싫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꽃잎들은 떨어져 누웠답니다.

           내년봄에 다시 봐요 하며......

 

 

        여행정보

         1> 여행지 :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

         2>위치 :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275-1

         3> 전화번호 : 041- 952-7999

         4> 개장시간 : 09:00 -18:00

          5> 입장료 : 성인500원     학생,어린이 : 300-200원

          6> 찾아가는 길 (교통편)

              * 자가운전 :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 - 국도 21호선 (춘장대방면) - 지방도607호선
                               (비인검문소에서 우회전)

          7> 인근여행지 : 춘장대해수욕장, 서천해양박물관, 홍원항, 부사방조제,마량포,
                                월하성 갯벌체험장.                

                               

Posted by 혜 천


  여행지의 이른 새벽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숙소 코오롱 호텔 에서 불국사, 석굴암을 거쳐
  감포 감은사지를 보고 올 요령으로
4번 국도를
  따라 추령고개를 넘자 왼편 가파른 언덕에
  5층 석탑 2기가 보인다.

일행들이 잠시 저곳에 올라갔다가 보고 갑시다.하여
입구를 찾아 들어가는데 입구가 비포장 도로다.

계단을 올라 사지엘 당도하니
뜻밖의 힁재를 만나게 되자 , 야 ∼ 호 소리가 나왔다 !

감은사지 3층석탑 처럼 
2기의 탑이 참 아름답다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어온다.
서쪽의 5층 석탑이 잘생겼다.
동쪽의 5층석탑도 특이한 탑이다.

처음엔 왜 꼭대기 탑신들이 깨어졌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도굴꾼들이 폭약으로 사리엄구를 노리고
폭약을 터트려 파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나쁜 놈들이 이 아름다운 5층석탑을 망가트렸구나 !
생각하니 찍일놈들, 죽일놈들....소리만 반복된다.

아름다운 탑이구나 ! 생각했었는데
역시 국보236호로 지정된 보물이기에 이토록 아름다웠구나...   

토암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을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물은 대종천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를 지나 대왕암 근처로 흘러내린다. 

계곡의 높은 곳에 터를 닦고 중앙에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이 있었다.
불상을 놓았던 배좌가 남아 있는데  아래,위 두개로 되어 있다.
             

    감은사지 3층석탑보다 규모는 적어도 서탑,동탑 2기에 새겨진 인왕상등은 참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서탑은 2층 기단에 선 5층탑인데 상하층 기단에 기둥이 4개씩 새겨져 있고 옥개받침
   역시 5단으로 정연히 조각되어 있어
 통일 신라 중기에 건립되었음을 보여준다.   

  여덟방향에 창 모양의 안상을 만들어 네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곳에는 신장을 조각하였다.

 

 이탑의 특징은 1층 옥신석 4개의 면에 부처의 영이 드나드는 문비가 2개가 있다는 것이다. 
  문고리를 도깨비들이 물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문 양 옆에는 금강역사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둘 모두 금강저를 쥐고 있어 위엄을 보여준다. 
 

      

 

          < TIP1> 감은사지 3층석탑

 감은사지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라고 들 표현하는 석탑이다.

            

   장항리사지는 토함산 동쪽의 한 능선이 끝나는 기슭에 마련된 절터로서,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마을의 이름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지라 부르고 있다.  

   이 곳에는 현재 금당터를 중심으로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서 있는데, 1923년 도굴범에
  의해 붕괴된 것을 1932년에 복원이
 가능한 서탑만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동탑은 1층
   탑신(塔身)과 5층까지의 지붕돌만 남아있으나, 서탑은 약간 소실된 것을
  빼고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기단부는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안정감이 있으며,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을
   본떠 조각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1층 몸돌의 각 면마다
   문을 지키고 서 있는 한 쌍의 인왕상(仁王像)을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고,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네 귀퉁이는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경쾌함을 더하고 있다. 5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탑의 1층 몸돌 각 면에 한 쌍의 인왕상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것이 특이한데, 이러한
  현상은 8세기 전반기에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이 탑의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전체 비례가 아름답고 조각수법도 우수한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되 있다.

 

                           아래,위로 붙은 연꽃을 16송이 씩 조각하였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장항사지석조여래입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사지에서 출토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짐. 
         이 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 광배(光背)일부와 무릎 이하는 결실.
                   8세기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如來入像)으로 판단. 현존 높이 3m.

                                                                             <사진 출처 : 불교신문>

 

 여행정보
1> 명칭: 장항리사지 5층석탑
2> 위치: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3
3> 전화번호 054-779-6394

Posted by 혜 천

 

 수원화성의 4대 문에 속하는 장안문 앞에 유명한 만두집이 있었다.
 수원화성 동장대 (연무대)에서 시작하여 성곽따라 
동북노대, 동암문, 화홍문,북동보루,북동적대 그리고
 장안문 까지 오게되었다.

 장안문 앞에서 간식으로 유명한 만두집이 있다기에
 찾아들어 갔다.

 수원에서만 유명한 만두집으로 이름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두집으로 꽤 이름나 있다고 하는 집이였다.   

보통 음식점에 들어가면 손님을 맞이하여
물한컵을 내어오며 물을 메뉴와 함께 들고 오는것이 기본 순서죠.
좋아하는 것을 주문하는 대기시간에 목을 추기라고 내놓는 물 대신
이집에는 떡 볶이용  어묵국물을 한그릇 내놓는다.

 

 자리를 분양 받기 위해서 이집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될 만큼 손님이 많다.
  바글바글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며 만두를 시켰다.
 네 사람이기에 이집에서 잘한다는 군만두와 물만두, 김치만두 다른 하나는 만두국,
 이렇게 4가지를
시켰다.   

         역시 만두하면 군만두 지요.
        중국집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키면 서비스로 한접시 따라오는 군만두....
        보영만두에서 꽤나 잘하는 군만두 입니다.            

        겉은 바삭하게 익혔으며, 속은 촉촉한 만두피 안에 육즙이 있는 고기만두가 맛있다.
        바삭함 뒤에 느껴지는 고소함을 간직한 군만두 였답니다.
        바싹하게 굽힌것이 씹히는 질감도 좋았습니다.

                          고기를 많이 다져넣은 찐만두도 피가 얇아서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고기육즙이 빼어 나오면 특별히 향그러웠습니다 .

                    김치 만두입니다.
                   사진에서는 덜 굽힌 군만두 같네요.
                   그러나 김치 만두 입니다.

                      그리고 만두국 한그릇으로 마무리하여 보니다.
                      한사람이 4가지를 맛본것이 아님니다.
                      4사람이 한가지씩 시켜 돌아가며 맛보고 왔습니다.

 

 

                     만두가 종류 대로 나왔습니다.
                   만두국, 군만두, 찐만두, 김치만두 푸짐하게 한상 받았습니다.

 

    만두 한끼 식사가 되려면 시간이 중요할것 같다. 
   점심 시간에 먹는다면 식사로 대체 될것 같고
  점심 식사시간외 먹을땐 간식으로
   생각된다.  바람흔적은 만두가 간식으로 밖에 생각되질 않는다.

    만두를 먹고 반드시 한가지 더 먹거나, 집에가서 밥을 챙겨 먹으니 간식을수 밖에 .....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맛집정보
           1> 상호: 수원 보영만두
           2> 주소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282-2
           3> 전화 : 031-255-1085  / 031-242-9076

 

Posted by 혜 천

  화홍문을 뒤로 두고  북동포루로 걸어간다,
  성곽 안의 가로등 불빛에, 또 한번 내 마음은
  서로 충돌이다.
성곽 안쪽 윗길로 걸을 것인가 ! 
 
 아님 성곽 바깥길로 걸을 것인가?   

 성곽 안쪽 윗길로 걷는것이 정석인것 같은데 ,
 성벽 바깥에서 조명빨 받은 성곽 모습을 봐야
 되는가 !
 어느쪽을 택할것인가 !
 헷갈리고 말았어요.

 걷기 좋은 성곽윗길을 택한 것이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잘못 잡은 산책로 였다는것을 알았죠.
 모든 아름다운 성곽의 사진은 성곽 외부에서 봐야 
더 아름다운 경치라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수원화성은 2번 둘러 봐야 제대로
볼수있다고,
한번은 성 외곽을 돌고 한번은 성곽따라
산책로를 걸어야 제대로 봐진다고 ....  

수원화성의 정문에 해당되는 장안문과 아름다운 화홍문
사이는 거리가 43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걷는데는
쉬운 코스  였습니다.그 사이에는 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의
 3개의 방어시설을 구경하는 코스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화홍문에서 장안문까지는 성벽외부길로 걸어야 제대로 멋진 모습을
  볼수있을것 같습니다.

  아마 수원화성에서 가장 편하게 산책할수있는 성곽길을 걸을수 있는곳이 아닌가 생각될것 입니다. 북동포루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성외부길을 걸어야 됩니다. 성벽 내부로 걸어보면 그냥 지붕이있고 문이있는 시설에 지나지 않습니다.아름다운 북동포루를 보고 흥미를
끌지 못한 사람들중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북동쪽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루는
 치성과 같이 성벽을 돌출시켜
검정 벽돌로 쌓았으며 나무 마루판을 이용 3층으로 구획하였다. 벽면에 포를 쏠수있게 구멍을 내어 화포를 두고 위에는  담장을 둘러  적을 위와 아래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북동치 ,북동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쉽게 방어하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시설물로 치의 일종으로   주변 성벽의 바닥보다 높게 만들어서 적군의 통태와 접근을 감시하였으며 바닥에 대를 만들어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안문은 서울 숭례문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알려져있다.
조선시대 많은 누각이나 궁궐등은 보통 팔작지붕인데 장안문은 중국 자금성 지붕처럼
 우진각지붕이다, 대국인 중국과 같은 기상으로 강대국을 표방하기 위해 거대하게 만든것 같다.

 수원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정조18년(1794)에 건축되었으며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뜻에서 장안문이라 하였다. 이 문은 홍예문 위에 2층의 누각을 설치하였으며, 한국전쟁때 문루가 불타고 구조물이 파괴된 것을 1976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반으로 쪼갠 독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문의 좌우에는 옹성을 공격하는 적을 격퇴할 수 있도록 만든 적대가 있으며, 이것은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시설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성곽 대문길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걸어보니  
      바라보는 경치도 좋을뿐 아니라 천정의 문양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성곽외부 도로에서 바라본 장안문의 모습을 담았습니다만 제대로 가 아닙니다. 

 장안문 옆에는 유명한 보영만두 집이 있었지만 이른 새벽이라 맛 볼수는 없어, 오후 늦은 시간 다시 찾은 곳입니다.   장안문 위, 아래, 외부,내부, 멀리서 가까이서 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어두운 새벽녘에는 야경사진 찍는  한가지 일만 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세세한 구경은 날 밝으면 둘러보는것이 좋을것 같은 곳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북포루, 서북공심돈, 화서문으로 발길을 옮겨 보겠습니다.

             여행정보 
            1> 여행장소이름 : 수원화성 장안문 여행안내소
            2>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148-8
            3> 전화 : 031-228-2768

Posted by 혜 천

 

 부산에서 밤12시 버스를 타고  수원에 내리니
 이른 새벽 4시에 도착되었다. 어차피 자야할
 간에
움직이면 볼수있는 시간이 그 만큼
 많아지기에
서울이나 장거리 여행시에 택하는
 방법이다.

보통 새벽에 도착하면 동녘 해가 뜨기전까지 인근
목욕탕에
들렸다가 아침 해장국집을 찾아 아침을
먹는 것으로 그곳에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그 룰을 깨고 수원성의
야경을 볼
욕심으로
  택시를 타고 북수문 화홍문까지 갔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팔달문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그래서 여행전에 사전 준비가 필요한
것인가 봅니다.
 

 어느 불로그에서 화홍문의 야경사진에 매료된 기억 살아나 그곳으로 갔던 것이 랍니다.

 택시 기사님이 화홍문입니다. 하여 내리니 인적이라고는 느낄수 없어 약간은 으시시한
 느낌도 들었지만
카메라를 꺼냈는데 아뿔싸 ! 삼각대 부품이 하나 빠진것을 그때 알았으니,  이를 어쩌나 ! 낭감한일이 벌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담고 카메라로는 형상만
 담자는 마음을 잡고 앞뒤, 전후,좌우로 몇번을 왔다갔하며 둘러 봤지요.

 

수원에 갔으니 , 수원화성에 대하여 잠간 이야기하고 넘어 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시대 정조대왕께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으로 인하여 뒤주속에 갖혀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것은 거의 모든분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죠. 할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2년10개월에 걸쳐 화려하고 운장한 성곽을 축성 한곳이 수원화성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는 그 수원화성을 오늘에사 걸어 봅니다.
 수원성 5.7 km동쪽 화홍문에서 서쪽 팔달문을 거쳐 출발지 화홍문까지
 4시간을 걸었습니다.  꼼꼼시리 보고 찍으며 걷다보니 4시간이 걸린 것 입니다.  다음에는 더 적은 시간으로 돌아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수원화성은 평지성 이라 걷기가 수월하고 40여개의 성 시설물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북쪽에 장안문, 남쪽에 팔달문, 서쪽에 화서문,동쪽에 창룡문, 이 4개의 관문 사이에는 적의 동태를  파악 하는 공심돈을 만들었고, 서장대,동장대 2곳을 만들어 군사를 훈련시키는 곳도 만들어 놓았어요.

 이것 저것 볼거리가 아주 많은 유적지라 1997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된 곳입니다.  

   북수문을 화홍문이라 하는 사실은 그곳 에서 알게된 사실 이였습니다.
  아치형 수문이 7개라는 사실도 그곳에 알았구요, 한컷 찍으러니 삼가대없이는 찍을수가
  없을것 같은데 무리를하여 
찍어 본다고 iso를 높이니 노이즈가 심하게 생겼지만 어쩔
  방법이 있어야죠.

 수원화성을 한바퀴 돌고나니 북수문으로 흘러 내리는 물은 방화수류정에서 흘러 온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건 나중에 
알게된 일이었지만,  분명 물길의 발원지가 있을 것인데 북수문이니  북수문의 윗쪽에 발원지가 있을것이고 남쪽에는 남수문이 있을것이다라고 생각하였는 그생각이 맞았어요. 그 물줄기가 수원천이랍니다. 

 화홍문은 석교로 7개의 홍예수문이 설치되어 있고, 7개의수문의 수문중 ,가운데 수문을
 눈여겨 보시면 양쪽 수문들보다
넓고 크게 되어있죠. 왜 일까 ?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양쪽보다는 가운데로 물이 빨리 많이흘러야 될것 같은 생각에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되었습니다.

 홍예문 위로 올라 가봤죠.
사람이 중앙으로 다닐수 있게 만들어 놓았어요. 성벽에 바싹붙여 누각을 세웠놓았으며, 
누각의 면적은 잘 모르겠지만 팔작지붕 형식이여서 아담하고 정겨운 누각 이였답니다.

 비가온 뒤 물의 양이 많으면 물보라에 무지개가 생겨 화홍문을 더 아름답게 하는데 이를 화홍관창이라하여 수원팔경에  속한다고하니 그런 광경을 한번 보고 싶어 지기도 했지만 그때 가 볼수야 없죠.
 

오른쪽 높은 언덕 조명을 받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몰라 간판을 찾아다녔다. 동북각루라고 설명되어 있다. 동북각루를 보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을것인가 , 아님 마지막에 와서 볼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왼쪽으로 돌기로 하고 마지막에 동북각루를 보기로 마음먹고 북동포루로 향했다.  내일은 북동포루에 대해 이야기 엮어 가겠습니다.     

             여행정보 
             1> 위치: 경기도 수원시 북수동 190
             2> 전화 : 031-251-4435            

Posted by 혜 천

20일 KBS2 1박2일에서의 곰인형 배달 레이스 프로를
보며 재치있고 재미있게 웃음을 자아 낼수 있도록
엮어 놓은 방송을 보며 여행도 마음 맞는 친구끼리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여행이면 참 좋겠다고
느겼다.

한번은 친구들과 한번은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
 여행을 하며 도동에서 행남등대까지 산책한 코스라
 더 재미있게 프로를 시청하기도 했다.

 친구들과함께 할때는 엄태웅,이수근,강호동이 출발한
포항에서 션 플라어호를 타고 갔는데  파도가 높아
 고생을 했다.

포항에서 을릉도로 정기 운행하는 썬플라어호를 타고 10시 츨항 ,3시간 소요되는데 풍랑으로 4시간이 걸려 을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 도동항은 천연요새 같이 동서북쪽으로 빙∼둘러 쳐진 병풍같이 웅장하게 솟아오른 기암괴석으로 절벽을 이루고있는 아름다운 항구다.

작년에 여불단과 함께 갈때는 이승기,김종민 은지원 3명이 출발한 코스로 묵호항에 도착하니 아침때라 김종민이 배고프다며 곰인형을 등에 업고 묵호항 대합실 2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곳에서 우리도 아침을 먹었다  그곳 식당에는 메뉴가 동태찌게와 된장찌게 2종류 밖에없다.두 종류중에 골라야 한다. 묵호에서 오전10시 출발하여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다.

        


  묵호항 여객선 터미널 2층 식당에서의 아침식사 동태찌게입니다. 인근에 나가는 것이
 싫어 거의 대부분의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니 늘 북쩍북쩍 합니다. 어떤때는 줄을서서
 기다려야 아침 식사를 할 정도입니다.


 1박2일 팀들의 울릉도 행남등대 까지의 배달레이스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서울에서 번호가 적힌 큰상자를 선택해 안쪽에 있는 물건을 확인 후 최종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배달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프로그램이였다. 특히 멤버들은 자신의
  물건을 뺏기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게임 이기도 하구.

최종목적지 울릉도까지 안전하게 배달에 성공한 멤버는 포근한 실내 취침과 1명 구제권이 보장됐다.

다른 멤버들의 물건을 모르는 상황에서 상자 속 내용물을 확인한 멤버들은 큰 곰인형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 후 망연자실했다. 이들은 각자 큰 곰인형을 어떻게 목적지까지 빼았끼지 않고 배달해야 될 지 고민을 한다.

멤버들은 목적지를 향하여 가던 중 휴게소에서 서로의 물건이 곰인형인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후 이들은 배신과 음모로 서로를 속이고 타협하며 긴박한 승부를 벌리는 재미있는  과정을 그렸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뒤늦게 출발한 이승기는 울릉도로 입성하기 위한 관문인 묵호항에 도착했다. 이승기는 마침 먼저 항구에 도착해 깊은 잠에 빠져든 은지원을 발견, 손쉽게 그의 인형을 탈취해 탈락시켰다.

은지원과 동맹을 맺은 이승기는 김종민을 공략했다. 하지만 이승기는 막판 변심한 은지원으로 인해 탈락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이후 김종민, 이승기, 은지원은 가수라인으로 동맹을 맺었다.

이들과 다른 루트인 포항항에 도착한 엄태웅은 강호동, 이수근의 갖은 견제 속에도 인형을 무사히 지켜냈다. 이 과정서 멤버들은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며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울릉도에 도착한 멤버들은 최종 도착지인 행남등대까지 내달리게 됐다. 특히 이미 탈락한 멤버들도 이 레이스에 동참해 서로에게 혼란을 줬다.

특히 김종민은 시종일관 엄태웅을 속이며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듯 싶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꾸준하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 엄태웅이 이날 레이스 1등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한편 이날 엄태웅은 실내취침 동반자로 이수근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내용으로 울릉도의 아름다운 해안산책로를 보며 이들이 펼치는 채치있고
 웃음 나오게하는 행동들이 1박2일을 더 재미있게 했다. 

1박2일 엄태웅 , 김종민, 이승기,은지원,이수근,강호동 6명이 펼치는 배달레이스를 보며
 또 가고싶게 만드는 프로였다. 

              
  울릉도 도동항에 여객선이 보입니다.  여객선 너머 해안선 파도 따라 산책로가 보입니다.  

 도동항은 참 경치가 좋습니다.  왼쩍으로는 행남등대가는 해안산책로가 있으며 오른편으로도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오른폄 산책로는 해돋이 감상으로 좋은곳이다. 

 
 1박2일 팀들이 곰인형 배달레이스를 펼치며 행남등대로 행하는 출발 지점으로
 도동항 입구 산책로이다.   


울릉도 관광의 절정은 행남산책로다.
도동부두 좌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가 절경이다. 자연동굴과 골짜기를 연결하는 교량
 사이로 펼쳐지는 해안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야간 조명 아래 비치는 해안산책로는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 좋은 장소 인것 같다.



    
      도동항에서 얼마간 걸으면 골짜기에 용궁이라는 음식점 이있습니다.
      주로 해물을 팔고있는 집이라 눈여겨 봐두었다가 저녁에 술을 마실줄 아는 몇명이
      나오기로 한곳입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내리자 산책로 골짜기에 있는 용궁이라는 음식점에서 
     소라,자연산굴, 산오징어회로 소주와 맥주를 한잔씩 하였답니다.  


 
 이경사 해안로에선 김종민이 엄태웅에게 협상하자며 지연시키지만 순둥이 엄태웅은
 앞질러 행하니  가버린다.
 



행남산책로가 끝나는 곳에는 길이 갈라진다. 하나는 바다가로 이어지는 불과 100미터 이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등대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다르면 멀리 죽도가 보이는 곳인데 저동항의  촛대바위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에 명당자리 인 것같다.




                       
                           죽도에는 한사람이 살고있다 한다.


해안산책로는 행남 마을과 이어진다.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해서 살구남으로도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4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행남등대는 뱃길을 밝혀준다. 해송 사이로 이어지는 등대오솔길은 가을철에 노란 털머위 꽃이 군락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한다. 등대에서는 저동항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안산책로 코스는 왕복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Posted by 혜 천

 가야국으로의 여행은 갈수록 재미있다.
가야국 건국 신화 구지봉 설화를 살피고
 구지가를 읽어보는 여행을 한적이 있었다. 

 그후 김수로왕릉과 봉황동고분과 대성동고분을 
 찾아가 봤으며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첫발을 디딘곳
 진해용원 망산도와 유주암을 보고
 수로왕비릉을
 다시 찾아가서 파사석탑을 보고 왔다.

 몇년전엔 장유화상이 가락국 7왕자를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성불한 칠불사를 보며 첫째왕은 누구인가 알고 싶었다.  

가야유적지를 보면 볼수록 신비의 나라라 생각된다.
가야에 신비로운 불교의 꽃이 2,000년 전에 피었다.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가야로 와 김수로왕과 인연을 맺으면서 김해지방에 불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허왕후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것에 감사하여 세운 김해 분산의 해은암(海恩庵)을 보고  작년엔 가락국 제2대거등왕이 어머니 허황옥을 위하여 김해생림  무척산 중턱에 모은암  (母恩庵) 세워놓았다 .그곳을  찾아 등산을 한적이 있었다.

 

 지난 일요일은 가락국 제2대 거등왕이 외삼촌 장유화상의 뜻을 받들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에 보답하고 기리기위해 삼랑진 안태리에 있는 천태산에 부은암(父恩庵)을 세웠다. 그곳을 다녀왔다. 그러나 부모님 (수로왕과 수로왕비 2분)과 자신을 위해 진영 봉하 자하산( 봉하산    )  자은암(子恩庵)을 세웠으나 자은암은 폐사되어 없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는데 그곳은 아직 가보질 못했다.

 
거등왕은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면서 망극하 온 부모 은덕에 보답할 길을 삼보공양에두고  海東第一 報恩 도량을 세웠든 것이다.

 가야불교의 3대 사찰 중의 한곳으로 알려져 있는 부은암은 밀양시 삼랑진 천태산 중턱에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부은암이 있는 천태산은 가락국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부은암 인근에는 1~3세기 무불상시대의 불교를 상징했던 2기의 장방형 돌무더기 스투파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비로움을 준다. 부은암은 천태산에서 발원한 맑은 계곡물이 주위에 흐르고 이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커다란 암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 바위에 새겨진 이상한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시대에 어느 장군이 타고 온 말의 발자국이라 전해지고 있다.

천태산은 말 그대로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그래서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을 하던 
동굴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삼랑진을 공약하기 위하여 작원관지(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하였으나 의병들의 막강한 저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천태산을 넘어서 오다 부은암이 있어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부은암은 조선 말경 1860년(철종11년)에 동화사 학송스님이 옛 부은사지에 부은암을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부은암 뒤 폭포의 바위에 통천도장(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천’이라는 글은 가야불교의 절터에서만 나오는데 신어산 은하사에 올라 가다보면 종각 옆 바위에 새겨진 신어통천과 무척산 정상에 통천사와 같은 맥락의 의미로 가야불교를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천불보전 뒤에 있는 지름이 78cm나 되는 맷돌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 돌은 인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요니(여자의 음부)를 상징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천태산 정상의 기둥바위를 남자의 남근으로 보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 요니에 떨어지게 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은 불자들이 이곳에 와서 출산 및 득남기도를 했다고도 한다.  

유니석물이 유래부터 알아보자
이 석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돌로서 그 옛날 가락국의 허황후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파사석탑과 동일한 석질로서이것도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다한다.

이요니(여자의음부)는 인도 힌두교의 시바신을 상징하는 성기신앙의 대상물이다.흰두교에서는 어떠한 성인도 요니를 통하여 이 세상에 출현한다하여 요니를 가장 신성시 하여 숭상하는 종교이다.

요니위에 링가(남자의성기)를 세워놓고 물을 뿌리면서 아기를 가지고 싶은 신도들이 출산및 생남기도를 하는 인도문화가 전래되어 이곳에서도많은 불자들이 기도 치성을 하였다고 전해지고있다. 이 요니석물이 있기에 2,000년의 부은암 창건연대를 고증하여 주고 있다며 소중히 여기고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와 부루나존자 사리가 봉안탑이 완성될때까지 종무소에 안치되어 있다.
   신비로운 가야 사찰여행에서 노대통령의 고향 뒷산 봉하산의 자은암을 찾아가는 여행만
  남겨두고 가야의 사찰을 찾아 돌아보고 있다.

여행정보
1> 삼랑진 안태 천태산 부은암
2>위치: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 823 번지
3> 전화 : 055-353-8033  / 011-585-8031


Posted by 혜 천